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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로더 신들의 전쟁-573화 (57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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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No. 573

문 밖으로 나온 김영민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14살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모습. 밖으로 나온 김영민은 바로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잠시 문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그럴 만하다.

4강까지 전승으로 올랐으니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승까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말 그대로 축제인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축제.

근데 왜 난 거기에 끼지 못하는 걸까?

다른 형들이 거리감을 두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이 배려해 주고 어떻게든 함께 하려고 해 준다. 쭈뼛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건 오히려 자신이었다.

왜 그렇지?

‘모르겠어.’

자문을 해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무언가 막이 쳐져 있는 것 같다. 다가갈 수 없는 두려운 막.

내가 정말 월드 챔피언십에 나가도 되는 걸까?

선수로 선발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김영민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부담스럽고 버거웠다.

혼자 가는 것도 아니니 기분 전환 겸 즐겁게 다녀오라고 팀에서 이야기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언가 보여 줘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으니까.

커뮤니티 반응을 보지 말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연스레 손이 갔다. 그리고 왜 친구들이 그렇게 걱정 어린 눈빛으로 힘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평생 들어온 것보다 많은 욕과 비난이 거기에 있었다.

순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방금 전에 본 내용이 가슴속에 깊이 박혀 빠질 줄 모른다.

악플이란 건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를 악물었다. 악플이 사라지는 방법은 단 하나.

다시 예전 경기력을 찾아와 사람들이 감탄할 만한 경기를 보여 주는 것.

그래서 연습 시간을 늘렸다. 분석하는 시간도 늘렸다.

하루에 하던 경기수가 전보다 더 많아졌지만 경기력은 돌아올 줄 몰랐다. 오히려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감독님도, 수석 코치님도, 팀 내 형들도 모두 좋은 이야기를 해 줬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성적은 점점 고꾸라졌고 시즌이 끝났을 땐 월등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기록이 남았을 뿐이었다.

초반의 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최연소 양대 결승 진출자.

최연소 프로리그 40승 달성.

남은 건 이 두 가지뿐이었다.

앞에 최연소를 빼면 그다지 특별한 기록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준수한 기록이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진 못한다.

적어도 다음 시즌 4강 이상 오르고 프로리그 역시 보다 많은 승수를 쌓을 줄 알았으니까.

결과적으로 손에 쥔 타이틀이 없다.

프로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한 번 반짝였던 선수.

그 반짝임이 굉장히 컸지만 그게 전부였던 선수.

초반 10승 1패를 달릴 때만 해도, 위너스 리그에서 3연속 올킬을 하고 추후에 올킬 한 번을 추가해 4회 올킬을 달성했을 때만 해도 최소 50승, 아니 60승 이상의 성적을 거둘 줄 알았다. 승률 역시 7할은 넘을 줄 알았고.

45승 43패.

프로리그 최종 기록이다.

잘한 기록이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 잘할 수 있었으니까.

더 잘해야만 했으니까.

끝내 50승을 거두지 못한 것이 김영민은 가장 마음에 걸렸다. 패배한 경기의 반에 반만 이겼어도 50승은 거뜬히 넘었다.

승률 역시 지금보다 훨씬 보기 좋았겠지.

이왕 월드 챔피언십에 나가게 된 거 여기서 진가를 보여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한 나라의 대표로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국내 리그 선수들보다 경기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다. 연전연승을 해 실전감각과 자신감, 그리고 경기력을 되찾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첫 경기에 나가 패배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믿고 있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것이다. 외국 선수에게 질 줄은 몰랐다. 그날 김영민은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또다시 패배를 기록했고 어느새 3패까지 왔다.

불과 몇 달 만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바뀌었다.

언제나 잘할 줄 알았다.

실제로 그랬었다. 신들의 전쟁을 할 때면 모든 걸 잊었다.

모두 입을 모아 자신이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모든 걸 초월할 수 있었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이도 없었고 체구가 작다고 놀리는 이도 없었다.

적어도 신들의 전쟁에선 그런 것들은 무의미했다. 그래서 김영민은 신들의 전쟁을 좋아했다.

조건 없이 모든 이와 나란히 설 수 있었으니까.

지금처럼 예고도 없이 슬럼프가 찾아올 줄 몰랐다. 적어도 신호는 보내고 올 줄 알았다. 아니었다. 슬럼프는 친절한 존재가 아니었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덮쳤다.

양대 결승전 패배.

항상 승승장구하던 김영민에게 첫 시련이 닥쳤다. 너무 거대한 벽. 첫 결승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연달아 무너지는 순간 두려움이 불쑥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그 후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이승우가 아닌 다른 선수를 만나고 마찬가지였다. 경기에 출전한다는 사실만으로 부담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토를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걱정할까 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이승우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건 핑곗거리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 김영민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걸.

14살이란 어린 나이에 김영민은 세상의 쓴맛을 느끼고 있었다.

****

얘가 어디까지 간 거지?

멀리는 안 갔을 텐데.

영민이의 눈빛이 너무 무겁다. 결코 14살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니었다. 보다 밝아야 한다. 희망으로 반짝여야지 지금처럼 절망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어선 안 된다.

예전 영민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 사진과 영상을 보면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감으로 허리는 항상 곧게 펴 있었다.

지금과 정반대의 모습. 그때의 영민이가 그립다. 내 피를 끓어오르게 했던 그때의 영민이를 다시 보고 싶다.

나보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도전하는 선수가 스스로 무너지면 훨씬 더 좋은 거 아닌가 하고.

이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도전자가 없으면 도태된다. 누군가 끊임없이 자극을 줘야 한다.

동물원에 갇혀 오랜 기간 먹이를 공급받은 맹수의 사냥능력을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본능이 서서히 죽어 가는 거다.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망가뜨려 정상을 유지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만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과감히 이 자리를 포기할 거다.

나를 위협할 만한 선수가 끊임없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 긴장감을, 희열을 계속 느끼고 싶다.

단순히 나의 욕심을 넘어 이 스포츠가 발전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어디 있……. 아. 저기 있구나.

저기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영민이가 보였다.

멀리 가지 말라고 했더니 정말 멀리 안 갔네. 말은 참 잘 듣는다.

“영민아!”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자.

“어? 왜 나오셨어요?”

영민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그래. 나도 이렇게 내가 나올 줄 예상 못했다.

최대한 밝게 웃으며 영민이 옆으로 다가섰다.

“나도 바람 좀 쐬려고. 남자들만 있어서 그런가? 안에 공기가 텁텁하다. 텁텁해.”

내 말에 영민이가 작게 웃었다. 그래.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벤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잠깐 저기 앉을까?”

“좋아요. 형.”

영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벤치로 향했다. 중학생한테 형이라는 말을 듣는 게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삼촌 소리 듣는 것보다 훨씬 낫다.

“요즘 많이 힘들지?”

“…….”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영민이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너무 직설적으로 묻는 거 아니냐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첫 접근이었다면 신중을 기했을 거다. 하지만 이미 나처럼 물어본 사람이 많은 상황이기에 처음부터 본론으로 가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조금요.”

힘겹게 떼진 입술.

표정에서, 말투에서 모든 것이 베어 나온다.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해 줘서 고마워.

지금 영민이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이 성적이 예전처럼 확 나올 수 없다.

“그렇구나. 뭐가 그렇게 영민이를 힘들게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잠시 주저하던 영민이가 입을 열었다.

“너무 경기가 안 풀려요. 제가 원하는 그림이 있는데 될 것 같으면서도 안 돼요. 그러다 보니 성적도 점점 떨어지고, 자신감도 사라지고……. 솔직히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니 더 잘했어야만 했는데. 개인리그는 양대 결승 이후 16강 이상 오르지 못했고 프로리그는 45승밖에 하지 했어요.”

‘45승밖에.’

이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구나.

양대 결승 진출과 프로리그 45승.

한 해 이런 성적을 냈다면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한 해 결승에 오르는 선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전부 다른 선수가 결승에 오른다 하더라도 12명이 최대다.

12자리 중 두 자리나 차지하고 프로리그에서도 45승을 거두며 다승 순위 권내에 들었음에도 이것밖에 못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더 잘하지 못하는 것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자격지심.

성적이 떨어지게 되면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주목하지 않고 잘한다고 하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커져 있는 거다.

“그거 진짜 대단한 건데. 왜 그것밖에 못한다고 말하는 거야?”

“더 잘할 수 있었으니까요.”

“무엇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데?”

“사람들한테 잘 하는 걸 보여 주고 싶어서요. 가족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2군 생활을 6년이나 하면서 포기하지 않았던 힘.

가족도 큰 원동력이었지만 근본적으로 이게 없었다면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바로 신들의 전쟁 좋아하는, 아니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신들의 전쟁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힘들어도 웃을 수 있었다. 신들의 전쟁을 하고 있을 때 너무 행복했으니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으니까.

영민이도 분명 그랬을 거다. 지금은 그 웃음을 많이 잃은 것 같다.

거창하게 영민이의 슬럼프를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다. 그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도와주고 싶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소리치는 영민이.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나타났다.

“아. 죄송해요. 연습과 분석을 아무리 해도, 새로운 빌드를 개발하고 추천받은 빌드를 사용해도 경기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해도 안 되니까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자꾸 신들의 전쟁 할 때면 짜증이 나고 그래요.”

영민이의 눈빛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분석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여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주체는 선수 본인이 되어야 한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능력에 의심을 품고 끊임없이 분석하다 결국 모든 것이 흐트러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자신의 실력에 믿음이 있는 선수들에게 더 자주 나타난다. 이럴 땐 모든 건 던져야 한다. 고민은 연습 때만 한다. 실전에선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추천받은 빌드가 아무리 좋아도 의구심이 들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생각 없이, 손 가는 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놀랍게도 이러면 오히려 불안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진다.

당연히 집중력도 더 높아지고 자연스레 좋은 경기력이 나오게 된다.

어떻게 잘 아냐고?

나도 겪었으니까.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분석과 연습에 집착했던 때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

진정으로 신들의 전쟁을 즐기지 못했으니까. 그저 이겨야만 하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으니까.

아마 영민이도 그때 나와 같지 않을까?

영민이는 두려운 거다.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을 봐 주지 않을까 봐.

자신을 슬픈 표정으로 바라볼까 봐.

누구도 영민이에게 성적을 강요한 적이 없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새로운 기록을 냈을 때 소중한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영민이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나는 무조건 이겨야 하고 매번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 야 해. 그래야만 이렇게 인정받을 수 있어.

그게 아니면 자기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러니 성적이 계속 곤두박질 칠 수밖에.

비극이다.

칭찬이 독이 되어 버렸다. 이를 의도한 사람은 없다. 이런 결과를 예측한 사람도 없다. 영민이의 슬럼프를 바란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빨리 슬럼프에서 나오길 바라고 또 바랐다. 물심양면 도와주려 애썼고 영민이가 원하는 걸 다 해 주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이 오히려 더 영민이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부담은 이내 강박이 되었다. 자유로웠던 플레이에 창살이 쳐졌다.

“나는 네가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얼마나 연습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난 지금 네 기분이 좋은지 어떤지 이게 더 훨씬 궁금한데.”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천 번 넘어져야 제대로 걸을 수 있다.

분명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지금 영민가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말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렸을 거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충고나 조언이 아닌 공감이었다.

프로게이머 김영민이 아닌 14살 김영민과의 공감.

영민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는 거다.

참지 마. 그러다 병 된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품에 안겨 엉엉 소리를 내며 영민이가 울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마음속의 응어리진 덩어리가 조금 풀어졌다는 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영민이의 등을 쓰다듬어 줬다. 조금이라도 영민이의 기분이 나아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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