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21 Game No. 521 얼음처럼 차갑게. =========================================================================
Game No. 521
“잘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임형규를 최연규 코치가 덥석 안았다. 누가 보면 우승이라도 한 줄 알 정도로 격하게 임형규를 환영했다.
최연규 코치는 지금 굉장히 기뻤다.
단순히 1승을 따내서가 아니다.
이승우의 전략을 완벽히 파훼해 얻은 승리기에 이처럼 기뻐하는 것이었다. 최연규 코치의 반응에 임형규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직 경기 끝난 거 아니잖아요. 4세트 준비해야죠.”
기쁜 건 임형규도 마찬가지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다. 3세트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아직 스코어는 2:1.
여전히 밀리고 있다.
4세트와 5세트에서 승리를 거둬야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승우라면 4세트에서 또 99제단을 쓸 수 있어.”
“알죠.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라는 걸.”
최연규 코치의 말에 임형규가 피식 웃었다.
문득 같이 2군에 있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부터 이승우는 99제단 장인이었다. 더군다나 마지막 전장은 마고본성. 역 언덕 입구로 되어 있어 99제단으로 입구를 막아 버리면 마수는 더 큰 압박을 받게 된다. 무조건 신경 써야 한다.
“이번엔 정말 마수답게 하고 싶어요. 마수가 뭔지, 용족이 왜 마수를 무서워하는지 제대로 보여 주고 싶어요.”
임형규가 반대편 부스를 바라봤다.
이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저 2인자로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뒤를 쫓기만 한 선수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하고 싶었다.
****
건너편에서 최연규 코치님과 포옹하는 형규의 모습이 보였다.
자식. 그렇게 좋냐?
적이지만 이번 경기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스킬을 쓸 만한 상황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체력 낭비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었으니까.
5세트까지 가게 되면 경기가 어떻게 흐를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수와 용족의 싸움이니까. 종족 특성 때문인지 이영우보다 형규를 상대할 때가 훨씬 더 버거운 것 같다. 환국전 같은 경우 준비해 온 대로 아귀가 착착 맞아 가는 느낌이 들면 거의 이길 때가 많은데 마수전엔 변수가 너무 많다.
일단 군락.
군락이 터지는 순간 승부는 5:5가 된다. 무조건 군락이 되기 전에 경기를 끝내던가, 큰 피해를 입혀야 한다. 무난히 군락을 간 마수는 용족에게 지옥이다. 나도 그 예외는 아니다.
날고 긴다하더라도 유닛 효율성과 기동력을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 선택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도 수코님도 꽤 충격을 받으신 것 같다. 앞마당을 포기하는 마수라니. 허를 제대로 찔렸다.
“형규가 괜히 올해의 마수 받았겠어요? 이 정도 수는 가지고 있겠죠.”
“4세트에서 어떻게 하려고?”
“한 번 당했으니 돌려줘야죠.”
2:1로 따라온 건 칭찬해 주마.
근데 어쩌지?
3:1로 경기가 끝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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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 시간 후에 4세트가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웃은 건 임형규였다. 99제단이 아닌 선제단으로 경기를 시작한 이승우. 러시 거리가 가까운 마고본성에서 99제단이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반면 임형규는 이번에도 본진에 마견숲을 올리며 99제단을 방비했다. 빌드로만 봤을 땐 임형규가 살짝 좋은 상황.
하지만 이승우의 용아는 달랐다.
억지로 파고들더니 철광 뒤에 자리를 잡아 이득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임형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선 제단 특성상 용광포가 느리다는 걸 이용해 마견으로 이득을 거둔 것이다.
일진일퇴 공방전.
서로 한 수씩 제대로 주고받았다.
공격적인 운영을 즐겨 하는 임형규지만 이번 세트는 조금 달랐다. 타 스타팅을 먹고 가시촉수와 소수의 가시귀로 수비를 하며 군락을 빠르게 올라가는 테크를 탔다.
그슨대와 닷발귀를 적극 활용해 전장을 장악하는 본인의 스타일을 버린 운영.
용족의 한 방 병력이 진출할 때 위기가 있긴 했지만 앞마당과 타 스타팅, 모두 뚫리지 않고 방어를 해냈다. 그 순간 주도권이 용족에서 마수로 넘어갔다. 안전하게 군락을 갔고 지상 병력의 업도 꾸준히 돌려줬다. 무엇보다 망태할배가 나온다는 것과 마견의 공속 업이 된다는 것이 컸다.
-전장을 뒤흔드는 마견과 그슨대!
-강합니다. 너무 강해요. 용광포로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용광포를 파괴하는 마견!
-진짜 이승우도 대단한 게 조금만 놓치면 신전 날아가는 거 순식간인데 제때제때 백업을 오고 있다는 겁니다!
방어를 해내고 있었지만 아슬아슬하다. 곡예를 하는 것처럼.
기동력에서 마수를 따라갈 수 없는 건 당연한 거다. 후반 전투의 키를 쥐고 있는 비렴이 너무 느리다. 아무리 다른 병력의 속도가 빨라도 비렴의 이동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승우도 공격을 시도했지만 토혈, 흑운, 가시촉수 라인에 주춤했다.
-까다롭습니다. 수비 라인이 너무 좋아요.
-센터에서 만나면 용족이 무조건 이기는 병력이거든요? 근데 저렇게 가시 촉수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용족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아. 이러면 용족 답답하죠. 이러면서 마수가 확장 하나씩 슬금슬금 늘리면 진짜 가시귀는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거든요.
상대적으로 금이 적게 드는 마견과 그슨대. 온전히 금을 가시귀와 망태할배에 쓸 수 있다는 거다. 이 조합을 잡아내려면 용족은 금이 많이 들어가는 비렴과 지룡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용족이 확보한 금광은 총 3개.
그중 하나는 금광이 보통 금광보다 훨씬 적게 있는 곳이다. 당장 지룡이 필요하지만 합류시키기엔 버거웠다.
-추가 확장 가져가야 합니다. 이승우 선수도.
-상대적으로 가져가기 쉬운 확장은 12시 반 쪽이지만 거긴 금이 적거든요. 조금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1시 스타팅 앞마당을 가져가는 것이 미래를 봤을 땐 더 나은 판단입니다.
당장을 생각한다면 가까운 확장을 가져가는 것이 낫다. 하지만 보다 먼 미래를 본다면 1시 스타팅 앞마당이나 본진을 가져가야 한다. 수비는 조금 어렵지만 지켜만 낸다면 보다 안정적으로 비렴과 지룡을 생산할 수 있었으니까.
이승우의 선택은 1시 앞마당이었다. 일단 본진보다 좁기 때문에 드랍에 보다 안정적이다. 수비 병력이 백업을 오는 타이밍도 몇 초지만 빠르고. 또 1시 본진에 마수가 병력을 드랍하고 언덕을 가시귀알로 막아 버리면 드랍 병력을 정리할 순 있지만 신전은 지킬 수 없게 된다.
-이번 경기는 조금 장기전이 나오겠는데요?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근데 이런 전투가 지속되면 용족에게 너무 불리합니다.
같은 자원을 먹는다 하더라도 효율성에서 용족이 크게 밀린다. 마견은 철이 50밖에 안 든다. 그럼에도 2기나 나온다. 초반이면 용아 1기와 마견 4기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유지하지만 후반으로 넘어 보면 완전히 무너진다. 용아가 토혈에 맞으면 마견에 그냥 휩쓸린다. 철이 많아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풍백, 비렴, 지룡을 생산할 수 있게 금이 많아야 한다.
환국전에서 마수가 금이 중요한 것처럼 마수전에서 용족도 금이 굉장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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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이번 경기는 굉장히 어렵다.
스킬로 위기를 넘긴 했지만 초반 마견에 피해를 입어 진출 타이밍이 꼬인 것이 조금 컸다. 사람들이 봤을 땐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그냥 마견에 조금 휘둘릴 정도, 그 후에 잘 막아 낸 정도로 보였겠지.
하지만 애초에 마견의 목적은 당장의 피해가 아니었다. 모든 걸 꼬아 놓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형규는 목적을 이뤘다. 타 스타팅을 안전하게 가져가는 데 성공했으니까.
이러면 경기를 굉장히 길게 봐야 한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를 끝내려고 하면 안 된다. 그건 마수가 바라는 거다. 망태할배를 살리기만 한다면 마수는 언제든 병력 조합이 완성된다. 다수의 소굴에서 마견과 그슨대만 생산하면 되니까.
반면 용족은 한 번 조합이 깨지면 시간과 자원이 많이 들어간다.
그사이 확장이 밀릴 수도 있다.
전장을 반으로 갈라야 한다. 적어도 절반의 자원은 내가 확보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자원을 많이 먹고 싶은 것보다 마수에게 주면 안 된다는 것이 더 크다.
내가 못 먹는 한이 있더라도 마수에게 주면 절대 안 된다.
이 균형이 깨지면 절대 경기를 가져갈 수 없다.
마수에게도 긴장을 계속 줘야 한다. 어쨌든 용족도 같은 자원을 가져가고 있다는 압박.
그 다음 해야 할 건 수비다. 확장을 가져갔으면 당연히 안전하게 지켜내야 한다. 병력 조합을 유지하는 선에서 수비를 한다면 생각보다 자원 소모가 크지 않다.
자원을 아끼면서 마수가 계속 들이붓게 해야 한다.
상식이 있는 선수라면 무작정 수비를 하고 있는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지는 않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유도해야지.
공격을 들어올 수밖에 없게끔.
지키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같은 확장.
병력 유지.
중앙 장악.
그리고 끝없는 견제.
이 네 가지를 동시에 한다면 마수가 먼저 공격을 들어오게 만들 수 있다.
입신전이라고?
뭐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
근데 두고 봐. 내가 이걸 하나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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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선수 더 이상 확장을 가져가지 않고 딱 1시 앞마당 까지만 가져갑니다.
-어차피 1시 스타팅과 12시 쪽 확장은 언제든 가져갈 수 있는 거거든요! 괜히 미리 가져갔다가 수비 범위 늘릴 필요 없다 이겁니다. 천천히 가져가며 수비 범위를 좁히겠다는 겁니다!
부족한 기동성을 이승우는 이렇게 커버 하고 있었다. 당장 돌아가는 자원 줄은 3개. 본진이 마르긴 했지만 아직 앞마당이 조금 남아 있다. 용안이 자원을 캘 곳이 아직 있는 이상 무리해서 확장을 늘리지 않는다.
앞마당 자원이 마르면 확장을 늘릴 거다.
또 트리플 자원이 마르면 확장을 하나 늘릴 거고.
인구수가 200 꽉 찬 지금 인구수가 확 줄어드는 피해를 받지만 않는다면 확장 하나로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모두 저축이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저축.
-진짜 이승우 선수가 잘해 주고 있는 것이 끊임없이 압박을 해 주며 견제를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들어갈 생각이 없어요. 그냥 북만 치는 겁니다. 여기 보라고!
최승원 해설이 감탄을 하는 그 순간에도 운룡을 쉼 없이 전장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흑완 4기가 7시 본진에 떨어졌다. 동시에 주 병력이 본진 쪽으로 진군했다. 무시무시한 가시귀밭을 뚫을 생각은 없다. 비렴의 술력을 소모하고 빠질 생각이다. 그러면서 7시 드랍으로 이득을 보고. 임형규의 신경이 앞마당으로 쏠린 사이 흑완이 소리 소문 없이 안쪽으로 침투했다. 드랍을 대비한 군주가 둥둥 떠 있었지만 움직이는 병력이 없다.
일벌레가 마구 썰리기 시작했다. 4기였기에 그 파괴력이 엄청났다. 순식간에 절반의 일벌레가 사라졌다. 임형규가 드랍을 깨달은 것도 그때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