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57 Game No. 557 =========================================================================
Game No. 557
“승우 형이 정말 그 전략을 사용할까요?”
“글쎄. 그렇게 연습한 거 보면 쓰지 않을까? 안 쓸 거면 그렇게 미친 듯이 연습할 필욘 없잖아.”
“하긴. 그래도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한 번 삐끗하면 그대로 경기 끝 아니에요?”
“그렇지. 진짜 아무것도 못해 볼 걸? 확실히 행동으로 옮기기엔 부담되지.”
“진짜 승우 형도 강심장이에요. 어떻게 그런 전략을 그것도 이영우를 상대로 결승전에 쓸 생각을 할까요?”
결승전 1세트가 시작된 순간 아스트로 선수들끼리 오늘 결승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이번 1세트에 사용될 전략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른 세트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CT 쪽으로 이야기가 새어 나갈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가 아스트로 응원석, 그중 VIP만 앉을 수 있는 곳이긴 했지만 혹시 모른다. 이런 건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승우니까.”
그때 선수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아. 감독님.”
바로 이재명 감독이었다.
“승우니까 과감하게 할 수 있는 거겠지.”
처음 이승우의 판 짜기를 들었을 때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런 놀라운 발상을 하는 선수가 있구나. 그리고 그걸 실행에 옮길 경기력까지 지니고 있구나.
단순히 승리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다.
스포츠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승우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재미를 주고 지는 것보다 재미없더라도 이기는 게 낫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 법이니까. 이승우는 이 둘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 하고 있었다.
재미도 주고 경기도 이기는 것.
이승우의 용안이 본진 밖을 나가는 순간 이재명 감독이 박수를 짝하고 쳤다.
“자. 이제 쇼 타임이다.”
어느새 그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용안이 굉장히 빨리 나가는데요?
-앞마당에 제단을 소환해 이영우 선수를 괴롭힐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승우 선수의 전매특허죠. 초반 견제.
흑룡성은 3인용 전장이기에 상대 진영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앞마당에 솟대를 소환한 용안이 5시 쪽으로 바로 정찰을 나갔다. 거기엔 이영우의 본진이 있었다.
-방향이 아주 좋아요. 원 서치에 성공하는 이승우!
-시작이 아주 산뜻한데요?
-입구 쪽에 창고를 건설하는 걸 봐 입구를 막아 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되죠. 꼭 앞마당을 가져갈 필요가 없거든요. 자원량은 절반이지만 뒷마당 확보하면서 물량 확보한 후 앞마당 가져가도 늦지 않거든요.
-어? 잠시만요. 용안이 1기 더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 여기까진 제단을 소환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자.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결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 용안이 앞마당에 제단을 소환한 순간 본진에서 2기의 용안이 더 밖으로 나왔다.
도합 4기의 일꾼이 정찰에 동원된 것이다. 일하고 있는 용안은 겨우 5기에 불과했다.
그사이 이영우의 본진을 확인한 이승우. 앞마당에 제단을 소환하고 11시 쪽으로 향하던 용안이 5시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정도면 단순한 정찰이 아니라 공격인데요?!
-일꾼 2기 정도가 언덕에 미리 서 있으면 이승우의 공격을 무위로 돌릴 수 있지만 그걸 지금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그거 하면 맵핵이죠. 맵핵! 이 타이밍에 4용안이 뛰쳐나오는 전략을 누가 생각해 냅니까?!
-이건 치즈 러시입니다. 용족판 치즈 러시예요. 4기의 용안이 활개를 쳐 상대의 손을 어지럽게 한 다음 용아가 가서 마무리를 짓는!
-만약 이영우가 생더블이나 도감 더블하면 호되게 당할 수 있어요!
-그간 용족이 환국의 치즈 러시에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습니까! 앞마당 신전 지어놓으면 파괴당하고! 아예 본진까지 밀리고! 그 복수를 이승우가 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너네도 괴로워 봐라! 치즈 러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
-백만 용족의 한이 담겨 있는 공격입니다.
용족이 용안을 전투에 동원하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마수전이나 용족전에서 99제단을 한 후 3기 이상의 용안을 동원해 경기를 끝내는 경우도 있다. 환국전일 때도 상대가 생더블이면 용안을 동원해 피해를 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예 처음부터 작정하고 용안을 동원한 경기는 없었다. 다른 선수가 했다면 해괴망측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전략.
-전에서 이승우 선수가 용안 러시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생더블을 발견한 이후에 용안을 즉흥적으로 동원한 거거든요? 지금과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이영우 선수가 어떤 대처를 보여 줄 지.
황당한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관중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두 눈을 비비는 이도 있었다.
“뭐 이런 전략을 들고 나오냐?”
“진짜 이승우답다.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 내는 거지.”
상상을 초월하는 전략.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기에 의외의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생각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경기가 크게 기울게 된다. 오직 자신의 멀티테스킹을 믿고 사용한 전략이다.
-봤어요! 이영우!
-놀라죠. 놀라는 게 당연하죠. 세상에 이런 공격이 어디 있습니까?!
-이승우니까. 오직 이승우니까 가능한 공격입니다.
-이 선수는 틀이 없어요. 무한한 자유도를 가지고 있어요. 이승우는 이런 선수다. 뭐를 잘하는 선수다. 이렇게 말로 단정 지을 수 없단 말입니다!
-오늘도 그런 모습이 여실히 나오고 있습니다!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이영우.
‘2기도 아니고 4기?’
공식전은 수백 경기 치른 이영우지만 이런 상황은 또 처음이었다.
‘너무 올인 아냐?’
이영우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너무 적은 일꾼을 빼면 용안에 휘둘리게 된다. 그렇다고 많은 수를 동원하면 자원 채취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일단 4기만 붙이자.’
결론은 동수은 4기의 일꾼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
어때? 놀랐지?
모두 ‘NO’라고 할 때 과감하게 ‘YES’라고 하는 용기!
실패하면 어쩌냐고?
그런 생각을 왜 해. 무조건 된다고 해도 안되는 게 반인데 처음부터 그런 걱정하고 있으면 얼마나 더 안 되겠어.
용안 4기가 초반부터 일을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상대 일꾼 4기를 일 못하게 만든다면 결과적으로 이득이다. 환국은 건물을 짓는 동안 일꾼이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4기가 동원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자원을 채취하는 용안의 수는 일꾼보다 많다.
전투가 이뤄졌을 때도 용안이 더 낫다.
체력은 용안이 일꾼보다 20 낮지만 사정거리 면에서 우월하다. 4기를 끊임없이 컨트롤하면 이득을 취할 수 있다. 딱 용력이 떨어질 때까지만 싸우면 된다. 어차피 용력은 다시 차오르니까.
일꾼을 일 못하게 만드는 것도 분명 성과지만 여기서 만족해선 안 된다. 이러면 결국 운영 싸움으로 경기가 흘러간다. 이득을 취하는 건 분명하지만 생각보다 그게 큰 이득은 아니거든. 환국이 작정하고 수비하며 20분 이후를 바라보면 나도 난처해진다.
일꾼을 잡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 없다. 잡으면 나쁠 건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지금 지어지고 있는 도감이 제 때 완성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
용안이 죽어도 상관없다. 무조건 도감을 짓는 일꾼을 때려 빠르게 완성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철광에 솟대 러시도 함께 해 준다. 일꾼이 많이 빠져나와 있는 상태라 공간이 많이 빈다.
솟대 러시를 하기에 최적이다.
매너 솟대는 자원 채취를 방해함과 동시에 용안 컨트롤을 더 원활하게 만들어준다. 뒤로 빠질 땐 본진 철광을 찍고 앞으로 나아갈 땐 솟대 부근 철광을 찍고.
보다 기민하게 용안을 움직일 수 있다. 이영우가 그렇게 하려면 1기의 일꾼을 앞마당에 더 배치해야 하는데 그럼 지금보다 더 가난해진다.
일꾼이 멀리 나왔다 싶었을 때 용안 1기를 우회시켜 철광 앞에 솟대를 소환했다. 일꾼이 숫자가 별로 없어 쉽게 소환할 수 있었다.
일단 해야 할 건 다 했다. 머릿속에 있는 건 고스란히 다 옮겼다.
남은 건 이 경기를 즐기는 것뿐이었다.
****
-솟대!!!!
-이영우의 심장에 비수를 박네요!
-아. 일꾼 1기가 갇혔어요. 안 그래도 자원 채취가 잘 안되는데 일꾼마저 갇혀 버렸습니다!
-안에서 열심히 솟대를 때리고 있지만 일꾼 1기로 어느 세월에 파괴하나요?!
이영우를 응원하는 관중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일하지 못하고 동원되고 있는 일꾼 4기, 도감을 짓고 있는 일꾼 1기, 매너 솟대에 갇혀 버린 일군 1기, 도합 6기의 일꾼이 자원을 채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영우의 본진은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이승우 선수 악마와 계약했나요? 뭐 이렇게 잔인합니까?!
-박용제 해설의 집요한 초반 공격이 생각나는 움직임입니다. 지금은 그보다 더 해요!
-모든 용족의 장점을 흡수했어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라 더 나아가 발전까지 시켰습니다.
-아. 이영우 자원 채취 너무 안 되는데요? 준비해 온 것이 분명 있었을 텐데 써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다 꼬여 버렸죠!
신들린 컨트롤이 나온 덕에 용안은 여전히 4기였다. 용력이 다 벗겨지고 체력마저 반 이하로 떨어진 용안도 있었지만 죽은 용안은 없었다.
그때 앞마당에서 생산된 용아가 이영우의 본진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용아가 오고 있음에도 도감은 절반 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았다. 이승우가 도감 건설을 집요하게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입구에 솟대를 추가로 소환하는 이승우!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네요. 입구라도 어떻게 막으면, 용아를 본진 안으로 오지 못하게 만들면 그래도 해 볼 만했거든요!
-이러면 완전 망했습니다. 용아가 안으로 들어오면 일꾼이 일 못하는 걸 넘어 죽습니다, 죽어.
엄재웅 해설의 말처럼 입구를 막았다면 불길을 진화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승우의 방해로 그러지 못했고 불길은 더 거세졌다.
-이런 올인이 다 있단 말입니까?
아마 여기 있는 모든 이가 하고 싶은 말일 거다.
이승우의 본진은 아주 평화롭다. 본진에 있는 건물은 신전 하나다. 나머지 건물은 모두밖에 소환되어 있다. 용아와 솟대를 소환해 주다 자원이 남으면 용안 1기씩 보충해 주며 차이를 점점 더 벌려 나갔다. 매너 솟대도 하나에서 세 개까지 늘어났다. 제대로 자원을 채취할 수 있는 철광은 3개뿐, 나머지는 솟대에 막혀 빙빙 돌아가야 했다.
-용안과 사투를 벌였기 때문에 일꾼의 체력이 별로 없습니다. 용아가 붙으면 폭죽처럼 터져나가요!
-체력 없는 일꾼만 쏙쏙 골라 잡아내고 있습니다.
-일꾼이 자원을 채취한 시간보다 본진을 돌아다닌 시간이 훨씬 깁니다. 얼마나 급하면 자원을 물고 이렇게 전투에 동원되겠습니까!
궁병이 나왔지만 용안과 용아에게 둘러싸여 순식간에 잡혔다. 궁병의 길을 막는 용안의 움직임이 예술이었다. 용안은 제 몸을 돌보지 않았다. 죽든 말든 궁병의 길을 막는데 열중했다.
-저 용안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할 거 다했습니다.
-일꾼 일 못하게 해 줬지, 매너 솟대 소환했지, 망루 건설 안 되게 방해했지, 궁병 길 막았지. MVP입니다. MVP!
그러는 사이 두 번째 용아가 합류했다. 1기의 궁병과 일꾼으론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GG!! 이영우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이승우 선수 완벽한 그림을 그려 왔어요!
정확히 4분 10초 만에 첫 번째 경기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