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17화 (17/250)

로엔의 마나뱅크 17화

7장 콘돌스핀

파우스 스승님이 깨어났다.

“마나홀이 느껴지지 않는군. 정말로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이야.”

허탈하신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빨리 마음 비우고 다시 시작하세요.

난 파우스 스승님을 믿는다. 이분에게 있어 좌절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밑거름에 불과할 뿐이다.

“차라리 잘 되었구나. 이참에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하나하나 쌓아야겠다. 렌아, 이제는 네가 나보다 더 고위의 마법사로구나. 허허허.”

“써클이 무슨 상관인가요. 스승님은 여전히 제 스승님이세요.”

진심으로요. 전 스승님이 제 스승님이라 좋아요.

“그래, 제자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긴 싫으니 나도 노력하마.”

파우스 스승님은 그 말을 하고는 몸을 일으켜서 마나 수련을 위한 명상에 들어갔다. 마나홀이 파괴된 후 첫 마나 수련일 것이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방을 나왔다. 밖에는 몰던이 기다리고 있었다.

“깨어나셨어요. 하지만 지금 마나 수련중이시라 두어 시간 후에야 나오실 거에요.”

“그러냐? 그럼 그때에 맞춰 식사 준비를 해야겠구나.”

에구, 몰던이 나와 스승님과 함께 살면서 완전 가정주부가 다 됐구나. 안되겠다. 빨리 호강을 좀 시켜 드리던가 해야겠네.

나는 일단 내 방으로 돌아와 한 통의 편지를 썼다.

-아론 체프코트 경께-

본인은 심야에 은거해 마법을 연구하는 미스틱 엑스라고 합니다.

이번에 우연히 스펠 플래그가 연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어, 이것이 자연적인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믿기 어렵지만 스펠 플래그가 병이 아닌 독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결과가 나왔기에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경께 도움을 청합니다.

경이라면 완전분석 마법을 시전하는 것이 가능할 터,

수고스럽겠지만 아무쪼록 수많은 후배 마법사들의 안위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대책을 간구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미스틱 엑스-

“이정도면 되겠지.”

처음에는 용병단에 맡기려 했는데, 그러면 보낸 사람이 나란 걸 알게 되잖아. 이거 어떻게 분석했냐고 물으면 답하기 그렇거든. 그래서 미스틱 엑스라는 좀 싼티나는 은거 마법사 행세를 하기로 한 거지.

그럼 이걸 어떻게 보낼 거냐고?

간단해.

“뿌우야, 좀 나와 봐라.”

“뭐냥?”

“심부름 좀 해라.”

“뿌우, 무슨 심부름이냥?”

나는 스승님의 피와 내가 쓴 편지를 뿌우에게 건넸다.

“이거를 덴판 제국의 아론 체프코트라는 마법사에게 전해줘.”

“갸가 누군뎅?”

“지금 젤 센 마법사래. 그자 앞에서는 말조심 조금 하고.”

나는 미리 준비했던 지도를 펴고 뿌우에게 덴판 제국의 수도인 잉카티움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체프코트 마탑의 가주라고 했으니까, 잉카티움으로 가서 마탑을 찾으면 아마 그를 만날 수 있을 거야. 단, 가능한 한 다른 사람 눈에 안 띠도록 하고. 아참, 그리고 답장 받지 마. 위치 추적당할 수 있으니까 그가 주는 건 아무것도 받지 마. 알았지?”

“알았당.”

덴판 제국은 여기서 굉장히 멀다. 계약한 정령을 멀리까지 보내는 데에는 상당한 마나가 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지. 원래는 마나뿐 아니라 정령친화력과 정신력도 중요한 요소인데, 얘는 대정령이 직접 나한테 붙여준 거라 친화력이고 뭐고 다 상관없거든.

“빨리 다녀와. 적어도 보름달이 뜨기 전에는 와야 돼.”

“대기의 정령을 우습게보지 마랑. 하루면 거기까지 갈 수 있당.”

“알아. 거기에 던 전격 속성까지 있어서 진짜 빠르잖아. 그래서 시키는 거야.”

“뿌우, 계약자가 내 능력을 잘 알아주면 좋당.”

뿌우는 내가 살짝 칭찬을 해주자 바로 기분이 좋아져서 작은 소용돌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변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게 진짜 빠르긴 빠르다.

자, 이제 어떻게 한다? 윽, 배가 고프네. 일단 밥을 먹고 생각하자.

얼마 후, 파우스 스승님이 마나 수련을 끝내고 나오셨다. 몰던은 미리 준비했던 양고기와 치즈, 빵, 샐러드 등을 식탁에 차렸고, 우리는 며칠 만에 같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

파우스 스승님의 안색이 꽤 괜찮아 보였다. 살짝 흥분이 되어 있다고 할까? 마나홀을 만들기 위해 마나를 움직이는 과정이 생각보다 기분 좋았나 보다.

“처음 마나홀을 만들 때에는 한참 고생했는데, 지금은 마나의 흐름에 익숙해서 그런지 며칠이면 만들겠구나.”

그렇죠? 마나홀은 없어도 마나의 흐름을 제어하는 능력은 여전히 5서클 마법사시니까요.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거에요? 아무래도 마탑에 돌아가는 것은 위험해 보여요.”

“네 말이 맞다. 믿고 싶지는 않지만 나와 헬렌이 인위적으로 병에 걸렸다면 가장 의심을 해야 하는 대상은...본 이니까.”

“그렇다면 당분간 이곳을 떠나 있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보름달이 뜨면 페론의 암살자가 확인을 하러 온다고 했으니, 그 전에 움직여야 한다. 지금 마법사와 용병들은 모두 꽁꽁 묶어서 옛날 몰던의 집 지하실에 가둬 놓았다. 그자들은 아마 살아남기 힘들겠지만 그들을 이용해 페론의 암살자를 따돌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흐음,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제 고향에 잠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몰던이 끼어들었다. 몰던의 고향? 어디지? 처음 듣네.

우리가 몰던을 보자 그는 다시 말했다.

“제 고향은 웰론 왕국입니다. 제 친구가 그곳에서 군부대를 지휘하고 있으니 파우스 선생께서 몸이 회복될 때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나쁘지 않네. 군부의 지휘관이라면 국가가 보호를 해준다. 아무리 마탑이라고 해도 쉽게 손을 델 수는 없을 거야.

나는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파우스 스승님을 보았다. 그러나 스승님은 고개를 저었다.

“난 현재 브로스마이어 가문의 가주네. 아무리 위험해도 외국으로 피신을 할 수는 없어.”

아 놔, 가문 문제가 있었군요.

“몰던 자네는 렌과 함께 그곳으로 가게. 난 락티움 콘돌스핀 마탑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해 볼 테니.”

락티움 콘돌스핀 마탑은 콘돌스핀 가문의 본류가 되는 곳으로 다른 두 방계 마탑에 대한 지휘권을 가진다. 스승님이 소속된 시라브 콘돌스핀 마탑은 평소에는 독립된 구조로 운영되지만 콘돌스핀 가주의 명이라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스승님, 지금 스승님을 혼자 다니시게 할 수는 없어요. 부족하지만 제가 3서클이니 같이 갈게요.”

“저도 파우스 선생님을 혼자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래봬도 창을 좀 쓰니 따라가도록 하지요.”

우리가 같이 가겠다고 하자 파우스 스승님은 다시 고개를 저으셨다.

“락티움 콘돌스핀 마탑의 탑주인 빈츠 레이움 경은 그다지 공정한 분이 아니다. 내가 그곳에 가서 이 일에 대해 말해도 그분이 어떻게 행동할지 확신할 수가 없구나. 어쩌면 시라브 콘돌스핀 마탑을 완전히 손에 넣고자 본과 손을 잡고 날 제거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더욱 제가 같이 가야죠. 상황이 이상하면 스승님과 함께 도망갈게요.”

“허허허, 렌아. 네가 아무리 천재라도 7서클 마도사인 빈츠 경에게는 어린아이일 뿐이란다. 그분까지 본의 편을 든다면 어떻게 할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할 거다. 만약 그렇게 되면 넌 몰던 님과 함께 웰론 왕국에서 지내고, 복수는 포기 하거라.”

“그래도…….”

“이 스승도 멍청이는 아니다. 난 브로스마이어 가문의 가주로써 정식으로 마탑에 요청을 할 것이고, 아무리 빈츠 경이라도 이 일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브로스마이어 가문은 왕국의 작위를 받은 집안이니 말이야.”

자, 어떻게 한다?

나는 대답을 안 하고 묵묵히 빵을 씹었다. 파우스 스승님도 태연한 표정으로 식사를 계속했다. 몰던만 두 주먹을 꽉 쥔 채 나와 스승님을 번갈아 볼 뿐이다.

몰던도 스승님을 혼자 보내기 싫구나. 그런데 내가 있으니 나를 보호하는 게 먼저라 고민하는 거고.

나는 가장 먼저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 락티움 콘돌스핀 마탑 앞까지는 같이 가요. 지금 스승님은 길에서 늑대 한 마리만 만나도 힘든 상황이잖아요.”

“으음, 그건…….”

“그게 좋겠습니다. 마탑 밖에서 숨어 있다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그때 도망쳐도 늦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가, 그럼 부탁하겠소.”

몰던까지 말하자 파우스 스승님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일이 결정되자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파우스 스승님은 가장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었다.

문제는 렉스다. 렉스는 너무 눈에 띠는 존재라 그냥 끌고 다니면 우리가 누군지 선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렉스도 마차에 태우죠.”

“그렇게 하자꾸나.”

우리는 렉스를 마차 안쪽에 들어가게 했다. 그런데 렉스의 덩치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렉스야, 웅크리고 있는 게 힘들어도 좀 참아라. 괜히 자다가 몸 뒤척여서 마차 부수지 말고.

“두 분은 마부석에 앉으세요. 제가 걸을게요.”

나는 파우스 스승님과 몰던이 거절할 틈도 안 주고 말의 고삐를 손으로 잡았다. 몸에는 콘돌스핀 마탑의 로브 위에 전에 입던 수련마법사의 로브를 겹쳐 입고, 후드까지 썼다.

파우스 스승님도 후드를 써서 얼굴을 감추고 몰던은 용병시절 사용했다는 검게 칠한 가죽 갑옷을 입었다.

그렇게 우리는 정들었던 링스턴을 떠났다.

*

이틀이 지나자 뿌우가 돌아왔다. 뿌우는 스승님과 몰던이 모르게 투명한 상태로 나한테 다가왔고, 나는 눈치 빠른 뿌우를 속으로 칭찬하면서 화장실 간다고 잠시 일행과 떨어졌다.

“전했어?”

“전했당. 편지 읽어보고 답장 써 주더랑, 그래서 안 받는다 했당.”

“잘 했어.”

“그랬더니 말로 전해 달라더랑. 시간나면 한 번 들리라공. 환대 하겠단당.”

뭘 환대씩이나. 후후후.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돌아오는데 누가 쫓아오더랑.”

“잉? 누가? 널? 어떻게 쫓아와?”

대기의 정령을 쫓아올만한 존재가 있나?

“불의 정령이었당. 이쁘더랑.”

아하, 그러셔요? 하긴 그쪽도 보통은 아닐 텐데 정령 정도는 부리겠지.

“그래서 어디까지 쫓아왔는데?”

“절반쯤까지 오다가 돌아갔당.”

“오호, 절반이라, 확실히 대단하네. 아론 경은 정령 친화력도 뛰어난 편이었군.”

여기서 덴판 제국의 잉카티움까지 절반이라면 보통 거리가 아니다. 정령을 그 정도 거리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정령 친화력이 아주 좋다는 소리가 된다. 마나야 뭐, 8서클 마도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말이지.

“돌아가기 전에 나보고 잠깐 멈추라고 했는데, 그냥 왔당.”

이 녀석 보게. 굉장히 아쉬운 표정이네.

“그렇게 이뻤어?”

“내가 본 불정령 중에 최고당.”

“크으, 다음번에 만나면 고백할 기세네.”

“할 거당. 계약도 중요하지만 내 청춘도 소중하니깡.”

청춘이라, 뿌우의 말을 들으니 내 가슴속에서 불길이 일어나네.

맞아, 청춘은 소중하지.

나는 하늘을 보았다.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하자. 내 꿈은 이게 아니잖아.

평화롭고 즐거운 청춘! 그걸 위해 환생까지 했는데 즐기지 못하면 손해란 말이야.

“너도 나중에 걔랑 만나면 꼭 사겨라. 내가 특별히 응원해 줄게.”

“뿌우, 정말이냥? 너 정말 맘 좋은 주인이당.”

“응, 일단 이 상황부터 정리하고 좀 안정되면 다시 보내줄 테니까 알아서 꼬셔 봐.”

“염려 마랑. 나 능력 없는 정령 아니당.”

이놈이, 자신만만한 거 보니까 노련한 모양인데? 설마 고수였던 거야?

나는 살짝 질투가 났지만, 남의 청춘 부러워 말고 내 청춘을 챙기기로 했다.

뿌우는 다시 내 스태프 속으로 들어갔고, 나는 마차로 돌아가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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