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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로더 신들의 전쟁-519화 (519/575)

00519  Game No. 519 비둘기 장인.  =========================================================================

Game No. 519

2:0으로 몰려 있기 때문일까?

임형규의 얼굴엔 짙은 피로감이 덮여 있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패배감이었다.

뭘 해도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

‘99제단을 어떻게 막지?’

임형규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땀을 훔쳤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임형규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벌 떼가 귓가에 돌아다니는 것처럼 모든 소리가 웅웅거리며 들리고 시야도 흐릿하다.

임형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뭐 이렇게 강력한 99제단이 다 있단 말인가?

99제단에 대한 연습을 안 했던 것도 아니다. 군주를 생산 한 후 바로 마견숲을 지어 6마견을 생산하면 99제단을 막을 수 있다. 밖으로 빠져나온 마견이 용족 진영으로 뛰어 멀티 테스킹 싸움을 유도해도 되고 나온 용아를 앞뒤로 싸 먹어 수비를 해도 된다.

그 후 땡 그슨대로 심시티 제단 2개를 밀어 버리고 확장을 늘려도 되고 마견을 미친 듯이 생산해 승부를 봐도 된다.

뭘 해도 마수가 유리해지는 거다.

테크가 느린 용족은 그에 대한 대비를 전부 할 수밖에 없고.

김택윤의 99제단도 그렇게 막아 냈다.

그런데 이승우의 99제단은 못 막았다.

상성 빌드로도 막지 못할 정도로 이승우의 컨트롤을 뛰어났다.

마치 여러 사람이 동시에 용아를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맞고 있는 용아가 뒤로 빠지고 그 자리를 다른 용아가 대신한다. 순간 대열이 흐트러진 마견을 용아와 용안이 덮친다.

이런 움직임이 순식간이 이뤄진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적이지만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임형규가 혼란해하고 있을 때.

“생각을 조금 달리 해 보면 어떨까?”

최연규 코치가 다가왔다.

선수 스스로 극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최연규 코치지만 지금과 같이 깊은 좌절에 빠져 있을 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도움이라는 것이 꼭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직접 꺼내 줘도 되고 나오는 방법을 알려 줘도 된다.

하다못해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도 분명 도움이다.

“생각을요?”

임형규의 되물음에 최연규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앞마당을 가져가야 할까?”

“안 가져가면 지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본진만 가지고 하니까요. 자원도 적고. 소굴도 적고.”

본진 플레이를 서로하면 용족이 마수에게 유리하다.

이건 불변의 진리다.

“그건 앞마당을 지키려고 마견을 많이 찍어서 그런 거 아닐까? 아예 본진에서 막는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러면 이승우의 99제단을 파훼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최연규 코치의 말에 임형규가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래. 앞마당을 지키려고 일벌레 적게 찍고 마견을 많이 찍다 보니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거야. 역으로 생각해 보자. 역으로 용족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방법을.’

앞마당을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여러 가지 빌드와 전술적 운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번에 변한 임형규의 표정에 최연규 코치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정도면 됐다.

‘나름 방법을 찾은 모양이군.’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

-이승우 선수 독해요. 1, 2세트를 99제단으로 잡아냅니다!

-오늘 뭐 일찍 가야 하나요? 임주혁 감독의 3연망 경기 시간 기록을 깰 생각인가요?

-만약 3세트에도 99제단을 한다면! 그리고 그 전략으로 임형규 선수가 패배한다면! 아. 오늘 임형규 선수 제대로 잠 못하겠는데요?

-잠이 뭡니까? 진짜 며칠 동안 신들의 전쟁 못할 수도 있어요! 반드시 3세트는 잡아야 합니다!

임형규가 홍진우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었다.

평행이론.

만약 3세트에서도 99제단에 패한다면 4강과 8강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3연속 같은 초반 전략에 의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다는 공통점이 생기게 된다.

달갑지 않은 기록이다.

임형규 역시 3회 연속 MSL 결승에 진출한 강자다.

이영우라는 강점을 4강에서 꺾어 낸 적이 있는 선수다.

역상성도 이겨 냈는데 상성이라고 이겨 내지 못할 이유 없다.

-최연규 코치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몰라도 한결 표정이 편안해 보이네요.

-과연 3세트에선 어떤 경기가 나올지!

-3세트 전장으로 지금 바로 떠나 보겠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경기다.

여기서 8강 경기가 끝날 수도 있다.

이영우에 이어 임형규까지 3:0으로 잡고 4강에 오른다?

최근 김영민에게 패배하면서 이승우 초갓론이 살짝 흔들린 지금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다.

괜한 의심하지 말라고.

난 아직 건재하다고.

알고도 못 막는 빌드를 들고 나오면 어떡한단 말인가?

앞으로 이승우를 상대하는 선수들 입장에서 공포에 떨 수밖에 없는 경기다.

3번 연속 같은 빌드를 쓴다는 건 어마어마한 자신감의 발로다.

특히 이승우처럼 무난한 운영을 해도 승률이 높은 선수라면 더욱더 그렇다. 날빌로도 이길 수 없다는 좌절감만 더해진다.

-일단 거리는 가장 가까운 가로가 나왔습니다.

-이러면 또다시 99제단을 쓰면 위력적이단 말이죠!

-그동안 이승우 선수의 경기를 여럿 중계해 오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승우라면 99제단 씁니다. 그게 바로 이승우입니다!

최승원 해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용안이 앞마당 쪽으로 나갔다.

-자. 이승우! 용안 더 안 찍죠?

-이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바로 99제단 한 번 더 한다는 거죠!

이승우는 남자 중에 남자였다.

한번 전진하면 멈출 줄 모르는 상남자.

이번에도 이승우는 99제단을 소환했다. 동시에 경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오늘 아예 한번 끝장을 보자.

남자라면 못 먹어도 고 아니겠어?

99제단이 사기 빌드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도록 만들어 주마.

빌드의 우위를 점했던 1세트에선 스킬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순수 컨트롤만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빌드가 완전 먹힌 2세트까지 그렇게 할 순 없었다.

대놓고 99제단을 저격하는 빌드였으니까. 그래서 스킬을 사용했다.

[폭풍].

확실히 좋은 스킬이다.

이번에도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얼른 스킬 포인트를 모아 MAX로 만들어 줘야 하는데 말이지. 아직은 레벨이 1이라 하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MAX가 되면 사용 횟수와 효과가 더 늘 텐데.

[폭풍]을 MAX로 찍으려면 위너스리그나 개인리그 우승 정도는 해야 가능할 것 같다. 필요한 스킬 포인트가 높았으니까.

이번 세트는 [투신]을 활용해 볼 작정이다.

깔끔하게 마견 싸 먹고 집으로 가는 거지.

자. 그럼 신나게 용아 컨트롤할 준비해 볼까?

****

-이승우 선수 직진밖에 몰라요! 회전이란 것이 머리에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엔 군주로 첫 정찰이 된다는 겁니다. 7시 쪽에서 바로 군주가 오고 있거든요!

-자. 이승우 선수도 가로로 용안 갑니다. 서로 원 서치에요. 이러면 보는 순간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이번에도 군주 생산 후 마견숲을 짓는 임형규.

99제단을 여전히 의식하고 있었다.

앞마당으로 내려오는 일벌레를 마주한 용안이 본진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앞마당으로 와 일벌레가 소굴을 짓지 못하게 방해하기 시작했다.

소굴의 완성이 늦어질수록 시촉수가 지어지는 시간도 늦어진다.

이승우의 용아는 보통 용아가 아니다.

마견만으로 막으려고 해선 안 된다.

가시촉수가 필수다.

-이러면 신경 쓰이죠.

-용안과 일벌레가 초반부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다행히 마견이 나오기 전에 소굴을 짓는 데 성공했다. 용안이 잠깐 옆으로 밀러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6마견 찍어 주면서 용아와의 전투를 준비하겠죠.

-그렇죠. 이번에도 99제단을 막는……. 어? 나온 마견은 2기입니다! 나머지 알은 모두 일벌레였어요!

-이게 뭐죠? 실수인가요? 이러면 용아를 어떻게 막죠?

-실수라고 하기엔 임형규 선수의 표정이 너무 평온합니다.

경기장이 술렁였다.

“뭐야? 임형규 경기 포기한 거야?”

“군주로 봤는데 왜 일벌레 찍은 거야?”

“실수 같은데. 아무리 봐도. 마견 안 찍으면 앞마당 어떻게 막어? 그냥 날아가는 거지.”

“그래도 임형균데. 뭐 생각이 있으니까 저렇게 한 거 아냐?”

의견이 분분히 갈렸다.

실수라는 이도 있었고 일부러 의도했다는 이도 있었다.

조만간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올 것이다.

-자. 이제 용아가 나와요! 뚜벅뚜벅 걸어옵니다!

-임형규 선수의 생각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도대체 어떤 해답을 들고 나왔을지.

적어도 그간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답이라는 건 분명했다.

만약 지금 사용하는 전술로 이승우의 99제단을 막아 낸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날 수도 있다.

-어? 뭐죠? 임형규 선수 앞마당 소굴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본진에 촉수 짓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전술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파격적인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앞마당 취소.

그리고 본진 촉수.

임형규는 마치 팀플을 하는 것처럼 빌드를 만들어 냈다.

경기장이 혼돈에 빠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앞마당을 취소할 줄이야.

99제단을 막는 법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큰 핵심은 앞마당 소굴을 어떻게든 지켜내는 것이다. 앞마당 없이 용족을 이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형규는 그 대원칙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 순간 빌드가 자유로워졌다. 뭘 해도 된다.

이제 복잡해진 건 용족, 이승우의 머릿속이다. 이 후로 어떤 대처가 나올지 예상되지 않을 테니까. 아마 연습 상황에서 이런 대처를 보여 준 선수가 아무도 없었을 거다.

앞선 두 세트에서 임형규가 이런 운영을 꺼내 들지 않을 걸 보면 임형규 역시 이번에 처음 꺼내 든 빌드일 것이다.

최초와 최초의 만남.

조금 더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쪽이 이길 수 있다.

대기실에 있는 최연규 코치만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됐다.’

두 주먹을 움켜쥐며 작게 기뻐하는 최연규 코치.

앞마당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바로 해답을 찾을 줄이야.’

최연규 코치도 이런 운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렇게 하면 99제단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99제단이 굉장히 강력하긴 하지만 그만큼 약점도 많은 빌드였으니까.

하지만 생각에서 그쳤다.

최연규 코치의 종족이 환국이었기에 실용성 측면에서 확신을 할 수 없었기도 하지만 팀 내 이 정도 전술을 소화할 만한 마수 선수가 없다는 이유가 더 컸다.

오늘 임형규가 99제단에 두 번 연속 당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넌지시 힌트만 던졌다.

본진 운영을 하면 어떻겠냐고.

그가 생각했던 운영과 100% 일치하지 않지만 상관없다.

임형규만의 답을 찾았으니까.

‘자. 이제 어떻게 할 것 인가?’

이제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임형규가 찾은 답이 완벽한 답인지.

아니면 아쉽게도 오답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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