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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No. 552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집중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5시간이 지나 있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피로에 잠시 쉬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신 이야기>를 접속했다.
드디어 월드 챔피언십에 대한 이야기가 공식 발표되었나 보다. 이미 전부터 논의되고 결과까지 다 알고 있는 터라 선수 입장에선 그리 놀랍지 않다.
국가대표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 많은데 이미 그 방법도 정해져 있다. 종족별 랭킹 1위부터 3위까지로 말이다.
용족 같은 경우 나와 김택윤, 병호 형이 나갈 가능성이 높다. 반년 이상 경기를 치르지 않아 포인트가 낮은 병호 형이었지만 이번에 양대 4강에 오르며 꽤 많은 포인트를 쌓아 용족 랭킹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 친한 병호 형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기쁘다. 하지만 반년 쉬고 온 선수가 양대 4강에 오른 포인트로 용족 랭킹 3위에 오르는 건 살짝 아쉽다. 그 정도로 활약하고 있는 용족 선수가 부족하다는 말이었으니까.
환국도 아예 못을 박았다.
이영우, 정명혁, 김영민.
이 셋을 제외하곤 후보로 거론될 선수조차 없다. 최근 5년간 결승에 오른 환국 자체가 이들 셋밖에 없다. 최근 김영민이 부진하곤 있지만 양대 결승의 포인트가 워낙 높아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병호 형과는 정 반대의 상황인거지.
김영민이 그렇게 빠르게 곤두박질 칠 줄 몰랐다.
경기력에서 느껴진다.
위축되어 있다는 것이. 단순히 나와의 경기 패배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무언가 다른 요소가 김영민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나도 한차례 겪었던 일이니까.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악플.
악플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분명 상대방을 볼 수 없는데 눈빛과 표정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20대 중반인 나도 그랬는데 이제 막 14살인 김영민은 오죽할까.
부스 안에서 만나면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하는 적이지만 밖에선 동료다. 김영민이 하루빨리 부진을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도 팀에 임주혁 감독님과 최연규 코치님이 계시니 조금은 안심되긴 한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시니까. 훌훌 털고 포스트시즌과 월드 챔피언십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줬음 한다.
가식 같을지 모르지만 진심이다.
상대가 못해서 쉽게 이기는 것보다 힘겹더라도 내가 더 잘해서 이기는 것이 훨씬 더 기분 좋다.
대표 선발에 있어 가장 변수가 있는 종족은 마수다.
개인리그 성적도 엇비슷하고 프로리그 성적도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이제운, 형규, 삼김 마수 중 셋이 대표로 나갈 것 하다.
다른 나라도 같은 방식이냐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애매한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종족별 3명의 선수를 선발하라고 했지 선발 방식에 대해 언급한 규칙은 없다.
이렇게 9명씩 선발된 선수들이 월드 챔피언십에겨 격돌한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해외 선수들은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을까? 영상을 조금 찾아봤는데 한국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게임을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얼른 경기를 하고 싶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고 싶다. 배울 점이 있다면 바로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상상만 해도 설레는구만. 아직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았으니 일단 당장 있을 MSL 4강부터 집중해야겠다.
내일 4강 경기를 치르면 또 한 번 양대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무려 5연속 양대 결승 진출. 이조차 대단하다고 모두가 엄지를 치켜 세우지면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플래티넘 마우스와 플래티넘 배지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말이다.
4강에서 병호 형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병호 형이 4강 진출 했을 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들뜬 목소리에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그대로 전해졌다. 그때 말했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고. 복귀 후 요즘 경기 운영법을 알려 줬던 걸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농담이었다. 병호 형도 농담으로 받았다. 말은 똑바로 하라고. 호랑이 새끼가 아니라 늙은 용이었다고.
사실 병호 형의 활약에 기분이 좋다. 프로게이머 하기 전부터 정말 좋아했던 선수였으니까. 김택윤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지만 같은 시기에 데뷔한 녀석이라 그런지 우러러보고 그런 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미친 듯이 부러웠을 뿐.
이 녀석도 요즘 개인리그에서 살짝 침체기를 겪고 있는 것 같은데 개인리그에서도 얼른 부활했으면 좋겠다.
일관적으로 못하면 슬럼프구나 싶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프로리그에선 그렇게 잘하면서 어떻게 개인리그에선 32강, 16강에서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참 아스트랄한 매력을 지닌 친구다.
개인리그 잘할 땐 프로리그 못하고.
프로리그 잘할 땐 개인리그 못하고.
나야 뭐 다 잘하고 있다.
개인리그야 두말할 필요 없이 잘하고 있고 프로리그 역시 결승 진출을 확정 지을 정도로 잘하고 있다. 팀원들의 성장이 눈부시다. 능력 부여를 꾸준히 해 주긴 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노력이 훨씬 더 크다.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신들의 전쟁 매니저를 켜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온다.
100이 넘지 않는 스탯이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양대 4회 우승 보상으로 스탯 포인트를 넉넉하게 얻어 포스를 100 이상 찍게 되었다.
10단위로 필요 포인트가 1씩 올라가던 포스는 100이 넘어가는 순간 필요 포인트가 2씩 올라갔다. 즉 100부턴 1을 올리려면 스탯 포인트 13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현재 포스는 104까지 올려놓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새로운 능력이 부여되는 텀이 줄어들어든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80 다음 110에서 새로운 능력을 받아야 하는데 100에서 받았다. 무언가 공짜로 받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4회 우승 이후 얻은 버프는 총 4개.
스킬 사용에 필요한 체력이 1% 감소하고, 모든 능력치가 10% 추가 상승한다. 그리고 스킬 효과 역시 5% 추가 상승하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도 [폭풍]은 제외다.
이로 인해 일반 스탯은 스킬과 포스 버프, 칭호 등을 포함해 200에 가까운 것도 있을 정도로 높아졌다. 기본 피지컬 자체가 어마어마해졌다는 거지.
내가 생각해도 괴물인 것 같긴 하다. 그렇다고 매일 놀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루라도 연습을 쉬면 스탯이 줄어든다.
120까진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그 이후로 생겼다. 그래도 다시 열심히 연습하면 바로 회복되긴 한다. 스탯 믿고 연습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경고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얻은 건 원할 때 체력을 100%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항상 가능한 건 아니다. 나름 제약이 있긴 하지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루에 한 번이거든. 그 제약이.
위너스 리그와 다전제가 겹치면 나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스킬창도 아주 꽉 들어찼다.
스킬을 보면 그 스킬을 얻었을 때가 떠오른다. 마치 사진앨범을 보는 것처럼.
스킬창에 1년 반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렇게 추억 여행을 마친 난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어느새 피로는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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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올해 마지막 4강전이 열렸다.
OSL에 이어 5회 연속 MSL 결승 진출 기록을 이승우가 이룩할 것인가?
아니면 복귀한 송병호가 이승우를 잡고 결승전에 오를 것인가?
이승우의 일방적인 승리가 될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팽팽한 승부가 진행되었다.
2세트가 진행된 지금 서로 승리를 주고받으며 1:1.
선취점을 획득한 선수는 놀랍게도 송병호였다. 더 놀라운 건 올인성 전략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35분간의 장기전 끝에 승리를 따냈다.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 그리고 우직함이 가장 돋보였다. 전장을 절반씩 확보한 상태에서 치러진 마지막 전투가 일품이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술법의 향연.
병예와 비렴, 나가의 술법이 쉬지 않고 전장에 떨어졌다. 최고 수준에 도달한 용족 선수들의 전투에 제대로 눈 호강했다. 중계진들은 송병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은퇴를 하고 돌아온 선수가 현재 최강인 선수를 꺾어 냈으니까.
박수가 아낌없이 쏟아졌다.
송병호를 외치는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아쉽게도 이 흥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세트 패배에 화가 났는지 초반부터 거칠게 송병호를 몰아붙이는 이승우. 보는 이조차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파상공세를 이어나갔고 어느새 송병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신출귀몰.
속업 된 운룡이 송병호의 본진과 앞마당을 거침없이 누볐다. 본진에 병력을 배치했지만 소용없었다. 병력이 있지 않은 곳으로 파고들었으니까.
왜 송병호가 반응을 하지 못했냐고?
반응 하지 못하게 이승우가 만들었다. 정면에서 전투를 검과 동시에 속업 운룡이 파고들었다. 보다 중요한 정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견제를 막아낸 송병호가 역 러시를 떠났다.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라기보다 남은 수가 이것 하나밖에 없었다. 이승우는 트리플 지역에 신전을 완성한 상태였다.
자원의 격차가 벌어지기 전, 마지막 기회였다. 어쨌든 지금 당장 서로 채취하는 금광의 수는 같다.
송병호의 병력이 향한 곳은 앞마당.
트리플 확장을 밀어 봤자 5:5다.
차라리 앞마당을 밀어 버린 후 입구를 잡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앞마당 입구를 잡으면 자연스레 트리플은 고립된다. 운룡으로 병력을 실어 나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앞마당만 장악하면 트리플은 언제든지 파괴할 수 있는 것이다.
병력 규모는 엇비슷하다.
아직 트리플 자원의 힘을 받을 때는 아니었으니까.
용혼을 조금 무리하게 운영해서 현룡을 끊는 데 집중했다. 이승우의 용혼에 두들겨 맞으면서도 현룡을 집요하게 잡아냈다.
모두가 의아해할 때쯤 그 이유가 밝혀졌다. 병력 뒤에 숨어 있던 흑완 4기가 망토를 휘날리며 이승우의 앞마당으로 향한 것이었다.
목적은 하나.
대량 살상 무기를 지닌 지룡과 비렴을 끊어 주는 것.
전투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이 두 유닛이다. 한 두기 차이로 전투 결과가 바뀔 수 있다.
운룡이 있긴 하지만 하나다.
지룡 2기나 비렴 4기. 혹은 지룡 1기와 비렴 2기.
살릴 수 있는 유닛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승우의 대처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단 용혼으로 장벽을 만들어 흑완이 파고들지 못하게 막았다. 그사이 비렴을 뒤로 피신시켰다. 용의 신전에서 현룡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벌려는 것 같았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반응 속도인데 이승우는 한발 더 나아갔다.
지룡으로 앞에 있는 용혼을 타격해 스플래쉬로 흑완을 잡아낸 것이다.
실로 과감한 판단이다. 앞서 송병호가 용혼을 무리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용혼 2기 내주는 건 피해가 아니다. 오히려 이득이다. 용혼 2기를 내주고 흑완 2기를 잡아냈으니까.
정말 놀라운 발상이다. 이 짧은 순간에 어떻게 이런 결론을 냈을까?
흑완 2기가 잡힌 순간 송병호가 남은 흑완을 뒤로 뺐다.
중계를 보는 입장에선 여전히 현룡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송병호 입장에선 그걸 알 수 없었다. 흑완이 나왔다고 생각해 남은 흑완을 살리기 위해 뺀 것이다.
송병호의 미스가 아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했을 거다. 그 정도로 이승우의 수가 뛰어났다.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긴 이승우.
회심의 공격이 수포로 돌아간 송병호.
이승우가 경기를 이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병력을 한차례 정비한 후 공격을 들어갔지만 이미 진영을 잡고 있는 이승우의 수비벽을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GG를 선언한 송병호.
패배했음에도 송병호를 외치는 팬들의 외침은 줄어들 줄 몰랐다. 온몸이 짜릿해지는 경기를 보여 준 선수에게 야유를 보낼 리 없다.
칠룡의 두 선수가 보여 주는 어마어마한 경기력에 관중석이제대로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