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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7화 (7/250)

로엔의 마나뱅크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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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스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라브는 볼스테아 왕국에서도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다. 무엇보다 10대 마도가문의 하나라는 콘돌스핀 가문 소유의 세 마탑 중 하나가 있기에 마법을 배우기 위해 다른 왕국에서 유학 온 학생도 많다고 한다.

그런만큼 도시로 들어가는 관문에는 검문을 받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우스 스승님은 콘돌스핀 마탑의 마법사, 일반 열은 무시하고 바로 검문소 옆에 있는 귀빈실로 들어갔다.

“우와, 저 개 좀 봐.”

“세상에 말보다 더 큰 개가 있다니.”

“혹시 개처럼 생긴 마물 아냐? 눈빛이 이글거리는 게 불도 뿜을 것 같아.”

훗, 다들 렉스를 보고 놀라는군.

렉스는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자 나름 긴장한 듯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입으로 크르르 하고 있어 보이는 신음성을 끊임없이 흘렸다. 콧잔등에 주름을 팍 잡고 눈빛을 부리부리하게 빛내는 게 얘가 스타성이 좀 있네. 무대체질인가.

난 슬쩍 손을 뻗어 렉스의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와, 저 소년이 괴물개의 목을 쓰다듬었어.”

“주인인가 봐. 대단하다.”

후훗, 그래 이 반응이지. 렉스야. 너 혼자 튀지 말고 나랑 공유하자고. 알겠지?

오랜만에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관문 앞으로 가자 이미 이 소동을 다 지켜본 관문장이 얼른 파우스 스승님께 인사를 했다.

“마법사님을 뵙습니다. 어느 마탑 소속이신가요?”

“파우스 브로스마이어라고 하네. 시라브 콘돌스핀 출신이지.”

“앗, 파우스 경이시군요.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관문장이 화들짝 놀라 급히 사과를 하는 것으로보아 스승님은 시라브에서 꽤 잘나갔던 모양인데?

나는 슬쩍 파우스 스승님을 보았다. 태연한 모습으로 보아 이런 반응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제가 수하에게 마탑과 브로스마이어 가문에 마중 나오라 전갈을 넣겠습니다.”

헛, 도시 입구까지 마탑에서 마중을 나온다고? 그럼 거의 마탑주 레벨이라는 소리잖아.

5서클 마법사니까 유명한 건 이해가 되지만 마탑주 대우라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가문 자체가 상당히 명문가라는 의미인 것이다. 파우스 스승님은 점잖기는 해도 워낙에 귀족 티를 안 내서 그냥 평범한 마법사인줄 알았는데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인가 보다.

“아닐세.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내가 바로 마탑으로 갈 걸세.”

“그러시다면 호위를 두 명 붙이겠습니다.”

“그건 뜻대로 하게.”

그냥 혼자 들여보냈다가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관문장이 문책을 받는다는 소리군. 점점 스승님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

난 호기심을 참고 파우스 스승님을 따라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파우스 스승님은 관문장에게 말한 대로 곧바로 마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탑에 가까워질수록 스승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다. 눈에 그리움의 감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딱히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좀 망설이는 듯한 느낌?

도시 안 사람들도 웬만한 당나귀보다 큰 렉스의 덩치에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았지만 스승님의 마법사 의상을 보고는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콘돌스핀 마탑에 도착하니 스승님이 입구에 있던 가드에게 말했다.

“탑주를 뵙고 싶네. 난 이곳 출신인 파우스라고 한다네.”

“예약이 되어 있습니까?”

“탑주인 헬렌 브로스마이어와는 오랜 친구지. 예약이 없어도 만나줄 걸세.”

“헬렌 브로스마이어님은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현재는 본 빌스검님께서 탑주를 맡고 계시는 중이고요.”

“뭐라고! 그녀가 죽었다고?”

스승님은 상당히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 연인이었을까? 잠시 후 스승님은 한숨을 내쉬며 본 빌스검님께 면회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가드는 안에 연락을 넣었고, 곧 화려한 고위 마법사의 로브를 입은 살이 찌고 덩치도 큰 마법사가 걸어 나왔다.

6서클의 기운, 마도사다.

강렬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기세로 볼 때 이 사람은 성격이 급하고 활동력이 강할 것이다.

“파우스, 소식도 끊고 어디 있다 지금 온 건가.”

입구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큰 소리를 치는 것으로 보아 내 짐작이 맞는 것 같다.

스승님은 조용히 그 사람이 자신의 앞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대답했다.

“본, 헬렌이 죽은 줄 몰랐다네.”

“이런, 헬렌이 자네를 많이 찾았었다고.”

“그런가. 난 그녀를 볼 용기가 없었는데...”

“자자, 이러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

마탑주가 직접 정문까지 나와서 스승님을 데려가니 가드들이 놀란 눈으로 나와 스승님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는 게 느껴졌다. 저분이 파우스 브로스마이어 님이시군 하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얼굴을 기억해 뒀다가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우리는 렉스를 입구의 가드들에게 맡기고 본 빌스검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마탑주인 본 빌스검의 집무실은 탑의 한 층을 통째로 썼는데, 원형으로 된 주변 벽에 책장이 있었고, 책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본 빌스검의 책상은 집무실 한 가운데에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소파와 탁자가 있었다.

우리가 소파에 앉으니 아래층에서 시종인지 제자인지 모를 견습마법사가 차를 가져왔다.

스승님은 점잖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회한에 젖은 눈으로 말했다.

“헬렌은 어떻게 죽었나?”

“병이 도졌네. 마나가 다시 뒤틀려서 구할 방법이 없었지.”

“그래.”

“미안하네.”

“아니야. 헬렌은 내 동생이지만 자네 부인이 아닌가? 자네도 슬플 텐데 나한테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네.”

여동생이었구나! 나는 스승님과 본 빌스검을 번갈아보았다. 이분들은 처남 매부 관계였던 것이다.

“사실 구하려면 방법은 있었지만, 난 내 마나를 희생할 수 없었네. 이놈의 마탑주 직위가 뭔지 말이야.”

“마법사가 마나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지. 이해하네.”

마나가 뒤틀리는 병에, 마나를 포기해서 구해? 어, 이거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건데.

스펠 플래그! 기억이 났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병 중 하나다. 일단 발병하면 고위마법사라고 해도 거의 죽게 되는데, 이걸 구하려면 발병인보다 더 고위의 마법사가 자신의 마나를 희생해서 발병인의 마나를 안정시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치료법은 상당히 위험한 것으로써 치료자는 대부분 마나홀이 파괴되어 버린다. 그야말로 마법사로써의 생명이 거의 끝나는 셈이다.

어지간히 소중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런 치료를 할 마법사는 없다. 그래서 이 병에 걸린 마법사는 대부분 치료도 못 하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스승님께서 치료를 하셨구나.

대충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런 것 같았다. 헬렌이란 분이 4서클일 때 스승님이 자신을 희생해 치료를 했고, 그 때문에 스승님은 마나홀이 파괴되었다.

스승님은 헬렌이 미안해하자 마탑을 떠나 은거를 해서 연금술과 약제술쪽의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헬렌과 본이 6서클에 올라 결국 마탑주의 직위까지 얻었고.

대단하다. 그러니까 이쪽 집안에 스승님 빼고도 6서클이 두 명이나 나왔다는 소리잖아. 이정도면 마도의 명문 행세를 할만 하네.

“데리고 온 개를 보았네. 대단하더군. 연금술로 그렇게 키울 수 있는 건가?”

“우연히 그렇게 된 걸세. 아직 연구 중이지.”

“허허, 자네는 역시 훌륭해. 그 연구가 성공하면 우리 마탑의 명성이 한 단계 높아지겠군.”

“그러면 좋겠지만,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네.”

“이미 저런 훌륭한 표본이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꼭 성공할걸세.”

“허허허, 글쎄.”

“그런데 이 아이는 자네의 제자인가?”

본이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렇다네. 렌, 인사해라.”

“렌입니다.”

내가 인사하자 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민이로군.”

“그렇다네. 그래서 내 성을 물려줄까 하고 있지.”

“허, 정식 후계자로 삼을 모양이군. 그럼 이곳에는 마나뱅크 코드를 만들러 온 것인가?”

“그렇다네. 서클 강화 마법진을 이용하게 해 주게.”

“당연하지. 내 바로 준비시키겠네.”

본은 남아있던 차를 단숨에 마시고는 작은 종을 흔들어 시종을 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지하에 있는 서클 강화 마법진으로 내려갔다.

내가 일회용으로 만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크고 웅장한 서클 강화 마법진이 새겨진 방이다. 사방의 벽돌이 흑요석으로 만들어져 있고, 천정과 벽에도 보존의 마법진이 새겨져 몇 번이고 재사용이 가능한 마법진이다.

스승님은 내 손을 잡고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 커넥트를 한 후 조심스럽게 주문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서클 강화 마법진의 힘을 빌었어도 원래보다 1서클 상위의 마법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코드 생성 마법은 급한 상황에서 써야 하는 실전용 마법이 아닌 만큼 차분히 시전을 할 수 있어 실패할 확률은 적은 편이다.

“코드 생성.”

파앗

내 앞에 나만이 볼 수 있는 아공간이 열리며 안쪽으로부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제 목소리가 아닌 내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다.

-그대의 진명을 말하라. 그것이 그대의 코드이다.-

아, 전생의 나는 왜 이리 음울한 목소리를 좋아했을까. 기왕이면 젊고 발랄한 여자 목소리로 할 걸.

마나뱅크는 에고가 있다. 서번트라고 불리는 그것은 충직하고 융통성이 없는 중년남성의 자아를 가졌다. 이제 와서 서번트를 메이드로 바꾸는 것은 무리겠지?

‘바리오스 페이모.’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곧 검은 아공간으로부터 내 진명이 원형의 붉은 글씨로 떠올랐다.

-이것으로 그대는 언제든지 나를 소환할 수 있다.-

파앗

끝이다. 서번트는 코드 등록이 끝나자마자 바쁘다는 듯 바로 접속을 끊어버렸다. 성격 참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안 좋네.

“끝났니?”

“예, 스승님. 생성됐어요.”

“그래, 잘 알겠지만 누구에게도 네 진명을 말하지 마라.”

“예.”

말하면 안 되지. 암.

스승님은 다시 마법을 사용해서 나에게 조건부 현혹방지 마법도 걸어 주었다. 현혹상태에서는 내가 진명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으로 이렇게 해 놓으면 만약 납치를 당해도 마나코드를 빼앗길 염려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내가 죽은 후 마나뱅크가 활성화되면서 마법사의 진명이 더욱 중요해지자 이런저런 방지마법이 생겨난 모양이다. 스승님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전부 나에게 걸어주었다.

“다 끝났다. 너는 이제 정식으로 마법사가 되었으니 부디 정진하도록 해라.”

“네, 스승님,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1서클 마법은 팍팍 써도 된다는 거지. 후후훗.

나은 속으로 웃으며 마법진을 나왔다. 그러자 본이 나에게 콘돌스핀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내 선물이다. 네 스승은 훌륭한 분이니 너도 장래에는 콘돌스핀의 명예를 높이는 마법사가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본 빌스검 님.”

나는 즉석에서 로브를 입었다. 비전 마탑의 탑주였던 내가 어쩌다보니 이렇게 콘돌스핀 마탑에 속하게 되었지만, 이것도 현생의 인연이니 소중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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