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7 Game No. 517 잘 있어! =========================================================================
Game No. 517
이승우가 5시 쪽으로 확장을 쭉쭉 이어 나갔다. 5시 트리플 지역과 앞마당, 거기다 본진까지.
3개의 확장을 거의 동시에 먹어 버렸다.
위험한 타이밍이 없기에 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현재 환국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용족의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제단이 늘어났기에 괜히 진출했다가 다수의 용족 병력에 전멸 당할 수도 있다.
-아. 이영우 선수 상황이 많이 힘든데요?
-2인용 전장이면 김영민 선수처럼 무승부라도 유도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4인용 전장이라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무승부 작전 여기선 안 됩니다!
-그렇죠. 그냥 전 확장 다 먹어 버리고 밀어붙이면 환국이 무슨 수로 당해냅니까? 지금 저 7시 확장도 풍전등화입니다. 정찰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확장을 하러 가는 용안에 들킬 수 있어요.
김영민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그땐 이승우가 확보할 수 있는 최대 확장은 앞마당 포함 4개.
그 중 금광 확장은 3개뿐이다.
용혼을 생산하며 금이 많이 들어가는 나가와 비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줄 수 없다.
반면 태평의 시대는 확장이 많다.
5시 까지만 확보했음에도 벌써 본진 포함 6개의 금광에서 금을 채취하고 있다.
섬 확장 역시 이승우의 것이다.
금와를 생산해 섬을 먹을 여유가 이영우에겐 없다.
가져간다 쳐도 즉각 이승우가 대응에 나설 거다.
나가의 소환으로.
금와 1기로 찔끔 실어 나르는 병력으로 나가 소환 병력을 막아 낼 수 없다.
천왕랑을 가도 되고 나가를 가도 된다.
여기에 비렴까지 다 섞을 수 있다.
청풍처럼 신기전이 무섭지 않다. 이영우가 보기에 무한대에 가깝게 여의주를 찍어 낼 수 있으니까.
자리 잡고 싸우는 것도 무의미하다.
청풍처럼 중앙을 잡을 곳이 없다.
오히려 용족이 싸먹기 좋은 위치다.
뭐 하나 이영우에게 웃어 주는 것이 없었다.
-경기가 어떻게 이렇게 되나요? 거의 이승우가 질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영우도 최대한 힘을 모으곤 있지만 이승우와 확장력이 너무 뛰어납니다. 이미 5시에 제단도 다 늘렸거든요.
-이거 이영우 선수가 앞으로 수비만 하다가 경기 끝날 수가 있어요. 나가의 소환 막고, 이제 나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소환이 떨어지거든요!
-그리고 나가 봤자 이미 병력 다 나와 있습니다. 이승우 선수는 지금 뭘 해도 되는 상황입니다!
억지로 희망을 찾자면 풀업 기갑병력의 파괴력이다.
이영우가 엄청난 전투능력을 보여 준다면, 동시에 이승우가 실수를 해 준다면.
그렇게 한 방 싸움을 대승 한 후 5시 확장과 중립 확장을 모두 밀어 버리면 경기를 역전할 수 있다.
-아……. 이영우 선수 진출을 하긴 해야 하는데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나오는 순간 거대한 망치가 그대로 두들겨 버리거든요!
이영우의 불운을 계속 이어졌다.
이승우의 용안이 7시로 향한 것이다.
-확장을 하러 간 용안! 아니? 이게 뭐야? 왜 여기에 군영이 있어?!
-잠깐 놀랄 수 있지만 그게 끝입니다. 차분히 친구들 부르면 건설 놀이 할 수 있어요!
-이영우 선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이거 이렇게 내주면 안 되거든요.
7시 본진 확장이 밀리면 이제 돌아가는 자원 줄은 앞마당과 트리플 지역 두 개뿐이다.
이 자원으로 용족의 공격을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하다.
-진짜 이승우 자원 제대로 먹네요.
-이영우 팬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지만 절망스런 소식밖에 전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이미 온 전장은 이승우가 장악했어요! 이승우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현재 최강이 누구인가를 확실히 보여 주는 경기입니다.
-진퇴양난. 이대로 갇혀 있을 수도 없고 진출할 수도 없습니다.
고군분투했지만 경기를 뒤집기엔 무리였다.
초반 자원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다.
진출한 병력이 트리플 지역 신전을 파괴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경기가 암울하게 흘러가진 않았을 거다.
화려한 소환 쇼가 연달아 펼쳐졌다.
본진, 확장 가릴 것 없이 나가의 소환이 떨어졌다.
아예 입구에 병력을 세워 둔 후 나가로 얼려 이영우의 본진을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병력이 있어도 들어오지 못하는 이영우.
그사이 용아와 용혼은 신나게 창고를 파괴했다.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버린 본진.
입구 쪽을 뚫고 들어와 용족의 병력을 정리했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병력이 갈 길을 잃고 헤맸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무너진 본진을 보며 절망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환국의 본진에 다시 한번 어둠이 드리웠다.
-연타 소환!!!
-한 번은 재미없으니 두 번 가 주겠다!
-1+1이죠! 요즘 이런 게 대세 아닙니까?!
-아. 이거 또 떨어지면 제 아무리 이영우라도 버티기 힘들어 보입니다.
제단의 수만 무려 30개다.
동시에 용아 30기가 튀어나온다는 소리다.
인구 60을 한 번에 채울 수 있는 양.
2~3부대의 병력이 죽어도 눈 깜짝할 새면 나왔다. 나를 상대로 무승부를 하려는 건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매섭게 몰아붙였다. 공격이 끊이지 않는다. 한시도 빼놓지 않고 전장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대부분 이득을 거두는 쪽은 이승우였다.
-이렇게 신나게 공격해도 이승우 선수는 괜찮아요! 지금 아주 재벌입니다. 재벌!
-철이 만을 넘었어요. 금도 오천입니다! 오천!
이승우의 자원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본진 주변 확장 자원이 전부 떨어졌지만 아직 섬 확장과 7시 앞마당 쪽은 쌩쌩했다.
지금과 같은 병력을 앞으로 20분 이상 더 뿜어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연습 경기나 다른 세트였다면 이영우도 GG를 쳤을 거다. 하지만 이번 세트를 내주면 OSL에서 탈락하는 상황이라 이영우도 쉽게 GG를 치지 못했다.
미련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아까 앞마당으로 가지 않고 트리플 지역을 확실히 깼으면 어땠을까?
욕심을 조금 줄였으면 어땠을까?
해 봤자 의미 없는 가정이다.
그 사실은 이영우가 가장 잘 알았다.
-기가 막히게 수비해 주고 있지만 이건 디펜스 게임이 아니거든요! 공격을 가서 상대를 끝내야 하거든요!
-상대 자원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수비만 한다면 이길 수도 있지만 상대 자원이 떨어지는 것보다 이영우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지금도 수비력은 굉장히 뛰어났다.
반의반도 못 미치는 자원으로 이승우의 맹공을 버텨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제는 한계가 왔다.
-이제는 천하의 이영우라도 버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인구수가 90이에요! 90! 이승우 병력은 200에서 고정입니다. 고정! 떨어지질 않아요!
-아. 정말 아쉽겠습니다. 어떻게든 역전해 보려 하지만 이 인구수로는 무리입니다.
-지금 용족이 얼마나 여유 있는 상황이냐면 공업과 방업은 진작 풀업이고 용력업까지 다 찍었어요!
제대로 사치를 부렸다.
너무 비싸고 효율이 떨어져 굳이 찍지 않는 용력업까지 다 찍었다. 그만큼 돈이 흘러넘친다는 말이다.
이영우는 확장은커녕 본진을 지킬 힘도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소환!!!!!!!!!!
-이번이 마지막 소환이 될 것 같네요. 막아도 막은 게 아니고 지금은 막을 수조차 없습니다!
날아오는 나가를 잡아낼 신기전과 화살탑조차 부족했다. 환국의 병력 위에 떨어지는 용족 병력. 제 아무리 화력이 강한 천자총통이라도 바로 위에서 나타난 병력에게 큰 힘을 발휘할 순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용족의 거센 공격이 시작되었다.
또 한 번의 소환.
이제는 버틸 힘이 없다.
-GG!!! 이영우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아. 진짜 아까운 경기네요.
-1, 2세트에서 심리적으로 무너졌던 것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이번 세트 역시 조금 더 차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이승우의 완벽한 판단도 좋았죠. 거기서 수비가 아닌 공격을 택할 줄이야!
3:0.
일방적으로 경기가 끝났지만 이영우의 팬들을 제외하고 크게 아쉬워하는 이는 없었다. 경기 내용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사파 용족의 끝을 보여 준 1세트.
이영우의 전략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대처한 2세트.
이영우의 공격에 맞서 신의 한수로 상황을 뒤집어 낸 3세트.
용족 선수라면 교과서처럼 저장해야 할 플레이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이승우의 가장 큰 장점, 상대 심리를 가지고 노는 판 짜기가 제대로 발휘되었다.
-이승우 선수 또 4강에 진출합니다!
-4회 연속 4강 진출! 물론 여기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4회 연속 결승진출! 4회 연속 우승까지! 또 하나의 전설을 쓸 때까지 이승우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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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모든 것이 준비한 대로 됐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이번 8강의 키 포인트는 1세트였다.
거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2, 3세트도 승리하지 못 했을 거다.
남들이 봤을 때 쉽게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매 경기 긴장의 연속이었다. 조금이라도 고삐를 늦췄다면 절대 승리를 거둘 수 없었을 거다.
특히 2세트.
1세트에서 그렇게 이기지 않았다면 이영우는 절대 2총통 FD를 꺼내지 않았을 거다. 통산 6회 우승과 더불어 프로리그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적 있는 이영우의 멘탈을 흔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기에 집중할 땐 몰랐는데 진이 쭉 빠진다.
정신적 피로가 상당하다.
이제는 쉬고 싶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다. 거기다 에어컨을 틀면!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거기가 바로 천국이다.
“고생했다.”
도 수코님의 축하에 웃음으로 답했다.
“으. 진짜 힘들었어요.”
“엄살은.”
엄살 아니거든요? 진짜 힘들었거든요?
스코어만 보고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억울하다고요!
물론 이렇게 말해도 전혀 안 믿으실 거다.
승자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 경기 멋졌어요!”
“잘했다.”
“이영우를 그렇게 이기다니! 다른 환국을 다 쫄겠네.”
역시 축하가 쏟아졌다.
축하를 받으며 방으로 향하려는데.
“어딜 가?”
누군가 나를 저지했다.
연호였다.
“어딜 가긴? 방 가지.”
“지금 방을 갈 때가 아니야.”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연호의 표정.
왜 이래?
뭐 중요한 말이라도 하려고 하나?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승대야!”
승대를 부르는 연호.
연호의 부름에 승대가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 오른쪽 팔에 팔짱을 끼웠다. 따로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이러는 거 보니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나 보다. 동시에 연호도 왼쪽 팔에 팔짱을 끼웠다.
……둘은 아는데 나만 모르는 약속이구나.
이런 서프라이즈는 사양이야.
이거 모양이 되게 이상하거든.
나 이거 뉴스에서 많이 봤어.
잘못한 사람들 끌고 갈 때 이런 식으로 하잖아?
“이게 뭔지 좀 알려 줄래?”
“알 필요 없어.”
……내 일이야. 그렇게 단호하게 답 하지 마.
“넌 그냥 우릴 따라오면 돼.”
박력 터지네.
근데 왜 그 박력을 나한테 터트리니?
의지와 상관없이 둘의 의해 몸이 이동했다. 방향은 내가 들어왔던 문 쪽이었다.
“오늘 같이 좋은 날 이렇게 넘길 순 없지.”
“맞아요. 그에 대한 보상이 필요해요.”
“자. 오랜만에 술 한잔하러 가자.”
미친놈들아.
이유 붙이지마. 그냥 너네가 술 먹고 싶은 거잖아.
너넨 내가 졌어도 위로가 필요하다면서 끌고 갔을 걸?
묻지 않아도 뻔하다.
그리고 보상은 내가 원하는 걸 해야지 왜 너네가 원하는 걸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어어’ 하는 사이에 난 들어왔던 숙소 문을 다시 나섰다.
“재밌게 놀다 와라!”
마지막으로 본 건 환하게 웃으며 손을 젓는 감독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