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2 Game No. 542 또 다시 제패하다. =========================================================================
이제 남은 천리안은 단 한 번.
한 번으로 3기의 흑완을 정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신기전이 2기 확보된 상태라 운룡에 태웠다 내렸다하는 게릴라는 막을 수 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신중해야해요! 보통 천리안이 아닙니다. 금 천리안입니다!
-최소 2기는 잡아줘야 합니다. 1기도 못 잡는다? 그럼 애매해집니다.
-여태까지 밥상 예쁘게 잘 차렸거든요? 밥 적당히 푸고. 국 간 잘 맞춰서 끓이고. 반찬 정갈하게 접시에 담아서 올렸는데 이거 한 번에 다 엎을 수도 있어요!
-갑니다! 사신이 걸어가고 있어요.
관건은 이승우의 천리안 확인 유무였다.
그때 본진을 보고 있었다면 천리안이 부족한 걸 알고 과감히 들어갈 것이고 보지 못했더라면 외곽 쪽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일거다.
정명혁의 본진 구석에 사뿐히 내려앉은 흑완이 위풍당당하게 본진 군영을 향해 걸어갔다.
화살탑이 없다는 걸 아는 것 처럼 확신에 찬 움직임이었다.
-세 번째 화통도감을 올리는데 이건 의미가 없습니다. 대장간 무사히 지키고 얼른 화살탑 군데 군데 건설해야합니다.
-효율 따지려다가 큰 코 다칩니다. 무조건 막는데 주력해야해요!
-용족도 확장 이제 막 올라가거든요?
공간이 일렁이는 걸 보고 흑완이 도착했다는 걸 알게 된 정명혁의 얼굴이 굳었다. 대장간은 이제 절반 정도 밖에 지어지지 않은 상황. 얄밉게도 흑완을 앞마당에 1기 보내 천리안 한 방에 정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 이러면 차라리 해모수 생산해야죠. 해모수를 막겠다는 마인드로 가야합니다.
-일단 정명혁 선수도 생각은 하고 있어요. 나가 있는 일꾼으로 오룡거 몰래 짓고 있거든요?
정명혁의 선택은 동시에 다하는 것.
일단 대장간을 지키는 움직임과 동시에 해모수를 생산하려하고 있었다.
-아주 난장판이 됐습니다!
-아. 좋았던 상황이 한 번에 이렇게 되네요. 보는 사람도 이런데 당하는 사람은 오죽 할까요.
상황이 묘하다.
우왕좌왕.
일을 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도망치는 일꾼.
이러고 있을 일꾼들이 아니었다. 일꾼들이 천자총통과 신기전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왜 자신들을 지켜주지 못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들도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일꾼들과 똑같이 흑완을 볼 수 없었으니까.
병력을 쫓던 흑완이 화포 연구소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쭉쭉 떨어지는 체력. 사기라 불리는 수리로도 따라갈 수 없는 없었다.
결국 파괴되는 화포 연구소.
화포 연구소가 파괴되자마자 다시 병력을 쫓는 흑완들.
술력이 차 천리안이 뿌려졌지만 흑완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정면에서 병력을 맞섰다. 중간중간 체력을 뺴놓았다. 이 정도 상황이면 붙어볼만 하다는 거다.
“뭐야? 이거 정명혁이 유리한거 맞아?”
“...아닌거 같은데? 화포 연구소는 지켰어야하지 않나?”
-어? 생각보다 피해가 큰데요?
-본진에 붙은 불을 진화하지 못하네요. 이건 이승우가 너무 잘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따라가는게 말이 됩니까?!
단순히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천리안 두 번과 한 번은 큰 차이다. 이 차이를 만든 건 이승우다. 트리플 지역에 신전이 없는 걸 정명혁이 눈으로 확인했다면 절대 천리안을 본진에 뿌리지 않았을거다.
지룡이든, 흑완이든 무언가 날아올지 모른다 생각해 아껴뒀겠지. 하지만 이승우는 정명혁의 정찰을 완벽히 차단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쉬워보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지런해야한다.
화면을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
성실함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
초반 공격을 잘 막아낸 후 정명혁이 선택한 건 업 환국. 확장을 포기한 것이기에 화포 연구소의 개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데 화포 연구소가 깨졌다. 이러면 환국에게 남는 것이 없다. 시간은 더 이상 정명혁의 편이 아니다.
-4흑완!!!!! 4흑완을 더 찍어내서 러시를 들어왔습니다.
-이승우! 쐐기를 박을 생각인가요?
-상황 괜찮다 판단 한거죠. 아예 흑완으로 몰아 붙이려는거죠!
제단은 4개.
화통도감은 2개.
세 번째 화통도감은 지어지던 도중 일꾼이 잡혀 70% 완성 상태에서 멈춰있었다. 2기씩 유닛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국과 달리 용족은 4기씩 생산할 수 있다.
3흑완까진 예상해도 7흑완까진 예상하기 힘들거다. 흑완에 강한 화차를 생산하는 대신 용혼 푸시를 우려해 천자총통을 우선적으로 생산하겠지.
이게 정상이다.
이게 상식이다.
지금 이승우는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택을 했다.
-아직 본진 흑완도 완벽히 정리 못했거든요! 4흑완까지 더 난입하면 난리 납니다.
-지금 흑완은 안 보여서 못 잡았거든요? 근데 이제 보여도 못잡게 생겼습니다.
-이승우가 일꾼 대신 병력을 쫓아간 이유가 있었네요.
일을 하는 일꾼을 잡는 대신 화통도감을 건설하는 일꾼을 잡은 것도, 천자총통을 집요하게 쫓아다닌 것도 다 여기까지 생각해서였다. 이젠 보여도 상관없다. 다 썰어버린다.
흑완의 공격력은 40.
지금처럼 소수 유닛만 있을 땐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이 정도 숫자면 그냥 다 밀어붙일 수 있겠는데요?
-진짜 화끈합니다. 선택 하나 하나가 아주 시원시원해요. 하나를 하면 끝을 봐야하는 이승우!
-이런 면 때문에 엄청나게 인기가 있는 거죠! 안전한 플레이? 굉장히 좋지만 재미가 없잖아? 난 재밌게 하겠어!
-단순히 재미만 있는 선수는 인기는 좋아도 성적이 좋기는 힘들거든요. 신만 내다 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이승우는 나이에요. 신도 내고 이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신이죠. 그러니까 최강이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승우는 4기의 흑완을 추가로 더 생산했다.
도합 11기.
시간 더 끌지 않겠다는 것이다.
양날의 검이다.
지금 끝내면 신의 한 수가 되지만 어영부영 막히게 되면 자충수가 돼버린다. 이렇게 11기까지 흑완을 생산하면 나가 테크가 굉장히 늦어져 버린다. 용혼의 숫자 역시 평소보다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막아낸 환국이 복구를 한 후 화통도감을 늘려 타이밍을 노리면 용족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흑완 시간 끌기도 할 수 없다. 해모수가 나와 있을 테니까.
그 때가 되면 나가도 없고 물량도 상대 되지 않는다.
흑완을 11기나 생산했으니까.
아마 다른 선수였다면 3흑완에서 멈췄을거다. 화포 연구소를 파괴했으니까. 보다 창의적인, 그리고 스릴을 즐길 줄 아는 선수라면 7기까지 찍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흑완을 한 부대까지 찍을 선수는 이승우 밖에 없다. 이 정도 흑완을 동시다발적으로 활용할 능력이 되는 선수가 이승우 밖에 없다. 김택윤이라도 7기가 되는 순간 손이 꼬일거다.
-장관입니다! 다른 유닛은 없어요! 오직 흑완만으로 환국을 파멸에 몰아넣습니다.
-지옥이에요. 여기가 바로 생지옥입니다. 천자총통이 나오면 뭐합니까? 4기가 모여서 쓱! 그어버리면 그대로 터져버리는데!
-모이질 않아요. 병력이 모일 기미가 없어요!
11기의 천자총통과 11기의 흑완이 전투를 벌이면 천자총통이 압승을 거둔다. 화차나 신기전으로 바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수일 땐 이야기가 다르다. 초반에 환국 병력을 제압한게 컸다. 비슷한 수가 모였다면 아무리 흑완이 많아도 지금처럼 뚫기 쉽지 않았겠지.
-사신이! 사신이 국본을 잠재우네요!
-환국의 미래가 너무 어둡습니다!!!!
-아. 경기 이렇게 끝나나요?
흑완 7기도 버거웠던 정명혁이 11기의 흑완을 막아낼 수 있을리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썰어버리는 흑완. 사신이 따로 없었다.
죽음의 기운이 환국의 땅을 검게 물들인다.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없다. 발악하다 죽거나,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황당하죠. 이런 운영이 2016년에 나올 줄이야!
-요즘 복고가 유행이지 않습니까? 신들의 전쟁에도 리트로 열풍이 불 수 있는 겁니다. 과거 빌드들. 그러니까 지금은 사장 된 빌드 중에 굉장히 참신하고 톡톡 튀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이승우 선수를 시작으로 그 빌드들이 2016식으로 새롭게 부활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정명혁은 매우 답답 할거다.
일렁이는 것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허무한 표정의 정명혁.
화조차 나지 않는다.
11기까지 흑완을 찍는 이승우의 판단은 어디에서 온 걸까?
망국을 바라보는 군주의 표정이 이러할까?
모든 건물이 불탄다. 나라를 지킬 병사는 죽은지 오래다. 일꾼만이 허망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자원을 캐는 건 무의미하다. 화통도감이 전부 파괴되었으니까.
일꾼으로 생산해서 막을 수 있는 러시였다면 진작 막았을거다.
침울한 분위기의 S1 벤치.
모두 말 없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한 명의 선수에 의해 모두가 무너졌다. 사전 인터뷰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이승우에게 올킬 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외친지 3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이승우를 무너뜨릴 방법이 있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법이다.
S1의 작전은 완벽히 실패했다.
도재열도, 김택윤도, 임형규도.
마지막 대장 정명혁도 이승우를 막아내지 못했다.
아스트로 팀원들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인다. 언제 정명혁이 GG를 치느냐의 문제지 승리는 이미 확정되었다.
뒤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는 코칭 스태프들.
위너스 리그 우승 기념 티와 현수막이었다. 글씨가 카메라에 잡히거나 관중석에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손 놨습니다.
-컨트롤 할 유닛이 없어요.
-다른 선수들 저번 시즌에 고생 많이 했다 이겁니다. 이번 시즌엔 본인의 손으로, 팀원들이 나오기 전에 우승을 확정 짓습니다!
-결승전 선봉 올킬이라니. 새로운 역사가 이승우의 손에 쓰여 집니다.
결승전 올킬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과거 GO의 조세욱이 화성을 올킬로 잡아내고 팀에 위너스리그 우승을 안긴 기억이 있다. 그 활약에 힘입어 해당 시즌 신인왕과 결승 MVP를 차지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개인리그나 프로리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개인리그 성적 역시 16강이 최고였고 프로리그에서 20승 이상 달성한 기억이 없다. 그저 환환전 기계로 불릴 뿐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역올킬임에도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잡아낸 선수들 역시 시원찮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빨리 잊혀졌다. 이제운을 제외하면 위너스리그에서 5할을 넘긴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육군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다.
오늘 이승우의 올킬은 차원이 다르다.
최고의 팀에 속한 최정상급 선수들을 연달아 무너뜨리며 쟁취한 올킬이다.
오늘 출전한 S1의 선수들 모두 개인리그 결승에 진출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자랑한다. 3회 이상 결승에 진출한 선수만 무려 셋이었다.
이런 이들을 이렇게 쉽게 무너뜨렸다.
-GG!! 정명혁 GG!!!
-위너스 리그 첫 선봉 올킬과 함께 경기가 끝났습니다!
-우승! 아스트로가 2회 연속 위너스 리그 정상을 차지합니다.
-감독! 코치! 선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무대로 뛰어나와 우승을 즐깁니다!
그렇게 디팬딩 챔피언 아스트로가 왕좌를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