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6 Game No. 546 몰래 =========================================================================
Game No. 546
후. 십년감수했네.
1세트부터 FD 2화통을 쓸 줄이야.
파격적인데?
이번 경기는 내가 잘한 것도 있지만 상대의 실수가 더 컸다. 언덕을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앞마당에서 자리를 잡았다면 진짜……. 으. 생각하는 순간 몸서리가 쳐진다. 앞마당 신전을 고스란히 내주면 경기가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앞마당 라인 걷어내고 다시 확장 복구하고 기타 등등 손 가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했고 그로 인해 생각보다 쉽게 선취점을 낼 수 있었다. 동시에 좋은 정보를 하나 얻었다.
상대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는 것.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면 앞마당 신전만 파괴하고 천자총통은 살려서 돌아갔을 거다. 경험이 많은 이영우나 정명혁이라면 그렇게 했겠지. 하지만 김영민은 그러지 못했다. 살짝 흥분했다. 경기에서 그러한 것이 고스란히 묻어나왔다.
어떻게 보면 1승보다 더 소중한 거다. 2, 3세트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니까.
충분히 심리전으로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말이니까.
감독님께서도 그 점을 한 번 더 짚어 주셨다. 이 점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멘탈을 뒤흔들어 준비해 온 걸 아예 못하게 하는 거다.
사전 인터뷰에서도 말했잖아.
그럴싸한 계획 박살 내 준다고.
***
떨리는 손으로 GG를 친 김영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걸 지다니.’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다. 한 번 실수에 다 잡았던 경기를 놓쳤다.
‘올라가지만 않았으면 되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언덕 위로 병력을 올렸다. 승기를 잡은 순간 몰아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성급했다.
그래서 졌다.
부스 문이 열리고 임주혁 감독이 안으로 들어왔다.
“……감독님.”
임주혁 감독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김영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아직 경기 끝난 거 아냐. 상대가 이승우라서 그런 거지 다른 선수였다면 올라간 판단도 그리 나쁘지 않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승우라서 올라갔는데 이승우라서 막혔다.
존재 자체가 변수.
“하나 배웠다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넘어지고 실수하고 부딪치고. 이러면서 하나씩 배워 가는 거지. 이렇게 안 하면 넘어지지 않는구나 하고. 다음에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땐 지금보다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을 거야. 반드시.”
“정말 그럴까요?”
“암. 그렇고말고. 이런 말이 있지.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패배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말을 마친 임주혁 감독이 김영민을 바라봤다.
“패배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임주혁 감독의 말을 곱씹는 김영민. 이 말을 완벽히 이해하기엔 아직 김영민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래도 어떤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았다. 김영민도 프로의 세계에 있었으니까.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건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알게 되는 거거든. 자. 지금은 2세트! 태평의 시대만 생각하자.”
“네. 감독님.”
대답하는 김영민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
-1:0! 이승우 선수가 선취점을 획득합니다.
-김영민 선수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천천히 하면 질 수 없는 경기를 졌거든요! 용혼 완벽하게 무너뜨리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쉬움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미련 버려야 합니다. 계속 떠올리면 2세트에도 안 좋은 영향을 주거든요?! 깔끔하게 잊고 2세트, 준비해 온 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자. 양 선수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2세트 전장 태평의 시대로 떠나~~~~ 보겠습니다!!
전현석 캐스터의 힘찬 외침과 함께 2세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2세트 전장은 태평의 시대.
운영 방식에 따라 종족 유불리가 변하는 곳이다. 200 한 방 뚫기를 시도한다면 용족이 환국을 상대로 웃어 주지만 극후반전으로 경기가 이어지면 환국이 웃을 수 있는 요소가 꽤 있다.
일단 중앙을 감싸는 언덕 구조로 인해 한 방 전투에서 이득을 거둘 수 있고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따로 없고 모두 중앙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용족의 우회 공격에서 자유롭다. 또한 본진으로 나가의 소환을 오기 힘든 구조였기에 화살탑에 많은 자원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러한 점은 선수 특성이 따라 용족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기도 한다.
12시와 6시에 섬 확장이 있기에 천왕랑을 적극적으로 쓰면 환국이 상대하기 난감하다. 중앙 지형 역시 용혼이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천왕랑이 왔다 갔다 하면서 환국의 병력을 끊는 식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겨우 한 세트가 진행되었지만 S1의 저력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승우 선수의 전략을 저격하는 빌드를 완벽히 내놓았어요! 이번 세트도 그런 운영이 가능할지.
-일단 위치는 세로입니다. 김영민 선수는 1시에, 이승우 선수는 5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위치는 김영민이 좋다.
이 위치면 용족이 트리플을 4시 쪽이 아닌 7시 앞마당으로 가져가야 한다. 4시 확장이 환국의 트리플 지역과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본진과 본진까지의 러시 거리는 가까운 편이 아니지만 상대 앞마당과 밖으로 나가는 큰 언덕, 그러니까 전략적 요충지인 곳이 중앙 쪽으로 크게 돌출되어 있어 환국이 본인의 트리플 지역을 안전하게 확보한다면 순식간에 용족의 목숨 줄을 움켜 쥘 수 있는 곳까지 굉장히 빠르게 진출할 수 있다.
이영우가 개발한 운영으로 이 운영이 나오기 전까진 용족이 환국에게 상대전적에서 앞섰으나 지금은 거의 동률이 되었다.
지금 위치는 그 운영을 꺼내들기에 최적이다.
‘좋았어!’
위치를 보는 순간 임주혁 감독이 쾌재를 불렀다.
이대로 준비한 운영을 꺼내면 된다. 1세트에서 아쉽게 패배했지만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설마?’
이내 표정이 굳었다.
-어? 이승우 선수 제단 안 올라갑니다? 설마 생더블인가요?
-허. 지금까지 제단이 올라가지 않는 걸 보니 생더블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나. 여기서 생더블을 꺼낼 줄이야!
관중석이 술렁였다.
“너무 배짱 아냐? 이거 정찰 오면 앞마당 터질 거 같은데?”
“그러게. 이건 개 위험하다.”
태평의 제국은 대각이 아닌 이상 생더블이 그리 좋은 전략이 아니다.
정찰만 성공한다면 치즈러시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아예 입구를 조이기 당할 수도 있는 전장이 바로 태평의 시대다.
그래서 아마추어들도 태평의 시대에서 경기를 할 때 생더블을 하지 않는다.
노림수가 너무 많으니까.
근데 이승우는 그걸 역으로 노리고 생더블을 시도했다. 그 과감함에 모두 놀랐다.
-이승우 진짜 대단하네요. 여기서 생더블을!
-이제 중요한 건 정찰입니다. 김영민 선수의 정찰 방향이! 승부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
헤헤헤.
이건 예상 못할 거다.
아마 여기서 생더블을 하리라고 생각도 못하겠지.
태평의 시대는 생더블을 하면 안 되는 전장으로 분류된 곳이다.
정말 위험하거든.
치즈러시에 정말 위험하고 FD에도 위험하다. 여러 모로 약점이 많은 전장이다.
그래서 했다.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아마 S1에서도 생더블은 배제하고 전략을 짰을 거다. 1세트에서 정확히 내 빌드를 맞췄다. 그랬기에 김영민도 S1의 판짜기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을 거다.
그걸 이용한 심리전.
운이 나빠 단번에 정찰 당하면?
별수 있나.
막아 봐야지.
이보다 더한 러시도 막아 냈는데 치즈러시라고 못 막아 낼까.
자신 있다.
영화에서 이런 대사 있지 않나?
드루와! 드루와!
딱 그 대사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뭐 다른 말 다 필요 없다. 어차피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까.
***
임주혁 감독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최연규 코치 역시 마찬가지다.
‘큰일 났군.’
이승우의 생각대로였다. 이 전장에서 이승우가 생더블을 꺼내 들 줄 상상도 못했다.
이러면 빌드에서 먹힌다.
준비한 빌드는 1화통 더블이었으니까.
본진과 앞마당으로 이어지는 길이 평지라 용혼으로 강하게 압박할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빌드를 준비했는데 지금 이승우가 꺼내든 빌드는 예상한 빌드와 정반대 빌드였다.
제대로 허를 찔렸다.
정찰 운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그마저 빗나갔다.
-아. 병영 지은 일꾼이 11시 쪽으로 향합니다!
-이러면 가장 늦게 발견하는 거거든요? 그럼 치즈러시는 못 가는 겁니다.
-앞마당에 신전 소환한 후 대각선으로 정찰 가는 용안!
빌드에서 이승우가 상당히 먹고 들어갔다. 이런 경기를 역전당한 적이 거의 없기에 김영민을 응원하는 팬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원래 앞마당 신전 완성되면 용아를 한 기 생산하는 게 정상인데 그마저 안 합니다. 찍었다가 취소했어요. 왜? 환국 정찰이 늦으니까! 어차피 이제 치즈 안 온다 이겁니다. 이러면 너무 유리하죠.
-김영민 선수는 잔뜩 웅크려 있는데 이승우 선수는 하고 싶은 거 다했어요. 아. 상황이 너무 안 좋아요!
김영민의 입구가 병영으로 단단하게 막혀 있는 걸 확인한 이승우가 씩 웃었다. 자신이 빌드에서 먹고 들어간 걸 확인한 것이다.
-앞마당 타이밍이 너무 차이 납니다. 일꾼으로 보면 화나죠. 너무 경기 쉽게 가져가려는 거 아냐?!
-용족의 상황을 확인하고 빠지는 일꾼. 아마 상당히 참담한 심정일 겁니다.
이대로 경기가 진행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김영민도 승부수를 던졌다.
-어? 본진 정찰하고 빠져나온 일꾼이 10시 쪽으로 향합니다?
-용족의 테크가 살짝 느린 걸 이용해서 몰래 풍운청이라도 건설할 생각인가요?
-글쎄요. 그런 플레이는 지금 통할 것 같지 않거든요? 용족의 테크가 느린 건 사실이지만 환국 역시 본진에서 군영을 이미 완성한 상태라 금와가 나올 때면 현룡도 나오거든요.
그 순간 10시에 건물이 지어졌다.
중계진의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는 건물이었다.
-군영!!!!!
-몰래 확장입니다. 진짜 제대로 된 승부수네요.
-이거 발견하기 정말 힘들죠. 8시 쪽 확장이면 용족이 한번 가 볼 수 있는데 10시 확장, 여기는 정말 찾기 힘듭니다!
-위치가 정말 절묘해요.
-근데 이게 중요한 게 현룡에 생산돼서 본진으로 날아올 거거든요? 연기를 해야 합니다. 현룡을 속여야 해요.
꼭 10시 쪽으로 용족의 유닛이 가지 않아도 된다. 본진의 상태만 봐도 몰래 확장을 눈치챌 수 있다. 일반적인 선수라면 그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없지만 이승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속여야 한다. 어떻게든 속여야 한다. 본진을 봐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게 성공하면 기울어진 승부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좋았어!’
임주혁 감독이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지금 김영민의 판단은 최고의 판단이다. 어차피 이대로 무난히 흘러가면 환국이 용족을 잡기 힘들다. 변수를 둬야 한다. 그 변수가 몰래 확장이다. 리스크가 크지만 들키지 않았을 때의 이득도 크다.
상대의 계산을 전부 틀리게 만들 수 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물량으로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게 몰래 확장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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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내내 감기로 고생했네요.
여러분들도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ㅠㅠ
독합니다. 독해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