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로더 신들의 전쟁-556화 (556/575)

00556  Game No. 556 플래티넘 마우스를 향하여.  =========================================================================

Game No. 556

4강 경기가 끝난 후 내가 향한 곳은 숙소가 아닌 고기집이었다. 오늘 병호 형과 저녁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계산은 이긴 사람이 기분 좋게 하기로 했다. 4강과 결승 진출자의 상금 차이를 생각해 보면 이 정도 고기쯤은 100번도 더 살 수 있다. 아. 이거 한우였지? 그것도 투쁠. 100번은 오바고 10번 정도로 하자.

“형. 고기 다 익었어요. 먼저 드세요.”

“아이쿠. 이런 좋은 부위는 나 보다 우승자님께서 맛을 봐야지. 어딜 감히 4강 진출자가 젓가락을 먼저 가져다 대나?”

“…….”

저기 이모님.

제 의자에 누가 가시 달아놨나요?

왜 이렇게 따끔따끔거리죠?

왜 이렇게 불편하죠?

목이 타 컵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지만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오히려 모래를 잔뜩 먹을 것처럼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병호 형도 참 웃기다. 경기장에선 쿨 워터 향을 그렇게 풀풀 풍기며 환호를 받더니 둘만 남자 바로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분명 어제만 해도 누가 이기든 상관없이 밥 먹자라고 했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지금 병호 형은 삐졌다. 이런 모습을 팬들이 봐야 하는데 말이지. 동영상 촬영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형. 인터넷 기사 보셨어요?”

“무슨 기사?”

“오늘 경기 관련 기사요.”

“내가 진 걸 뭐하러…….”

말이 심하게 길어질 조짐이 보인다. 바로 잘라야 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행동이다. 많이 친해졌기에 할 수 있는 거다. 솔직히 형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이 많다. 생색내는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프로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이번에 4강에 오른 것도 다 내 덕이다. 나만의 비법을 아낌없이 전수해 줬거든. 자랑하는 거냐고? 맞다. 자랑하는 거.

물론 나도 배운 게 있다. 직접 만나 배운 건 아니지만 병호 형의 경기를 보고 많은 걸 깨달았다.  문득 병호 형의 경기 리플레이를 처음 구했을 때가 생각난다. 진짜 어마어마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눈을 빛냈었는데 말이지.

“그거 말고 이거요.”

휴대폰으로 직접 기사를 띄워 병호 형에게 보여 주었다. 병호 형의 스포츠맨십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를 읽어 나가는 병호 형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더니 어느새 귀에 걸렸다.

“흠.흠. 아주 좋은 기사가 떴네?”

네네. 이런 기사가 한두 개가 아니라 열 개 넘게 떴습니다. 병호 형이 내 손에서 휴대폰을 가져가 기사를 정독했다. 모든 기사를 읽을 기세다.

“아. 고기 다 타겠다. 얼른 먹자!”

휴대폰을 건네는 병호 형의 표정이 매우 밝다.  상황 종료다. 휴. 이제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겠군. 잘 익은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는 병호 형.

“업진살. 살살 녹는다. 이번이 열 번째 결승 진출이지? 굉장하다. 진짜.”

“저도 믿기지 않네요.”

열 번째 결승 진출.

이스포츠계의 전설 이민열 선수와 타이 기록이다. 아쉽게도 역대 최다 결승 진출은 아니다. 1위는 이영우로 무려 11번이나 결승에 올랐다.

그래도 최다 우승은 내 거다.

10회 결승 진출, 8회 우승.

내가 생각해도 진짜 대단한 기록이네. 이거 진짜 내 기록 맞는 거지?

“당장 내일 모레 결승이잖아. 준비는 좀 했어?”

“이것저것 준비하긴 했죠.”

“올. 스코어가 어떻게 될 것 같아?”

완전 기분이 풀어진 것 같은 병호 형이다.

“준비한 게 완벽히 먹힌다면 3:0. 먹히지 않는다면 3:0으로 완패할 것 같아요.”

“그 정도야? 되게 극단적인 전략을 준비했나 보네?”

“완전요.”

이영우의 경기력이 심상치 않다. 컨디션이 하늘을 뚫고 올라갈 기세다.

최근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에서 1패를 당했다. 무난한 운영으로 갔을 땐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1세트에서 멘탈을 흔든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전략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게 계획이다. 최악의 경우 모든 공격이 막혀 3:0으로 질 수도 있다. 그 정도로 뒤가 없는 전략을 준비했다.

“어떤 전략인데?”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는 병호 형의 얼굴.

내가 대답을 살짝 망설이자.

“야. 설마 내가 어디 가서 말할까 봐 그래? 난 네 편이야. 나도 용족이잖아. 우리 똘똘 뭉쳐서 마수 놈들하고 환국 놈들 때려 부숴야지.”

피가 뜨거워진다!

그건 그렇죠. 우리 용족이 그동안 얼마나 핍박받았습니까?

“컨셉만 말씀드릴게요.”

자세한 빌드는 말하지 않고 전반적인 틀에 대해서만 말해 줬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벌어지는 병호 형의 입.

“……이런 경기 운영이에요.”

“……진, 진짜 그걸 한다고?”

말까지 더듬는 걸 보니 많이 놀란 것 같다.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팀원들한테 이야기했을 때도 똑같은 반응이었으니까. 유일하게 감독님만이 엄지를 치켜세우시며 이승우답다고 하셨다. ‘저다운 게 뭔데요.’ 같은 성장 드라마 단골 대사가 목 끝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네. 짜릿하죠?”

“그거 너무 입신전 아니냐?”

“모두가 바라는 거 아니에요? 상상으로만, 입으로만 하던 플레이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거.”

“흠. 그렇긴 한데…….”

병호 형의 뒷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건 실용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말이다. 즉 위험부담이 크다. 손이 꼬여 허망하게 경기를 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히 해낸다면 역으로 상대방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죠.”

성공하면 어마어마한 보상이 따른다. 단순히 1세트 승리가 아니라 분위기를 단숨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호랑이를 잡는데 이 정도 각오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넌 진짜 미쳤다. 미쳤어.”

칭찬이죠?

그렇게 알아들을게요.

“이틀 후가 기다려진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형.

모든 용족의 꿈을 제가 이뤄 드리겠습니다.

****

10월 22일.

올해 OSL 마지막 시즌 결승전의 날이 밝았다.

이승우와 이영우.

서로 걸려 있는 것이 많다.

이승우는 이번 시즌 우승하게 되면 두 해 연속 가을의 전설이 됨과 동시에 한 해 최다 우승자가 된다. 동시에 그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플래티넘 마우스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게 된다.

어제 온게임TV 홈페이지에 플래티넘 마우스의 실물이 공개되었다.

신경을 많이 쓴 것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조명발, 사진발이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진 그대로 트로피가 제작된다면 역대 최고의 트로피로 이름 남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아무도 몰랐다.

플래티넘 마우스는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4회 우승은커녕 3회 우승자조차 얼마 없었기 때문이었다. 은퇴한 사람이 반이고 4회 우승에 도전할 수 없는, 전성기가 지나 버린 선수가 또 그 반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리쌍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이승우.

역대 최강의 프로게이머.

이젠 커리어 면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

이를 바라보는 이영우의 속에서 천불이 제대로 일 것이다.

최고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빼앗겼다. 이영우가 모두 승리를 거뒀다면 이미 플래티넘 마우스는 이영우의 것이 되었을 것이고 그중 한 번만 이겼어도 최초의 4회 우승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 패배했다. 결승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상대가 영광을 누리는 걸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이번에도 그럴 순 없다.

정상에서 많이 맞붙어 봤기 때문일까?

인터뷰 때 벌어진 기 싸움이 상당히 팽팽하다. ‘이승우를 꺾고 4회 우승 동률을 맞출 것이다.’로 시작한 이영우의 사전 인터뷰는 ‘먼저 4회 우승에 도달한 건 이승우지만 플래티넘 마우스에 입을 맞추는 건 내가 먼저다.’로 마무리되었다.

이에 맞서는 이승우의 인터뷰도 장난 아니었다.

“방금 저를 잡고 4회 우승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여태까지 일들은 잊으신 것 같습니다. 제게 첫 우승. 그리고 골든 마우스를 안겨 준 상대가 이영우 선수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진 로열로더, 골든 마우스에 이어 저에게 플래티넘 마우스까지. 산타가 따로 없네요. 오늘도 선물 기대하겠습니다.”

실로 엄청난 도발이었다. 산전수전 겪은 이영우의 얼굴이 살짝 붉어질 정도. 자존심을 사정없이 건드렸다. 누가 우승하든 엄청난 화제가 될 것이다.

-자. 양 선수가 달궈 놓은 무대의 공기가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신경전이 엄청나네요. 피부가 따끔거릴 정돕니다.

-그래야죠. 그래야 우승을 할 수 있죠!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을 보세요! 평상시에 봤던 선수들의 눈빛이 아닙니다. 정말 생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날카롭습니다.

-이영우 선수 오늘까지 우승을 내주게 되면 정말 차이가 더 벌어지게 됩니다.

-5번 중 3번입니다. 진짜 자존심에 타격 많이 입죠.

환국 최초 4회 우승이냐?

플래티넘 마우스냐?

종족의 자존심을 건 맞대결이 머지않았다. 양 선수가 경기를 준비하는 동안 데이터 분석이 진행되었다. 전체 상대전적에선 이승우가 이영우를 크게 앞서지만 기간을 올해로 한정했을 땐 6:4 정도로 이영우가 이승우를 많이 쫓아왔다.

이번 시즌 성적도 이영우가 괜찮다.

3패로 올라온 이승우와 달리 이영우는 결승까지 전승으로 왔다.

-자. 양 선수 준비가 얼추 끝나가는 것 같습니다. 얼른 전장 소개로 넘어가겠습니다!

이번 시즌 새로운 전장이 2개 추가되었다.

1세트에 사용되는 흑룡성 역시 그중 하나다. 전체적인 콘셉트는 MSL에서 사용하고 있는 자승자박과 비슷하다. 3인용 전장인 데다 본진끼리 외곽 지역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역 언덕 구조로 되어 있는 자승자박과 달리 흑룡성은 본진이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자승자박은 외곽 길이 중립 건물로 길이 막혀 있지만 흑룡성은 철광 장벽, 즉 확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확장을 가져간 후 모든 자원을 채취하면 뒷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큰 차이가 아닌 것 같지만 이는 경기 운영에 많은 영향을 준다.

파괴가 가능한 중립 건물과 달리 철광은 오직 일꾼, 용안, 일벌레만이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자승자박과는 조금 다른 양상의 경기가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중앙 지역 역시 자승자박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고 커다란 운동장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외곽을 중심으로 한 게릴라 전술, 센터를 활용한 대규모 전투로 경기 양상이 양분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전략적인 특성과 힘 싸움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전장이기에 어떤 컨셉을 들고 나왔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죠. 애매한 컨셉을 잡아 버리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 게 통할 상대들이 아니거든요! 올인이면 올인! 한 방 전투면 한 방 전투! 자신이 준비한 판에 상대를 끌고 와야 합니다. 절대 끌려가선 안 돼요!

이승우와 이영우의 판 짜기 싸움도 흥미롭다.

다양한 운영과 전략이 나올 수 있는 흑룡성에서 어떤 걸 준비해 왔을까?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대감에 얼굴이 붉게 물든 관중들이었다.

-자! 드디어! 양 선수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가을은 용족의 계절! 한 번 더 우승을 차지하며 플래티넘 마우스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려 하는 신룡 이승우와, 그게 무슨 소리! 가을의 전설 같은 건 없다. 이번 우승은 내 것이다. 전승행진을 이어 나가며 최고의 기세를 보여 주고 있는 원조 갓! 이영우의 신들의 전쟁이 펼쳐지는 전장. 흑룡성으로 지금 바로 떠나~~~~~ 보겠습니다!

그렇게 운명의 1세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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