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엔의 마나뱅크-4화 (4/250)

로엔의 마나뱅크 4화

컹컹컹컹

렉스가 즐거운 듯 꼬리를 흔들며 열심히 고기를 뜯고 있다.

하우스 선생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 마디 했다.

“거 참, 신기하네.”

“선생님, 문제가 없을까요?”

몰던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렉스를 보며 하우스 선생에게 물었다.

“괜찮은 것 같아. 개밥도 주는 대로 잘 먹는다고 했지?”

“예, 평소보다 다섯 배 정도 먹습니다.”

“완전한 웨어울프가 되면 육식성이 되거든. 그런데 밀가루가 섞인 개밥을 먹는 걸 보면 저 녀석 웨어울프가 반쯤 되다 만 거야.”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나요?”

“내가 어떻게 알아?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몰던은 렉스를 계속 키우는 게 부담스러운가 보다. 하긴, 저런 덩치에 보름달 보고 난리치면 대책이 없긴 할 거다.

하우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몰던에게 말했다.

“자네 말이야. 나랑 같이 살 마음 있나?”

“예?”

“내 저놈을 키우면서 관찰해 보려고.”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그리고 렌 말이야. 싹수가 보여. 저번에 진찰하면서 보니까 마법사의 재능이 있어.”

“헛, 정말입니까?”

“응, 나도 이제 늙어서 제자가 하나 필요한 참인데, 마침 렌 녀석의 재능을 발견했으니 인연인가 싶어서 말이야.”

“네, 네.”

“그런데 양치기인 자네가 개와 아이까지 없으면 너무 외롭지 않겠나? 그러니 이참에 그냥 자네도 내 집에서 같이 살자고. 렌한테 밥해주고 빨래하고 그런 거도 좀 하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게 뭐 있어. 괜찮다면 당장 내일부터 우리 집에서 살라고.”

“예, 그렇게 하지요.”

몰던은 하우스 선생님의 제안이 너무 마음에 드는 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쩝, 나한테 스승이 생기는 건가? 그냥 스승이 없는 게 편할 것 같았는데 말이야.

걱정이 되었다. 혹시 전생의 스승처럼 내가 90살 될 때까지 이곳에서 못 나가게 한다든가 그러진 않겠지?

거절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몰던이 저렇게 기뻐하는 데에는 내가 마법사가 될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이다.

마법사가 대접받는 세상이 아닌가. 시골 촌구석의 양치기와 마법사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

나는 하우스 선생님을 보았다. 조금 괴팍하긴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조금 궁금한 점도 있다.

내가 보기에 하우스 선생님은 이런 곳에서 혼자 마물 연구나 할 정도로 실력 없는 사람이 아니다. 대충 5서클 정도? 이정도면 어디 가서도 당당히 마법사 타이틀 걸고 행세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은거해 있는 걸 보면 뭔가 사연이 있는 듯싶다.

어쨌든 지금 상황은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거부하기도 그렇다.

난 어쩔 수 없이 파우스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날 밤, 파우스 선생님은 나에게 ‘진명’을 지어 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의 새로운 진명은 바리오스 페이모. 조용히 시작하지만 성공은 화려하다는 의미이다.

이 진명은 스승 이외에는 절대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진명이 알려지면 나의 마법사로써의 능력 중 태반은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마도뱅크의 커넥트 코드까지 이 진명을 쓰게 되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마법사의 사제관계는 일종의 신성한 계약관계라 할 수 있다. 스승님은 나의 진명을 알지만 내가 이분을 배신하지 않는 한 내 진명을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다. 강력한 금제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파우스 선생님은 정식으로 나의 스승이 되었다.

“우선 1서클을 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내가 널 마탑으로 데려가서 마나뱅크의 커넥트 코드를 얻을 수 있게 해 주마.”

파우스 선생님은 나에게 마탑이나 마나뱅크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시골의 양치기인 내가 마도에 대해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가끔 파우스 선생님이 되물으면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한 번 듣고 전부 기억하다니. 정말 똑똑하구나. 훌륭하다.”

하우스 선생님은 크게 감탄했다. 육체는 뛰어난 마법적 재능을 타고났는데 머리까지 똑똑하다면 그야말로 인재라 할 만 하다. 늘그막에 얻은 제자가 싹수가 보이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근데 이거 다 아는 내용이거든요. 하긴, 모르는 내용이라도 그 정도는 한 번 들으면 기억해요.

나는 별로 잘난 척 하지 않고 스승님의 칭찬을 겸손히 받아넘겼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스승님을 모시고 정식으로 마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렉스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보름달이 떠도 흉폭해지지 않고 내 말을 잘 들었는데, 단지 기분이 들뜨는 것은 있는지 잠도 안자고 밤새 이리저리 뛰어 댕기며 놀다가 내가 나가면 꼬리를 맹렬히 흔들었다. 같이 놀자는 거다.

얘가 원래 늙은 개라서 체력이 바닥이었는데, 하프웨어울프가 되면서 무한한 체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숲으로 가서 늑대를 사냥해 오는데, 아마 그때 깨물린 게 기억에 남아서 늑대를 원수로 아나보다.

스승님은 정기적으로 렉스를 진찰하고, 가끔 이상한 약을 만들어 먹였다. 내가 살짝 그 약 성분을 분석해보니 흉폭함을 진정시키는 효능과 함께 근력을 강화시키는 성분도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내친 김에 렉스를 괴물 클래스로 키우려나 보다.

“저 녀석, 계속 강해지고 있다. 가죽과 털도 점점 질겨져서 이제는 칼로 그어도 잘라지질 않아.”

몰던도 신기하다는 듯이 지켜보게 되었다.

난 그냥 시간이 날 때마다 렉스랑 놀았다. 렉스는 나에게 있어 첫 친구이자 동료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살다보면 많은 친구나 동료가 생기겠지만 이 녀석보다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없을 것 같다.

*

수련을 하다보면 몸이 찌부둥하다.

정신을 혹사시켜서 피곤함을 느끼는데, 정작 육체는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냥 쉬게 되면 점점 쇄약하지는 면이 있다. 그래서 마법사도 오래 해먹으려면 꾸준한 육체운동이 필요한데 전생의 나 같은 경우 페얀의 몽크들에게 배운 스태프 전투술을 수련하면서 몸을 풀었었다.

그 덕분에 이번 웨어울프 습격 사건 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고.

그런데 파우스 스승님은 따로 운동을 안 하신다. 간단한 전신체조로 몸만 풀어주는데, 한참 뛰어 놀 나이의 내가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할까? 스태프 전투술을 연습하긴 좀 그렇다. 내가 스태프를 눈에도 보이지 않을 속도로 붕붕 돌리고 있으면 당장 그거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볼 텐데, 대답할 말이 없다.

그래도 몸 푸는 데에는 스태프 돌리는 게 최곤데. 쩝.

아니지. 다른 운동거리가 있었군.

고민하던 난 퍼뜩 떠오른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컹컹

집 뒤로 돌아가니 렉스가 벌써 밥 때가 되었나보다하고 반겨준다.

“아니야, 렉스. 그냥 같이 놀자고.”

컹컹컹컹

두 배는 좋아하네. 너도 심심했던 거구나.

역시 운동은 개와 산책이 최고지. 가 아니라 난 새로운, 더 자극적인 익스트림 스포츠를 생각해 냈거든.

“렉스야. 일단 앉아봐라.”

렉스는 내가 손짓을 하자 순순히 바닥에 배를 대고 앉았다.

난 조심스럽게 렉스의 등위에 올라타서 두 손으로 렉스의 목띠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자, 이제 살살 일어나 걸어 봐.”

하프 웨어울프가 된 렉스의 덩치는 어린 나를 태우고 다니기에 딱 좋다는 거지.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것은 승견술이야. 오크가 늑대를 타고 싸우듯 난 렉스를 타는 걸 연습하겠어.

렉스가 벌떡 일어났다. 그 반동은 생각보다 컸고, 난 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악!”

폐얀 몽크가 낙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땅에 머리를 박을 뻔 했다.

이거 쉽지 않네. 말하고는 달라. 얘가 전신 근육이 살아서 퉁퉁 튀는데 내 악력이 그 진동을 버티지 못하는군.

내가 잠시 땅바닥에 누운 채 어떻게 하면 렉스의 등에 잘 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역시 안장이 필요해. 목 띠에도 내가 잡을 수 있는 손잡이를 만들어야겠고.”

생각이 정리되자 난 벌떡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렉스에게 딱 맞는 안장의 설계도를 그렸다.

“렌, 그게 뭐냐?”

파우스 스승님이 물었다.

“렉스에게 채워 줄 안장이에요. 쉬는 시간에 렉스를 타고 놀려고요.”

“허, 개를 탄다고? 쉽지 않을 텐데.”

“예, 한번 해 봤는데 바로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딱 붙어 있을 수 있게 목띠도 개조하고 안장도 만들 거에요.”

“허허, 그래라. 그래도 다치는 건 조심하고.”

스승님은 어린 나의 발상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잠시 내 설계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는구나. 렉스의 초상화라 해도 믿겠다.”

그럼요. 제가 정밀묘사의 달인이거든요. 그림을 잘 그려야 복잡한 마법진도 실수 안하고 휙휙 그릴 수 있다고요.

스승님은 마법진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험이 없으신 듯 하다. 대신 연금술과 약제술에 대해 꽤 뛰어난 성취가 있는데, 연금술은 몰라도 약제술은 전생의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다. 이참에 약제술도 좀 배워야지. 연금술도 다시 배우고 말이야.

사실 대마법사가 되면 연금술이든 약제술이든 다 마법으로 때울 수 있으니 결국 마법진이 최고긴 하다. 그래도 스승님께 뭘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거니까 배워야지. 마법은 배우는 시늉만 하는 거고.

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그림 그리는 데 열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설계도가 완성되었고, 스승님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제대로 된 안장 구조를 생각해 낸 나를 다시 칭찬하셨다.

설계도가 완성되니 제조는 쉬었다. 완성이 된 후에 렉스에게 착용시켜보니 나름 구상한 대로다.

스승님도 내가 정말 렉스를 탈 수 있는지 궁금해서 구경을 나오셨고, 때마침 양들을 몰고 돌아온 몰던도 같이 보았다.

“렉스, 일어나.”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은 들었지만 이번에는 손과 발로 버틸 수 있었다. 기사처럼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탄 것이 아니라 등에 딱 달라붙어 있는 형태다.

“렉스야. 이제 조심스럽게 걸어봐.”

컹컹

“우왓! 야. 천천히 걸으라고.”

난 분명히 렉스에게 걸으라고 했는데, 렉스는 조심스럽게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막 뛰어갔다. 난 급히 렉스가 알아듣는 천천히라는 표현을 써서 겨우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계속 천천히를 연발하면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아직 타고 달리는 건 무리겠지만 연습하면 가능할 거 같았다.

“우오오오! 난 오크 바바리언 울프 라이더다!”

난 신이 나서 외쳤고 그 모습을 본 파우스 스승님과 몰던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허허허허. 정말 개를 탈 수 있군.”

파우스 스승님이 말하자 몰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말하고는 달라서 렉스가 빨리 달리면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재밌긴 하겠군요.”

어어, 몰던. 그렇게 타보고 싶다는 눈빛 하지 말아요. 렉스가 크긴 해도 몰던이 타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요.

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렉스는 요즘도 계속 커지고 있다. 어쩌면 몇 년 뒤에는 몰던도 거뜬히 태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날부터 틈이 날 때마다 렉스를 타는 연습을 했다.

몰던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 달도 안 되서 렉스가 어느 정도 달려도 괜찮게 되었고, 다시 석 달쯤 지났을 때에는 허리를 펴고 한손에 스태프를 기사의 랜스처럼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적응력이란 말씀. 후후훗.

생각해보니 1서클을 뚫었을 때보다 렉스를 한손으로 타고 다닐 수 있게 된 게 더 기뻤던 것 같기도 하다.

이거 이거, 마법사가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왜 자꾸 다른 거에 재미를 느끼는 거야. 쩝. 그래도 전생에 수련은 지겨울 정도로 했으니까 이제는 좀 편안하고 즐겁게 가자고. 암, 그러려고 환생한 거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