로엔의 마나뱅크 28화
2장 야수의 부대
“도리아스 측의 현 상황은 어떤가?”
“최근에 왕국 차원에서 정식으로 철사자 용병단을 영입했습니다.”
“으음, 철사자라. 좋지 않군.”
나는 지휘관 회의에 참석해 있다. 총인원 5천이나 되는 대형 용병단의 단장이니 자격이 있다는 거지.
지금은 냉정하게 양 군의 전력을 평가하는 시간이다. 총지휘관인 롤랜드 장군이 참모로부터 보고를 받는 형식을 취하는데, 사실은 회의에 참석한 우리에게 설명하는 거다.
그러니까 전쟁이 벌어지면 우리가 유리하기는 하다는 건가.
병사의 총 수도 그렇고, 정규군 기사단도 이쪽이 강하다고 주장하네.
단지 용병단 중에 아주 거물급 대형 용병단인 철사자가 저쪽에 붙어서 압도적 우세는 아니라는 내용인데, 이쪽이 그렇게 평가할 정도면 대충 호각이라고 봐야겠네.
다행인 것은 마법사 전력은 이쪽이 두 배 정도 위라는 부분이다. 이건 마도병단 내에서도 따로 조사한 바가 있는데, 콘돌스핀 가문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충분한 수가 확보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저쪽은 전쟁을 벌일 생각일까요?”
남부의 군벌 귀족인 쿠쿤 백작이 질문을 했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지전이라면 몰라도 이런 전면전 양상은 적어도 몇 년 전부터 상당한 갈등이 계속되어야 터지는 거 아닐까?
그런데 너무 갑자기 일이 진척되어 가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롤랜드 장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아스 측에서 플로라 평원의 반환을 요구했소. 이건 싸우겠다는 의지라 봐야 할 것이오.”
“미친! 300년 동안 이쪽에 속해 있던 영토를 돌려 달리니 제정신이 아니군.”
“억지를 쓰는 걸 보면 확실히 싸우자는 소리군요.”
회의에 참가한 자들 중 플로라 평원 건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를 냈다. 정말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노골적으로 억지 명분을 붙인 셈이라 이쪽은 일방적으로 전쟁을 강요당하는 셈이다.
흠,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건 전쟁의 명분이 아닌데?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롤랜드 장군은 가장 어린 나에게 흥미가 있는지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했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그자들이 갑자기 전쟁을 일으키려는 걸까요? 무엇보다 이길 자신은 있을 걸까요?”
“그걸 몰라서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있네. 헤지호그 용병단장.”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안 서면 이런 억지는 못 부릴 거 같은데요. 적극적으로 대응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공격당하면 아무래도 늦는 면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 좋은 의견이 있나?”
“이번에 우리 헤지호그 용병단이 마도병단의 도움을 받아 구성한 카탈라난 전대를 선봉으로 내세워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저들이 준비한 것을 몸으로 부딪쳐 알아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헤지호그 용병단을 선봉으로?”
“예, 만약 저희가 당해도 적의 수를 알게 되면 그때는 정규군이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요.”
“파우스 경, 괜찮겠소?”
“저는 제자를 믿습니다. 적이 숨겨둔 것이 있다면 반대로 우리의 카탈라난 전대 역시 숨겨둔 한 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붙어볼만 할 겁니다.”
“흐음, 과연.”
괜찮은 의견이지? 솔직히 도리아스가 준비한 필승전략이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을 일으키기는 싫잖아. 자칫 잘못했다가 정규군이 제대로 당해서 전군붕괴라도 되면 왕국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5천의 용병이라면 희생되어도 큰 문제가 없지.
그런데 내가 왜 일부러 나서서 싸움을 자청하냐고?
카탈라난 전대에 반대하는 자들이 많아서야.
용병 따위에게 50명이나 되는 마법사를 지원할 수 없다고 정규군 참모들이 들고 일어났거든. 롤랜드 장군도 별로 좋게 보는 상황은 아니고.
꼭 그렇게 하려면 용병단이 아닌 정규군으로 카탈라난 전대를 구성하라는 의견까지 나왔는데, 난 내가 지휘할 수 있는 용병단이 좋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카탈라난의 위력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거야. 위력이 알려지면 마법진 자체의 이치도 알려질 테니까 말이야.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을 진행하는 거지.
그리고 사심을 버리고 생각해도 저쪽의 수작에 당해서 내가 태어난 왕국이 위험에 빠지게 둘 수는 없잖아.
싸우면, 이길 거야!
어쨌든 롤랜드 장군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모두 나의 제안에 찬성을 했어.
덕분에 우리 헤지호그 용병단은 정식으로 마법사들의 지원을 인정받았고, 더불어 보수를 포함한 물질적인 지원도 최상급으로 받게 된 거지.
*
“어떤가?”
파우스 스승님이 옛 후배 마법사에게 생채마법진에 대해 묻자 한참 집중하던 후배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우스 선배님, 이건 정말 대단한 마법진이군요. 제가 이걸 계속 연구해도 된다고 하셨죠?”
“암, 그것 때문에 이번에 동원한 마법사들은 대부분 우리 마탑의 사람들로 채우지 않았나.”
“이걸 삼년만 연구하면 아마 전 5서클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진짜로요!”
“허허,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 어쨌든 전쟁이 시작되면 실전을 치뤄야 하니 너무 연구에만 몰두하지 말고 몸 관리를 하게. 훈련도 빠지면 안 되고.”
“염려 마십시오. 전 경험이 없지만 한스 선배나 졸탄 선배는 모두 전쟁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더군다니 이건 집단으로 움직이는 거니 전 명령에만 충실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중요하지. 명령만 침착하게 잘 따르면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예!”
파우스 스승님은 다시 한 번 후배 마법사를 격려하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렌아, 네 말대로 이걸 연구하는 사람들은 크게 도움을 받을 거 같구나.”
“헤헤, 그거야 뭐, 정해진 거고요. 일단 저분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때까지는 서로에게도 마법진을 공개하지 못 하도록 주의를 주세요. 몸에 새겨진 마법진 때문에 다른 마법진에 대해 연구하다 자칫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요.”
“내 그 점은 이미 단단히 일러두었구나. 그런데 이거 페라룩 마탑에는 완전히 비밀로 해야 되는 거니?”
“예. 적어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비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특히 헬브리븐 경께는 말이에요.”
“알았다.”
헬브리븐 경은 페라룩 마탑의 부탑주로 이번에 탑주 대신 사람들을 인솔해서 전쟁에 참가했다. 그런데 우리 시라브 마탑의 참전자들이 너무 많아서 파우스 스승님께 마도병단 책임자 자리를 넘길 수 밖에 없었고, 그걸 별로 좋게 생각 안 한다는 소문이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책임자 자리를 헬브리븐 경께 넘기는 게 어때요? 어차피 스승님은 카탈라난 전대를 지휘해야 하잖아요.”
“그게 좋을 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양보를 하면 그 단순한 양반은 꽤 좋아할 거다.”
때로는 놓는 게 집착하는 거보다 좋을 수 있다.
파우스 스승님은 그날로 헬브리븐 경에게 책임자 자리를 넘겼고, 헬브리븐 경은 만족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직위를 받아들였다.
그 대가로 시라브 마탑의 마법사들 중 카탈라난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후방 쪽에 배치될 수 있었는데, 이정도면 우리가 완패를 당하기 전에는 거의 희생자가 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둥, 둥, 둥, 둥
수만에 가까운 병사들이 진을 치니 위압감이 다르네.
첫 회의를 참석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결국 전쟁이 터졌다.
우리는 작전대로 군의 가장 앞쪽에서 선봉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뒤쪽에 있는 본대에서는 상황을 봐가면서 언제든지 전력을 투입하거나 반대로 후퇴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은 상황이다.
정식적으로 군의 지휘는 파우스 스승님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어린 내가 아닌 스승님처럼 믿을만한 연배의 마법사가 마법진을 발동과 조종을 맡아야 다른 마법사들이 따를 테니까 말이지. 난 스승님 곁에서 보조를 할 뿐이다.
진군을 재촉하는 북소리가 점점 빨라질 무렵, 나는 몰던과 그로스웜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군 진군!”
둥, 둥, 둥, 둥
병사들은 조금씩 전진했다. 그들은 설마 자신들이 선봉에 서게 될 줄은 몰랐기에 상당히 불안한 표정이었지만, 합당한 보수와 50명의 마법사들이 자신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 때문에 크게 사기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5천의 용병을 희생시킬 수는 있어도 50명의 마법사는 버릴 수 없는 게 상식이니까.
“스승님, 그럼 시작할게요.”
“그래.”
나는 스태프를 잡고 마법진의 발동식을 외쳤다. 그러자 50명의 마법사들의 등에 그려진 생체 마법진이 제각기 반응을 하면서 옅은 안개와도 같은 역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병사들은 이미 언질을 들은 바 있기에 당황하지 않고 안개 속에서도 북소리에 맞추어 걸음을 옮겼고, 곧 완전히 활성화 된 마법진의 영역이 5천의 병사를 완전히 덥었다.
“된 거 같아요. 제 손을 잡으면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게 모두에게 전달될 거에요.”
내가 손을 내밀자 파우스 스승님은 손을 잡고 시험 삼아 병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전군 일시 정지]
처처처척
북으로 따로 신호를 보낼 필요도 없이 모두 동시에 멈춰 섰다.
[다시 전진]
척척척척
병사들은 신기해 하면서도 순순히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명령대로 따랐다. 이것으로 오천의 병사들은 그야말로 사람이 자신의 손과 발을 쓰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게 카탈라난의 제 1차 효과다.
“되는구나.”
“예, 스승님은 총 명령만 내리세요. 세부 명령은 제가 알아서 할 게요.”
“그래라.”
이론 상 정신력만 따라주면 5천명 개인에게 각각 다른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나라고 해도 좀 무리고. 마법사 한 명당 명령 하나씩, 그러니까 50개의 명령을 동시에 내릴 수는 있다.
이정도면 전투에서 진형이 붕괴될 염려는 아예 없다고 봐도 된다.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 헤지호그 용병단은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가 완성된 것이다.
동시에 역장의 힘이 병사들의 몸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병사들은 가벼운 흥분상태에 빠졌다. 마약과도 같은 최면 효과가 아니라 근육과 신경이 강화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병사들의 발걸음이 점점 씩씩해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사기가 올라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 나아가자 상대편 진형에서도 선봉에 해당되는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는 이쪽과 마찬가지로 5천 정도고, 무장은 이쪽보다 조금 약해서 대부분 한 자루 창을 들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후방에 열 명 정도가 있을 뿐, 부대와 섞여 적정 위치에 배치된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오합지졸이다. 선봉치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약해 보이는 수준.
“진짜 뭔가 있나 보네요.”
“그런 것 같다. 신중하게 대처해라.”
“예.”
나는 언제든지 카탈라난의 역장을 2단계로 상승시킬 준비를 한 채 적군을 향해 일직선으로 군을 전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