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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6화 (16/250)

로엔의 마나뱅크 16화

나는 대 암살자용 전투 매뉴얼에 따라 속으로 숫자를 세며 일직선으로 달렸다.

그 사이 일시적으로 제거된 방어마법이 다시 걸렸다. 이게 스태프에 달린 엘레멘탈 정령석의 힘으로 걸리는 거라 제거되면 바로 다시 걸린단 말이지.

아예 제거가 안 되면 상대가 알아차리는데, 제거는 되는데 다시 걸리면 알 수가 없거든. 후후훗.

나는 암살자가 바로 내 뒤까지 쫓아왔을 때 갑자기 멈춰서며 스태프로 상대의 허리 쪽을 때렸다.

부웅, 휙

역시 피하네. 단숨에 내 머리 위로 뛰어오르다니, 일류 암살자다.

상대는 점프를 한 채로 날이 가늘고 긴 검으로 내 머리를 찌르려 했다. 나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검날을 향해 박치기하듯 머리를 내밀었다.

“큿!”

방어마법의 반탄력에 검날이 부러지고 그 충격으로 암살자의 몸이 중심을 잃었다.

이거란 말이지. 암살자들은 일격필살이 기본이라 첫 공격이 실패하면 빈틈이 드러나거든.

나는 몸을 비틀며 스태프로 허공에 뜬 상대의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허리가 기억자로 꺾이며 땅에 떨어지는 암살자. 이미 정신을 잃은 듯하다. 자이언트의 힘으로 맞았으니 허리가 바스러졌겠지.

나는 그대로 마법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믿었던 암살자가 당하자 마법사는 약간 당황한 듯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의 남자가 석궁을 꺼내 나한테 겨누었다.

석궁은 무시.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것에 집중했다.

손동작과 주문에 섞인 룬어의 종류를 보니 바로 답이 나온다.

임플로젼이군.

5서클 범위공격마법이다. 피하지도 못하게 범위로 때려 한방에 보내겠다?

마법사에게 있어 서클은 절대적이다. 한 단계면 몰라도 두 단계 차이가 나면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 상대의 공격마법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 빼고.

철컹.

스태프에서 창날을 뽑은 나는 그대로 마법사에게 던졌다. 이게 원래 투창으로 쓰기엔 너무 무겁고 밸런스가 안 맞지만, 엘레멘탈 정령석으로 무게중심을 잡았고 난 지금 스톰 자이언트 거들을 끼고 있잖아. 바위도 던질 수 있다고.

쒜에엑, 쾅

방어마법? 힘으로 부순다.

“아아악!”

마법사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튕겼다. 오, 그래도 역시 5서클답게 방어마법이 단번에 깨지진 않는구나.

“리턴!”

나의 마법에 엘레멘탈 정령석이 반응하여 다시 나한테 날아왔다. 그 사이 상대가 쏜 석궁의 볼트는 내 강식장갑 로브에 튕겼다.

스태프 창을 다시 잡고 그대로 마법사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갔다.

두 손으로 스태프를 잡은 난 엘레멘탈 정령석이 있는 쪽으로 마법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파캉

방어마법이 서로 부딪치면 쌍소멸 되거든. 물론 엘레멘탈 정령석이 생성한 방어마법이 조금 약하긴 해도 대신 이쪽은 힘이 있잖아.

커헉!

저런, 마법이 깨지는 충격으로 기절했네.

“스턴!”

기절한 상대를 못 깨어나게 하는 데에는 역시 마비 마법이 최고다.

난 고개를 돌려 석궁을 든 두 명의 남자에게 말했다.

“항복할래? 아니면 개한테 물릴래?”

“개?”

크르르르

“어헉!”

어느 새 뒤에 나타난 렉스의 으르렁거림에 남자 둘은 놀라서 바로 석궁을 던지고 바닥에 업드렸다.

상황판단이 빠르네. 복장을 보니 용병인가보군.

렉스는 남자 둘 중 하나에 한쪽 발을 걸치고 섰다. 렉스의 승리포즈다.

상대는 어어억 내 허리 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부러질 정도는 아닌 듯해서 그냥 놔뒀다.

지금 빨리 처리해야 하는 쪽은 진짜 허리가 부서진 암살자거든.

난 아직도 쓰러져 있는 암살자에게 가서 다시 스턴 마법으로 몸을 마비시킨 후 부서진 허리를 고정시켜 응급처치를 했다. 딱히 살려줄 생각은 없지만 마법사하고 이자는 제대로 심문을 해야 하거든.

“뿌우야. 다 잡았다. 그냥 와라.”

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하자 투명한 상태의 뿌우가 내 앞으로 돌아왔다.

“뭐냥. 나도 싸우게 해달랑.”

“너까지 나올 수준은 아니었어.”

난 뿌우를 달랬다. 정령을 소환했다는 것은 비밀이다. 이놈들을 다 죽여서 입을 막을 생각이 아닌 이상 가능하면 뿌우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뿌우는 잠시 투덜댔지만 다시 스태프 속으로 들어갔다.

“억, 이게 뭐냐? 창끝이 휘었다.”

“아, 미안. 너무 세게 던졌나봐. 그거 좀 고쳐 놔라.”

“뿌우우우우! 남의 집 함부로 던지고 부수고 그러면 뿌우 삐진당.”

“알았어. 이제부터는 너가 있을 때만 던질게. 그러면 네가 창날을 보호할 수 있잖아.”

“그건 되는데, 그래도 자주 던지지는 마랑.”

바람의 정령답게 자기를 던진다니까 싫어하진 않는군. 그래도 얘가 착하긴 하네. 집을 부수면 되게 싫어하는 게 정령의 공통적 성질인데.

내 생각이 조금 짧았다. 정령을 살게 한 스태프 창은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뭐, 나중에 마법 인챈트를 해서 안 부서지게 만들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쓰러진 자들과 항복한 자들을 모두 제압한 후 렉스의 등에 싫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연구실로 가면 몰던이 알아차릴 테니 숲에서 처리해야지.

우선 맨 처음 심문할 자는 마법사.

난 마법사의 뺨을 찰싹찰싹 때려 깨웠다.

“으으윽. 너는?”

강식장갑 로브로 얼굴과 머리까지 보호한 상태다.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으니 마법사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나의 정체를 물었다.

“나를 죽이려 한 자가 보냈겠지?”

나는 오히려 반문했다. 그러자 마법사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파우스 경! 그대는 병에 걸리지 않았소?”

이곳에서 자신을 제압할 마법사는 파우스 스승님뿐이라 생각하나 보내.

난 상대가 오해하도록 놔두기로 했다.

“왜 나를 죽이려 했나? 헬렌은 또 왜 죽인거지?”

“헬렌 경 일은 나와 관계없소. 난 최근에 이 일에 가담한 거요.”

“변명은 필요 없다. 마인드 서킹으로 네놈의 기억을 파헤쳐 주지.”

“크윽, 그것만은.”

마인드 서킹은 5서클 기억탐색 마법. 그걸 쓰면 대상은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거 몇 번 당하면 기억을 읽히는 것보다 고통에 알아서 자백하는 게 더 많다고 알려진 신개념 고문마법이다.

이자가 몸을 벌벌 떠는 걸 보니 이미 다른 사람에게 써본 경험이 있군. 아니면 남이 쓰는 걸 봤거나.

겁에 질린 마법사는 급한 어조로 자신이 아는 바를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일일이 기억을 탐색하지 않아도 되도록 미리 다 밝히는 거다.

물론 난 5서클 마법은 못 쓰기 때문에 이자가 배짱 좋게 버텼으면 그냥 심문이나 고문을 해야겠지만 알아서 착각해주니 고맙지 뭐.

이 자의 이름은 폴그럼. 옛날부터 본의 친구였다가 이번에 정식으로 본에게 포섭당한 마탑의 마법사다. 역시 본이 나쁜 놈이었던 거다.

본은 파우스 스승님이 스펠 플래그에 걸렸으니 스승님을 죽이고 제자인 나를 데려오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렌을 살려서 데려오라고? 왜지?”

“그건 모르겠소. 단지 그대의 제자는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고 했을 뿐이오.”

스승님을 죽이고 나를 살려서 데려가면 본이 얻는 이익이 뭘까?

아하! 조금 궁리하니 딱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본은 내 마나뱅크 코드를 알고 싶은 거군. 내가 스펠 플래그로 쓰러지면 렌에게 그걸 가르쳐 줄 거라 판단한 거야.”

“그,그럴지도 모르겠군. 전에 본은 그대가 마리오스 경의 마나를 이어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소. 어쩌면 그걸 탐냈을 지도…….”

맞아. 스승님의 일기에 그런 대목이 있었지. 거기에는 헬렌 경이 이었다고 되어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사연이 또 있나보다.

마리오스 경이라면 마탑의 전전 대 탑주로 파우스 스승님의 스승이자 7서클 마법사이다. 그러니까 스승님의 마나뱅크에는 마리오스 경의 마나까지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고, 본은 그걸 얻기 위해서 스승님을 병에 걸리게 한 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물려받은 나를 잡아 마나를 빼앗으려고 한 거야.

대외적으로 난 1서클 마법사다. 그런데 초보마법사가 7서클 마도사의 마나를 얻었다면 엄청난 행운이지만, 반대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건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마탑의 탑주가 그 마나에 욕심을 내는 경우라면 더더욱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지.

대충 상황을 알았다.

남은 것은 한 가지.

“스펠 플래그를 어떻게 특정인물에게 감염시킬 수 있는 거지?”

“그건 나도 모르오. 본 만이 알뿐. 사실 나도 그게 무서워서 협조하기로 한 거라.”

헛소리 하네. 협박만으로 5서클 마법사를 조종할 수는 없거든. 더군다나 너처럼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리는 놈은 말이야. 내가 보기에 넌 막대한 이익을 약속받았어.

나는 너무나도 마법사답지 않은 이자의 눈동자 굴리는 모습이 짜증이 밀려옴을 느꼈다. 이건 뒷거리의 양아치 수준이잖아. 어떻게 이런 놈이 5서클까지 올라갔지?

나는 더 이상 알아낼 게 없다는 판단 아래 지팡이로 상대의 머리통을 때렸다.

마법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다음으로는 항복한 용병들인데, 이자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 폴그럼이 고용한 자들이라고 했다. 눈치를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해서 다시 머리를 때려 기절시켰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암살자.

이놈은 아무래도 고문이나 심문에 대응하는 요령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한다?

난 고민을 하면서 우선 암살자의 몸을 뒤졌다. 그런데 겉옷을 벗기니 가슴 아래쪽에 붉은 전갈의 문신이 드러났다.

“헛, 페론의 문양!”

미치겠다. 얘네들이 아직까지 존재했네.

내가 살아있을 때 최고로 지독한 암살자 조직으로 뽑히던 곳이다. 그 전에 최강 소리를 듣던 살라의 패들이 얘네들한테 씨몰살을 당해서 패망했지.

암살자 조직은 오래가기 어려운 법인데, 100년을 넘게 유지하고 있다니. 한번 제대로 알아봐야겠네.

페론의 암살자는 몸에 무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다. 신원을 파악할만한 어떤 물건도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우선 할 수 있는 거부터 해 보자.”

페론의 암살자가 내가 아는 그때의 수준이라면 고문이고 뭐고 소용이 없다. 심지어 현혹마법도 거의 통하지 않는다. 본인이 현혹마법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바로 자살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인드 서커라면 어느 정도 정보를 빼낼 수 있겠지만 난 아직 못 쓰잖아.

하지만 단 한 가지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 있지.

“최면!”

크으으으

암살자가 갑자기 눈의 흰자위를 까뒤집으며 깨어났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쯤 깨어나 이성이 거의 없는 상태다. 판단력이 흐려져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현혹은 아니고, 단지 이성적인 판단을 조금 둔화시킨 거라 상황판단에 문제가 생길 뿐, 딱히 자백을 강요하는 수준의 마법이 아니다.

난 폴그럼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말했다.

“허리가 부서졌다. 치료가 어려우니 할 말 있으면 하게.”

“없다. 내가 죽으면 시체는 태워 달라.”

역시 독하네. 죽어가면서도 남길 말도 없다니. 그래도 나를 아군으로 인식시키는 데에는 성공했군. 바늘만한 빈틈 때문에 벽이 무너지는 법이지.

“우리는 잡혔다. 혹시 탈출할 방법이나 외부에 연락할 수단은 없나?”

“내가 죽은 후 첫 보름달이 뜨면 내 동료가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그때 상황을 얘기해라. 어쩌면 구해줄 수도 있다.”

구해주기는, 증거인멸을 한다고 다 죽이겠지.

아무튼 페론의 암살자들이 사람을 구출하는 일은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기적과도 같다. 이자가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동료에게 정보를 전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다.

보름달이라. 이제 일주일 정도 남았나?

이 이상 심문을 할 게 없네. 내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 암살자는 다시 말했다.

“괴롭다. 칼로 내 목을 찔러라.”

“그렇게 하지.”

난 그가 요구한 대로 마지막 숨통을 끊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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