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로더 신들의 전쟁-518화 (518/575)

00518  Game No. 518 구구구구. 비둘기야. 밥 먹자.  =========================================================================

*****

“.....결국 여기냐?”

“결국 여기냐니? 당연히 여기지!”

연호와 승대의 손에 이끌러 온 곳은 우리들끼리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곳.

전설의 미숫가루 소주가 있는 곳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미숫가루 소주와 안주 맛이 기가 막혀 그 후로 단골집이 되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쉬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럼 너는 술은 마시지 말고 몸에 좋은 미숫가루만 먹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맛좋은 안주와 미숫가루를 함께 하면 안 좋았던 컨디션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덧붙였다.

묘하게 설득력 있는데?

미숫가루는 몸에 좋으니까.

“여기 미숫가루랑 소주 한 병주시고요. 안주는 모듬 전이랑 알탕 주세요.”

우리가 다녀간 뒤 미숫가루 소주 뒤에 소주는 따로 주문해야한다는 문구가 생겼다. 추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해서 다행이라며 연호는 어깨를 으스했지만 그 간 아무도 그렇게 시킨 점이 없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바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금세 소주와 미숫가루를 가져다주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미숫가루에 살얼음이 잔뜩 껴있었다.

“내가 이래서 여기에 오는거지.”

연호가 미숫가루 병을 들고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자. 다들 미숫가루 받아. 요게 아주 환상적이라니까? 내가 요즘 성적 잘 나오는 게 아무래도 미숫가루 때문인 거 같어.”

연호의 미숫가루 신봉은 절정에 달해있었다.

뭐가 잘되기만 하면 다 미숫가루 덕분이라고 했다.

미안한데 그거 미수가루 덕이 아니라 내 덕이거든?

내가 너한테 얼마나 신경 써서 능력 부여 해주는데.

“저도 요즘 경기가 잘되더라고요. 형 따라서 미숫가루 먹은 이후로 경기가 술술 풀려요.”

승대의 맞장구에 기가 막혔다.

너도 홀랑 넘어갔구나?

아예 연호랑 같이 미숫가루교라도 만들지 그러냐?

아예 우리가 1위하고 있는 이유가 미숫가루 때문이라고 하지 그러냐?

“그치? 우리가 위너스리그 1등 하는 것도 미숫가루 때문이라니까.”

....진짜 하는구나.

“넌 뭐 그렇게 혼자 생각에 잠겼냐?”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말이 있겠니? 그냥 미숫가루나 들이키는거지. 그래도 미숫가루 맛은 좋아서 다행이다.

기분좋게 8강에서 이겼기에 술 한 잔 하고 싶긴 했지만 내일 몸 상태가 진짜 안좋을 것 같아 꾹 참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신호를 무시했다간 큰 일 난다.

어쨌든 나도 몸으로 먹고 사는 프로 스포츠인이다.

몸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윽고 안주인 모듬전이 나왔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단골이 되다보니 같은 안주를 시켜도 그 양이 확실히 더 많았다.

“감사합니다. 이모!”

주방을 향해 감사 인사를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쿨하게 손을 흔들어주시는 주방 이모.

“진짜 나 위너스 리그 우승하고 인터뷰하면 이모님 이야기 꼭 할 거야. 미숫가루 이야기도 꼭 할거고.”

연호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떠올랐다. 신토불이란 별명을 확실히 다지는구나.

“저도요. 왜 미스코리아 되면 미용실 원장님 이름 말하잖아요. 저도 꼭 할 겁니다.”

어이구? 쌍으로?

그래.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한바탕 웃음이 테이블을 휩쓸고 갔다.

물론 난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웃기지 않았거든.

모듬전을 벗 삼아 미숫가루 소주를 들이켰다. 난 당연히 미숫가루만 마셨고.

그렇게 몇 잔을 마셨을까?

승대가 테이블 쪽으로 몸을 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기 왼 쪽에 지금 방금 앉은 여자들. 저희 계속 보고 있지 않나요?”

무의식중에 돌아가는 목을 연호가 붙잡았다. 그리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고개 돌리지마. 들키니까. 눈만 돌려.”

연호가 복화술도 할 줄 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슬쩍 눈을 돌려 보니 여자 3명이 온 테이블에서 확실히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군주를 띄워 놓는 마수답게 시야가 아주 넓구나?

“우리 알아본 거 아닐까요? 그래도 TV에 몇 번 나오고 그랬으니까.”

“우리는 빼. 알아봐도 승우나 알아보지 너나 나를 알아보겠냐.”

씁쓸하게 들리는 연호의 말.

그래. 너에게도 양심이라는 것이 아직 남아 있었구나.

“알아 본 게 아닐 수도 있어. 남자라면 모를까 여자들은 게임 안보는 사람이 더 많잖아.”

여기만 해도 그렇다.

남자 아르바이트생은 우릴 보는 순간 비명을 질렀다.

그때 그 표정과 눈빛을 잊지 못한다.

우상을 바라보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

그리고 바로 사진과 싸인을 요청했다.

반면 여자 아르바이트생과 주방 이모님들은 시큰둥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떤 존재 길래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싶은 눈빛으로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바라봤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아쉽게도 오늘은 없었다.

“어떡하지? 계속 우리 보는데? 진짜 합석 하게 되는 거 아냐?”

“저희가 먼저 선수 칠까요?”

“흠. 잠깐 기다려봐. 신중하자. 괜히 성급하게 빌드 짜다가 개 망한다.”

다들 눈빛이 변했다.

프로리그 결승보다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이러는 와중에도 그녀들의 시선은 이쪽에서 떠날 줄 몰랐다.

다들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작전 회의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2분 정도가 지났을까?

“엌! 온다. 온다. 온다.”

여자들 쪽을 살피고 있던 승대가 발작을 일으키듯 발을 동동 굴렀다. 진짜로 여자 한 명이 우리 테이블을 향해 오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인생에도 꽃이 피는 것인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는 연호.

강한 남성미가 풍긴다.

솔직히 난 크게 관심 없다. 괜히 찔려서 그런게 아니고 진짜야. 난 김채하 기자가 있으니까.

아직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 사이지만 말이야. 호감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막 관심 표하고 그런 사람 난 아냐.

그냥 이 둘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

절대 변명 같은 게 아냐. 그냥 그렇다고 말하는 거지.

우리가 허둥지둥 대는 사이 여자가 테이블에 도착했다.

예..예쁘다.

멀리서 봐서 잘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예뻤다.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더 예뻤다.

“몇 분이서 오셨어요?”

와. 요즘 이렇게 돌직구 던지는 게 대세 인가 봐요?

굉장히 단도직입적이시네.

“저희는 세 명이요.”

“더 오는 일행 없으신 거예요?”

“네. 없어요.”

단호한 연호의 표정.

누가 와도 없다고 할 기세였다.

“그러시구나! 그럼....”

그럼! 이제 같이 놀자는 이야기가 나올 차례인.....

“...남는 의자 하나만 가져가도 될까요? 일행 한 명이 더 오기로 했는데 자리가 부족해서요.”

여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우리 셋은 돌처럼 굳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의자 역시 마찬가지였고.

동네에서 꽤 유명한 가게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골이다 보니 편하게 마시라고 이모님께서 큰 테이블 잡아준 덕에 우리 테이블에만 의자 여유가 있던 것이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 인생에 무슨.

“....네. 가져가세요.”

10초 만에 10년은 늙어 보이는 연호가 힘없이 답했다.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는 이의 슬픔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감사합니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자를 돌고 사라지는 여자.

참 씩씩하네.

그 후 우리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술잔을 손으로 매만질 뿐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이겠지?

쪽팔리다.

쪽팔려서 죽고 싶다.

착각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한 잔하자. 그래도 우리가 먼저 들이댔으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날 뻔 했는데 그건 막았잖아.”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맞아요. 원래 우리끼리 한 잔 하러 온 거잖아요.”

“그렇쥐! 우정이 최고지!”

승대와 나는 격하게 연호의 말에 동의하며 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건배와 함께 바로 들이켰다.

“크. 좋다.”

오늘 처음으로 내 잔에 소주가 들어갔다.

****

이승우와 이영우의 OSL 8강이 끝난 지 8일이 흘렀다.

OSL 8강에서 결승 대진이 나온 것 처럼 MSL 8강에서도 결승 대진이 또 한 번 나와 버렸다.

이번에도 그 주인공은 이승우다.

결승에서 만난 선수를 두 번이나 8강에서 만난 이승우가 운이 없는건지, 아니면 이승우를 8강에서 덜컥 만나버린 상대 선수가 운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현재 분위기로 봐선 후자에 힘이 더 쏠리긴 하지만.

전 시즌 결승에서 임형규가 5일벌레를 연속으로 쓰며 이승우에게 승리를 따냈었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심리전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올 것인가?

2세트가 끝난 지금 이 물음에 대해 답하자면 ‘알 수 없다.’였다. 정확히 말하면 임형규가 보여준 것이 없었다.

이승우의 99제단에 1,2세트를 헌납했으니까.

할 게 없었다.

그냥 막다가 끝났다.

처음엔 빌드가 갈렸다.

앞마당을 확보한 임형규.

반면 이승우는 99제단을 올렸다.

그 것도 센터에.

올인 중에 올인이다. 앞마당에 지으면 그나마 운영이라도 되는데 센터에 짓는 건 아예 경기를 끝내겠다는 뜻이다.

임형규의 정찰도 엇갈렸다.

이승우의 본진까지 올라와보지 않고 앞마당만 보고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이다.

설마 1세트부터 센터 99제단을 꺼내진 않을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난한 확장이나 선 제단 정도만 예측하고 있었다. 99제단을 하더라도 앞마당에 짓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임형규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설마하는 걸 가장 잘하는 선수가 이승우라는 걸.

그 것을 파악한 이승우는 잔인하게도 용아를 바로 뛰지 않고 3기를 모아서 뛰었다. 3기의 용안과 함께.

벌레를 다 일벌레로 찍는 걸 확인한 뒤였기에 너무나도 쉽게 용아가 마수의 본진에 입성했다.

와락 구겨지는 임형규의 얼굴.

용아의 수를 보고 센터에 제단을 소환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너무 늦은 깨달음.

갑자기 컴퓨터가 꺼지지 않는 한 경기가 역전 될 일은 없어 보였다. 일벌레가 열심히 침을 뱉으며 대항했지만 그건 발악에 가까웠다.

확장이 있지만 일벌레가 없다.

1세트를 가볍게 따낸 이승우.

바로 이어진 2세트에서 다시 한 번 99제단을 꺼냈다.

이번엔 센터가 아닌 앞마당에 소환했다.

한 번 당했기 때문일까?

임형규도 아예 작정하고 99제단을 막을 수 있는 빌드를 초반부터 시전 했다. 군주 생산 이후 앞마당 대신 마견숲을 바로 짓고 6마견을 생산한 것이다.

초반에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99제단에 절대 피해를 받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근데 거짓말처럼 당했다.

보는 이도 황당한데 당한 이는 더 황당하겠지.

마법에 홀린 것 처럼 99제단에 피해를 받아 경기가 끝났다.

물론 이승우의 컨트롤이 환상적이긴 했다. 맞고 있는 용아를 살려내는 컨트롤이 일품이었다. 악에 받친 마견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지만 다른 용아의 기세에 밀려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마저 잡지 못한 미련이 마견의 뒷모습에서 진하게 느껴졌다.

99제단을 연속으로 했지만 아무도 이승우에게 뭐라 하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임형규의 팬 조차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미 자신들이 응원하는 선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무대에서 이승우를 상대로 도발을 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이승우의 빌드를 보고 시즌1 결승전의 복수라고 했다.

5일벌레를 연달아 한 임형규에 대한 복수.

2세트를 합쳐 10분이 채 안됐음에도 부스를 나서는 임형규의 얼굴은 땀으로 홍건이 젖어 있었다.

이어지는 3세트에서 이승우가 또 한 번 99제단을 꺼내들 것인가?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거기에 쏠려 있었다.

============================ 작품 후기 ============================

일요일은 휴재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