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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로더 신들의 전쟁-549화 (54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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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No. 549

언제나 역전은 짜릿하다. 그것이 결승전이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급하지 않아서 이겼다.

몰래 확장을 발견한 후 차분함을 유지한 것이 좋았다. 거기서 급하게 10시 확장에 병력을 보냈다면, 7시 병력을 당장 정리하기 위해 병력을 정비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 경기를 승리로 가져갈 수 없었을 거다.

신들의 전쟁은 전략과 전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게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기에 심리적인 요소가 들어간다.

불리하다고? 그럼 상황을 역 이용해 상대를 급하게 만들면 된다.

이번 경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꼽자면 11시에 나가의 소환을 떨어뜨렸을 때다. 거기서 승부가 갈렸다. 나가를 충실히 모으지 못했다면 악수가 되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수가 되었다.

스킬만으로 해낼 수 없는 경기력이다.

신들의 전쟁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 신들의 전쟁에 대해 득도했다. 게임에 대해 득도했다고 말하면 헛웃음을 터트릴 사람이 분명 있을 거다. 오락에 무슨 득도니 깨달음이니 운운하냐며.

아쉽게도 그 사람의 그릇은 거기까지다.

생각하고 궁리하다 알게 되는 것.

이것이 깨달음의 정의다.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궁리한다.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100만큼 성장해도 깨달음이고 1만큼 성장해도 깨달음이다. 마찬가지로 0.000000001만큼 성장해도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명 어제보다 나아졌으니까.

이런 깨달음이 수십, 수백, 수천 번 쌓였다. 그리고 변화를 맞이했다. 어느 순간 나를 감싸고 있던 껍질을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조금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멀리, 보다 높이, 보다 빠르게 경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오늘의 나다.

이제 단 한 경기만 이기면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단일리그 4회 우승.

방심하지 않는다.

이 기세 그대로 몰아붙여 4회 우승을 거머쥘 것이다. 그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거다. 솔직히 4회 우승은 그저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플래티넘 마우스, 다이아몬드 마우스를 얻기 위한 과정.

누군가는 거만하다고 하겠지. 또 누군가는 이승우라면 가능하다고 하겠지.

어느 것에 더 가까울까?

둘 다 옳다고 본다. 기준은 상대적이니까. 제3자가 아닌 내 기준에서 볼 땐 후자에 더 가깝다.

플래티넘? 다이아몬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트로피들이 내 품에 들어오는 건 시간문제라고.

****

김영민의 손이 떨린다. 아까보다 더한 떨림.

절망이 높은 파도가 되어 그를 덮쳤다.

김영민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부스 안에 없었다. 절벽 끝에 서 있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 밑에 있는 어둠이 자신을 꿀꺽 삼킬 것만 같았다.

다르다.

프로리그에서 만났던 이승우와도 다르고 16강에서 만났던 이승우와도 다르다.

그땐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무승부를 겪으며, 패배를 겪으며 이승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결과 실제로 이기기도 했었다.

그 후 첫 만남.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때의 이승우가 아니다. 판단 하나하나가 소름끼친다. 상대 앞에 옷을 발가벗고 있는 느낌이다. 뭘 하든 피할 수 없다. 고스란히 모든 것이 노출된다.

김영민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진정시켜 보려고 해도 진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심장이 더 거세게 뛰었다. 임주혁 감독이 들어왔지만 마찬가지였다. 변화는 없었다.

먹혔다.

이승우의 기세에 완벽히 잡아먹혔다.

지금 김영민은 경기전의 김영민이 아니었고 2세트 전의 김영민도 아니었다. 그저 엄마가 그리운 14살 소년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거다.

‘어쩔 수 없군.’

조용히 들어와 김영민을 지켜보던 임주혁 감독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태로 작전을 지시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

안 그래도 첫 결승전이라 떨릴 텐데 하필 상대가 이승우다. 단판의 이승우도 대단하지지만 다전제의 이승우는 진짜 괴물 같았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기를밖에서 지켜보는 자신의 가슴도 답답해졌는데 직접 그 경기를 치른 선수는 오죽할까?

차라리 이러는 게 낫다.

14살.

이 무대를 즐기기에 어린 나이임과 동시에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이기도 하다. 14살에 결승에 오른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영우조차 이보다 1년 뒤에 결승 문턱을 밟았다. 그리고 그보다 한 시즌 후에 우승자가 되었다. 아직 김영민에겐 시간이 있다. 급하게 마음먹을 필요 없다. 애초에 최연소 우승에 목 맬 필요 없다. 천천히 그릇을 만들어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승우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승우는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데뷔해 1년 만에 골든 마우스와 골든 배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통산 7회 우승을 노리고 있다.

대기만성.

오랜 시간 그릇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다. 태양보다 훨씬 찬란하게.

김영민은 재능이 있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 아니 백을 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기술은 완성되었다. 남은 건 멘탈뿐이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다.”

임주혁 감독이 별다른 작전 지시 없이 김영민을 꼭 안아준 후 밖으로 나왔다. 현재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

-2:0! 2:0입니다!

-전설이 탄생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정신없이 몰아붙이네요. 분명 환국이 유리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용족이 이기고 있습니다. 마치 최면을 당한 것처럼.

-김영민 선수 위기입니다. 표정이 너무 불안해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이승우와 달리 눈동자가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김영민. 경기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모습이었지만 중계진들의 목소리엔 여전히 힘이 넘쳤다.

“힘내라. 김영민!”

“패패승승승 가자!”

“역스윕! 역스윕!”

팬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중압감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 이겨 내기엔 굉장히 힘겹죠.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결승 무대까지 올라왔다는 건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1, 2세트 아쉽게 내줬습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근데 이미 지난 일 아닙니까? 0:0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3:0으로 상대를 잡겠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그러면 잡을 수 있습니다. 대인이 왜 나왔겠습니까? 포기했다면 결코 대인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대인.

결승전에서 버서커 변영태를 상대로 패패승승승, 역스윕을 만들어 낸 김영준의 별명이다. 그는 역 상성을 깨고, 2:0이라는 스코어를 뒤엎으며 대인이 되었다.

김영민도 그럴 수 있다. 실력이, 잠재력이 충분히 있는 선수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3세트 전장은 미궁의 숲.

선택형 섬 전장이다. 자신의 입구를 파괴해 반섬이나 섬으로 만들 수도 있고 역으로 상대 입구를 파괴해 가둘 수도 있는 전장.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용족이 유리해지기에 초중반 환국이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김영민의 선택도 그랬다.

-2도감!!!!!

-한 번 꼬았습니다. 둘 다 앞마당 쪽에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앞마당에! 하나는 본진에!

-마치 도감 더블을 하는 것처럼 페이크를 주려고 하는 거죠.

-먼저 공격을 갈 수도 있고 상대의 공격을 맞받아치기에도 아주 좋죠.

생더블도 자주 나오는 전장이기에 초반 강력한 압박으로 이득을 챙기겠다는 심산이었다. 꼭 공격을 가지 않아도 된다.

2도감 더블.

다른 전장에선 보기 힘든, 미궁의 숲에서만 볼 수 있는 빌드. 2도감에서 궁병을 찍어 주며 앞마당을 가져가는 거다. 2도감은 상대의 초반 압박으로부터 안전하게 앞마당을 지키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꼭 군영을 가져갈 필욘 없다. 바로 금을 채취해 바이오닉 병력을 한 차례 모아 상대 앞마당 입구를 파괴해 가둬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이승우가 2제단만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승우 선수도 수 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데요?!

-입구 쪽에 일꾼 하나 세워두는 이유를 안다는 거죠. 이 중요한 초반에 자원 채취 안 해가면서! 절대 안을 보여 주지 않으려는 이유! 그 안에 도감 하나 더 있지 않느냐?! 나는 그걸 알고 있다!

앞마당만 슥 보고 감이 왔는지 두 번째 제단을 올리는 이승우. 확실히 날이 서 있다. 선택에 망설임이 없다.

-이러면 이승우 선수가 괜찮죠. 그 수가 쌓이기 전까진 용아가 궁병을 압도하거든요.

-더군다나 세로입니다. 대각선이면 그냥 앞마당 먹고 해도 되는데 이러면 서로 기본 유닛 싸움이 되어 버리거든요!

김영민이 앞마당을 먹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용아로 꾸준히 견제를 해 줄 거다. 생산된 용아가 11시로 달렸다. 이 용아로 피해를 주는 건 힘들어 보였다. 앞마당에 망루가 건설되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본진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좋지만 그마저 일꾼의 블로킹에 막힐 것 같았다.

-아직까진 수비 굉장히 좋습니다!

-앞마당 장악 그 후 입구를 파괴하기 위해 선택한 2제단인데 김영민 선수가 아주 잘 막아 주고 있어요.

-컨트롤이 아주 그냥!!

-2도감 더블을 안 한 게 신의 한수네요. 앞마당에 군영을 건설하는 것이 보통이거든요!

-감이 좋은 건 이승우 선수만이 아니거든요! 용안을 보자마자 무언가 쎄한 걸 느꼈는지 궁병을 꾸준히 생산했어요.

-경기 시작했을 때 김영민 선수의 표정을 보고 조금 걱정했었거든요. 지금은 경기에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리 저리 방황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잡혀 버린 용아 1기.

추가 2기가 합류될 때까지 살아 있어 궁병 대열을 무너뜨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국 새로 생산된 2기의 용아가 앞마당 쪽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멈춰 섰다. 이미 망루에 모든 궁병이 들어갔다. 2기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 조금 더 모아야 했다.

만약 김영민이 2도감 더블을 했으면 2제단에 바로 끝났을 것이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이때 김영민이 승부수를 던졌다.

-의방!! 이거 2도감에서 한번 몰아붙이겠다는 거죠.

-상당히 도박수인데요?

-만약 이승우 선수가 용아를 계속 꾸준히 모아 준다면 악수가 됩니다. 근데 이승우는 의방을 올리는 줄 모르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냐? 용아가 4기가 되었을 때 한 번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용아 4기가 되면 다시 찌르기를 시도할 거다. 피해를 입히려는 것이 주목적이긴 하지만 운영을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다. 군영을 짓고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변칙적인 수를 쓰는지 확실히 확인하려 할 것이다. 만약 김영민이 4 용아를 깔끔하게 잡아먹는다면 기회가 생긴다. 용족의 병력 공백 타이밍을 활용해 공격을 갈 수 있는 기회.

-용아 들어갑니다!

-철광 쪽으로 빙 돌아가는 용아!

-이거 잡아먹으면!

-궁병을 꾸준히 찍었다는 건 일단 확인했죠. 이제 살아가야죠!

-근데. 아! 퇴로! 퇴로! 막혔습니다.

-궁병 컨트롤이 진짜 잘됐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가려는 용아를 막는 궁병.

꼼짝 없이 안에 갇혔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할 수 없이 본진 쪽으로 올라가는 용아. 그곳이 사지라는 건 알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의방을 확인 했지만 용아가 전부 잡혔다. 타이밍 좋게 찍히는 의원. 곧 치고 나올 환국의 병력을 막아 내기엔 용족의 조합이 너무 부실하다.

4용아를 잃은 게 크다. 지금 4용아가 온전히 있었다면 김영민도 러시 타이밍을 잡기 애매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의원이 생산되자마자 바로 치고 나왔다. 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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