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25화
렉스의 목걸이 제작은 마리의 몸체를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더 복잡한 면이 있어.
가장 좋은 것은 렉스에게 전신아머를 입히는 것인데, 얘가 자기 털 눌리는 걸 그렇게 싫어해요.
안장도 내가 타야 되니까 특별히 그냥 하고 있는 건데 온 몸에 가죽이나 금속편 같은 것을 뒤집어쓰라고 하면 아마 못 참고 난리를 칠걸.
그렇다고 아예 결계 배리어 같은 걸 형성해 버리면 싸울 수가 없잖아.
남은 건 몸 자체를 개조해서 재생능력이든 뭐든 특별한 능력을 심어주는 건데, 난 렉스의 육체를 개조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렇다고 내가 낀 스톰 자이언트 벨트를 얘한테 끼워주면 힘 조절이 안 되서 주변에 모든 것을 부수고 다닐 테니 말이야.
에잇, 결정했다.
나는 연구실의 코어가 되는 마정석을 통째로 렉스의 목걸이에 이식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이 연구실은 아예 폐쇄 되는 셈이네.
어차피 연구실을 관리하는 마리도 따로 육체를 부여했으니 코어를 멈춘 상태로 놔둘 바에야 다 써먹어 버리자.
연구실 코어 마정석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게 인공 드래곤하트거든. 진짜 드래곤하트는 10분의 1정도만 들어갔지만, 100년간 이곳의 냉기를 흡수하면서 거의 순도 100% 드래곤하트와 비슷할 정도로 마나가 찼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화이트 드래곤 스케일도 있었지. 재료는 이걸로 쓰자.”
겨우 몇 조각이지만 드래곤의 스케일은 한 장이 사람 손바닥 세 배 정도 크기다. 개목걸이를 만들기에는 충분한 분량이지.
나는 스케일을 작업대 위에 놓고 스케일마다 미스릴 잉크로 작은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스케일은 모두 세 장, 여기에 마법진을 새겨 넣고 겹치면 그야말로 3중 입체 마법진이 완성된다.
이건 나로써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극도로 집중을 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구상한 대로 마법진을 새겨 넣으니 드래곤 스케일 자체에 내포된 마나가 미스릴 잉크에 반응해서 은은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다.
“된 건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망하는 거다. 일단 이걸 합쳐 버리면 이건 다시 만들 수도 없거든. 다시 만들려면 8서클 재구성 마법을 써야 하니까 말이야.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을 뿐,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
“좋아.”
꼼꼼하게 점검을 해 본 결과 된다는 확신이 생겼다.
“마리야.”
“네. 부르셨어요.”
“연구실 동력을 모아줘. 이건 순수한 마나로만 가공할 수 있어. 그러니 최대한 집중해 줘.”
“알았어요.”
마리는 연구실의 지킴이 자아이기 때문에 내 명령이 있으면 코어의 힘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곧 연구실의 천정에 박혀 있는 발광석이 하나둘씩 꺼져가며 작업장 천정에 있는 마나집중관에 엄청난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공간이 흔들릴 정도라니. 흐. 좋아. 내가 신호하면 쏴.”
나는 드래곤 스케일을 집적로 안에 넣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강식장갑로브로 전신을 감싸고 마리에게 신호를 보냈다.
파지지지지지
하얀 섬광이 천정으로부터 쏟아져 나와 집적로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집적로는 들어오는 마나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마나밀도가 발생한다.
드드드드드드
“윽, 예상보다 압력이 센가보네. 폭발하면 끝장인데.”
집적로가 발갛게 달아오르다 이제는 하얗게 바뀌기 시작했다. 거의 터지기 직전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한계까지 기다렸다.
“그만!”
내가 급히 외치자 마리는 바로 작업을 멈췄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집적로의 마나가 점점 약해지면서 원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역시 무리가 가긴 갔는지 표면에 미세한 실금이 수도 없이 가 있었다.
“쩝, 이제 못 쓰겠네.”
나는 아쉬운 마음에 혀를 다시고는 집적로가 완전히 식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안을 확인하니 완벽하게 붙어버린 드래곤스케일이 있었다. 더군다나 과도한 마나 투과로 스케일 자체의 재질이 연하게 바뀌어 부드러운 가죽처럼 변했다.
나는 그것을 다시 몇 겹으로 접어 띠로 만들었다.
“이걸로 베이스는 됐고. 이제는 코어 마정석을 빼서 여기에 심을 차례인가.”
마정석을 빼내는 순간 이 연구실은 끝이다.
그 전에 짐을 챙겨야지. 아공간 주머니에 중요한 재료들은 넣을 수 있을 만큼 넣고 말이야.
내가 연구실을 떠날 준비를 하러 가려는데, 갑자기 스태프에서 뿌우가 튀어나오며 외쳤다.
“내 집에도 마정석을 박아줘랑!”
“어, 맞다. 엘레멘탈 마정석을 아직 정식으로 세팅하지 않았지.”
엘레멘탈 마정석을 세팅하려면 스태프에도 상당한 작업을 해야 한다. 내가 고위 마법사가 아니라도 이 연구실은 그걸 가능하게 하니 지금 해 놓는 게 낫겠다.
“그럼 일단 특별한 기능 없이 붙여만 놓을게. 그것만 해도 너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어설프게 기능을 넣는 것보다는 그냥 뿌우가 엘레멘탈 마정석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내친 김에 다시 미스릴 잉크로 스태프에 작업을 시작했다.
“이 스태프는 기본적으로 재료가 평범해서 내구성에 한계가 있어. 하지만 너라면 이게 망가지지 않도록 지킬 수 있지?”
“내 집은 내가 지킨당.”
“알았어.”
나는 연구실 코어 마정석의 힘을 이용해 다시 작업을 했다. 엘레멘탈 마정석을 스태프 끝에 인챈트하고, 그 주변에 다시 미스릴을 보강해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게 만드는 한편, 창날에 아다만티움을 씌워 전체적으로 무게 중심을 맞췄다.
작업이 끝나니 스태프의 무게가 약 두 배 정도 무거워졌지만, 지금 나에게 그 정도는 이쑤시개 하나와 둘 차이나 다름없다.
“됐다. 이제 한 번 들어가 봐라.”
“뿌왕, 새 집이당!”
뿌우는 신이 나서 몇 번이나 들락날락 거리면서 머리만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정말 좋아하네. 이게 큰 집을 마련한 남자의 심정일까?
“그럼 이제 렉스 목걸이를 완성시켜야 하니 넌 방해하지 말고 들어가 있어.”
“알았다. 새 집 단장하고 있을 거당.”
안을 꾸밀 수도 있는 거였냐? 정령의 공간감각은 인간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드네.
어쨌든 이제 마지막 작업이 남았다.
그런데 그때, 내 몸속에 살짝 변화가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것은!”
과도한 마나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면서 모자랐던 한 조각이 맞춰진 모양이다. 예상보다 거의 반년이나 빠르네.
4서클의 벽이 뚫릴 것 같은 몸의 신호에 나는 즉시 앉아서 명상에 들어갔다.
이미 경험해 본 익숙한 느낌의 써클 확장신호에 나는 침착하게 몸의 변화를 관조하며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간단한 변화를 위해 우리 마법사들은 몇 년에서 몇십 년을 그토록 고생하며 수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새로운 경지에 올라서면 그 어떤 기쁨보다 더한 만족감을 얻게 되지.
“하하하, 하하하하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웃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처음 4서클에 들어섰을 때에도 이렇게 웃었던 것 같다.
5서클 때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가?
6서클 때에는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여서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한참 둘러보았던 것 같다.
변화가 끝나고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살짝 스트레칭을 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며칠 쉬면서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지만 지금은 여유부릴 때가 아니지.
“그럼 이제 마지막 정리를 하자.”
나는 떠날 준비를 다 끝내고 마리를 불렀다.
“알겠지? 너의 새 몸은 이거야. 연구실의 코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파워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 좋을 거야.”
“헤헤헤, 저에게 새로운 몸이 주어지는 거군요.”
“응, 그리고 동시에 연구실의 코어 마정석을 빼서 이 드래곤스케일 띠에 박아 넣을 거거든. 이 작업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해. 네가 새 몸체로 이동하면서 마지막 명령으로 코어도 이동을 시켜야 하니까.”
“예, 이해했어요. 실수하지 않고 잘 할게요.”
“그래, 그럼 시작하자.”
드드드드드드드
연구실 전체가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코어의 이동은 연구실의 모든 힘을 정지시키며 진행된다. 내가 이 비밀연구실을 만들 때 작은 곳 하나하나도 모두 자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엄청난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게 모두 멈추는 것이다.
“이거 언제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하아.”
왠지 모를 아쉬움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구실보다는 당장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
“이동할게요.”
“그래.”
마리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디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연구실 코어 마정석도 여덟 개의 보석형태로 변해서 드래곤 스케일 띠에 박혔다.
쿠오오오오오
“이익, 바로 눈보라가 몰아쳐 들어오는 거냐.”
작업이 끝나자 연구소 주변 결계가 사라지면서 사방에서 거센 냉기가 몰려들어왔다.
“마리야. 아직이니?”
나는 목걸이를 챙겨 얼른 렉스의 목에 걸어주며 아직 움직이지 않는 가디언 몸체를 향해 외쳤다.
그러자 곧 가디언의 몸에 은은한 마나의 기운이 발산되면서 마리가 눈을 떴다.
“렌님, 추워요. 아! 이게 춥다는 느낌이군요.”
마리는 처음으로 육체가 생겼고, 감각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머릿속에 정보로만 있던 춥다는 느낌을 직접 경험하게 되자 새삼 감동한 듯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만졌다.
“온도 감지 모드가 있어서 그래.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 전투형으로 바꿔.”
“예.”
파캉, 파파파파팍
대검을 등에 맨 여자 기사의 모습, 은색의 갑옷이 냉기와 눈보라를 반사시킨다.
“그럼 가자. 렉스야. 달려.”
컹컹컹
난 얼른 렉스의 등에 올라타며 외쳤고, 새 목걸이를 얻은 렉스는 신이 난 듯 크게 몇 번 짖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목걸이로부터 작은 실과도 같은 마나의 기운이 흘러나와 렉스의 전신을 감쌌다.
어떻게 보면 사자의 갈기와도 같은 느낌인데, 이게 다시 전신으로 퍼져 렉스의 털이 세 배쯤 많아진 형태로 변했다.
이게 단순한 마나의 털이 아니라, 연구실 전체를 움직이던 코어 마정석의 힘이 발산되는 거다.
아마 이제 렉스는 드래곤브레스를 정통으로 맞아도 괜찮을 걸?
나는 구상한 대로 목걸이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천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감탄을 넘어서 감동이라 할 수 있지. 암.
옆에서 렉스와 비슷한 속도로 달리는 마리를 보니 새삼 감동이 물밀듯 몰려온다.
“이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싸울 준비가 끝났으니까.”
전쟁도, 마탑의 수장이라는 7서클 마법사 빈츠도, 모두 처리해 주겠다.
나는 결심을 다지며 남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