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로더 신들의 전쟁-544화 (54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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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No. 544

위너스 리그 결승전이 지난 지 딱 일주일이 흘렀지만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게 타올랐다.

2016 OSL 시즌2 결승전이 오늘 열리기 때문이었다.

표는 진작 다 팔렸고 암표까지 나왔을 정도다. 가격이 원가의 2배, 3배 이상 치솟았지만 그래도 파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최초 단일 리그 4회 우승과 진 로열로더의 맞대결.

이 자체로도 엄청난 불꽃이 튀지만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맞붙은 아스트로와 S1의 선수가 만난다는 것이 더 큰 화제를 모았다.

S1은 위너스 리그 결승전에서 끝까지 김영민을 아꼈다. 그래서일까? 유독 이런 가정을 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만약 대장으로 김영민이 나왔으면 어땠을까?

의미 없는 가정인 건 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왔다면 이승우를 이길 수 있었을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운영과 판 짜기를 짜왔기에 김영민을 출전시키지 않고 숨기냐는 말까지 나왔다.

S1 팬 입장에선 위너스 리그 결승에서 출전하지 않을 정도로 개인리그 결승을 준비한 만큼 멋지게 이승우를 이겨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길 바랄 뿐이었다.

상대전적은 밀리지만 무승부를 기록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인지 김영민의 우승을 바라는 이들도 꽤 많았다.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길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강자가 군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역으로 지루해하는 이들도 꽤 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절정급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물고 물리며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시대를 더 좋아하는 거다.

작년 이승우에게 이야깃거리가 많았듯 이번 김영민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록을 끊임없이 갈아치웠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최연소 우승뿐이다.

현재 최연소 우승 기록은 이영우가 지니고 있다. 김영민과 같은 중학생 시절 우승했지만 학년이 다르다. 3학년 때 우승한 이영우와 1학년 때 우승에 도전하는 김영민.

최연소 우승 타이틀까지 적어도 1년 6개월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지만 굳이 그 시간을 다 채울 필요가 없다.

양대 결승에 오른 지금이 기회다.

상대가 쉽지 않다. 아니 매우 어렵다. 택뱅리쌍을 합친 것보다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선수다.

2015시즌 공식전 전적 126승 15패.

승률 89%. 이영우가 신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무려 3%가 높은 승률이다.

환국전만 떼 놓고 봐도 입이 쩍 벌어진다.

41승 5패. 여전히 승률은 89%였다.

이 기간 내에 이룬 커리어는 양대 개인리그 4회 우승, 위너스 리그 우승, 프로리그 우승. 여기에 프로리그 다승왕까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던 선수가 현실로 튀어나왔다.

놀라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커리어 하이라고 생각했던 2015년보다 2016년의 성적이 더 좋게 나오고 있었다.

127승 2무 8패.

승률 92.7%. 지지 않을 확률로 계산하면 94%까지 치솟는다. 100승을 넘게 기록하는 동안 패배는 10번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승률 100%라고 봐도 무방하다. 프로리그든 갱니리그든 상위 라운드 진출이 걸린 경기에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으니까.

패배한 경기 모두 순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경기들이었다.

이런 괴물을 이겨야 한다. 앞에 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힐 거다. 차라리 기록을 보지 않는 것이, 분석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다.

현재 김영민의 승률은 7할 후반 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땐 90%가 넘을 정도로 고공 행진을 이어 갔지만 학업과 병행을 하다 보니 성적이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무너질 순 없지 않은가?

이승우랑 비교해서 그런 거지 현재 김영민의 승률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이번 시즌 김영민보다 높은 승률을 지닌 선수는 둘밖에 없었다.

평생 결승 한 번 못 가 보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다.

어렵게 잡은 기회. 절대 헛되이 버려선 안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승우가 좋은 예다. 그가 첫 우승을 차지할 때를 떠올리면 된다. 프로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긴 하지만 개인리그 결승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당시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던 이영우.

커리어부터 승률, 프로리그 다승까지.

기록에서 이영우가 이승우를 압도했지만 결국 우승을 차지하며 진 로열로더의 신화를 써 내려간 건 이승우다.

김영민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이런 이승우를 상대로 김영민이 앞서 있는 건 단 하나다.

이번 시즌 16강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점.

프로리그에서 2패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개인리그에선 김영민이 앞서나가고 있다. 이승우를 상대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위축된다. 위축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다.

첫걸음은 위축되지 않는 거다. 지레 겁먹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차분히 펼치는 것.

여기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

무대를 올려다봤다.

이번에도.

-쿵쿵. 쿵. 쿵쿵.

여지없이 심장이 쿵쾅거렸다. 언제쯤 이 무대가 익숙해질까?

아무 생각 없이 오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날은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신들의 전쟁에 대한 열정이 줄어들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까.

오늘도 목표는 변함없다.

우승.

OSL 4회 우승이라는 최초의 기록에 도전한다고 더 떨리고 그러진 않는 것 같다. 지나온 모든 날이 소중하듯 그간 치른 결승전 모두가 소중하다.

결승뿐만이 아니다.

4강, 8강, 16강. 그리고 처음 치른 예선전까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순간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떠올랐다.

초심을 잃지 않을까 항상 두려워했다. 다행히 아직 초심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생각은 여기까지.

“이승우 선수 이제 등장 멘트 나올 거거든요? 준비해 주세요.”

-자! 그럼 이 무대의 주인공인 선수들을 무대로 모셔 보도록 하겠습니다! 역대 최고의 승률! 최고의 커리어! 최고의 포스!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하는 이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시대의 지배자! 이! 승! 우!

이제 무대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

-이번 시즌 대미를 장식할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전현석 캐스터의 말에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별다른 말도 아니다. 선수들이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고 선수 소개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그저 선수들이 무대에 올라왔다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열광하고 있었다.

-선수들을 향한 이 에너지가 느껴지시나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진짜 뜨겁습니다. 이런 열기를 가장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모두 여기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이번 시즌에 걸린 기록부터 시작해서 이승우와 S1의 관계, 소감, 마지막으로 결승전 준비 과정까지. 선수들이 입을 열 때마다 관중석이 술렁였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이번 결승에 임하는 각오뿐이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하다.

심리전.

여기서 던지는 말 한마디에 상대방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이영우는 결승전 마지막 인터뷰 때 ‘안티 천왕랑’을 언급하며 송병호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 후 타이밍 러시로 3:0 승리로 우승을 거머쥔 적이 있었다. 물론 ‘안티 천왕랑’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기세를 꺾는 발언을 해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도전자 입장인 김영민의 손에 먼저 마이크가 쥐어졌다.

“꼭 우승하고 싶습니다. 진 로열로더, 최연소 우승. 모든 타이틀이 탐이 납니다. 오늘을 위해 정말 많은 걸 준비했습니다. 계획대로, 준비대로 된다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살짝 떨리지만 차분하게 각오를 말한 김영민.

-김영민 선수가 이렇답니다! 이길 계획을 가지고 있답니다! 이승우 선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이크가 이승우에게 넘어왔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이승우가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을 끊은 이승우가 관중석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이승우의 뒷말을 기다렸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여태껏 이승우의 인터뷰를 보면 꽤나 큰 도발이 이어질 것 같았다.

“……두드려 맞기 전까지는요. 어떤 준비를 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다 소용이 없다는 걸 그동안 보여 드리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내려놓는 이승우.

“멋지다. 이승우!”

“팩트 폭행 오졌다.”

“크. 팩트 폭행에 이어 기억 폭력까지! 오지고 또 오졌다!”

자신감 있는 인터뷰에 관중석이 뒤집어졌다. 중계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 센데요?

-그동안 무수히 이승우를 잡기 위해 전략을 짰거든요. 근데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그동안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거야? 아니잖아! 최선을 다했는데도 나 못 이긴 거잖아! 1년 넘게 하지 못한 걸 갑자기 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이승운데! 천하의 이승운데!!

-표정 보십시오. 이런 말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자신 있다는 거거든요.

-아. 오늘 결승전 진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포장의 엄재웅 해설이 이승우의 말에 살짝 살을 붙였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무대에 불을 제대로 지른 이승우가 부스로 향했다.

****

부스로 들어온 김영민이 심호흡을 했다.

‘왜 이렇게 떨리지?’

손이 잘게 떨렸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폈지만 여전하다. 인터뷰를 할 때까진 괜찮았다. 경기를 준비하려고 부스에 앉는 순간 이렇게 되었다. 이유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긴장.

수만 명의 사람이 내뿜는 에너지를 버티기엔 김영민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14살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에 들어온 14살. 여름방학에 신나 집에서 게임하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이.

그 나이에 김영민은 프로게이머의 정점이라는 개인리그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다고 임주혁 감독은 이미 예상했다. 그래서 출전을 시키지 않음에도 김영민을 프로리그 결승전 벤치에 앉혔다.

결승전을 미리 겪어 보는 것이 하루 연습을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분명 옳은 판단이지만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지 않은 듯싶다.

프로리그는 관심이 분산된다. 한 선수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감독부터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이 주인공이다. 개인리그는 조금 다르다. 오롯이 무대에 오른 두 선수가 주인공이 된다.

오늘은 더 심하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길 원하고 있었으니까.

S1 팬뿐만 아니라 환국의 팬이 모두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 나눠받던 관심을 독차지 하는 순간, 아니 그걸 부스에 앉으며 의식한 순간부터 온몸이 떨려 왔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여기에 이승우의 인터뷰가 결정타를 날렸다. 각오를 밝히던 이승우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여유.

자신감.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난 것처럼 숨이 턱 막힌다.

“후.”

심호흡을 해 봤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때.

-벌컥.

부스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아. 감독님!”

임주혁 감독이었다. 불안해 보이는 김영민의 표정을 보고 들어온 것이었다. 김영민의 얼굴에 반가움이 확 번진다.

“많이 긴장되고 힘들 거야. 알아. 나도 그 자리에 섰을 때 그랬거든. 무조건 이기겠다는 생각은 버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부담에서 긴장, 불안, 초조함이 몰려온다. 이럴 땐 차라리 승부에서 떠나 재미있고 신나는 경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임주혁 감독의 말에 김영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지 트레이닝. 이기고 있을 때, 지고 있을 때, 팽팽할 때. 어차피 이 세 가지 상황 중 하나잖아. 이에 대한 대처법을 조금씩 떠올려. 조금 차분해질 거야.”

“감사합니다. 감독님.”

“이 무대를 즐기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

더 이야기해 줄 시간이 없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진 않았지만 곧 시작된다.

길어야 5분?

그때까지 붙잡아 놓을 수 없다. 손도 한번 풀어 봐야 한다. 애초에 더 이야기할 것도 없다. 그건 온전히 선수의 몫이었으니까. 주먹을 움켜쥐며 파이팅 자세를 취한 임주혁 감독이 밖으로 나갔다. 대기석으로 돌아가는 내내 김영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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