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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20화 (20/250)

로엔의 마나뱅크 20화

8장 음모의 주체

락티움 콘돌스핀 마탑에서 지낸 지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파우스 스승님과 난 상당히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빈츠 경은 이 참에 파우스 스승님을 완전히 회유할 생각인지 방계 마탑에는 공개하지 않았던 고급 마법진까지 일부 관람과 연구를 허락했고, 스승님이 나를 정식 후계자로 지목하자 나 또한 스승님과 함께 다니는 것을 조건으로 자유로운 연구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이들 비공개 마법진을 살펴 본 결과, 역시 콘돌스핀 마탑의 수준은 딱 그저 그런,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그다지 특별한 게 없는 평범한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마법진에 틀린 곳도 많아서 내가 고쳐주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파우스 스승님은 거의 신세계를 본 듯한 표정으로 열심히 마법진을 공부하셨다. 나 역시 슬쩍 슬쩍 질문을 가장한 조언을 해가며 스승님의 마법진 이해를 도왔다.

그러던 중, 드디어 시라브 마탑에 갔던 마법사가 연락을 해왔다.

“뭣! 본 경이 도망갔다고?”

“예, 우리가 갔을 때에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습니다. 아무래도 락티움에 귀가 있었나 봅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관문의 경비병을 비롯해 몇 사람은 파우스 경의 얼굴을 봤습니다. 마탑쪽이 아니라도 비밀이 새어나갈 가능성은 있습니다.”

“으음, 알았다. 즉시 추적대를 편성해서 본 경의 행방을 추적하도록. 이 일은 중대한 사안이니 절대로 본 경을 놓쳐서는 안 돼.”

빈츠 경은 기분이 나쁜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이어 경이 일이 틀어졌음을 알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고, 빈츠 경은 그것을 수치로 여기는 듯 눈썹을 꿈틀 거리다가 억지로 화를 참으며 말했다.

“본 경이 도망갔다는 것은 이번 일의 범인이 그임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내 그자를 잡은 후에 다시 연락드릴 테니 마이어 경께서는 일단 돌아가 주시지요.”

“알겠소이다. 그럼 그렇게 가주님께 전하지요.”

6서클 마도사가 마음먹고 숨으면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마이어 경은 빈츠 경의 제안을 받아들여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파우스 경은 빨리 시라브 마탑으로 가서 동요하는 다른 마법사들을 안정시켜 주게. 마탑주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지금쯤 난리가 났을 것이야.”

“알겠습니다.”

확실히 본가 마탑주답게 일처리가 빠르긴 하다. 우리는 반나절도 안 되어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임시마탑주인 네티스 경과 함께 시라브 콘돌스핀 마탑으로 향했다.

락티움 시를 벗어나자 들에서 늑대를 족치고 있던 렉스도 합류했다. 그 사이 렉스는 인근 마을에서 새로 나타난 정체불명의 마물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습격하던 늑대와 웨어울프를 물어 죽임으로써 자신이 마물이 아니라 인간의 편이라는 것을 보였고, 일부 농가에서는 렉스를 성수 취급하기까지 했다.

“단 며칠 사이에 성수로 알려지다니. 렉스, 네 인기관리능력은 타고난 건가 보다.”

왕, 왕, 왕

어쭈, 짖는 소리도 뭔가 있어보이게 바뀌었네.

어쨌든 올 때는 거지꼴로 왔지만 돌아갈 때에는 편하고 당당하게 갈 수 있어서 좋다.

우리는 바로 시라브 콘돌스핀 마탑으로 향했고, 거기 있던 마법사들 중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은 대부분 파우스 스승님을 알고 있기에 금새 상황이 진정되었다.

스펠 플래그에 대한 비밀은 아직 비공개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조사 결과 몇몇 마법사들이 본 경과 결탁해 나쁜 짓을 한 것이 밝혀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되었다.

네티스 경은 6서클의 마도사로 연구에만 몰두하고 마탑 내의 정치적인 문제는 모두 파우스 스승님이 맡기를 원했기에 스승님이 실질적인 마탑주의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동시에 브로스마이어 가문의 일도 이제는 파우스 스승님이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에고, 우리 스승님. 마나 수련에 마탑과 가문의 경영까지 하시려면 쉴 틈도 없겠네.

그래도 스승님은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해 나갔다. 친구였던 본의 배신에 대한 상처를 일과 수련으로 씻으려 하는 듯 한 느낌이다.

파우스 스승님이 바쁘니까 난 오히려 자유를 얻었다. 스승님은 내가 알아서 수련을 할 거라고 믿는지 따로 별 다른 지도를 하지 않았다.

자, 그럼 이틈에 내가 할 일을 해 볼까?

내가 할 일이 뭐냐고? 그거야 바로 도망간 본을 잡는 거지. 나와 스승님을 건드린 놈이 도망가게 놔둘 정도로 내가 성격이 좋지는 않다.

본, 너에게 지옥을 보여주마!

아까도 말했듯이 마도사쯤 되는 자가 작정하고 숨으면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게 나한테도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거든.

“뿌우야.”

“뭐냥?”

나의 영원한 심부름꾼 뿌우는 오늘도 스태프로부터 머리만 내밀고 용건을 물었다. 나는 스태프를 탈탈 털어 뿌우가 완전히 나오게 한 다음 탁자위에 지도를 펼쳤다.

“지도 볼 줄 알지?”

“안당. 난 대기의 정령이라 공간감각 하나는 확실하당.”

그래, 그래서 내가 대기와 대지를 좋아하는 거거든. 불하고 물은 대부분 방향치란 말이야.

“여기를 보면 내가 구획을 25개로 나뉘었잖아.”

“나눴당.”

“각 구획의 공기를 쓸어와 봐. 그러니까 다는 아니고, 적당히 말아서 돌개바람 정도 수준으로 만들어 오면 돼.”

“너 대기의 정령이 가진 힘을 아주 잘 아는구낭. 알았당.”

잘 알지. 포트라가 틈만 나면 대기의 정령이 얼마나 우수한지 설명을 해대서 말이야.

뿌우는 내 요구가 마음에 들었는지 씨익 웃으며 바람으로 변해 허공으로 날아갔다. 하긴, 물걸레 빨아서 핏자국 지우는 일에 비하면 자기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일이 좋겠지.

나는 뒤뜰로 가서 낮잠을 자고 있는 렉스를 깨웠다. 그리고는 본이 입고 있던 옷을 꺼내 렉스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얘가 덩치가 커지면서 냄새도 훨씬 잘 맡거든.

“알겠지? 곧 뿌우가 바람을 몰고 올 테니까, 그곳에서 이 자의 냄새가 나면 알려달란 말이야.”

컹, 컹.

아우, 우리 렉스 말도 잘 알아들어. 얘가 똑똑하니 만사가 다 편하네.

뿌우는 이 지방 일대의 공기를 구역별로 말아서 바람으로 만들어 왔고, 렉스는 그 냄새를 맡는다. 마녀의 빗자루라도 타고 이 지방을 완전히 빠져나갔으면 몰라도, 아직 남아 있다면 피할 수 없을 걸?

그렇게 일곱 번 정도 하니까 드디어 렉스가 컹컹 짖으며 발로 땅을 긁었다. 거의 반나절동안 작업을 한 결과다.

나는 즉시 지도를 펴고 그곳이 어디인지 확인했다.

“툴스의 숲인가.”

시라브 일대에서 가장 울창한 숲이다. 하지만 산맥과 연결이 되어 있지는 않으니 본은 다른 지방으로 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냥 당분간 숨어 있으려는 속셈이라고 봐야 한다.

“역시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소리겠지.”

페론의 암살자까지 연관된 사건이다. 무엇보다 스펠 플래그의 독을 만들려면 본 정도 수준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본에게 독을 준 자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와 파우스 스승님이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가자.”

나는 싸울 준비를 단단히 갖추고 툴스의 숲을 향해 떠났다. 걸어서 이틀은 걸리는 거리지만 렉스를 타고 달렸기에 반나절 만에 숲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 렉스야. 이제 본이 어디 있는지 찾아 봐라.”

컹, 컹.

벌써 냄새를 맡은 거니. 훗.

앞서 달려가는 렉스를 따라가니 곧 숲의 나무들 사이에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결계로군.”

잘 숨겨져 있다. 나 정도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뿌우야, 하늘로부터 보면 이상한 게 보일거야. 시각적인 거 말고 공기의 흐름.”

“알았당.”

뿌우가 다시 바람으로 변해 하늘로 치솟더니 곧 공간의 어느 한 구역에 돌개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간이 살짝 일렁이며 나무와 나무 사이가 갈라진 것처럼 보였다.

“렉스야. 달려!”

컹, 컹.

나는 렉스와 함께 얼른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바로 주변 경치가 확 달라지면서 안쪽에 작은 목재 건물이 나타났다.

들켰을까? 결계를 디스펠로 부순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으로 살짝 비틀어서 들어온 거라 탐지는 되지 않을 터.

나는 잠시 숨을 죽이고 사방을 경계했다. 약 십 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이 다행히도 들키지 않은 것 같다.

“인비지블!”

파앗

투명 마법이 걸리자 나와 렉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도사라면 투명 감지 정도는 걸어놓고 지내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일단 건다.

“자, 렉스야. 조심스럽게 가자.”

내가 렉스에게 ‘조심스럽게’ 라는 단어를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천천히’와 ‘조심스럽게’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똑똑한 개에게나 가능한 일이니까.

다행히도 렉스는 이제 그 차이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

렉스는 나를 등에 태운 채 풀 밟는 소리도 나지 않게 주의하면서 집 앞으로 접근했다.

나는 진실의 이면 거울을 꺼내 집 주변을 살폈다. 이 거울이 좋은 게 마법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는 거다.

“이상하네. 알람 마법이 안 걸려 있다니.”

기분이 나쁘다. 마법사라면 기본으로 알람 마법 정도는 걸어 놓아야 정상이니까. 특히 지금처럼 숨어사는 상황이라면 경계나 방어 계열, 혹은 함정 마법까지 겹겹이 설치해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들어가서 보고 올깡?”

“아니, 마도사라면 정령을 감지할 가능성이 커. 넌 일단 스태프 속에 들어가 있어.”

“알았당.”

근거리라면 마법보다는 창으로 찌르는 게 빠르다. 특히 난 거인의 힘을 낼 수 있으니 방어마법도 힘으로 뭉갤 수 있다.

“렉스야. 내가 신호하면 문을 부수고 뛰어 들어가. 안에 있는 놈을 몸으로 받아 버리라고.”

난 렉스의 입을 손으로 잡아 대답을 못하게 하고 귓가에 속삭였다. 렉스가 끄응, 끙 하고 목울림으로 대답하고는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나는 일단 강식장갑 로브를 완전히 뒤집어써서 얼굴까지 가렸다. 이정도면 익스플로젼 같은 폭발성 마법에도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준비가 완전히 끝난 난 렉스의 등에 딱 붙어 상황을 보았다. 본이 투명감지의 시선을 쓰고 있다고 해도 렉스가 워낙 크니 내 모습까지는 못 볼 가능성이 크다.

이중 기습을 노려서 적이 손을 쓸 틈을 안 주려는 게 내 작전이다.

누가 뭐래도 본은 6서클 마법사니까, 틈을 주면서 잡을 만큼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지금!”

크와아앙!

얘가 싸울 때는 정말 마수처럼 울부짖네.

렉스는 단숨에 문을 부수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안에 서 있는 자를 덮쳐 앞발로 눌렀다.

본이 아니다. 눌리는 와중에서도 비명소리 하나 없이 칼을 꺼내 렉스의 다리를 자르려 한다.

암살자군. 페론의 암살자가 같이 있었나.

그러나 미안, 그 정도 칼과 힘으로는 렉스의 털도 못 깎아.

털썩.

일단 깔리면 그걸로 끝이다. 암살자가 버둥거렸지만 렉스가 한쪽 앞발로 머리를 몇 번 짖눌러주자 곧 움직임이 멈췄다.

그런데 본은? 나는 급히 집 내부를 살폈다.

침대가 있고, 본이 누워 있다. 그런데 본의 두 손이 침대 끝에 묶여 있다.

“누, 누구냐?”

본이 놀란 표정으로 우리를 본다. 방금 전 기습으로 렉스의 투명 마법은 풀렸다. 고급 투명마법이라면 싸워도 안 풀리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는 격하게 움직이는 순간 풀리는 것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투명한 상태.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난 렉스의 등에서 내려와 본이 묶여 있는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본은 투명한 상태의 날 알아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몸에 방어마법 하나 쓰지 않은 상황인 것 같다.

“페론의 암살자와 한 편이 아니었나?”

내가 갑자기 침대 옆에 모습을 드러내며 묻자 본은 화들짝 놀란 눈으로 날 보고는 말했다.

“미스틱 엑스! 당신은 미스틱 엑스로군.”

이것 봐라? 이자가 어떻게 그 이름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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