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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11화 (11/250)

로엔의 마나뱅크 11화

5장 드림해그

다음 날 하녀가 날 깨우러 왔다가 바닥에 기절 한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한 바탕 난리가 났다.

파우스 스승님과 젠트가 직접 달려와서 내 몸의 상태를 보고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겨우 사태가 진정이 되었는데, 난 그 후로도 꼬박 하루를 의식 없이 보냈다.

“어떻게 된 거냐?”

깨어나자마자 파우스 스승님이 물었다. 어떻게 대답을 할까?

“마법진의 이론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깐 실험을 했는데 마나가 달려서 힘이 빠졌어요.”

“뭣? 그럼 마법진을 발동시켰다는 거냐?”

“예, 대충 발동은 하는데 아무래도 잡음 같은 게 많이 섞여서 두통이 몰려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만두고 마법진을 지우고 자려는데 갑자기 어지러웠어요.”

뿌우가 열심히 핏자국을 지웠지만 카페트에는 걸레질을 한 자국이 남아있다. 뿌우가 걸레는 잘 숨겼겠지?

내 변명이 그럴 듯 했는지 파우스 스승님은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마법진을 어설프게나마 발동시켰다는 데에 너무 너무 놀라 의심을 할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1서클을 뚫고 엊그제 마나뱅크에 코드를 만든 초보 마법사가 카페트에 마법진을 그려서 발동시켰다? 아마 파우스 스승님도 못 할걸.

원래는 하급 마법사에게는 마법진 자체를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런데 스승님께서는 나에게 당신이 소유한 모든 마법 관계서적을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허가했고, 나는 마법진 책을 가져다가 슬쩍슬쩍 질문을 하며 틈틈이 공부를 하는 척 했거든.

웃기는 게, 그 마법진 책이라는 게 바로 ‘로엔의 마법진 기초강론’이다. 그러니까 내가 옛날에 쓴 책이란 말이지. 100년이 넘게 수많은 마법사들의 필수 도서가 된 영원한 베스트 셀러. 이후에 나온 어떤 마법진 기초 책도 이거보다 좋은 게 없다고 한다.

“그래, 어떤 마법진을 그렸느냐?”

“네, 제가 안정의 마법진을 그렸는데, 몇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잘 발동이 되지 않더라고요.”

“확실히 안정의 마법진은 발동이 조금 어렵긴 하다. 그래도 일단 발동되면 효과가 좋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거 같은데 막상 발동이 안 되니 답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자가 어린 마음에 구성을 조금 고쳤어요. 그랬더니 발동은 됐는데 생각보다 마나소모가 빨라서...”

“고쳤는데 발동이 됐다고?”

파우스 스승님인 너무나도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놀랄 만 하지. 이건 누가 들어도 놀랄 이야기거든.

안정의 마법진은 기본적으로 2서클에 해당한다. 이론적으로 서클 강화의 효과가 포함되어 있는 마법진이기에 1서클인 내가 작동시킬 수는 있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거의 발동이 안 된다는 거지.

왜냐고?

이건 말하기 좀 부끄러운데 말이야. 내가 옛날에 그 책을 쓸 때 오탈자가 좀 있었어. 딱히 틀렸다기 보다는 8서클 때 쓴 거라 9서클인 지금 보기에는 쓸 데 없는 요소가 좀 있더라고. 그래서 서클 강화 효과가 잘 발동을 안 하는 거야. 강화된 만큼 로스가 생기는 거지.

그런데 그걸 그동안 다른 마법사들이 전혀 개량을 안 하고 그냥 쓰고 있더라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안정의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니까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요. 이걸 요렇게 고쳤어요. 조금 간단하게 될 거 같아서요.”

“으으음.”

스승님은 들어도 바로 이해가 안 되는 듯 신음성을 흘리며 종이에다 복잡한 수식을 쓰며 내가 바꾼 룬어의 효용성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오호, 그래도 마법진 분석을 하실 수 있구나.

같은 마법진이라도 그냥 배운 대로 그리는 것과 이치를 이해하고 그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마법진이 부족하면 그걸 주문으로 때우는 방법도 있고.

파우스 스승님은 기초가 튼튼해서 안정적인 발전을 하는 대기만성형 마법사다. 성실한 인품과 어울린다고 할까?

난 차분하게 스승님의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오오! 이럴 수가 정말로 네가 고친 방식이라면 마나 효율이 아주 좋아지는구나. 이건 대발견이다.”

“헤헷, 우연이에요.”

“우연이라고 해도 이걸 고치려면 최소한 안정 마법진을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게 아니냐? 믿기 어려운 재능이구나.”

단순한 마법 친화력이나 암기력이 아닌 마법진의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은 고위마법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스승님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제자를 두신 겁니다. 후후훗.

나는 속으로 의기양양하게 웃었지만 겉으로는 그냥 저 잘했죠? 하는 수준의 미소만 지어보였다.

파우스 스승님은 흥분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계속 감탄하시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스승님의 머릿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호기심이 일었다.

곧 파우스 스승님은 품속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 나한테 내밀었다.

“이건 내 동생인 헬렌이 남긴 건데, 네가 만든 공식이 여기에 쓰일 수 있을까?”

“뭔데요? 한 번 볼게요.”

“마나 홀을 고칠 수 있는 마법진의 구상도란다. 물론 미완성인데, 헬렌은 내가 이걸 완성해서 마나홀을 고치기를 원했구나.”

오호, 헬렌 님은 오빠인 파우스 스승님이 자기 때문에 마법사로서의 인생을 망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해서 계속 이런 연구를 했구나.

제법 괜찮은 이론의 마법진이다. 마법진을 창조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6서클 마법사지만 시간을 들여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흔적이 보인다.

쯔쯔, 그래도 역시 6서클로는 무리지. 이거 완성하기 힘들어. 틀린 데도 많고, 비효율적인 부분까지 합하면 아예 새로 만드는 게 나아. 그런데 새로 만들어도 고쳐질 거 같지는 않거든. 내가 작정하고 몇 년간 연구해서 만든다면 몰라도 말이야.

난 헬렌 님의 재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만들었으니 대단하긴 하다. 집념의 성과라 할 만 하네.

“스승님, 요기요. 요기는 제 공식으로 대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역시 그렇지? 으흠, 이거 잘 하면 될지도 모르겠구나.”

무리에요. 이거 한군데 고친다고 될 수준은 아니거든요.

“그런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사부님은 이미 마나홀을 녹이고 새로 생성할 계획이셨잖아요. 그러면 이 마법진의 외곽 부분을 아예 날려버리고, 안쪽만 개량하는 게 낫지 않아요?”

“으흠?”

“흔적도 안 남기고 녹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이쪽 재생부분을 날려도 되는 거 아닐까 해서요.”

이미 약제술로 손상된 마나홀을 아예 산산히 부수는 법을 개발한 상황이다. 그러면 마법진으로는 부서진 마법진의 잔해를 치우기만 하면 된다. 잔해를 치우는 쪽은 상대적으로 오차가 적어서 스승님의 실력이라면 얼마 안가서 완성시킬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스승님, 그냥 마나홀을 고치는 것보다 지우고 새로 만들어서 다시 키우는 게 장기적으로는 좋아요. 10년 정도면 거의 확실하게 마도사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요.

이런 충고를 대놓고 할 수는 없다. 나는 그냥 그런 거 아니냐고 되물으면서 틀려도 전 몰라요. 전 아직 어리고 마법진 공부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라는 눈빛으로 스승님을 쳐다보았다.

파우스 스승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원래의 마나홀을 복구할 수 있다면 그냥 하고 싶으신가 보다. 그러나 곧 이미 약제술로 마나홀을 상당히 파괴해서 되돌리기는 힘들다고 판단하셨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말대로다. 확실히 이 마법진은 아직 개발의 여지가 많지만 안쪽만이라면 일 년 이내에 완성시킬 수 있겠구나.”

“스승님이라면 틀림없이 성공하실 거에요.”

“그건 그렇고, 네가 만든 이 공식을 마탑에 보고해야겠다. 아마 모든 마법사들이 깜짝 놀랄거다. 누가 뭐래도 넌 대마법사 로엔의 공식을 처음으로 고친 마법사로 역사에 기록될 거다.”

“저, 스승님. 그거 발표 안 하시면 안 되요?”

“뭐라고?”

“저는 아직 미숙한데 우연히 만든 공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괜히 능력도 안 되는데 주목받으면 부담도 되고, 또 사람들이 시기할까 두렵기도 해요.”

너무 잘나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많기 쉽다. 최소한 마도사 수준이 될 때까지는 몸을 사려야지.

파우스 스승님은 내 말을 듣자마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렌아, 우연히 만들었다고 해도 네가 이 마법진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낸 것은 진실이 아니냐. 네 재능을 스스로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단다.”

“예.”

“연구실로 돌아가면 같이 이 마법진을 연구하도록 하자. 기초 마법진 이외에 내가 알고 있는 마법진 지식을 모두 가르쳐 줄 테니, 네가 생각하는 부분을 들려주렴.”

“예, 열심히 배울게요.”

파우스 스승님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공동연구를 하자고 제안하니 말하기가 훨씬 쉬어졌다. 이로써 스승님은 일 년 이내에 거의 확실하게 마법사로서 재탄생 하게 될 것이다.

파우스 스승님은 젠트에게 내일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준비를 시켰다. 나와 함께 마법진을 연구할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신 듯 하다.

스승님이 방에서 나가신 후, 나는 아직 몸에 힘이 없어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이건 일시적으로 기력이 소진된 것일뿐, 육체 자체는 재구성 되어 근력이나 반응, 마법 친화력이 훨씬 올라갔다.

이거 10년에 한 번 정도씩 하면 거의 늙지도 않겠는데?

나는 진지하게 마나를 이용한 육체 재구성에 대해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잠이 든 지 얼마 안 되어 내가 어떤 공간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어, 뭐지? 꿈인가?”

꿈이네.

의식을 하자 확실히 여기가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확실하게 꿈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꿈이 있나?

스스로 신기해 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탑에서 만났던 은회색 머리의 소녀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이름이 미리아였지?

그런데 며칠 전 봤을 때와는 뭔가 좀 달랐다. 뭐가 다르지?

아! 눈!

처음 봤을 때, 미리아는 눈의 초점이 맞지 않고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멍하니 허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의 미리아는 정확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렌, 찾았다!”

미리아는 기쁜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갑자기 미리아의 모습이 흐릿해지면서 누군가의 모습이 어릿하게 겹쳐지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많이 본 모습인데...아! 엘시아!

왜 갑자기 내 제자인 엘시아의 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지?

나는 기분이 나빠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미리아는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내가 미소를 지으면 네 이상형인 여성이 나타날 텐데?”

“아으, 야! 걔가 어떻게 내 이상형인데?”

나는 순간적으로 발끈해서 화를 냈다. 세상에 어떻게 날 죽인 여자가 내 이상형이라는 거야?

젠장, 생각해보니 맞는 것도 같네. 내 무의식중에 엘시아를 좋아하고 있었던 건가? 그녀가 나를 죽였어도 말이야.

나는 당황한 마음을 안 들키려고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내 꿈에 나타나는 거지? 설마 너 내 꿈에 침투한 거니?”

“와, 그걸 바로 추측할 수 있다니. 너 대단하구나?”

미치겠네. 정말로 얘가 내 꿈에 침투를 했다는 거야?

꿈 침투는 7서클 마법이고, 말하자면 일종의 저주다.

꿈에 침투해서 사람의 무의식을 괴롭히면 당하는 사람은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죽게 되는 것이다. 깨어나면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어떻게 당하는 지도 모르고 죽는, 그야말로 가장 은밀하고도 흉악한 저주 암살법 중에 하나다.

이거에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꿈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건 최소한 6서클, 그러니까 마도사 수준이 되어야 가능하다.

얘,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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