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의 마나뱅크 3화
2장 렉스와 파우스 선생
오늘도 나는 양들을 풀어놓고 명상을 통한 마나수련을 했다. 처음 시작을 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이제는 양치기로써도 능숙해져서 양들의 표정만 봐도 얘들이 뭘 원하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뭐, 대충 풀어놓으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지만 말이다.
컹컹
렉스가 짖는다. 양치기의 필수 도우미인 늙은 개 렉스. 사실은 내가 아니라 렉스가 양들을 돌본다고 할 수 있는데 갑자기 짖는 걸 보면 문제가 있나보다.
“렉스, 뭐니?”
난 렉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평소에는 양들이 놀라지 않게 거의 내 옆에 엎드려 있던 렉스가 왜 이런 구석진 곳까지 온 걸까.
“이것은!”
발자국이다. 인간이 아닌 개, 아니 개치고는 좀 크다. 늑대다!
“젠장.”
근처에 늑대가 있다. 나는 긴장하며 렉스에게 말했다.
“렉스 양들을 모아서 우리로 몰아.”
사람말도 잘 알아듣는 렉스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뛰어나가 양들을 몰아붙였다.
메에에에
한참 풀을 뜯던 양들은 놀라서 항의하듯 울었지만 렉스의 위협석인 인솔에 순순히 따랐다.
바스락
풀을 밟는 소리에 솜털이 곤두섰다.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슬쩍 눈만 돌려 보니 정말로 렉스보다 딱 두 배 큰 늑대가 나무 사이에 반쯤 모습을 가린 채 날 보고 있었다.
한 마리인가? 아니다. 그 뒤로 또 한 마리가 있다. 약간 작은 놈. 그러나 열 살인 나보다는 훨씬 크다.
“미치겠네.”
마을의 남쪽 구릉인 이곳은 마물들도 안 오는 평화로운 곳이기에 그동안 안심을 했었다. 몰던도 그래서 나를 대신 보낸 것이고.
아직 1서클을 뚫지 못했다. 1서클 마법이라도 쓸 수 있다면 싸울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의 난 그냥 평범한 열 살짜리 꼬마다.
급한 김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들어 늑대를 겨누었다. 몰던이 물려준 목창이다. 끝에 날카로운 청동쪼가리가 박혀있어 제대로 찌르면 늑대의 가죽을 뚫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어른들 이야기지 내 근력으로는 택도 없겠지.
그나마 늑대가 청동 냄새를 맡았는지 움찔하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흐읍.”
나는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전생에 운동 삼아 배워둔 페얀 왕국 몽크들의 스태프 전투술의 중단 찌르기 자세다.
크르르르
내 자세가 훌륭했는지 늑대는 낮게 으르렁 거리면서도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자세와 기세만으로 따지면 난 숙련된 몽크에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허세는 여기까지일 뿐, 여기서 섣불리 움직이면 실력이 드러날 터이다.
어떻게 도망가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고민하면서도 허리를 낮추고 두 눈을 늑대의 흉폭한 기세에 굴하지 않고 똑바로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컹, 컹컹컹
렉스다. 양들을 마을 어귀까지 몬 후에 돌아온 것이다.
렉스는 일부러 크게 짖으며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앞에 있는 큰 늑대가 아니라 뒤쪽에 있던 조금 작은 늑대쪽이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덤비는 게 아니라 좌우로 뛰며 상대의 뒷다리를 노렸다.
작은 늑대는 아직 싸움에 익숙치 않은 지 렉스의 능숙한 유인술에 넘어가 곧 렉스를 쫒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 늑대는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나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깨갱
렉스가 작은 늑대에게 물렸다. 뒷다리다. 그러나 그것은 렉스의 함정이었다. 살을 주고 살을 깎는 함정. 렉스 역시 늑대의 뒷다리를 물었다.
깨개갱
작은 늑대는 렉스보다 참을성이 없었다. 같이 뒷다리를 깨무는 상황에서 렉스보다 작은 늑대의 신음소리가 훨씬 크게 울려 퍼졌다. 마치 싸우던 아이가 아빠에게 울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듯하다.
크르르르, 컹
큰 늑대가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휙 하고 몸을 날려 단숨에 렉스의 몸을 물어뜯었다.
렉스는 치명상을 입고 고통스러운지 작은 늑대를 물었던 입을 열었다. 그러자 기가 산 작은 늑대는 거의 죽어가는 렉스의 목을 물어뜯으려 했다.
“끄응”
렉스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보고 이틈에 도망가라고 말하는 듯 했다. 주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미끼로 쓴 것이다.
“렉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며 앞으로 크게 한 걸음을 나아가며 창을 내질렀다.
극히 평범한 중단 찌르기.
노리는 곳은 오직 한 점.
바로 큰 늑대의 항문이다.
푹
끄아아앙
박혔다. 힘이 모자라긴 했지만 그래도 한 뼘 정도는 들어간 것 같다.
봉변을 당한 큰 늑대는 묘한 울부짖음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크게 뒤흔들었다. 그 힘에 창을 쥔 나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창을 놓지 않았다. 이거 놓으면 죽는다.
땅에 발이 닿는 순간 다시 힘을 주어 막대창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앙
조금 더 들어간 막대창은 큰 늑대를 더욱 더 고통스럽게 했다.
죽을 때까지 밀어 넣어 주겠다! 넌 이제 큰 늑대 꼬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런데 그때 작은 늑대가 렉스를 포기하고 나한테 달려왔다.
“이런!”
나는 급한 김에 한쪽 발을 작은 늑대의 입속에 밀어 넣었다. 허리나 배를 물리면 죽으니 어쩔 수 없다.
크왕
“아아악!”
종아리에 늑대의 이빨이 박히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거기다 작은 늑대는 나를 큰 늑대로부터 떨어뜨리기 위해 다리를 문 채로 질질 잡아끌었다.
놓치면 죽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문을 외울 수 있도록 훈련된 나의 정신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큰 늑대를 끝장내기 위해 막대창을 밀어 넣어.
컹컹컹
렉스다. 렉스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벌떡 일어나 작은 늑대의 목을 물어뜯었다. 큰 늑대가 고통으로 렉스를 놓아준 것이다.
내가 큰 늑대를 찌르고, 작은 늑대가 내 다리를 물고, 렉스가 작은 늑대의 목을 물었다. 이제 버티기 싸움이 된 것이다.
비명과 울부짖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근육이 찢어지고 피가 흐른다.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으, 피가 너무 흘렀어.”
나는 한계가 왔음을 깨닫고 마지막 힘을 모아 손바닥으로 막대창끝을 탁 하고 쳤다. 그 충격으로 막대창이 조금 더 깊게 박히는 것이 느껴졌다.
끄응
큰 늑대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손에 힘이 풀려 막대창을 놓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미안, 렉스. 내가 좀 더 버티면 이길 수 있을 텐데...
쓰러진 나는 렉스의 눈을 보며 마음속으로 사과했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었다.
좀 억울했다. 대마법사가 될 내가 이렇게 늑대에게 물려 죽다니. 이런 게 인생인가?
......
......
......
나 아직 살아있는 건가?
눈을 떠보니 아까의 들판이 아니었다. 침대, 부드러운 모포가 나를 덥고 있는 게 느껴졌다.
“렌, 괜찮니?”
몰던이다. 내 양아버지.
“추워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렇다. 이거 마셔라.”
몰던이 준 코코아를 마시니 단 맛이 혀끝에 돌아 기분이 좀 나아졌다.
“렉스는요?”
“괜찮다. 늑대 두 마리를 상대로 싸우다니. 다음부터는 도망치거라.”
“예.”
도망치는 게 맞다. 그런데 막상 렉스를 두고 가려니까 그게 잘 안 되더라. 그 녀석의 눈빛이 말이야. 내 발걸음을 잡더라고.
“제 다리는 괜찮은 건가요?”
하반신 전체에 감각이 없다. 마비가 된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혹시 나 다리 하나 날아간 건가? 으, 외다리 마법사라. 왠지 모르게 악당같은 느낌인데, 한쪽 눈에 안대라도 하면 해적마법사로 불릴지도.
“괜찮다. 파우스 선생님께서 치료를 해주셨는데, 흉터만 좀 남겠다더라.”
“파우스 선생님이 오셨다고요?”
파우스 선생님은 우리 마을에 은거해 계신 마법사다. 가끔 나타나는 마물의 사체를 사서 이상한 실험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때문인지 마물에게 부상을 당하면 일단 파우스 선생님께 보이고는 한다.
“네가 창으로 찌른 큰 늑대가 웨어울프종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갔을 때 그놈의 상반신이 인간처럼 변해 있었다.”
“아악! 그게 웨어울프였다고요?”
세상에, 어쩐지 크더라니. 그 정도 크기라면 웨어울프 새끼쯤 되나보다. 어쩌면 독립해서 내가 첫 사냥감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래, 그래서 파우스 선생님을 모셔왔다.”
웨어울프에게 물리면 전염이 된다. 그래서 몰던은 서둘러 파우스 선생을 불렀고, 파우스 선생은 나를 면밀히 진찰하고는 내가 웨어울프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긴 난 작은 늑대에게 물렸지 큰 늑대에게 물리지는 않았으니까.
“다행이네요. 하하하.”
진짜 다행이다. 난 인간이 좋다. 웨어울프로 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뭐, 웨어울프병을 막는 울프스베인이란 풀이 있으니 완전히 변하기 전에 제대로 치료를 하면 괜찮겠지만, 그게 무지막지하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전생의 기억으로 안다.
“어쨌든 당분간 쉬어라. 몸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는 내가 양을 치러 나갈 테니까.”
“예, 죄송해요.”
내가 사과하자 몰던은 고개를 살짝 젓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며칠이 지났다. 웨어울프의 시체를 대가로 받은 파우스 선생이 나에게 좋은 치료약을 써 줬는지 죽을 뻔 했던 상처가 벌써 다 나았다. 흉터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나는 몸이 나았는데, 렉스는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계속해서 끙끙거리며 고통을 호소하는 듯 했는데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몸에 상처는 대충 나 나은 것 같은데 내상이 있는 걸까? 몸에 열이 심하고 눈이 충혈 되어 있는데, 나를 보면 죽을 것처럼 슬픈 눈을 한다.
우리는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전우다. 같이 살아남았으니 이젠 남이 아니다. 나는 밤을 새워 렉스를 간호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서 보름달이 떴다. 그러자 쓰러져 있던 렉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언덕 위쪽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리고는 달을 보며 맹렬히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
“렉스!”
순간적으로 렉스의 몸이 두 배쯤 커졌다. 이 현상이 뭔지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개도 웨어울프병에 걸릴 수 있는 거였어?”
생각해보니 렉스가 큰 늑대에게 물린 것은 맞다. 그런데 인간도 아닌 개가 웨어울프병에 걸린다는 것은 내 전생 현생을 합쳐서 처음 들어봤다.
나는 일단 집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렉스가 웨어울프가 되어 미쳐 날뛰면 당해낼 수 없다. 어제의 아군이 오늘의 적이 된 것일까?
“어떻게 하지?”
몰던도 깨어나서 창문 틈으로 렉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만약 저놈이 문을 깨고 들어오면 내가 막을 테니 넌 파우스 선생님께 달려가라.”
“몰던.”
“머뭇거리면 안 돼.”
젠장, 내가 왜 9살 때부터 마나수련을 시작하지 않았지? 1서클만 뚫었어도 이렇게 무기력하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진심으로 후회했다. 그러나 설마 10살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으니 어쩔 수 없다.
렉스야. 그래도 우리는 전우잖니. 웨어울프가 되면 그냥 숲으로 가 버리렴. 괜히 우리 잡아먹는다고 덤비지 말고.
나는 기원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렉스는 한참 달을 보며 울부짖다가 마침내 변화가 끝났는지 우리 집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몸이 세 배쯤 커졌고 눈빛부터가 상당히 흉폭하게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그때 큰 늑대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해 보였다.
“온다.”
몰던이 방 안에 걸려있던 방패와 손도끼를 잡아들며 말했다. 그러면서 한 손은 내 머리를 잡고 쓰다듬었다.
“알았지. 뒤도 돌아보면 안 된다. 파우스 선생님께 갈 때까지 멈추면 안 돼.”
“예.”
나는 대답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게 인생인가. 힘이 있을 땐 제자에게 암살당하고, 힘이 없으니 양부가 나를 위해 죽는 상황을 견뎌내야 한다.
오늘 살아남아 힘을 얻으면, 적어도 두 번 다시 내 주변의 사람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보지 않겠다.
지금은 도망가야 할 때다. 나는 이를 악 물었다.
비장한 결심을 하고 있는데, 렉스가 집에 다가왔다. 그런데 렉스는 문을 부수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집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누웠다.
크르릉, 크르릉
개가 코를 고는 소리다. 덩치가 커지니 코도 크게 곤다. 아 놔.
“괜찮은 모양인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가 지켜보마. 넌 자라.”
“저도 해가 뜰 때까지 그냥 깨어 있을게요.”
“그래라.”
나와 몰던은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안심을 할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을 새며 렉스의 코고는 소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