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3 Game No. 543 최초의 기록. =========================================================================
Game No. 543
[보면서 뭔가 답답하다 했는데 숨을 안 쉬고 있었네...죽을 뻔.]
[이승우 선수에게 꼭 전달 부탁드립니다. 팬티값 청구할 테니 확인하시고 입금 바랍니다.]
[경기 전에 편의점서 기저귀 사 가는데 알바가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고요.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거 차냐고 해서 제가 이승우 경기 보려고 준비하는 거라고 했더니 알바가 진작 말하지 그랬냐고 자기도 찼다면서 얼른 차고 가라고 하네요.]
[ㅉㅉ 다들 개념 없네. 누가 이승우 경기 보는데 팬티나 기저귀 차고 보냐? 걍 변기에 앉아서 주르륵 지리는 게 답이다 ㅉㅉㅉ]
이승우의 올킬과 함께 위너리그가 막을 내렸다.
이번에도 이승우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며 현존 최강의 선수라는 걸 보여 줬다.
결승 포함 9회 올킬.
5연속 올킬.
도전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기록들이다. 기존 올킬 기록과 2배 이상 차이 난다. 선수 생활 내내 올킬을 해 보지 못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올킬까지 갈 것도 없다. 3킬을 한 선수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이런 올킬은 무려 9번이나 했다.
그것도 겨우 1시즌 만에.
두 시즌 포함 총 올킬 횟수 13회.
정규 시즌만 계산해도 12회나 된다. 이 역시 역대 최다 올킬 횟수다. 프로리그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이영우와 김택윤을 단 두 시즌 만에 넘어선 것이다.
이번 결승전에도 MVP에 선정되었다. 이견이 있을 리 없었다.
시상식 전에 치러진 승자 인터뷰 내용도 화제였다.
흑완을 11기까지 찍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조차 순간 생각난 것이기에 상대가 떠올리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 후 만에 하나 그 러시가 막혔다고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바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막히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선택한 운영이니까요.” 혹은 “거기까지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통했을 테니까요.”같은, 이승우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답변을 예상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조금 달랐다.
“운이 나빴다면 막혔을 수도 있죠. 상관없습니다. 경기가 끝난 거 아니잖아요? 뒤에 팀원들이 있잖아요? 저는 팀원들을 믿습니다. 제가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우승한다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아스트로는 강하니까요.”
몇몇 생각이 꼬인 이들이 팀원들 기 살려 주려고 립 서비스 한다는 댓글을 달았지만 이내 일침 폭격을 맞고 사라졌다. 대부분 이승우의 인터뷰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이승우의 생각에 동의했다.
정명혁이 잘하긴 하지만 남은 세 선수를 모두 잡아낸다는 보장은 없다.
굳이 마수를 내보낼 필요 없다. 환환전 두 번과 전략가 신연호를 내보면 정명혁을 잡아낼 수 있을 거다.
아스트로 선수들은 강해졌다.
하루가 다르게 경기력이 좋아지고 있다.
작년 비실비실하던 아스트로는 이제 없다. 이승우가 있는 용족 라인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전략적인 플레이를 박수를 유도하는 신토불이 신연호와 우직한 전투로 승리를 이끄는 불도저 윤여준.
든든한 주장 박현우와 한민규가 버티고 있는 환국라인까지.
김승대 한 명밖에 없는 마수 쪽 라인이 조금 약하긴 하지만 애초에 세 종족에 에이스를 보유한 팀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선수들 인터뷰가 끝나고 마지막에 마이크를 잡은 이재명 감독.
그는 ‘그동안 아스트로 응원하신 분들 많이 힘드셨죠? 이제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한 번 우승은 기적, 혹은 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번부터는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포문을 연 이재명 감독.
아스트로의 우승을 운이나 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없었다. 위너스리그 역사상 2회 연속 정상에 오른 팀은 아스트로가 유일했으니까.
2회 우승한 팀은 있었다.
최강의 라인업을 자랑했던 S1.
최종병기이자 신을 보유했던 CT.
폭군이 선봉장에 섰던 화성.
화려하진 않지만 실속 있던 GO까지.
총 4팀이 2회 우승을 차지했었지만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다. 그 정도로 위너스 리그가 치열하다는 말이었다. 그 경쟁을 뚫고 2회 연속 우승을 하며 새로운 역사를 기록했다.
아스트로는 더 이상 약팀이 아니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팀이었다.
그 후 모든 이에게 감사를 표하는 걸 잊지 않았다.
군말 없이 지시를 따라 준 선수들과 코치진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준 프런트까지.
미리 준비해 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끄럽게 문장을 이어 나갔다. ‘이 실력을 계속 유지해서 정규 리그까지 우승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패자에 대한 위로와 승자에 대한 축하로 진행된 인터뷰가 모두 끝나고 드디어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개인리그 우승컵보다 훨씬 웅장한 모습의 위너스리그 우승컵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스트로 선수들이 이재명 감독의 등을 떠밀었다.
선수가 아닌 감독이 우승컵을 들길 바랐던 것이다. 난감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재명 감독이 박현우와 이승우를 애타게 불렀지만 둘은 먼 곳을 보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결국 우승컵 앞에선 이재명 감독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우승컵의 귀를 잡아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2016 위너스 리그! 우승팀! 아! 스! 트! 로!
중계진의 외침과 함께 꽃가루가 무대를 가득 메웠다.
****
“자. 아직 다들 더 마실 수 있지? 마지막으로 숙소에 가서 한잔 더 하고 자자.”
새벽 5시.
우승 축하 회식을 시작한 지 벌써 7시간이 흘렀다. 미성년자인 팀원들은 12시가 되는 순간 칼같이 숙소로 복귀했고 성인들만 남아 2차, 3차를 즐겼다. 숙소로 가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가도 된다고 도 수코님이 말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괜히 오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집에 간다고 하는 순간 ‘뭐? 집에 간다고? 여기 회식 끝까지 안 가고 집에 가는 선수 한 명요! 단 한 명!’이라고 외칠 것 같았다.
“에이. 이제 시작이죠!”
“크. 역시 승대! 널 좋아할 수밖에 없다!”
5시까지 쌩쌩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승대 한 명밖에 없다. 음식만 잘 먹는 게 아니라 술도 잘 마신다. 목에 블랙홀이 있는 것 같다. 뭐 그냥 넣기만 하면 다 들어간다.
승대와 얼싸안고 도 수코님조차 눈이 반쯤 풀려 있다. 나머지는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 감독님은 어린 팀원들과 함께 이른 시간에 숙소로 복귀했다.
역시 감독님.
현명하시다. 명분이 확실하지 않은가? 만약 그런 명분이 없었다면 절대 숙소로 돌아가지 못 했을 거다. 폭주한 도 수코님은 감독님조차 한 수 접을 정도였으니까.
연달아 잡혀 있는 개인리그 결승 일정 때문인지 나도 함께 데려가려 하셨지만 더 남아 회식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오늘은 정말 미친 듯이 마시고 싶었거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난 그 결정을 후회한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조건 숙소로 갈 것이다. 아직까지 감독님께서 보내시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넌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던 눈빛을.
감독님의 호의를 거절한 죄로 난 여기 남아 끝까지 남아 있다.
“잠깐? 연호 어디 갔어?”
“아. 잠깐 뭐 산다고 나갔어요.”
연호도 양반은 못 되나 보다. 승대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습을 드러냈다.
“다 왔다. 가자! 가자!”
인원이 모이자마자 모두 일으켜 세우는 도 수코님.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이미 숙소로 가 계신 것 같다. 그대로 자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또다시 맥주를 들고 도란도란 둘러앉겠지.
절대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저 너무 졸릴 뿐이다.
“이제 가는 거야?”
“응. 근데 어디 갔다 왔냐?”
“아. 아. 잠깐 편의점도 다녀왔다.”
경황이 없어 아까는 못 봤다. 연호의 오른손에 까만 편의점 봉지가 들려 있다는 것을. 연호가 주섬주섬 안에 있는 걸 꺼냈다.
숙취 해소 음료였다.
“머리가 하도 띵해서 말이지. 일단 다 돌리자.”
기특한 자식.
안 그래도 이게 생각났는데.
가장 연장자인 도 수코님께 숙취 해소 음료를 건네는 순간.
“이건 또 뭐야? 아. 나 아직 안 죽었다. 이런 거 안 먹어도 쌩쌩하다. 이런 건 약한 애들이나 줘라. 안 그러냐, 승대야?”
“맞습니다! 저도 이런 건 전혀 필요 없습니다!”
……승대는 정말 필요 없어 보이지만 도 수코님은 필요하신 것 같은데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참았다.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다.
게임과 술.
남자가 절대 지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다. 그걸 건드렸다간……. 으. 생각도 하기 싫다. 도 수코님과 승대를 제외한 나머진 사람들에게 숙취 해소 음료를 돌렸다. 남은 걸 봉지에 담는 순간.
“……잠깐 그거 남은 거 줘 봐.”
도 수코님이 옆으로 슬쩍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완 너무 다른 모습.
“네?”
“그 숙취 음료. 남았을 거 아냐. 줘 보라고.”
“아. 네. 여기…….”
숙취 해소 음료를 건네자마자 빠르게 안쪽 주머니에 넣으셨다.
“……내가 마시려는 거 아냐. 감독님! 그래. 감독님 드리려고 하는 거야. 이거 못 드시고 주무시니 얼마나 속이 안 좋으시겠냐? 크. 네가 봐도 참 대단하지 않냐? 지금 이 순간! 감독님을 챙기는 건 나밖에 없다는 거지. 꼭 내일 말씀드려라. 나의 이 충심을!”
……뉘예, 뉘예. 잘 알겠습니다. 지금 도 수코님 주머니에 들은 숙취 해소 음료가 감독님께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에 손목을 걸 수 있을 정도지만 꾹 참겠습니다요.
그렇게 말을 쏟아낸 후 비틀비틀 돌아가는 도 수코님.
부축도 마다하는 걸 보니 상남자가 따로 없다. 저러다 넘어져 어디 하나 박살……. 아. 나도 술 취했나 보다.
흠. 흠. 죄송합니다. 도 수코님.
두 수코님과 함께 팀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은 건 화장실에 간 연호 한 명뿐이었다. 저기 화장실에서 바지에 손을 슥슥 닦고 나오는 연호가 보인다.
“다 어디 갔어?”
“계산하고 갔지.”
“이제 끝난 거야?”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는 연호. 미안하네. 내가 그 희망을 짓밟게 되서.
“아니. 숙소 가서 또 마신대.”
“아…… 아…….”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전해진다. 연호야. 그래. 나도 같은 기분이야. 밖에서 도 수코님이 우릴 향해 얼른 나오라고 손짓하신다. 네. 네. 나갑니다요.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승우야.”
연호가 내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연호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이 급작스런 전개는?
“잠깐. 아주 잠깐만 내 이야기 좀 들어줘라.”
심각한 이야기 하려나? 도 수코님께 금방 나간다는 표시를 하고 연호 옆에 자리 잡았다.
“내가 아까 편의점을 갔는데 알바생이 진―짜 이쁜 거야. 술을 마셔서 그런지 용기가 막 나더라고.”
그 용기 접었으면 그게 진짜 용기 있는 거였을 텐데, 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대신 리액션으로 응수했다.
“진―짜 용기 내서 번호 물어봤거든? 근데 휴대폰이 없다는 거야. 디……지털 다이어트? 뭐 이런 거 한다는데. 휴대폰 없이 산다네? 그래서 번호를 줄 수 없다는 거야.”
“……으응.”
안 봐도 비디오다. 모든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분명 내가 들어가기 전에 폰으로 게임하는 거 봤거든? 헛걸 봤나?”
아냐. 네가 헛걸 본 게 아니야. 넌 분명 제대로 봤어. 그거 휴대폰 맞아.
디지털 다이어트라는 단어는 처음 듣지만 세상에 없는 건 아닐 거다. 분명 있는 단어다. 하지만 그 알바생은 하지 않을 거다. 이 역시 확신할 수 있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사는 것 같더라. 어떻게 딱 그럴 수가 있는지. 집 번호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야. 내가 술을 먹어서 폰 번호만 물어볼 생각만 했네. 지금이라도 다시 갈까?”
순수한 걸까?
아니면 상황을 뇌가 거부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그냥 숙소 가서 한잔 더 하자.”
술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편의점으로 가야 한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연호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진짜 고마워해야 한다.
흑역사 만드는 걸 막아 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