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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6화 (26/250)

로엔의 마나뱅크 26화

로엔의 마나뱅크 2권 -카르마 편-

1장 소년 용병단장

할짝할짝

렉스는 열심히 목걸이를 핥고 있다. 먼지 한 톨 묻는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하는 느낌이다.

짜식, 마음에 들었구나.

마리는 그 옆에 앉아서 빗으로 렉스의 털을 가지런히 빗겨주고 있다. 사실은 목걸이의 힘이 발산될 때 털에 깃든 마나를 안정시키는 작업인데, 애정이 깃들어 있다. 누가 보면 애견미용사라고 생각할지도. 애완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적한 오후다.

나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눈앞에 보이는 도시의 관문을 보았다.

파우스 스승님이 계신 곳은 도리아스 왕국과의 국경 요새도시인 볼탄. 군인과 용병이 일반 시민보다 많다는 곳이다.

그리고 내가 몰던과 만나기로 한 이곳은 볼탄 바로 전에 위치한 중개도시 소르판인데 볼탄으로 향하는 각종 군수물자의 보급대가 쉬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중계소도시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약속한 기일이 이제 3일 남았다. 이틀 전에 도착한 나는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관문 밖에서 들어가는 사람들과 물류들을 관찰하며 지냈다.

확실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듯, 적지 않은 물량의 보급품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 정도 물자가 필요하다면 평상시보다 거의 세 배에 달하는 병사들이 볼탄에 집결해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단순이 물자뿐 아니라 정규군 부대와 용병단으로 보이는 자들도 꽤 들어갔다. 계속해서 증원을 할 모양이다.

이쪽이 이렇게 증원에 증원을 거듭하면 도리아스 왕국측도 전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긴장이 높아져 가는 게 팍팍 느껴지네.

이거 터지면 전면전까지 갈지도 모르겠는데? 쩝.

휘리리링

뿌우가 돌개바람으로 변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왔당, 몰던이당.”

“드디어 왔구나.”

나는 몸을 일으켜 뿌우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목걸이 세정작업 중이던 렉스와 털 빗겨주던 마리도 내 뒤를 따라왔다.

조금 걸어가니 과연 몰던을 선두로 경장에 말을 탄 자가 삼십 명 정도, 그리고 그 뒤로 무장을 한 병사들이 대략 500명 정도 보였다.

“몰던!”

“오, 렌, 이미 와 있었구나.”

내가 손을 흔들며 다가가자 말들이 놀라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내 곁에 있는 렉스에게 겁을 먹은 모양이다.

말에 탄 사람들은 즉시 말에서 내리며 말을 진정시켰다. 하나같이 재빠른 몸놀림인 게 확실히 실력이 있는 용병들 같았다.

“오호, 이 녀석이 대장이 말하던 렉스로군요? 정말 대단한 크기네요.”

몰던 옆에 있던 중년의 남자가 렉스를 보며 감탄했다. 머리카락보다 수염이 더욱 풍성해 보이는 거구의 남자로 등에 맨 방패와 손에 든 창이 평소 몰던이 벽에 걸어놓았던 것들과 거의 비슷해 보였다.

“렌, 인사해라. 내 친구인 그로스웜이다.”

“그로스웜 경,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렌이에요.”

“경은 빼라. 난 평민 용병이니. 네가 우리 헤지호그 용병단의 고용주란 말이지.”

헤지호그, 고슴도치라는 뜻인가?

과연 용병단 깃발을 보니 가시를 세운 채 웅크리고 있는 고슴도치가 그려져 있다.

용병들의 무장들은 주로 창인데, 등에 작고 둥근 방패를 메고 허리에는 팔뚝만한 단도를 찼다. 그리고 중간열 쪽은 방패대신 활과 화살을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대는 단순한 창병 집단이 아닌 복합군의 성격을 띤 모양이다.

또한 행군을 해 오면서 오와 열이 흐트러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용병답지 않게 집단전술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받은 것 같다.

이건 정예군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몰던은 내가 용병단을 살피는 것을 알고는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아마 눈치 챘겠지만 그로스웜하고 나는 과거 정규군에 있었다. 문제가 있어서 나는 이곳으로 왔고, 그로스웜은 몇몇 병사들과 함께 군을 나와 용병단을 조직했지. 마법사는 없지만 전투력은 장담할 수 있다.”

“대장, 그런데 산적이나 마수사냥이라면 몰라도 전쟁은 마법사가 필요하거든요. 정말 마법사 지원 받을 수 있는 거겠죠?”

그로스웜은 확인하는 어투로 물었다.

“염려 마세요. 제가 마법사거든요.”

“아니, 너처럼 어린 마법사 말고, 경험 많고 최소 3서클은 되는 전투마법사가 필요하거든.”

이 바닥에서 나보다 경험 많은 마법사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 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스승님께서 콘돌스핀 마도병단의 책임자에요. 아마 우리가 전장에 실전배치가 되는 상황이 되면 마법사 지원이 있을 거에요.”

“오오, 책임자의 제자란 말이지. 그래서 몰던 대장이 마법사 문제는 어떻게든 된다고 장담했던 거군.”

“그로스웜, 대장 칭호는 이제 빼지. 과거 자네가 내 부관을 지낸 건 한 달이 채 안 되잖아. 이젠 경력도 나보다 많고 말이야.”

“한번 대장은 영원히 대장이지 그런 게 어딨수?”

“지금은 자네가 대장이니 내가 그리 불러야 하지 않겠나.”

“대장직 넘겨 드릴 테니, 걍 이대로 갑시다. 애들하고도 얘기 끝냈으니까요. 그렇지? 얘들아.”

“몰던 대장, 그로스웜 대장은 성격이 더러워서 밑에 있으면 힘들거든요. 걍 대장이 대장 먹어요.”

“옳소. 그로스웜 대장은 이제 좀 질렸으니 오랜만에 몰던 대장이 짱 하슈.”

뒤에 있던 지휘관들이 피식피식 웃으며 농담처럼 몰던을 대장으로 몰았다.

캬, 이 사람들, 의리 있네.

나는 몰던이 옛 동료들의 인망을 얻고 있다는 데에 내심 만족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응? 뭐냐? 고용주.”

“두 분이 같이 대장하고 제가 단장하면 안 될까요?”

용병단이니까 제일 높은 건 단장이거든, 에헴. 부대를 둘로 나눠서 몰던하고 그로스웜이 제 일대 대장, 제 이대 대장 하고 말이야.

“허, 단장? 네가”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는 내가 뜬금없이 용병단장을 하겠다고 나서자 그로스웜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와 몰던을 번갈아 보았다.

“제가 단장이어야 마법사 지원받기가 쉬울 거에요.”

“잉, 그런가?”

그로스웜은 마법사 지원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형식적인 단장은 누가 해도 상관없지.”

“그럼 나와 그로스웜이 대장으로 실질적인 지휘를 하는 걸로 하지.”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그 일은 어떻게 되었니?”

몰던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일이라면 미스틱 엑스를 찾으러 갔던 것을 말하는 거겠지? 미스틱 엑스의 도움이 없으면 우린 결국 빈츠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기도 어렵고, 전쟁에서 희생될 가능성도 크니까 말이야.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옆에 서 있는 마리를 가리켰다.

“만났어요. 그분이 이 여기사를 데려가라 하시던데요.”

“여기사?”

마리는 내가 눈짓을 하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투모드로 변해 아머를 발현시켰다.

차차차창

“우오오옷!”

눈 튀어나오겠어요. 이런 건 처음 보죠? 엄청난 마법사가 아니면 이런 거 못 만들 거 같죠?

평상복을 입고 있던 여자가 순식간에 전신갑옷에 대검을 든, 글자그대로 여기사의 모습으로 변하자 그로스웜은 물론이고 용병들 대부분이 감탄성을 흘렸다.

“이름은 마리포즈, 내 호위기사에요.”

“훌륭하구나. 검도 갑옷도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으니 일반 무기로는 대적하기 힘들겠다.”

“갑옷에 빈틈이 없구나. 이건 연결 부위를 창으로 찔러도 뚫기 힘들겠는데.”

일반 무기가 아니라 공성용 무기도 튕겨내거든요. 육체 자체가 마법병기고요.

설명을 해 주고 싶지만, 마리가 인간이 아닌 일종의 골렘이라는 것은 비밀이다. 자아를 가진 골렘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고, 그게 인간하고 거의 똑같은 수준의 자아와 외모라면 나밖에 못 만드니까 말이야.

“마리포즈 경 뿐 아니라 스승님께 확실하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도 몇 가지 얻어왔으니 이제 괜찮을 거에요.”

“그것 잘 되었구나.”

몰던은 내가 확실하게 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에 크게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내가 확실하다고 하면 진짜 자신이 있다는 소리라는 것을 아는 거다.

“그럼 가요.”

“그래, 허허허, 파우스 선생을 만나면 난 좀 혼이 나겠구나.”

몸을 피하라고 보냈더니 용병단을 조직해서 돌아온 상황이다. 몰던은 살짝 걱정이 되는지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는 병사들을 인솔해 소르판 관문으로 들어가 관문관리자에게 정식으로 용병단 진입 허가를 요구했다.

소르판의 관문관리자는 내가 단장이라는 말에 말이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규정에 의하면 부대의 지휘관은 성인식을 넘겨야만 될 수 있단다.”

그 규정은 이미 알고 있지. 하지만 예외규정도 있잖아.

“저는 브로스마이어 가문의 렌이라고 합니다. 스승님인 파우스 브로스마이어님을 지원하기 위해 가문의 자금으로 용병단을 조직했으니 등록해 주십시오.”

“헛, 브로스마이어 가문! 이런 실례했네.”

우리 브로스마이어 가문은 전쟁영웅 가문이거든. 가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부대를 지휘할 자격을 국왕폐하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말이지. 그게 아이는 안 된다는 규정이 없는 이상 다른 모든 조항보다 이게 우선한다고. 암. 국왕폐하 직전의 특권이잖아. 특권은 쓰라고 있는 거고.

관문관리자는 내가 내민 브로스마이어 가문의 증표를 보고 잠시 망설였지만 내가 재촉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속을 해 주었다.

내 기억에 볼스테아 왕국이 생긴 이래 14살짜리 용병단장이 생긴 적은 없을 걸?

수속을 마친 나는 당당하게 소르판 안으로 들어갔다.

소르판 안에는 부대가 주둔할 수 있는 대형 막사 건물지대가 있고, 정식 수속을 마친 우리는 그 중 한 곳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유료다. 정규군이 아닌 이상 공짜는 없다.

“자금이 얼마 안 남았다. 하루라도 빨리 볼탄으로 가서 정규군과 계약을 맺어야 할 거다.”

회계를 담당하는 몰던이 말했다. 이분이 겉보기와는 다르게 돈계산도 잘 한다. 부대가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나 필요한 장비가 얼마인지는 척하면 척하고 나온다.

하지만 볼탄으로 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몰던, 여기서 일주일 정도 준비를 할 게 있어요.”

“준비? 뭐가 더 필요하니?”

“500명은 너무 수가 적어요. 용병단의 규모를 키워서 볼탄으로 가죠.”

“허, 일주일동안 사람을 모집한다고 해도 별로 신통치는 않을 거다. 그리고 사람을 모아도 유지비용이 없어.”

“유지비용도 같이 모으죠.”

“뭔 소리냐.”

옆에서 듣고 있던 그로스웜이 답답하다는 듯 끼어들었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른 용병단을 통째로 흡수하자는 거죠.”

“무슨 수로?”

“전쟁에 참여하는 용병들이 제일 원하는 건 마법사잖아요. 그렇죠?”

“그건 그렇지.”

“마법사 없는 용병단들 찾아가서 내가 마도병단 책임자의 제자라고, 우리 용병단에 붙으면 마법사 지원 확실하다고 하면 그들이 응하지 않겠어요?”

“으음, 그렇게 말한다면 확실히 응하는 자들이 있을 거다. 그런데 괜찮겠니? 지금 인원이면 몰라도 여기서 규모가 더 커지면 아무리 파우스 선생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정하지는 못할 텐데…….

보통 일반 병사 백 명당 마법사 한 명이 지원하면 가장 효율이 좋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 용병단은 마법사 다섯 명을 지원받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거다. 꼭 다섯 명이 아니더라도 세 명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랄까?

그런데 여기서 다른 용병단을 흡수한다고 하면, 마법사가 열 명 이상 필요하고, 그건 정규군의 허가가 없으면 지원하기 어려운 숫자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용병단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 거니?”

몰던이 일단 말이나 들어보자는 눈빛으로 물었다.

“오천 명이요. 그 정도는 되어야 단독 작전을 수행할 수 있잖아요.”

“오천 명!”

“미치겠네. 어린 녀석이 배포는 크구나.”

몰던이 놀라 소리를 지르고 그로스웜이 고개를 저으며 감탄 반 황당함 반인 어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병사 오천에, 마법사 오십 명으로 이루어진 용병단을 나는 원해요.”

“오십 명은커녕 이십 명만 지원해 달라고 해도 정규군측에서 난리가 날 거다.”

“몰던, 절 믿으세요. 확실하게 오십 명 지원받을 수 있다고요.”

“진짜냐?”

“확실해요.”

나는 단호하게 대답한 후 살짝 목소리를 죽여서 다시 말했다.

“미스틱 엑스가 방법을 가르쳐 줬어요.”

훗, 전가의 보도 미스틱 엑스. 이거 좋네. 이름 그대로 능력도 신분도 신비에 쌓인 마법사, 그를 만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 렌 브로스마이어 아니겠어?

암, 방법이 있다는 데 어쩌겠어.

몰던, 미안해요. 별로 속이려는 건 아닌데, 상황이 좀 애매하니 어쩔 수 없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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