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66 Game No. 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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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드디어 1년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프로리그의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1년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경기라 더욱 더 의미가 깊다. 작년보다 많은 관중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결승 무대를 찾았다.
한 선수가 잘한다고 최고가 될 수 없다.
에이스가 없어도 최고가 될 수 없다.
이 모든 걸 갖춰야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 프로리그다. 이제 단 두 팀만이 남았다.
아스트로와 CT.
아스트로는 최초로 위너스 리그 포함 4회 연속 우승에 도전하게 된다. CT는 3년이다. 이영우의 기량이 절정에 올랐을 때 2회 연속 프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최강의 팀으로 군림한 적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2회 우승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과거형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다음 시즌 결승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지만 라이벌 S1에서 우승을 내주며 무너졌다. 그 것도 위너스리그, 정규리도 두개 전부 다.
그런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또 다시 결승에 올랐다. 아직 이영우가 건재할 때, 이영우를 받쳐 줄 선수들이 든든하게 있을 때 우승을 차지해야한다. 사람들은 준우승 팀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역사에 남는 건 오직 우승팀이다.
기적을 일으키며 결승전까지 진출 한 팀?
해당 시즌에 돌풍을 일으켰기에 한 동안 화자가 되겠지만 어느 순간 잊힌다. 그 순간을 생생하게 함께 한 이들은 나중에 관련 된 자료만 봐도 그때의 감동을 느끼지만 기록으로만 본 이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리고 해당 팀을 찬양하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 미화’가 심한 거 아니냐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발끈 할거다. 그런 게 아니다. 이들에겐 감동이 있었고 스토리가 있었다. 실력 역시 어마어마했다.
그러면 또 이런 말이 나오겠지.
그렇게 뛰어났으면 왜 준우승을 했냐고. 당연히 우승 했어야하는 거 아니냐고? 결국 그 팀보다 우승 팀이 더 잘했으니까 이긴거 라고.
여기까지 대화가 오면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진다.
왜?
틀린 말은 아니니까.
직접 느끼지 못한 이들에게 그때의 감동을 알려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방법이 없다. 지금 해당 시즌의 경기를 다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CT도 이미 겪은 일이었다.
무적 CT라 불리며 결승까지 전승으로 진출했지만 우승 하지 못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CT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당시엔 최강의 포스로 불렸지만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땐 비운의 팀일 뿐이다.
남는 건 우승 뿐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준우승 세 번 보다 한 번의 우승이 훨씬 값지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으려면 우승을 해야한다.
오늘 프로리그 결승 중계는 박상철 캐스터, 최승원 해설, 박광춘 해설이 맡았다. 정확함과 재미를 동시에 줄 수 있는 조합이었다.
경기 시작 전에 감독을 포함한 양 팀 선수들이 무대에 올라와 출사표를 던졌다. 감독의 각오를 시작으로 주장과 팀 에이스까지 인터뷰를 마쳤다.
무기만 쥐어지지 않았을 뿐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설전이 오고갔다.
인터뷰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실제로 초반 전략을 준비해왔음에도 마치 정석운영을 할 것 처럼 교묘하게 말하는 것도 심리전의 일부였다.
이번 결승전은 전략적인 전장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아스트로가 선택한 것들이다. 2,3,4세트에 나란히 뒷마당에 확장이 전장이 배치되어 있다.
이를 활용한 전략적 플레이가 나올 수 있고 역으로 상대방의 전략적인 플레이를 이끌어낸 후 그걸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는 식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전장 발표와 대진 발표가 난 순간 결승전은 이미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가위, 바위, 보처럼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질거다. 과감히 꼬리를 끊어야한다. 그 지점을 결정하는 이가 감독이다.
인터뷰를 마친 양 팀의 감독과 선수들이 좌우에 마련 된 벤치로 이동했다. 중계진 역시 중계석으로 향했다.
-양 팀 초반부터 신경전이 장난 아닙니다.
-절대 양보할 수 없죠. 2회 연속 우승을 노리는 아스트로냐? 통합 3회 우승을 바라보는 CT냐? 솔직히 가능성은 모두 다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선수가 어떤 전장에서 어떤 전략을 쓰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선수들의 멘탈 관리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양 해설위원께서는 오늘 경기 결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상철 캐스터의 질문에 먼저 포문을 연 건 최승원 해설이었다.
-글쎄요. 지금 말하기엔 조금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리그 결승전은 단순히 어떤 팀의 선수가 더 잘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단 한 경기를 위해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분위기에 휘둘리면 안돼요. 자신이 준비한 것이건 중간에 바꾼 것이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기에 풀어내야 합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최승원 해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는지 물을 한 잔 마시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CT야 워낙 뛰어난 프로리그 성적을 갖추고 있으니 두말 할 필요가 없고. 아스트로도 올 시즌 경기를 보면 전 시즌에 비해 많이 좋아진게 느껴집니다. 겉으로 보이는 경기력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정신력이 한 층 더 성장했다는 거거든요.
승리 DNA.
전 시즌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승우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이 자주 나왔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달라졌다. 이승우의 기여도가 높긴 하지만 그래도 이승우가 없어도 승리하는 모습을 곧잘 보여줬다.
이기는 법을 깨달았다는 말이었다. 이번 시즌 프로리그 성적이 그걸 증명한다. 패배한 경기가 거의 없다. 주전급 선수가 무너지면 다른 선수가 나타나 귀신같이 승리를 거둔다.
4:3 아슬아슬한 스코어로 꾸역꾸역 승리를 거둔 적도 몇 번 있다.
스코어는 중요하지 않다. 이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거다. 이런 경기에서 에이스결정전까지 가지 못하고 패배했다면?
정규리그 1위 자리를 S1이나 CT에게 넘겨줬을지도 모른다.
최승원 해설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광춘 해설이 입을 열었다.
-같은 전략이라고 하더라도 스코어에 따라 느낌이 다릅니다. 이기고 있다면 보다 과감하게 쓸 수 있고 지고 있다면 아무래도 살짝 위축될 수밖에 없거든요? 이를 잘 컨트롤해야겠죠. 일단 결승에 오른 이상 양 팀의 전력은 같다고 봐야합니다. 멘탈 싸움이죠. 그 기선을 잡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1세트입니다! 1세트! 아주 중요한 경기라는 거죠!
중계진 중 유일한 선수 출신인 박광춘 해설은 끊임없이 멘탈을 강조했다. 오랜만에 보는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 1세트를!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1세트를! 한민규 선수와 고강원 선수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포스트시즌이라면 언제든지 믿고 경기를 맡길 수 있는 고강원이죠.
-한민규 선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개인리그는 전보다 조금 부진하지만 그래도 8강은 꾸준히 가주고 있거든요? 프로리그 역시 주장인 박현우 선수와 함께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환국 라인을 든든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한민규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박현우에게 쏠려 있던 짐을 덜어주며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전장은 심판의 날.
무난한 힘 싸움 전장이었다.
-자. 양 선수 모두 준비가 끝났습니다! 지금 바로 1세트 전장 심판의 날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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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했다.”
“으. 내가 더 떨리네. 진짜.”
드디어 1세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부담감이 상당할 텐데 민규는 의연한 얼굴로 경기에 나섰다.
크. 역시 크게 될 녀석이라니까.
“전략 통하면 대박인데.”
“위치는 별로네.”
“오히려 대각이라 더 낫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 아예 생각 못할 수도 있으니까.”
팀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 경기에서 민규가 초반 전략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올인 까진 아니지만 실패했을 경우 경기가 상당히 불리하게 흘러간다.
6:4나 6.5:3:5 정도?
일반적으로 전략은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번 전략은 조금 다르다. 오히려 처음엔 보여 줘야한다. 한 가지 생각만 머릿속에 남도록.
“진짜 내가 저거 연습 미친 듯이 도와줬어요. 무조건 이겨야해요. 무조건!”
그때 생각에 아직도 치가 떨리는지 승대가 한 자 한 자 입을 주어 말했다. 하긴. 계속 경기에 패배하면 스트레스가 쌓일 법도 하지.
차라리 모르고 당하는거면 속 편하겠지만 이미 알고 있음에도 눈으로 본 사실만 보고 경기를 진행해야 하니 속이 많이 답답 했을거다.
“그래. 네 희생이 있었으니까 무조건 이기지.”
“그렇죠?”
“두 말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네가 못 막는 건 고강원도 못 막지.”
“흐흐흐. 역시 형 밖에 없네요.”
승대의 얼굴에 만족이 떠올랐다.
“자. 그럼 편안하게 고..오. 흠. 경기 지켜보자!”
편안하게 우승하고 고기 먹을 생각하라고 말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승대의 경기는 2세트. 고기 생각에 푹 빠져 경기력이 나빠질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3세트에 해야겠다.
농담이냐고?
미안하지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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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진행되는 것만 같던 경기의 흐름이 급변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이정훈 감독.
-한민규! 한민규! 한민규! 준비해 온 것이 있어요!
-아. 무난히 안 가겠다는거죠. 오히려 무난한 전장이니까! 가장 먼 대각선이니까 전략을 시도하는 겁니다!
심판의 날 가로 세로는 가까운 편이지만 대각선은 중앙 조형물들과 지형으로 인해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건 도감 더블 이후 도감을 4~5개까지 늘려 타 스타팅에 확장을 가져가지 못하게 단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민규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본진 2도감 러시!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건가요?! 임주혁 감독이 선수 시절 때 나왔던 운영법 아닙니까?!
-앞마당 확장 안하는 환국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그냥 본진 2도감 불꽃 러시가 아니다.
1도감 더블 페이크를 앞에 한 번 줬다. 일벌레 정찰에 일부러 금광을 캐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 고강원을 안심시켰다.
고강원의 머릿속엔 도감 더블 밖에 들어있지 않을 거다. 적어도 금광이 지어지기 전까지 한민규의 빌드는 도감 더블과 똑같았으니까.
-한민규 선수 심리전에서 완벽히 이겼어요!
-고강원 까마득히 모릅니다. 그저 앞마당에 군영을 짓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대각선인게 오히려 독이 됐네요. 군주가 앞마당 언덕으로 오려면 한세월입니다.
일벌레를 한 번 더 보냈지만 궁병에 의해 차단당했다. 추후 정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마견이 올 자리에 궁병이 미리 마중을 나갔다. 그 사이 환국의 병력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동시에 이정훈 감독의 얼굴에도 근심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