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35 Game No. 535 최고의 선수. =========================================================================
중계진이 외치는 말이 전부 정답이다.
근데 그 것이 쉽지 않다.
이제운의 앞마당 소로를 용안이 슬그머니 막았다. 시간을 끄는 것이다. 용력이 다 깎일 때까지 버틴 용안이 뒤로 빠지며 길을 열어줬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끌어줬다.
용광포가 반 정도 완성되었다.
이제운 팬들이 속으로 쉼 없이 외쳤다.
제발. 제발.
용광포가 완성되기 전에 마견이 도착하라고.
그 것 밖에 지금은 답이 없다.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으려면 용족의 본진을 뒤흔들어야한다. 절대 마음 편히 철광을 캐게 해선 안 된다.
-아. 근데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집니다. 마견이 본진에 도착 할 때 쯤 용광포가 완성될 것 같습니다!
-모든 빌드를 준비해왔겠죠. 상대가 9마견숲을 했을 때, 12마견숲을 했을 때, 12앞마당을 했을 때! 그에 대한 대처법이 이승우 선수의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그냥 꺼내서 쓰기만 하면 되요. 반면 이제운 선수는 처음 당한 용광포 러시입니다. 용광포 러시 자체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까다롭게, 철광과 금광을 끼고 심시티를 한 용광포 러시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 아무리 폭군이라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대 선수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가지고 노네요. 여태까지 신들의 전쟁에 등장했던 용족 선수들의 장점을 모두 흡수했어요. 영웅! 몽상가! 총사령관! 혁명가! 전투의 신! 올마이티! 괴수! 이 모든 장점이 한 데 어울려 새로운 유형의 선수가 나왔습니다. 진정한 용족의 신이 나온거예요!
-이승우 앞에서 사파, 정파 구분이 의미 없습니다. 이승우 선수가 용족 그 자체입니다.
본진에 마견이 부랴부랴 도착했지만 이미 용광포가 완성되어 있다. 마견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3시 철광 확장에 소굴을 펴는 이제운.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였다.
-절대 지금 나가 있는 마견 잃어선 안됩니다. 용족이 뭘 하는지 끊임없이 체크해줘야해요. 동시에 3시 철광 확장의 소굴도 지켜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습니다!
마견의 어깨가 무겁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많이 불리하지만 아직 진 건 아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이승우 선수 아예 살림을 차리는데요?
-조금 더 입구를 압박하는 위치에 용광포가 소환됩니다.
-가둘 생각입니다. 아예 본진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커다란 가두리 양식장을 만들어버릴 생각이네요.
-이제운 선수에게 문제를 내고 있네요. 머리 정말 아플 것 같습니다.
용광포의 위치가 너무 좋다. 마견으로 깨고 싶어도 뒤에 있는 용광포의 사정거리에 닿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막막하다.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자로 잰 듯한, 딱딱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시계로 잰 듯한! 초시계로 모든 걸 확인하고 있는 것처럼 딱딱딱! 상대방에 반응을 완벽히 알고 있어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경기가 아예 끝난 건 아닙니다. 어쨌든 일벌레 1기가 빠져나가 3시에 소굴을 폈고 이승우 선수도 전진 기지에 자원을 굉장히 많이 투자했거든요? 그슨대굴을 올린 후 병력을 차분히 모아 뚫기를 시도한다면! 바로 역습으로 이어져 경기를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이제운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대역전극을 쓸 수 있는.
일단 이제운의 눈빛이 죽지 않았다. 이제운 팬들 입장에선 그 것만으로 희망을 걸기에 충분했다.
-소수 그슨대를 동원해 입구가 아예 잡히기 전에 3시로 이동할 수 있는 활로를 만들어낸다면 아직 모릅니다. 이승우도 본진 방어 허술하거든요! 마견을 막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그슨대는 막을 수 없습니다.
-과연 그렇게 경기를 뒤집을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점점 이제운에게 안 좋게 흘러갔다.
이제운은 서서히 숨이 막혀오는 걸 느꼈다. 커다란 손이 목을 조여오고 있다.
‘예상도 못했다.’
이런 공격은 1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다.
용광포 러시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 있었지만 이렇게 올인성 용광포 러시를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잠시 망각했다. 그 대가가 너무나 뼈아팠다.
-소굴이 2개입니다. 2개! 요즘 2소굴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최소 3개는 되어야 병력과 일벌레가 생산되는데 지금은...
-이승우 선수 작정했네요. 벌써 세 번째 용광포와 함께 두 번쩨 제단이 동시에 늘어납니다.
-본진이 안전하다 싶으니까 계속 압박하는 데만 자원을 쓰는 거죠.
가난하다.
마수가 가난해도 너무 가난하다.
요즘 이렇게 운영하는 마수는 아무도 없다 .10년 전에도 하지 않았던 운영이다. 이 타이밍에 소굴이 2개 밖에 되지 않는다니.
더군다나 타의에 의해 소굴 간 이동이 통제되어 있다.
3시 쪽에 소굴이 있긴 하지만 확장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언제 깨질지 몰라 불안한 곳이 바로 3시 확장이다.
이렇게 길이 막힌 상태라면 1.5개나 마찬가지다.
병력이 생산되어도 하나로 뭉칠 수 없고 수비 라인도 각각 따로 만들어야한다.
이 자체가 손해다.
당장 이승우가 러시를 오지 않겠지만 언젠가 올 것이기에 그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경기를 운영해야한다.
그렇다고 본진에 2소굴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예 나가기를 포기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승우는 꾸준히 용아를 찍으며 용광포를 계속 늘렸다. 앞마당에 신전을 지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용아가 일정 수 이상 쌓이면 그냥 뚫어버릴 작정이었다.
-이게 2016년 경기가 맞나요? 용족의 유닛이 용안과 용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뚫긴 뚫어야하는데 이게 너무 애매합니다. 용광포가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벌써 6개쨉니다. 아무리 그슨대가 용광포에 강해도 숫자가 이 정도 되면, 그리고 용아가 지금처럼 받쳐주면 부담스럽거든요.
-이승우 선수도 아는 겁니다. 앞마당 쪽에 자원 투자하면 전진 라인이 뚫릴지도 모른다. 이제운은 그러고도 남을 마수다!
-확실히 투자하는 거 나쁘지 않습니다. 굳이 확장 가져갈 필요 없거든요. 여기서 아예 쐐기를 박아버리는 겁니다. 용아의 수가 8개 이상 모이면, 그리고 입구 용광포가 두 어개 더 늘어나면 본진 소굴 하나에서 생산 되는 그슨대로는 절대 밀어낼 수가 없어요!
-발업, 사업 다 하고! 한 부대 가량, 그러니까 여유 있다 싶을 때 뽑아뒀던 마견과 함께 덮쳐야 하는데 시간을 안줍니다. 이승우 선수가!
절반으로 찢겨진 그슨대.
한군데 뭉쳐 있다면 치고 파지는 형식으로 용광포를 파괴하겠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모자라다. 하나의 소굴에서 그 정도 그슨대를 확보하려면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하다.
이승우는 경기를 길게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예 그 시간을 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3시 쪽에 그슨대가 조금 모였다 싶으니 바로 용아로 압박에 나섰다. 본진에 있는 그슨대가 합쳐지면 용아 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가고 싶어도 갈수가 없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전부다. 지금 뭐가 중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슨대가 6기 이상 모이면 컨트롤이 된다. 뒤로 물러나면서 용아를 때릴 수 있다. 용아가 발업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만 이 경기가 그렇게까지 지속될 것 같지 않았다.
이승우의 선택은 삭주굴근.
미리 화근을 뽑아 버리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 그슨대 소모되면 안 되거든요.
-사업은 됐는데 아직 발업이 안됐어요.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노리고 들어온 겁니다.
-이승우 선수가 소모전을 너무나도 잘해주고 있어요. 이러면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점점 사라 지는 거죠.
-우토가 아닌 절망이 이제운의 본진을 잠식해 들어갑니다. 이렇게 3:0으로 이승우 선수가 경기를 잡나요?
3시와 본진을 잇는 길을 뚫기는커녕 3시가 밀려버릴 판이다.
이제운 입장에서 악화일로는 걷고 있었다.
이승우의 판짜기가 완벽하다.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 관중들도 황홀한 얼굴로 이승우의 경기를 지켜봤다. 흔하디흔한 경기와 다르다. 전개 차제 다르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스토리가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을 보는 기분이다.
-요즘 이승우 선수 종족 가릴 것 없이 앞마당 자원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맛들인 모양입니다.
-오늘은 앞마당 조차 없어요!
-그건 사치죠. 본진 자원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확장을 해?!
지금은 용아와 그슨대를 1기씩 바꿔줘도 마수 손해다. 서로 같은 자원을 먹고 있긴 하지만 용안의 숫자가 일벌레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자원 수급률에서 마수가 밀린다.
-아이고. 어떻게 모은 그슨대인데!
-진짜 이제운 선수 마음 찢어집니다. 이 정도의 그슨대 다시 모으려면 한참 걸리거든요!
-본진 소굴 한 개에서 생산할 수 있는 그슨대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이제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피도 눈물도 없는 조이기다.
최소 확장 두 개 이상을 가져간 후 물량과 멀티 테스킹으로 승부를 겨루는 요즘 운영과 궤를 달리한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래서 피가 끓어오른다.
현대 축구의 반역자, 느림의 미학으로 불렸던 축구 선수가 생각나는 경기 운영이다.
나 혼자 본진 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아니 오히려 더 가난하게 만들어버린다.
-용안과 용아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단순한 조합으로 마수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어요!
-이렇게 경기 패배하면 오늘 잠 못 자겠는데요. 부처님 손바닥 위 손오공이 따로 없습니다.
그슨대가 뿔뿔이 흩어졌다. 기약 없는 피난길에 오른 것이다. 소수의 용아가 추격에 나섰고 나머지는 3시 소굴을 파괴하기 위해 뭉쳤다. 그걸 막을 방도가 이제운에겐 없었다.
-소굴!! 소굴!!! 소굴!!!!!
-이거 파괴되면 희망도 끝나는 겁니다. 근데 지킬 수가 없어요! 지킬 병력이 본진에 꼼짝없이 발이 묶여 있습니다. 나가면 용광포에 맞아 죽습니다.
-폭군 이제운을 보통 마수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이승우가 강력합니다. 정말 이승우 다운 전략이예요!
얼핏 따라 하기 쉬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잘해야만 성공시킬 수 있다. 용광포의 수도, 용아의 수도 상대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이제운이 마견 뚫기 올인을 준비했다면 두번째 용광포 위치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을거다.
-소굴을 결국 지켜내지 못합니다.
-발업이 되기 전에 타이밍을 완벽하게 잡아냈습니다. 용아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타이밍에 공격을 들어갔어요!
-아. 이거 어떡합니까? 소굴 하납니다. 하나. 제단이 2개인데 소굴이 하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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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용광포 맛이 어떠냐?
[지금 이 순간]이 떴을 때부터 이미 승리는 내 것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손도 잘 풀렸고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딱딱 맞춰 진행되었다.
너무 맞아 떨어져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이제 경기는 끝났다.
뭘 해도 이길 수 있다.
그렇다면.
[스킬 [투신]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2분간 전투에 관련 된 속도, 컨트롤, 공격력, 반응속도 능력치가 55% 상승합니다.]
굳이 길게 경기 가져갈 필요 있어? 그냥 쐐기를 박아버리는거지.
[투신]과 함께 마수의 본진에 입성한 용아. 그슨대가 있긴 했지만 용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평지에서 용아와 그슨대와 싸우는 것과 천지차이다.
여기는 마수의 본진.
광활한 평지라면 발업 된 그슨대가 뒤로 도망치면서 모든 용아를 잡아낼 수 있겠지만 지금을 그럴 수 없다.
일벌레를 인질로 잡고 있거든.
건물 역시 마찬가지고.
그슨대가 상대를 안해준다?
그럼 난 일벌레를 죽이면 된다.
그슨대굴을 파괴해도 되고 마견숲을 파괴해도 된다.
용아가 다 죽기 전에 모두 파괴할 수 있다. 그슨대가 다 살아남아도 할 수 있는게 없다. 용광포를 뚫고 나올 준비가 끝나면 지금 숫자의 용아가 다시 쌓여 있을테니까.
다행히 경기가 거기까지 가진 않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이제운이 GG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스킬이 생성 되었습니다.]
[업적이 달성 되었습니다.]
기분 좋은 푸른창이 나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