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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No. 572
이제 국내 리그가 모두 끝났다.
개인리그도, 프로리그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승우와 아스트로의 해였다. 6회 결승 6회 우승을 이룩한 이승우와 또다시 위너스 리그와 정규 리그를 제패한 아스트로.
팀의 균형까지 이룬 지금 역대 최강의 팀이라는 칭호가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 기록도 어마어마하다.
위너스 리그와 정규 리그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걸 통합 우승이라고 부른다. 아스트로 이전에 단 두 팀밖에 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S1과 CT.
그렇게 어려운 걸 아스트로는 2년 연속 해냈다.
이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그 결과 아스트로는 수많은 1회 우승팀들을 제치고 CT, 나무전자와 함께 역대 두 번째로 우승을 많이 한 팀이 되었다. 1위는 5회나 우승을 차지한 S1이었다. 아직 다른 팀이 넘보기엔 우승 횟수가 월등히 많다.
그래도 위너스 리그에선 화성, CT와 함께 최다 우승팀이 되었다. 다음 시즌까지 위너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면 화성과 CT를 제치고 홀로 최다 우승팀이 될 수 있다.
현재까진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규리그야 워낙 변수가 많아 함부로 예측하기 힘들지만 위너스 리그 같은 경우 절대적인 에이스만 있으면 얼마든지 우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우가 말도 안 되는 부진에 휩싸이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다음 시즌도 정상에 설 수 있을 거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월드 챔피언십으로 향했다. 월드 챔피언십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었다.
16강은 4개국이 한 조에 속해 풀 리그 방식으로 경기를 펼쳐 상위 두 개국이 8강에 올라가게 된다. 8강부터 결승까진 단판 토너먼트이며 경기는 9판 5선, 승자연전 방식으로 치러지게 된다.
국내 팬뿐만 아니라 해외 팬들도 이번 대회는 이미 우승국이 정해져 있는 대회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한국 대표 팀의 면면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이었다.
현재 최강이라 불리는 이승우를 비롯해 택뱅리쌍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에서 1위면 세계에서 1위다.
2위 역시 마찬가지다. 중위권으로 가면 변수가 생길 수 있지만 적어도 10위까진 한국이 독차지 한다고 봐야 한다.
한국 대표 팀을 넘어 세계 올스타라고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들을 이끌 감독도 결정되었다.
바로 아스트로의 이재명 감독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미 프로리그 2연패, 위너스 리그 2연패로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 줬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자격은 차고 넘친다.
이미 전 세계 배팅 업체에서도 한국 대표 팀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이견의 여지가 없다. 정말 놀라운 전략을 들고 나와 한국 선수를 이겼다고 치자. 기뻐할 겨를도 없이 다음 선수를 상대해야 한다. 앞서 이긴 선수와 크게 차이가 없는 어마어마한 실력을 지닌.
한국 팀의 목표는 단순히 우승에 그치지 않는다. 압도적인 포스와 함께 한국이 신들의 전쟁 최강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똑똑히 각인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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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회라고 해서 엄청 기대했는데 서울에서 해서 그런가? 딱히 세계 대회라는 느낌이 없다? 그냥 이벤트 대회 하는 기분이다.”
살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병호 형.
그 말에 모두가 공감했다. 다른 나라에서 월드 챔피언십이 치러지면 대회가 끝난 후 관광이라도 하며 해외여행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시간이 남긴 했지만 굳이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항상 봐 왔던 풍경이었으니까. 그저 최고급 호텔에 함께 머물며 대회를 참가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 그래도 마음에 드는 건 있다.
식사와 각종 룸서비스!
내 돈 내고 하기엔 아까운 호사를 제대로 누리는 중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다른 팀 선수들이 모일 수 있어서 좋네요. 시즌 중엔 이런 거 하기 힘들잖아요.”
김택윤의 말처럼 다른 팀 선수들이 이렇게 모이기 힘들다. 그것도 한 팀으로.
“그래도 경기 중에 느끼는 거 많지 않아요?”
“동감.”
“전략 진짜 독특하더라. 듣도 보도 못한 전략이 막 나오는데. 당황한 적도 있다니까.”
보통 ‘듣도 보도’란 말은 비하할 때 쓰는 말이지만 지금은 좋은 의미로 쓴 것이다. 이미 최적화가 끝난 한국과 달리 다른 나라는 이제 막 전략의 묘를 하나둘 깨우쳐 가는 중이었다.
우리야 참고로 할 모델이 없었기에 독자적으로 틀을 만들었지만 다른 나라는 한국이라는 훌륭한 교과서가 있다.
그렇다 보니 보다 다양한 빌드와 전략이 만들어졌다.
물론 최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파괴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이를 보완하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다른 나라 선수들끼리 펼친 경기 중에서도 구미를 당기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정말 새로웠다.
항상 한 길로 다녔고 이 길만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불쑥 나타나 옆길로 가는 걸 바라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지름길인지, 아니면 훨씬 더 돌아가는 길인지는 아직 모른다. 가 보지 않았으니까. 차차 알게 되겠지.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거면 족하다.
“전 경기해서 팔 아픈 것보다 사인해 주느라 손이 더 아픈 것 같아요.”
“그래도 기분 좋지 않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같이 사진 찍어 달라고 하고 사인해 달라고 하고. 무슨 연예인 된 거 같은 기분이던데.”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생각보다 우리들의 인기가 많았다.
한국에서도 꽤 인기 있는 편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외국인들이 달려들어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사진 찍자고 할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다. 놀라운 건 이런 이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한 명에게 해주고 나면 뒤에 두 명이 기다리고.
두 명에게 해주고 나면 뒤에 열 명이 기다리고.
힘들었냐고?
아니. 그냥 입이 귀까지 째졌지.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 보겠어. 나를 좋아해 줄 때 최대한 해 드려야지. 이런 건 진짜 얼마든지 더 힘들어도 된다.
연령층도 굉장히 다양했다. 어린 친구들부터 노인분들까지. 말 그대로 전 세대를 아우른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보통 10~20대가 70% 이상이고 나머지는 25%는 30대다.
그 외 연령층은 5%?
이것도 많이 쳐 준 거다. 40대 이상의 경우 거의 다 선수 가족이라고 보면 된다.
아직도 어른들은 프로게이머라고 하면 색안경을 쓰고 안 좋게 바라본다. 자식의 장래희망이 프로게이머라고 하면 응원해 주기보단 질겁하고 놀란다. 그리고 뜯어 말리기 바쁘겠지.
그렇게 게임 폐인이 되고 싶냐고.
그런 반응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단순히 게임이 좋아서, 노는 게 좋아서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건지 아니면 정말 뜻을 품고 있는 건지 한번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는 거다.
정식 스포츠로 등록 되었음에도 여전히 게임이 사람을 망친다는 편견이 있는 우리와 달리 외국은 다른 스포츠와 이 스포츠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더 인정받는 느낌이다.
우릴 대하는 눈빛과 태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도 이렇게 될 날이 오겠지?
그날이 머지않기를 바란다.
“난 그래도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내가 왼쪽 가슴을 매만지며 대화에 껴들었다. 거기엔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 대표라는 말을 듣게 될 꿈에도 몰랐다. 한국의 이름을 걸고 나온 이상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진 잘 되고 있다.
4전 4승.
사람들의 기대대로 16강부터 8강까지 모두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안착했다. 그 시기 동안 위기 한 번 없었다. 시작부터 한국 팀의 승리라는 끝이 정해져 있는 경기였다.
우리와 함께 남은 세 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대로 남았다. 유럽과 아프리카는 큰 힘을 내지 못했다. 아직 체계적으로 빌드를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같은 아시아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북미의 미국, 캐나다가 선전했다.
캐나다가 조1위로 8강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미국을 만나 탈락하고 말았다.
어쨌든 남을 만한 팀들이 남았다는 반응이다.
“결승전에 누구랑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딱히 상관없는데 이왕이면 일본 올라왔으면 좋겠다.”
한일전.
다른 나라에겐 질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겐 질 수 없다. 신들의 전쟁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팬들도 한일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가 미국을 이기고 일본이 중국을 이기면 결승전 한일전이 만들어진다.
아직 대진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피가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확실히 일본 애들도 잘하긴 잘해.”
마츠다.
환국 선수로 우리나라 선수를 제외하고 이번 월드 챔피언십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선수다.
현재까지 월드 챔피언십에서 거둔 승수는 16승 2패. 다승 순위 1위다. 경기 당 평균 3킬 이상을 한 셈이다.
왜 한국 선수가 다승 1위가 아니냐고?
음. 설명하자면 좀 애매한데 한두 선수에 집중된 다른 나라와 달리 모든 선수가 잘해서 그렇다. 경기에 나갔다 하면 혼자 다 해먹는 바람에 골고루 승을 나눠 가지게 된 거지.
나 같은 경우 아직 1승도 챙기지 못했다. 아직 내 차례가 오지 않았거든.
좀 져야 출전하든 말든 할 텐데 여태껏 가장 많이 출전한 인원이 달랑 2명이다. 경기 당 최대 1패밖에 하지 않았단 소리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마츠다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잘생긴 외모로 더 유명하다. 일본 특유의 꽃미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벌써부터 한국 팬클럽이 만들어졌다.
일본 내에선 우리나라 프로리그에 가져다 놔도 좋은 성적을 충분히 낼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림없다고 본다. 절대 마츠다가 잘생겨서 그러는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경기를 보고 한 말이다. 분명 잘하긴 하지만 2% 부족하다.
아직 본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만나 그 단점이 나타나지 않지만 최소 동수의 실력자를 만나면 금세 들통 나고 말 거다.
“영민아.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 봐. 이거 진짜 맛있다. 평소에 편의점에서 먹던 거랑 맛이 완전 달라. 진짜 고급스럽다. 이런 건 먹어 줘야 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영민이에게 쿠키를 건네는 병호 형. 영민이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끝에 앉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손을 뻗는 영민이의 얼굴이 유독 어둡다.
다 이유가 있다. 이번 대회에서 홀로 패배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아까 말했지?
최대 2명 출전했다고.
2명 출전할 때 영민이는 항상 나갔다. 그리고 항상 패배를 당했다. 4경기 중 3경기에 출전한 영민이의 성적은 5승 3패였다.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상대가 해외 선수기에, 또 우리 중 유일하게 패배를 기록했기 때문에 안 좋은 댓글을 많이 받고 있었다.
쿠키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영민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만 바람 좀 쐬고 올게요.”
“그래.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넵. 요 앞까지만 갈게요.”
바람 좀 쐬겠다며 나가는 영민이의 얼굴이 전보다 훨씬 어두워졌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5분 쯤 지났을까?
“저도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해도 좋다. 하지만 축 쳐진 영민이의 어깨를 본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