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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의 마나뱅크-6화 (6/250)

로엔의 마나뱅크 6화

3장 마탑

3년이 지났다.

난 수련을 계속하여 오늘 드디어 3서클의 벽을 뚫었는데, 스승님에게는 이제 겨우 1서클을 뚫었다고 말했다.

“라이트!”

파앗

“오오, 정말로 1서클을 뚫었구나. 훌륭하다.”

가장 간단한 1서클 마법을 시전해 보이니 파우스 스승님은 무척 기뻐하면서 당장 내일이라도 마탑에 가서 마나뱅크의 코드를 얻자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몰던도 신기하다는 듯이 허공에 나타난 빛 덩어리를 보며 연신 감탄성을 발하다 도시로 갈 동안 먹을 걸 준비하겠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사실 3년 만에 1서클이 되면 거의 천재거든.

내가 3서클이라고 말하면 스승님은 믿지 않을 거다. 억지로 확인시키면 마족하고 계약했냐고 의심을 하겠지.

그럼 나도 슬슬 준비를 해 볼까?

마탑에는 6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있다. 6서클을 뚫으면 마도사라고 불리며 고위마법사로 대우를 해 주는데, 5서클과 6서클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마나뱅크의 코드 개설 마법이 6서클이라는 거다.

스승님의 경우 5서클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커넥트 코드를 개설하지 못하고, 마탑에 있는 서클 강화 마법진을 이용해야 한다. 마탑에서 5서클 이상의 마법사만 정식으로 제자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는 이유다.

또한 마도사가 되면 다른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마나를 감지하여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마법사인지 대충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지금 내가 마탑에 가면 사실은 1서클이 아닌 3서클이라는 것을 들킨단 말씀.

참고로 나도 다른 사람의 마나를 감지할 수 있다. 전생에 얻은 감각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승님이 마련해주신 내 수련실로 갔다.

문을 잠그고 책상을 한쪽으로 밀어서 옮긴 후 바닥에 깔린 가죽깔개를 치우자 숨겨놨던 마법진이 드러났다. 일 년 전 부터 스승님 몰래 조금씩 재료를 준비해서 만들어 놓은 마법진이다.

이것이야말로 서클 강화 마법진, 1회용이긴 해도 내 마법 서클을 한 단계 올려주는 기능이 있다.

“이걸 스승님이 쓰시면 굳이 마탑까지 안 가도 될 테지만...”

1서클을 겨우 뚫은 제자가 마탑의 밥줄이라고 할 수 있는 서클 강화 마법진을 만들었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

죄송해요. 스승님, 제자가 비밀이 좀 많아요.

나는 마음속으로 스승님께 사죄하고는 천천히 마법진을 활성화 시킬 마지막 문구를 새겨 넣었다.

우우우웅

“됐다.”

100년 만에 만들어본 마법진이지만 이 정도는 껌이지.

나는 마법진의 중앙에 서서 주문을 시전 했다.

“커넥트.”

지잉

내 의식에 마나뱅크가 연결되는 것이 느껴졌다. 단지 전생에 쓰던 코드라 은근히 과부하가 걸리는 듯 머릿속에 지지직 하는 잡음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고, 어서 현생 코드를 뚫어서 이 마나를 옮겨야 하는데, 두통이 심하네.”

남의 코드로 직접 마법을 쓰는 건 역시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해서 집중력을 잃으면 마법이 실패하고 몸과 정신에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미리 생각해 두었던 주문을 시전 했다.

4서클 마법, 안티디텍션(감지방어)!

파스스스

성공이다. 내 몸에 얇은 결계 같은 것이 쳐지며 미세하게 흘러나오던 마나가 모두 차단되었다. 이제 마도사가 봐도 내가 3서클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6서클 탐지마법인 진실의 시야를 쓴다면 알아차리겠지만, 그런 걸 나한테 쓸 리가 없잖아. 마도사도 6서클 이상의 마법은 함부로 쓰지 않거든.

이것으로 마탑에 갈 준비가 끝났다. 나는 바닥에 남아있는 마법진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웠다.

대충 짐을 싸서 연구실 밖으로 나가니 이미 스승님과 몰던은 준비를 끝내고 나와 계셨다.

“렌, 혹시 모르니 이걸 가지고 가라.”

몰던이 지팡이를 하나 내밀었다. 지팡이 중앙에는 작은 금속 고리가 끼어 있었는데, 그걸 돌리자 철컹 하고 창날이 튀어나왔다.

“넌 아직 마법보다 이쪽이 더 도움이 될 거다.”

아니거든요. 저 급하면 3서클 마법을 난사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건 정말 급할 때고 스승님이 아는 난 아직 마나뱅크에 등록도 안한 초보마법사니 몰던의 말이 맞다.

“고맙습니다.”

지팡이를 받아들고 보니, 이건 대충 만든 싸구려 무기가 아니다. 지팡이 자체도 붉은색 빛깔이 도는 대나무인데, 두드리면 맑은 금속성 소리가 났다. 남방의 호류 섬에서만 난다는 적철죽이다. 창날도 물결무늬가 선명한 게 뛰어난 장인이 제대로 된 제련법으로 만들어 정성들여 날을 세운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금속 고리로 창날이 나오고 들어가는 게 상당히 정교했다.

“내가 옛날 남쪽 지방에서 용병생활 할 때에 쓰던 거다. 난 이제 필요 없으니 너에게 주마.”

역시 용병이셨군요. 어쩐지 그냥 평범한 양치기 노인 같지는 않아 보였어요. 그러고 보니 벽에 커다란 원형 방패도 걸려 있었지. 한손에 방패를 들고 다른 손에 이런 긴 창을 든다는 것은 남방의 팔랑스였다는 소린데, 그러면 단순한 용병이 아니라 정식 군인 아닌가? 고급 창술도 알고 계시니 말이야.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그걸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지팡이를 내가 싼 배낭의 옆에 세워 놓았다.

이것으로 여행의 준비가 모두 끝난 셈이다.

스승님과 몰던, 그리고 나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새벽에 떠나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

나와 파우스 스승님은 집을 나서서 마탑이 있는 시라브로 향했다.

원래 렉스를 몰던과 같이 남기려 했는데, 렉스가 무조건 날 따라오겠다는 듯이 막 날뛰었다.

날 따르는 것은 좋은데 자신을 강아지 때부터 키워준 몰던을 배반하다니!

“이놈도 세상 구경을 하고 싶은가 보다. 그냥 데려가라.”

몰던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파우스 스승님도 상관없다고 했다.

“렉스가 좀 괴물같기는 해도 난 마법사 아니냐. 오랜만에 마탑에 가는 거니 이 녀석이라도 데려가서 성과보고를 하고 싶구나.”

하긴 오랫동안 은거해 있다가 돌아가시는 거니 나름 자랑할 거리가 있어야겠지.

렉스야, 미안하다. 파우스 스승님을 위해 네가 구경거리가 좀 되어야겠구나.

결국 렉스는 등에 나와 스승님 배낭을 짊어진 채 따라오게 되었다. 내친 김에 도시에 나가면 비싸게 팔릴 가죽이나 약초도 실었다. 그러니까 노새나 당나귀 대신이다.

“렉스, 막 뛰면 안 돼. 배낭 떨어뜨리면 밥 안 줄줄 알아.”

컹컹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얘가 말만 못할 뿐이지 정말 알아듣기는 다 알아듣는단 말이야.

산길을 따라 하루쯤 내려오니 포장이 된 큰 길이 나왔고, 거기서 다시 3일 동안 몇 개의 마을을 거쳐 드디어 시라브에 도착했다.

그 사이 사부님과 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여행 도중에는 연구를 할 수 없으니 하루종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사부님, 전에 10대 마도가문이라고 하셨는데, 우리 마탑도 거기 속해 있나요?”

“아니다. 우리 콘돌스핀 마탑은 그렇게까지 세력이 강하진 않구나. 음, 대략 20위 정도 되는 거 같다.”

“헤에, 20위면 어디에요. 대단하네요.”

“콘돌스핀 가문은 세 개의 마탑이 있고, 우리는 그 중 가장 작은 마탑이다. 초대 마탑주인 벨싱 경은 말년에 7서클의 경지에 도달하셨지. 그 뒤 내 스승님이신 마리오스 경께서도 7서클에 이르러 비로소 콘돌스핀 마탑의 3대 마탑 중 하나로 인정받았단다.”

그러니까 방계란 뜻이군요. 대를 이어 7서클 마도사를 배출한 마탑이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고요.

나쁘지 않네. 랭커는 아닌데 무시당하지 않을 수준의 방계라.

나중에 심심하면 가문 등급이나 올릴까?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인데 말이야. 에잇, 정치는 관두자. 혼자 노는 게 편하잖아.

“그럼 지금 최고의 가문은 어디에요?”

“글세, 10대 가문의 순위라는 게 10년 단위로 바뀌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모르겠구나. 아마 체프코트 가문일 거 같다. 체프코트 가문의 가주인 아론 체프코트 경은 덴판 제국의 궁중 마법사를 겸하고 있는데, 그 권력이 대륙 전체에 미친단다. 가문의 힘도 힘이지만 아론 경은 현재 단 두 명뿐인 8서클 마법사란다. 다른 한 명인 이반 헬비스트 경이 정신이 혼미해져서 본인의 가문을 부수고 방랑을 시작한 이후 죽은 엘시아 프리스톤 경 이후 공식적으로 대륙 최강의 마법사로 인정받게 되었지.”

엘시아!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옛 그녀의 이름에 가슴 한쪽이 바늘로 찌른 것처럼 아파옴을 느꼈다.

역시 그녀는 죽었구나. 나름 대륙 최강 마법사까지 해 먹었는데, 내 코드를 해킹하는 것은 실패한 모양이네.

“그럼 대륙 최강은 8서클 이라는 말이네요. 9서클에 도달한 마법사는 없나요?”

“있었지. 바로 엘시아 프리스톤 경의 스승인 로엔 프로시얀 경께서 인간으로서는 전무후무하게 9서클의 경지에 들었단다. 로엔 경은 드래곤과 정령, 마족으로부터도 인정받았기에 진정한 대마법사라 불리워진다. 마나뱅크를 만들어 마도시대를 연 분도 바로 로엔 경이시지.”

설명을 하는 파우스 스승님의 말투가 꽤 경건했다. 역시 로엔은, 그러니까 내 전생은 모든 마법사들에게 존경받고 있구나.

엘시아가 그런 면에서 잘 포장해서 선전을 한 모양인군. 하아.

난 생각을 정리하고 파우스 스승님께 다시 물었다.

“그럼 엘시아 프리스톤 경께서 세운 가문은 없나요?”

“있단다. 엘시아 경이 살아계실 때만해도 프리스톤 가문이 대륙 최강의 마도가문이었지. 하지만 30년 전 그분이 돌아가신 후, 후대의 가주들은 8서클은커녕 7서클에도 오르지 못했고, 쓸데없는 연구에 너무 많은 물자를 쏟아 부어서 매년 힘이 약화되었지. 지금은 10대 가문 중에서도 약한 축에 속할 거다. 아마 얼마 안 있어 10대 가문에서 밀릴 지도 모르지.”

“그렇군요.”

인생무상이다. 내 제자는 죽고 그녀가 세운 가문의 가세는 점점 기울고 있다니.

엘시아, 이렇게 되려고 무려 날 암살까지 한 거니?

이미 죽은 여제자에게 무슨 원망의 감정을 가질까? 난 이만 그녀를 마음속에서 놓아버리기로 했다. 이로써 전생의 인과관계 중 남은 것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니지, 있긴 있구나!

스승님, 드래곤과 정령, 마족으로부터 모두 인정받은 것은 아니고요. 정령하고는 좀 친분이 있었어요.

난 나와 계약했던 대기의 대정령인 진 크로마루스 포트라를 떠올렸다. 진은 등급을 나타내는 어두이고 크로마루스는 정령의 계열, 그리고 포트라는 내와 계약할 때 생긴 계약명이다.

포트라와 난 서로 진명을 교환하는 신성한 계약을 맺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놈과 무슨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말하자면 일종의 사업파트너였다.

내가 죽었지만 계약은 살아있다. 왜냐하면 그놈과 벌인 사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을 게 틀림없으니 말이지.

‘나중에 한 번 알아봐야겠군.’

난 그 뒤로도 틈틈이 파우스 스승님께 10대 마도가문과 현재의 대륙 정세에 대해 물었다.

기존의 권력구조인 제국과 왕국이라는 경계에 새로운 권력구조인 마도가문과 마탑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섞인 게 현재의 대륙정세다.

덴판 제국이 대륙 최강의 군사국가이고, 그곳의 궁중마법사인 아론 체프코트 경도 현 대륙 최고의 마법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힘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가로세로로 엮여있는 이해관계는 큰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대신 끊임없이 자잘한 국지전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파우스 스승님께서 설명해 주는 이러한 대륙 정세는 내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마탑으로 가서 정식으로 마나뱅크 코드를 만들고 몇 년 간 수련을 한 뒤에는 세상에 나가 활개를 쳐야지.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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