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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로더 신들의 전쟁-553화 (553/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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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No. 553

즐겁다.

용족전에서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다. 김택윤과 할 때가 즐겁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힘과 힘의 격돌.

이 자체가 나를 흥분시켰다.

그나저나 병호 형도 많이 준비했는데?

1:1을 만들 줄이야.

3:0으로 경기를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이제 더 이상 세트를 내주는 건 위험하다. 무조건 3:1로 경기를 끝내야 한다. 용족 동족전은 빌드 싸움에서 크게 갈리면 역전하기 정말 힘들거든.

병호 형은 배제를 정말 잘한다. 팬들이 배제왕이라고 부르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1세트도 완벽한 배제로 자신의 판을 만들었다. 역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래도 2세트에선 손이 풀렸는지 위기를 넘기고 승리를 거뒀다.

3세트는 자신 있다.

필살기를 준비해 왔거든.

병호 형이 어떻게 대응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

-어느새 3세트입니다!

-정말 명경기가 쉴 새 없이 쏟아지네요! 아주 눈이 즐겁습니다.

-용족간의 대전쟁! 정말 최고 수준의 경기입니다. 도대체 누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까?! 이렇게 먹을 것이 가득한데요?!

-자. 이제 3세트에서 승부의 균형이 한곳으로 쏠리게 됩니다!

-아직 선수들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하니 3세트 전장 청룡곡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룡곡.

이번 시즌 새로 추가된 MSL 전장으로 환국의 무덤으로 불리는 전장이다. 용족과 마수가 할 만한 요소가 많은데 비해 환국에겐 마이너스 되는 요소밖에 없다.

이 전장 때문인지 몰라도 MSL 4강엔 환국이 없다. 이영우와 정명혁이 8강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이제운은 이영우를 3:2로 꺾고 4강에 올랐는데 1, 5세트에서 사용되었던 전장이 바로 청룡곡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두 세트에서 이제운이 모두 이겼다. 정명혁도 마찬가지였다. 한 세트만 사용되어 그나마 낫긴 했지만 그게 하필 3세트였다. 2:0으로 이기고 있던 정명혁은 청룡곡을 시작으로 페이스가 급격하게 흐트러졌고 결국 역스윕을 당하고 말았다.

이들에겐 다신 쳐다보고 싶지 않은 전장일 것이다.

일단 이승우와 송병호의 종족이 둘 다 용족이기 때문에 전장에 따른 유불리는 없다.

꽤나 전략적인 수를 요하는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까운 공중 러시 거리.

먼 지상 러시 거리.

본진이 언덕 아래 있는 역 언덕 전장이지만 앞마당에서 중앙으로 나가는 길은 다시 언덕 지형.

철광으로 막혀 있는 본진 뒷길과 중립 건물로 막혀 있는 앞마당 샛길.

중앙 지역도 아예 평지가 아니라 상, 중, 하 3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또한 전장에 있는 중립 건물을 전부 파괴하면 본진을 제외한 모든 확장을 지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짧고 굵게 요약하자면 굉장히 복잡한 지형을 가진 전장이라는 말이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허를 찌르는 전략들이 난무했다. 요즘은 볼 수 없는 2소굴 닷발귀로 환국의 본진을 초토화하는 경기도 있었고 선 가시귀를 간 후 철광 뒤로 가시귀를 넘겨 앞마당을 장악하며 승리를 따낸 경기도 있었다.

이러한 올인은 용족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 본진이 언덕 아래에 위치해 있고 본진 철광 뒤편에 기다란 언덕이 존재한다는 걸 이용해 환국이나 용족을 상대로 용광포 러시도 종종 나왔다.

이래저래 고통 받는 건 환국이었다. 환국 선수들의 입에서 자연 곡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전략적인 요소로 가득한 전장입니다. 속업 운룡을 활용해 본진과 확장을 털어 줄 수도 있고 전진 제단이나 용광포 러시 같은, 뒤가 없는 올인 러시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승우와 송병호라면 뭐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서로 올인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진짜 재미있겠네요. 한 명은 전진 제단 하고 다른 한 명은 용광포 러시 하고. 아예 본진을 서로 바꾸는 경기가 나올 수도 있겠습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경기다.

앞서 펼쳐진 세트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 줬기 때문일까?

이들에 대한 기대가 하늘 끝까지 솟아 있었다.

-자. 양 선수 준비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바로 3세트 전장 청룡곡으로 떠나 보겠습니다!

김현민 캐스터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하나. 둘. 셋. 이승우 화이팅!!!”

“질 수 없다. 하나. 둘. 셋. 송병호 화이팅!!!!”

선수들을 응원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선수들이 기 싸움 못지않게 팬들의 기 싸움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무조건 상대 팬보다 목소리가 커야 했다.

-이승우 선수 9시에서 경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송병호 선수는 3시입니다.

지금 모습만 보면 러시 거리가 정말 가까운 전장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직선상의 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초반 육로로 이동하려면 커다란 S자를 그려야 한다.

-이승우 선수 첫 번째 솟대를 앞마당에 소환하는데요?

먼저 변수를 둔 건 이승우였다.

빠르게 앞마당을 확보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러시 거리가 멀어 조금 안심하고 있을 상대의 허를 찌르려는 것인지 솟대를 앞마당 언덕 바로 옆에 소환했다. 그리고 연달아 소환되는 제단 2개. 독특한 시작이다. 팀플전도 아니고 개인전에서 2제단이라니.

-2제단!!!

-공격을 가기엔 살짝 애매한 위치거든요? 아마 2제단 이후 빠르게 앞마당을 확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제단으로 공격을 갈 생각이었다면 제단을 12시나 센터에 지었을 거다. 지금처럼 앞마당에 소환한 제단으로 압박을 떠나면 1제단 병력에도 쉽게 막힌다. 그 정도로 러시 거리가 먼 전장이다.

최승원 해설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앞마당에 소환 된 제단 2개는 앞마당을 가져가기 위한 포석이었다. 앞마당을 빠르게 확보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테크가 느려진다. 테크의 차이를 물량으로 버텨 내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앞마당은 무난히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송병호는 무난하게 1제단 이후 금을 채취하고 있었다.

-본진 언덕 뒤까지 꼼꼼하게 정찰을 하는 양 선수입니다.

-봐야죠. 거기 무슨 건물이 지어질지 모른다 이겁니다.

신중하다.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대였으니까.

-앞마당에 신전 소환되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한 송병호.

-이러면 선택해야죠. 빠른 테크로 러시 타이밍을 잡을 것인가? 앞마당을 함께 따라갈 것인가?

지금 경기 방향을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

전자로 간다면 최대한 빠르게 지룡을 띄워 한 방 러시를 가야 한다. 확실히 위험부담이 많긴 하다. 앞마당을 가져가지 않은 상태로 가는 공격이기에 반드시 뚫어야 한다. 막히면 허무하게 지는 운영.

후자는 조금 확장이 느리더라도 미세하게 빠른 테크를 활용해 중장기전으로 경기를 이어갈 수 있다.

송병호의 선택은 후자였다.

2용아와 1용혼까지만 찍은 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아마 바로 앞마당에 신전을 가져갈 것으로 보였다. 그에 앞서 송병호가 용혼으로 본진 정찰 용안을 커트했다.

그 순간.

-용안!!!

-이야! 이승우 선수 정말 영리합니다. 테크가 늦거든요? 모든 걸 다 대처할 수 없거든요? 그렇게 하면 지금 앞마당을 빠르게 가져가서 생기는 이득이 전부 다 사라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송병호 앞마당 중립 건물 근처에 용안 1기 슬쩍 숨겨놨습니다. 본진에 돌아다니는 용안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말이죠!

-정말 얌체같이 숨어 있네요.

-앞마당 타이밍 확실히 보겠다는 건가요?!

-그렇죠. 앞마당에 신전이 올라간다? 그럼 수비에 많은 힘을 쏟을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앞마당에 신전이 올라가지 않으면 타이트하게 병력 생산하고 수비 라인 갖추면 되는 거죠.

본진에 돌아다니는 용안에 온 정신이 팔렸을 때 다른 용안 1기를 슬쩍 숨겨 놓는 센스.

앞마당을 빠르게 가져갔기에 용안 1기가 정찰에 더 동원되어도 상관없다. 들키지 않고 확실한 정보를 가져다주기만 한다면 자원을 채취하는 것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송병호 선수 모르네요.

-용안을 확실히 잡아냈거든요. 굳이 병력이 본진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앞마당 큰 언덕으로 다 전진 배치되죠!

-이러면 앞마당부터 시작해서 본진까지 훤히 다 보여 주게 됩니다. 앞마당 확인한 순간 이승우 마음 편하죠! 다음 수가 훤히 보이거든요.

-몰래 숨겨 둔 용안이 제대로 사고를 칩니다. 이 경기 이승우가 가져간다면 이 용안이 1등 공신입니다.

-아주 기분 좋은 사고 친 거죠!

작전대로, 머릿속에 그렸던 것이 완벽히 구현되었다. 이러면 굳이 용안을 쉬며 테크와 병력 생산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다. 용안 꾸준히 찍어 주면서 느지막이 테크를 타도 안전하다. 앞마당을 봐서 그렇다. 앞마당을 보지 못했다면 송병호의 병력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치고 나오려는 걸까? 아니면 확장을 숨기기 위한 움직임일까?

머리 아프게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을 그럴 필요 없다.

모든 것을 눈으로 봤으니까.

-지룡의 위협도, 흑완의 위협도 당장 없거든요? 이러면 이승우 선수 용의 신전 안 올리고 바로 황룡성지 올려 버려도 됩니다.

이러면 오히려 이승우가 테크를 앞서나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확장도 빠르고 테크도 빠르고. 전투 한 번 하지 않고 이기는 판을 만드는 것이다. 다 용안 1기가 해낸 업적이었다.

-송병호 선수. 경기가 급속도로 기웁니다.

-절대 지금 앞마당을 하는 걸 보여 주면 안 되거든요. 그걸 알기 때문에 병력 전진 배치하고 언덕까지 뒤져 본 거거든요. 철통보안을 지키려고! 중립 건물. 딱 거기만 안 갔는데 거기 용안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러면 허탈하죠. 정보를 주지 않아야 압박이 가능하거든요. 지금처럼 앞마당 가고 테크 느린 거 다 보여 주면 이승우 선수가 전혀 위축되지 않죠. 올 거야? 어차피 너도 병력 없잖아!

-이승우 선수 빠르게 테크 올립니다. 당장 러시가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마음 편하죠.

주도권은 이승우에게 있다.

지룡을 생산한 후 용혼-지룡 싸움을 걸어도 되고 빠르게 비렴을 확보해도 된다. 뭘 해도 되는 상황. 송병호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테크 다 탑니다. 용의 신전도 올리고 황룡성지도 올리고!

-이게 봐서 그렇습니다. 용혼 사업도 안 하지 않습니까?! 나중에 해도 된다 이겁니다!

송병호가 유리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쯤 되면 이승우 입장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이다. 송병호는 거의 정석에 가깝다. 용의 신전을 올려 주며 제단을 4개까지 늘려 줬다. 용혼-지룡 조합을 갖춘 후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둬 불리한 경기를 역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1세트에서 보여 줬던 전투력이 나온다면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

하지만 무난하게 가주지 않는 이승우였다. 똑같은 병력 조합을 갖춘다면 송병호에게 기회가 분명 있다. 하지만 이승우가 지금처럼 변칙적인, 타이밍을 노리는 공격을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돌아가지 않는 용혼의 사업.

용의 신전 이후 바로 올라간 황룡성지.

황룡성지가 완성되었지만 하늘성소가 아닌 지룡사원을 올림과 동시에 빠르게 늘어난 5제단.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이승우! 제대로 한 방을 노리고 있습니다. 발업 용아와 지룡 한 방 러시로 경기를 끝내려고 하는 겁니다!

-충분히 끝낼 수 있어요. 5제단에서 병력 짜내서 일거에 밀어 버리는 거죠.

-역시 이승우! 화끈합니다! 오래 끌지 않아요! 빈틈을 발견하면 바로 주먹을 날려요!

-이러면 송병호의 계획이 그대로 물거품이 되죠. 이승우는 정면 싸움을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기습! 기습이에요.

올인.

초반에 배를 불렸기에 보통 올인보다 더 많은 병력이 빠르게 갖춰진다. 가장 중요한 건 송병호가 이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현룡이 본진으로 날아갈 때쯤 이미 이승우는 출격 준비를 마칠 거다.

어떻게든 알아내야 한다. 이승우가 무엇을 준비하는지 감이든 정찰이든 뭐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알아내야 한다.

만약 알아내지 못하면?

그대로 경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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