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0 Game No. 510 역습. =========================================================================
Game No. 510
4킬을 기록했지만 실제로 치른 경기는 6경기.
4승 2무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결과가 나왔다.
아마 오늘 경기를 보지 못한 이들은 결과를 보고 누가 장난치는 줄 알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봐도 장난치는 것 같거든.
하지만 모두 진짜다.
난 6경기를 치렀고 4승 2무를 기록했다.
가장 힘들었던 경기는 김영민과의 경기다. 두 번의 무승부에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체력보다 심적인 부담이 더 컸다. 세 번째 끝내서 망정이지 만약 거기서 말도 안 되는 무승부가 한 번 더 나왔다면……. 아. 진짜 생각하기도 싫다.
끔찍하다. 끔찍해.
3연무라니.
이겼다는 기쁨도 잠시. 앞으로 남은 경기가 3경기라는 사실에 순간 좌절했다.
지쳐 죽을 뻔했다.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무엇보다 가장 아픈 건 손목이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바로 냉찜질로 달아오른 손목을 식혀 주었다. 여전히 쑤시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훨씬 낫다.
아슬아슬했다.
[진정한 올킬러]가 아니었으면 4세트는 아예 치르지 못할 뻔 했다.
작년 위너스리그 때 얻은 스킬인 [진정한 올킬러].
잊고 있던 스킬이다.
효과를 볼 일이 별로 없었거든.
3킬을 하며 회복된 체력은 총 12%.
어마어마한 양은 아니지만 진짜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시즌이 거의 끝났을 때 얻은 스킬이라 레벨이 여전히 1이었다. 그 후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어 스킬 레벨을 올릴 필요가 거의 없었다.
이번 시즌 들어 스킬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더욱더 그랬고.
근데 이렇게 경기 시간만으로 체력을 거의 다 소모하게 될 줄이야. 이건 진짜 꿈에도 몰랐다. 스킬 포인트를 얻는 대로 바로 올려 줘야겠다.
능력 부여가 개방된 이후 스킬 포인트를 얻는 것이 힘들어졌다.
[안드로메다]와 [승우네 관광버스]가 부여 포인트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기에 이제 믿을 건 레벨 업과 업적뿐이었다.
업적도 웬만한 건 다 이뤘기 때문에 예전처럼 펑펑 터지지 않는다. 우승급 업적을 세우지 않는 한 스킬 포인트를 얻기 힘들다는 거지.
스탯 포인트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포스를 찍고 싶은데 스탯 포인트가 없다.
그냥 스탯 100까지만 맞추고 나머지는 다 포스로 찍을 걸 그랬나?
경기력과 승률에 따라 자연스레 오르는 스탯과 달리 포스는 뭘 해도 오르지 않았다. 오직 스탯 포인트로 찍어 줘야 올랐다.
언제나 후회는 늦다.
어차피 방법은 없다.
스탯을 재분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푹 쉬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당장 내일 OSL 개막전이 있거든.
그것도 오늘 신명나게 붙었던 김영민과의 경기.
경기 컨셉과 빌드 두어 개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오늘 만난 김영민이라면 이것도 부족한 것 같다. 일단 최대한 준비할 수 있는 대로 준비해야겠다.
그래도 꾸역꾸역 이겨 56승을 달성하며 다시 프로리그 다승 1위를 탈환했다.
그래. 바로 이 맛이지!
저번 시즌 기록했던 승수는 67승.
12승만 더 기록하면 작년 기록을 넘게 된다.
이번 시즌부터 한 라운드가 더 늘어났으니 전 시즌보다 3개의 라운드를 더 치르는 셈이다.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기록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프로리그 최다 승으로 다승왕 하기.
가장 이루기 쉬운 기록이다.
라운드 하나가 더 늘어났으니까. 현재 그 기록을 지니고 있는 건 김택윤으로 6라운드 75승을 거뒀다. 남은 세 라운드에서 19승만 거두면 이 기록을 깨게 된다.
솔직히 76승을 거두더라도 그렇게 기쁘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87승 이상은 거둬야 김택윤의 75승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목표는 여기에 있지 않다. 보다 멀리 보고 있다.
프로리그 최초 100승의 금자탑을 쌓고 싶다.
애매하게 87~90승을 거두면 김택윤의 기록을 확실히 깼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커뮤니티에서 팬들끼리 싸움이 붙겠지.
그런 건 사양이다.
말이 나오지 않도록 압도적인 기록을 만들며 프로리그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다.
그 다음으로 깨고 싶은 건 이영우의 한 해 최다승이다.
비공식전 포함 156승.
작년 난 140승을 기록했다.
지금 페이스대로 간다면 공식전으로만 이영우의 기록을 깨게 된다.
공식전 160승이 현재 목표다.
지금은 까마득해 보이지만 당장 눈앞에 다가온 경기에 집중을 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다.
작년에 이미 확인해 봤잖아?
이 두 가지 기록을 깬다면 꽤 많은 보상을 얻지 않을까 싶다.
수년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니까.
이밖에도 다양한 기록이 아직 남아 있다.
나중에 은퇴할 때쯤 모든 기록 꼭대기에 내 이름이 걸려 있는 걸 보고 싶다.
그게 내 선수로서의 목표다.
보상도 좋지만 이쪽이 더 우선이다.
그 전까지는 절대 은퇴하고 싶지 않다. 아니 은퇴하지 않을 것이다.
****
아스트로에게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숙소로 돌아온 S1 선수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연습 시작하자.”
결과적으로 올킬을 당하며 최악의 패배를 당했지만 그걸로 선수들을 압박하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충분한 휴식을 줌과 동시에 오늘 경기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훨씬 낫다고 임주혁 감독은 생각했다.
“어? 연습실은 왜?”
모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한 선수만이 연습실로 향했다.
바로 오늘 이승우와 경기를 치른 김영민이었다.
“아. 내일 OSL 경기 있어서 연습 조금만 더 하려고요.”
“지금은 푹 쉬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거 같은데. 명혁이랑 택윤이도 내일 경기 있는데 쉬러 갔잖아.”
내일 OSL에 출전하는 S1 선수는 모두 셋.
오늘 승리했다면 조금 더 좋은 분위기에서 개인리그를 치를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오늘의 패배를 최대한 잊는 것이 이젠 중요했다. 그러려면 휴식은 필수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에 반드시 쉬어 줘야 한다.
임주혁 감독의 말에 김영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내일 학교 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밖에 없어요.”
주말엔 학교를 가지 않지만 평일엔 학교를 가야 한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니까.
적어도 방학이 될 때까지 지금과 같은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정이다. 학교생활과 프로게이머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단순 연습생이면 상관없지만 어엿한 1군 주전이다.
이제는 개인리그까지 있어 일정이 더 많아졌다.
그렇기에 임주혁 감독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 연습이 김영민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연습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는지 김영민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엄마랑 약속했어요. 11시에는 자기로. 잠도 푹 잘 수 있고 학교 가서 쉬면 돼요. 학교 갔다 오면 연습할 시간이 거의 없어요. 1~2시간이 전부인데 그거 가지고는 부족해요. 내일 경기를 펼치는 상대가 이승우 선수잖아요. 무승부로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이번엔 꼭 이기고 싶어요.”
랩을 하는 것처럼 말이 빠르다.
한 호흡에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내뱉은 김영민이 붉어진 얼굴로 숨을 가다듬었다.
임주혁 감독이 김영민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열의가 그대로 전해졌다.
“좋아.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VOD 중심으로 전략 구성 중심으로 연습해. 오늘 3경기 했으니까 손목 관리해 주고.”
“감사합니다!”
‘좋아’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연습실로 달려가는 김영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어서 그런지 입가에 웃음꽃이 폈다.
그 모습에 임주혁 감독의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좋을까?”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중학생이었다.
****
청풍대첩이라 이름 붙여진 위너스리그 2무 사태가 지나간 지 하루 만에 이승우와 김영민이 다시 맞붙었다.
OSL 개막전.
사람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 찾는 사람으로 인해 드림 스튜디오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거의 4강 대진급 관중이다.
물론 이들을 제외하고도 출전하는 선수의 면면이 굉장히 화려했지만 대부분 1경기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간 이승우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준 선수는 꽤 있었지만 이승우를 꺾어 낸 선수는 없었다.
김영민은 어제 그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 줬다.
특히 이승우 이전, 혹은 이승우와 같은 세대에 데뷔한 선수가 아니라 이승우보다 뒤늦게 나온 선수기에 그 기대가 더 컸다.
그 기대는 승자 예측 투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59% 대 41%.
물론 59%가 이승우고 41%가 김영민이었지만 최근 들어 이승우의 투표율 앞자리가 5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리쌍을 상대로도 최소 6, 어쩔 땐 7까지 나온다.
리쌍도 이런데 다른 선수는 말할 필요도 없다.
랭킹 10위권을 벗어나는 선수면 80% 이상의 표가 이승우에게 몰린다.
김영민이 기록한 41%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김영민을 응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갈망 때문일까?
올해 최고의 이변이 결국 나와 버렸다.
김영민이 이승우를 개막전에서 꺾어 낸 것이다.
이승우의 GG가 나오는 순간 경기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니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는 함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 둘이 만나면 명 경기를 만들어 냈다.
결과적으로 이승우의 운이 안 좋았다.
빌드가 너무 심하게 갈렸다.
병력 위주로 경기를 운영한 이승우와 수비 위주로 경기를 김영민.
이승우가 확장 타이밍을 늦춘 채 한 번 공격을 시도했지만 김영민의 완벽한 수비에 그만 막히고 말았다. 여기서 경기가 조금 이상해졌다.
반드시 피해를 줬어야 했는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많이 생산한 병력이 무의미하게 된 것이다.
이득을 봐야 할 때 이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그 기회가 상대에게 넘어는 건 당연하다.
김영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유리해졌다고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꾹 참고 병력을 모았다. 2/1업이 될 때까지 묵묵히 수비에만 집중했다.
정확히 2/1업이 되었을 때 병력을 중앙으로 진출시켰다. 동시에 추가 확장을 가져갔다.
차분하다.
차분해도 너무 차분하다.
전장을 장악하기 전까지 확장을 하지 않는다. 본진 자원이 떨어져도, 앞마당 자원이 떨어져도 마찬가지다. 전장을 자신이 장악했다고 느꼈을 때 동시에 확장 2개를 확보했다.
미리 확보했다가 이승우의 난전에 휘둘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답이었다.
센터의 주인이 이승우였다면 추가 확장을 쉽게 저지당했을 거다.
추가 확장을 공격하는 척해 병력을 몰리게 한 후 본진을 공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병력이 우왕좌왕 방황하게 되고 용족에게 제단이 늘어날 수 있는 시간을 주게 된다.
그러한 단점을 알고 있기에 김영민은 최대한 확장 타이밍을 늦췄다.
이승우의 장점이 살아나지 못하도록.
센터를 장악한 김영민은 물 만난 고기처럼 전장을 휘저었다.
소수 병력을 보내 동시 3군데 확장을 견제했다.
아무리 이승우라도 자원을 먹어야 생산을 할 수 있다.
전투가 반복되는 사이 환국의 3/2업이 완성되었다.
2/1업도 굉장히 강하지만 3/2업은 진짜 사기라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
같은 병력으로 절대 환국을 이길 수 없다.
결국 마지막 자원 줄이 끊긴 이승우가 GG를 선언하며 경기가 끝났다.
그밖에도 이변이 속출했다.
임형규가 이영우를 꺾었고 정명혁이 이제운을 꺾었다.
마지막 4경기에선 한민규가 김택윤을 꺾으며 OSL 1회차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우세할 것으로 예측되었던 선수들, 택승리쌍이 모두 패한 것이다.
김택윤이야 요즘 컨디션 난조로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해도 삼대장은 건재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에 이들의 패배가 더욱더 놀라웠다.
이래서 신들의 전쟁이 재미있는 거다.
항상 잘하는 선수,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주는 선수가 이기는 것이 아니니까.
택승리쌍의 패배로 OSL이 조금 더 흥미진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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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전적 3승 2무 1패.
축구같네요.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