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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3화 (23/250)

로엔의 마나뱅크 23화

9장 비밀연구실

나는 누군가 쫓아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마을에 들르지 않고 여행을 하기로 했다.

렉스를 타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길을 따라 갈 필요도 없다. 음식도 렉스가 알아서 물도 찾고 사냥도 해 온다.

노숙이라 잠자리가 불편할 거 같지만, 나는 마법사다. 그것도 3서클 마법사.

“안락한 침대!”

파앗

공간의 일그러짐이 생겨나면서 반투명의 관과 같은 침대가 생겨났다. 뚜껑이 있는 침대라 안에 들어가 누우면 저절로 닫히는데, 이게 전혀 답답하지 않고 굉장히 편안하다.

또한 이것도 공간결계의 일종이라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탐지마법에도 안 걸린다. 그러면서도 안에서는 주변을 살필 수 있고, 소리를 들을 수도 안 들을 수도 있다.

3서클로 만드는 잠자리다운 효과라 할 수 있었다.

단지 이게 4서클인 안락한 방이면 렉스까지 집어넣을 수 있지만 아직은 혼자밖에 못 들어간다.

미안, 렉스. 너 혼자 노숙시켜서.

“그럼 렉스. 아침에 보자.”

컹컹

렉스는 잘 자라는 듯이 두어 번 짖고는 바위 사이에 웅크리고 앉았다. 아마 새벽이 되면 알아서 아침거리를 잡아오겠지.

음, 이 참에 뿌우에게 요리를 가르쳐 볼까? 그럼 난 완벽하게 게으름뱅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다. 그러다가 애 삐지면 안 되지.

그나저나 스승님이 진명까지 알려줬으니 일단 한 번 확인이나 해 볼까?

침대에 누운 난 커넥트 마법으로 스승님의 마나뱅크에 연결을 했다.

“오, 이거 마나가 꽤 되네.”

예상 밖이다.

“이정도면 7서클 두 명이 평생 모은 수준인데...”

어떻게 스승님의 스승님이 마나를 물려준 것은 알지만 이건 한 명이 모을 양이 아니다. 나머진 어디서 났을까?

“맞다. 초대 탑주도 7서클이라고 그랬지. 그럼 그때부터 내리물림 해 왔단 얘기네.”

마나뱅크의 무서운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시라브 마탑의 사승관계가 꽤 괜찮았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 곳을 빈츠가 본을 유혹해 작업을 했으니...

“횡재했네. 쩝.”

“빈츠, 내 꼭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거다. 네가 뿌린 죄악의 씨앗이 어떻게 너를 파멸시키는 지 알게 해주마.”

나는 이를 살짝 문 채 중얼거린 후 다시 잡념을 지우고 잠을 청했다.

왕왕

“아, 벌써 아침이니?”

몸이 개운했다. 역시 안락한 침대가 좋긴 좋아.

나는 침대의 뚜껑을 열고 일어나 렉스가 잡아온 사슴 한 마리를 요리해 먹었다. 그리고는 렉스의 등위에 올라타 다시 북으로 향했다.

렉스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달렸다. 어지간한 준마보다 빨랐고, 숲이나 산에서도 속도가 거의 줄지 않았다.

대신 그 위에 탄 나는 흔들림이 굉장히 심했는데, 이것 또한 마법으로 대처할 수가 있었다.

“안정!”

뱃멀미가 심한 마법사가 개발했다는 안정마법은 외부의 진동으로부터 마법사의 몸을 지켜준다. 이것도 좋은 마법인 게 마법사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단지 2서클 마법치고는 유지마나가 큰 편인데, 그건 그냥 초짜 2서클한테나 문제가 되지, 나처럼 있는 집 마법사에게는 신경 쓰이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보름 쯤 가니 북부 산맥의 줄기가 나왔고, 산맥 줄기를 따라 올라가니 이제는 사방이 산봉우리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실은 여기도 아직 초입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렉스,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야 돼. 북부 산맥에 사는 마물들 중에는 너보다 강한 놈들이 꽤 많거든.”

끄응

렉스도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함부로 짖지 않았다.

나는 봉우리 중 하나에 올라 사방을 살폈다.

“역시 산은 산이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대충 지리가 파악된다. 그때 나는 환생 후 내가 쓸 비밀연구실을 이 북부 산맥의 한 가운데에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 어리고 강하지 않을 내가 무사히 비밀연구실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놓은 것이다.

“여기 있군.”

다행히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나보다. 혹시 발견될 경우를 생각해 여러 군데 숨겨놨는데, 나머지는 나중에 확인하고 회수해야겠다.

로엔의 이름이 새겨진 거대한 남근석 앞에 도착한 나는 이름에 손을 대고 시동어를 읊었다.

“분해.”

파스스스스

100년 넘게 마법에 의해 유지되던 남근석이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남은 것은 작은 상자 하나. 상자 안에는 가루가 듬뿍 담겨 있는 통과 하얀 깃털로 만든 망토가 담겨 있었다.

투명가루와 비행의 망토이다. 원래 혼자 이곳에 와서 투명가루를 전신에 뿌리고 날아서 연구실까지 가려 했다.

그러나 렉스를 데려온 이상 혼자 날 수는 없다.

난 투명가루를 나와 렉스에게 뿌려 모습을 지었다.

“가자, 렉스. 저쪽이야. 아, 그리고 짖으면 안 돼. 이 가루는 냄새도 지워주니까 조용히만 하면 절대 안 들키거든.”

컹컹

“짖지 말라고.”

렉스는 내가 지시하는 대로 북부 산맥 깊숙이 들어갔다.

역시 투명이 좋다.

마물이고 사람이고 시각에 의존하는 면이 크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면 기척을 느껴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후각까지 막았으니 이건 바로 옆을 지나도 대부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와이번의 계곡도 거인의 소굴도 다 관통해서 지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예외는 있는 법.

드드드드드

땅의 진동이 느껴졌다.

“어엇, 이것은!”

느낌이 왔다. 앞쪽에서 뭔가가 땅을 뚫고 다가오고 있었다.

“렉스야, 우회하자.”

나는 급히 말했다.

끄응, 끙

렉스도 같은 심정인지 작게 대답한 후 얼른 진로를 90도로 꺾었다. 그러자 30미터쯤 앞에서 파악 하고 땅이 일어나며 거대한 벌레와도 같은 마물이 튀어나왔다.

“아, 역시.”

프로스트 웜.

저놈은 시각, 후각이 없다. 단지 진동으로 먹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집요하게 쫓아온다.

“신속! 렉스야. 전력으로 뛰어.”

왕왕

신속마법까지 걸린 렉스는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나 프로스트 웜은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빨랐다. 땅속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거대한 몸이 한번 움츠러들었다 좌악 펴지면 몇 십 미터를 이동하니 빠를 수밖에. 거기에 가끔 꼬리부분에서 펑 하고 가스도 내뿜으며 추진력까지 얻는다.

이렇게 달리다가 다른 프로스트 웜이 나타나면 망하는 건데, 저놈을 어떻게 따돌리지?

분명히 전생에 저놈을 만났을 때에는 이렇게 해야지 하고 생각해 뒀었는데, 막상 닥치니까 잘 생각이 안 나네. 하긴 애초에는 날아서 가려고 했으니 프로스트 웜은 그다지 신경을 안 썼지.

뭐였더라?

“아, 맞다. 페인트 스프레드 레드!”

촤아악

내 손바닥으로부터 붉은 색 물감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뒤쫓아 오던 프로스트 웜의 몸을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됐어. 계속 달려!”

명령하지 않아도 렉스는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조금 더 도망가니, 사방에서 붉게 변한 프로스트 웜을 본 겨울 늑대와 와이번이 몰려들었다.

원래 프로스트 웜은 은회색의 몸을 하고 있는데, 늙어죽을 때가 되면 내부에 쌓인 열이 밖으로 배출되면서 전신이 붉게 변한다.

이때는 몸이 더워서 지열이 있는 땅속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거의 죽은 몸이기 때문에 잘 움직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된 웜은 북부산맥의 마물들에게 최고의 먹이거리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프로스트 웜이 다른 마물들을 잡아먹지만, 죽을 때가 되면 반대 상황이 되어 그동안 자신의 먹이였던 마물들에게 빚을 갚는 것이다.

과거 난 이 점을 알고 1서클 마법 페인트 스프레이로 프로스트 웜을 붉게 칠해본 결과, 사방의 다른 마물들을 불러들이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이 작전은 어김없이 성공하여 곧 마물들과 프로스트 웜의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괜히 붉은 색만 보고 건장한 프로스트 웜에게 달려든 겨울늑대와 와이번들아 미안. 어라, 저쪽에서 거인도 오네.

아무나 센 놈이 이겨라.

그 사이 나를 태운 렉스는 다시 방향을 틀어 원래 가려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고오오오오

눈보라가 거대한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지는 곳이다. 드디어 도착했다. 저 안에 내 비밀연구소가 있다.

저 거대한 눈보라는 그야말로 100% 자연현상으로 대자연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증거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연구소를 만든 난 인간의 대단함을 보이는 존재고. 후훗.

“로엔의 이름으로 명한다. 관문의 자아여. 이곳으로 와서 나를 보호하라!”

내가 시동어를 외치자 곧 눈보라가 점점 약해지더니 드디어 멈췄다. 마법으로 일순간이나마 대자연의 위대함을 억누른 셈이다.

나는 얼른 렉스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완전히 얼어붙은 호수가 있었는데, 호수 아래에 있는 거대공동에 나의 연구소가 있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구멍을 통해 공동으로 들어간 나는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깊은 한숨은 내쉬었다. 이제 나를 위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관문의 자아는 왜 안 나오는 거야?”

연구소 지킴이로 임명한 자아는 내가 공동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 있다.

비록 환영과 목소리밖에 주어지지 않은 놈이지만 나름 생각까지 한다. 난 기계적인 반응을 싫어해서 상당히 인간적인 성격을 자아에 부여했다.

“어이! 관문의 자아. 안 나오는가?”

나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가요!”

연구소 뒤쪽에서 어린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그 목소리에 어울리는 여자애가 열심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반투명한 환영이 모습이지만 얼굴표정이나 옷 같은 것도 모두 확실하게 보였다.

잉, 근데 웬 여자아이?

분명히 내가 만든 관문의 자아는 덩치가 3m쯤 되는 하프 자이언트 남자일 텐데.

쟤는 뭐지?

거기에 무슨 환영이 뛰어 와? 뿅 하고 나타나던가. 스르륵 미끄러져와야지.

내가 당황과 의혹으로 황당해 하고 있는 사이, 어린 여자 환영은 겨우 내 앞까지 와서 숨이 찬지 헉헉 거리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새 주인님, 전 제 이대 관문지킴이 마리포즈에요.”

“제 2 대에에에?”

언제부터 환영만 있는 자아가 애까지 낳게 된 거지? 난 그런 변태적인 기능은 집어넣지 않았다고!

그리고 애를 낳았다면 애 엄마는 누구지? 같은 환영인가?

내가 고민하는 사이 마리포즈는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서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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