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0 Game No. 500 Welcome to MSL. =========================================================================
그때 위로 쭉 빠져 있던 용아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중도, 중계진도, 옵저버도 눈치 채지 못했다.
본진에서 나온 용아와 용안이 앞마당으로 나온 직후였다.
앞마당 소로를 병력이 막고 있자 궁병이 전진을 잠시 멈췄다. 뒤에서 따라오는 일꾼이 길을 뚫으면 함께 전진 할 요량이었다.
-아. 이거 뚫릴 것 같은데요? 상대적으로 궁병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진영이 환국에게 너무 좋습니다. 용아도 달라붙으면 잡을 수 있겠지만 지형 상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일꾼도 압박입니다. 압박! 일꾼 잡다가 궁병에 용아가 다 죽어요!
일꾼이 소로를 통과하는 순간.
-어? 용아? 용아가 뒤에 있습니다!
-시야가 없어요. 저기에!!!
-이러면 용아 무혈입성 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승전보 올릴 생각에 기분 좋은 궁병들인데 이렇게 용아를 만나네요.
-산을 넘다가 산적을 만나는 것보다 더 황당한 상황이죠.
시야만 있다면 궁병이 아래에서 다가오는 용아를 쏠 수 있지만 지금은 시야가 전혀 없는 상태. 용아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궁병 뒤로 파고들었다.
실로 절묘한 타이밍.
일꾼이 이미 안으로 들어간 후라 밖으로 나오기도 애매하다.
소로 안쪽에도 용아와 용안이 있었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환국의 병력. 화력이 앞뒤로 분산되었다.
결과적으로 용아가 앞뒤로 환국의 병력을 감싸 안는 형태가 되었다.
-아!!! 이승우!! 상황을 이렇게 만드나요?!
-진짜 저 용아 2기는 언제 빼 놓은건가요? 귀신같이 빼놨네요.
-합류 타이밍도 최곱니다. 조금만 늦었다면, 반대로 조금만 빨랐어도 이건 진짜 아무 것도 아니었을 텐데요.
-저 용아 2기만 아니었으면 진짜 뚫리는 병력 수였거든요? 근데 이건 봐야 해요. 지켜봐야합니다!
전투가 혼전 양상으로 흘렀다.
아직은 누가 이길 지 알 수 없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더 잘 싸우는 선수가 이긴다. 원래 구도였다면 김영민이 압도하는 분위기로 흐를 뻔 했다. 입구가 좁아 용아와 용안이 궁병을 동시에 때릴 수 없었으니까.
반면 궁병은 원거리 공격 유닛이라 소로 밖에서 병력을 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승우가 2용아를 돌리는 바람에 상황이 급변했다.
이제 반대로 김영민의 병력이 포위되었다.
-아! 화력이 집중되지 못해요!
-뒤에 있는 용아도 끊어야하거든요! 그리고 앞에 있는 용안과 용아고 잡아야하고요! 화력이 분산 되요!
-이러면 뒤에 있는 궁병도, 미리 들어가 있는 일꾼도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모두 피해를 받아요!
뒤에 있는 용아를 정리했지만 궁병 5기가 죽었다.
원래는 1기도 죽지 않았어야 할 병력이었다.
-이승우 선수!!! 진짜 용아 컨트롤 환상적이네요!
-그냥 용아가 아닙니다! 영웅 용아입니다! 영웅은 죽지 않아요!!!!!!
-와. 진짜 이런 컨트롤을. 세상에나. 진짜 말이 안 나옵니다.
맞고 있는 용아를 뒤로 빼 용력충전소에서 용력을 회복시킨다. 용아가 빠져나가면서 만들어진 틈은 용안이 대신 메꾼다.
잡혀도 상관없다.
환국도 일꾼을 대부분 동원했다. 막기만 하면 이긴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중요한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이거 막히나요?
-아. 궁병과 일꾼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길을 막아줄 일꾼이 없으면 용아가 그대로 궁병 한테 달라붙습니다!
-반면 용아는 계속 쌓이죠. 이러면 못 이겨요. 이승우는 제단 2개에서만 용아 찍고 테크 타도 이제 됩니다!
철광을 채취하는 일꾼의 수는 7기.
이제 와서 금광을 올릴 수도 없다.
남은 건 궁병을 더 모아 다시 한 번 올인을 가는 것.
용족은 이제 수비만 해내면 된다.
환국전에서 잘 볼 수 없는, 용무관을 지어 앞마당 쪽에 용광포를 소환한 후 천천히 앞마당을 가져가도 된다.
천자총통이 나오려면 멀었다.
아니 나올 수 없다.
상황이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뒤로 돌아온 2용아 때문에.
제 3자도 생각하기 힘들 걸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가 해냈다. 그 것이 이승우와 다른 선수들의 차이였다. 최선의 수를 생각해낸다는 것.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
오늘도 그러한 장점이 나왔다.
단 한 수에 김영민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아. 김영민 선수. 표정 일그러졌습니다.
-본인이 생각해도 황당하거든요! 분명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을텐데.
-아직 경기 끝난 건 아니거든요? 어쨌든 이승우도 용안 빼서 자원 채취 오래 못했거든요? 이제는 돌아오는 용아도 없습니다. 마지막 공격 가봐야죠!
최승원 해설이 마지막까지 김영민에게 힘을 보탰지만 이젠 힘들었다. 용아가 붙는 걸 막을 수 없다. 일점사와 다방향 흩어지기로 피해를 최소화해보려 했지만 애초에 스팩 자체가 다르다.
훨씬 강하고 튼튼한 용아가 궁병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와. 쩌네. 저걸 어떻게 막지?”
“보고도 안 믿긴다.”
“용아가 진짜 미쳤다. 그건 진짜 말도 안 된다.”
경기에 대해 토론했던 이들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다.
이승우를 의심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아. 김영민 선수. 모든 궁병이 잡혀버립니다.
-이러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죠. GG! 김영민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아. 진짜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네요. 잘 만들어진 액션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습니다.
-액션신만 화려한 게 아니라 스토리까지 완벽한 영화였어요!
그렇게 1경기 승리는 이승우의 것이 되었다.
****
와. 온 몸에 진이 다 빠지네.
진짜 힘들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함께 들고 온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았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많이 흘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이 흘렸다.
2용아가 결정적이었다.
그게 없었다면 경기를 이길 수 없었을거다.
얘는 괴물이야. 괴물.
조금만 틈을 주면 주저없이 발톱을 들이민다.
기세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수를 내민다.
전진 제단을 무효화 시킬 때까지만 해도 환국이 좋았다.
그 병력이 그대로 올라왔더라면 꼼짝없이 밀렸을거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네.
초창기 이영우와 경기를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거다.
나이까지 고려했을 때 김영민은 내가 게임을 한 선수 중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 재능이 한 번 더 폭발한다면 다음엔 더 재미있는 경기를 할 수 있을거다.
그래서 세레모니를 준비했다.
김영민을 자극하기 위해서.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이런 이야깃거리 만드는 것 자체가 이 스포츠를 위한 일이다. 나중에 수많은 화제를 만들어 낼테니까. 물론 최악의 경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지만.
부스 밖으로 나오자마자 도 수코님이 다가왔다.
“정말 할 거야?”
“당연하죠.”
“애 상대로 너무 자극적인거 아냐?”
“에이. 그런거 따지면 안되죠. 같은 선수인데.”
“그래? 모르겠다. 네가 한다니까 준비는 해왔다.”
도 수코님이 작은 현수막을 나에게 건네줬다.
좋았어.
그럼 한 번 불 좀 질러볼까?
****
-아직 아쉬움에 부스를 나오지 못하는 김영민. 표정에 안타까움이 가득 보입니다.
-임주혁 감독과 최연규 코치가 모두 들어가서 김영민 선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S1이 얼마나 김영민을 아끼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4강도 아니고 32강인데 감독과 수석코치가 모두 경기장을 찾았다. 단 한 선수를 위해서.
-어? 이승우 선수 뭔가 준비한 것이 있나 봅니다? 바로 대기실로 가지 않죠?
-그러게요? 손에 천 같은 걸 들고 있는데요?
이승우가 성큼성큼 메인 카메라를 향해 걸어갔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메인 카메라가 이승우를 바로 잡았다.
-세레모니를 준비해온 모양입니다!
-경기 전에 S1 쪽에서 먼저 도발을 했었거든요! 나 이승우에게 도발을 하려면 그 뒷감당까지 준비해야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승우 선수 정말 상황 재미있게 만드네요. 14살 선수에게 무슨 세레모니냐 하겠지만 선수 대 선수로서 이런 건 굉장히 좋은 현상이거든요!
-그리고 단순히 김영민 선수에게 하는 세레모니가 아니라 S1 전체에게 하는 세레모니기도 합니다. 요즘 승승장구하고 있긴 하지만 S1에 맺힌 게 많은 이승우 선수 아닙니까!
“오. 대박!”
“야. 역시 이승우. 이런거 준비해왔을 줄 알았어.”
“S1 쓸데없이 먼저 도발했다가 당하네.”
중앙에 선 이승우가 손에 들고 있던 현수막을 펼쳤다.
현수막엔 한 문장이 써 있었다.
-Welcome to MSL.
****
<ㅎㄷㄷㄷ 포스 지리네.>
<크. 금배지 있는 선수의 여유 아니겠냨ㅋㅋㅋㅋ>
<그러겤ㅋㅋㅋ 저번 시즌에 저런거 했으면 지금보다 포스 없었을듯 ㅋㅋㅋㅋ>
<임쵱 ㅂㄷㅂㄷ하는거 봤음?ㅋㅋㅋㅋ>
<포커페이스 유지하는데 개빡쳐보였음ㅋㅋㅋ임주혁 얼굴 빨개지곸ㅋㅋㅋㅋㅋ>
<최연규 말 걸면 한 대 칠 거 같더랔ㅋㅋ 고릴라 포스 ㅎㄷㄷ>
<지금 이 시대의 황제는 ㄹㅇ 이승우인듯. 빼박임.>
이승우의 세레모니는 커뮤니티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훌륭한 경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경기 외적인 도발을 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오늘 이승우가 제대로 불을 지폈다.
이승우의 세레모니를 본 건 김영민 뿐이 아니었다.
임주혁 감독과 최연규 코치도 같이 봤다.
선수 시절 그 어떤 선수보다 상대 팀에게 도발을 많이 던졌던 이들이 이번엔 제대로 당했다.
S1 쪽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김영민이 바로 마인드컨트롤을 위해 선수 대기석으로 들어갔다.
1경기를 끝낸 선수들이 무대를 빠져나갔음에도 아직도 무대는 타오를 듯 뜨거웠다.
그 후 벌어진 윤영태와 신상운의 대결.
애석하게도 사람들의 관심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윤영태의 화끈한 전투로 경기가 끝났다.
승자조에서 맞붙은 이승우와 윤영태.
윤영태도 신상운에게 승리를 거두며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승우의 기세를 상대할 순 없었다.
완벽한 용혼 싸움으로 가볍게 승리를 거두고 이승우가 가장 먼저 16강으로 향했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패자조로 향했다.
1세트에서 세레모니를 당한 김영민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신상운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미라클 보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힘들 수록 더 큰 힘을 내는 선수다.
세레모니의 여파로 멘탈이 크게 흔들렸다면 이대로 짐을 쌀 수도 있다.
프로리그와 다른 개인리그의 쓴 맛을 제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잠시 후 시작 된 패자전.
경기를 하는 김영민의 눈빛이 이글거린다.
불타오른다.
상대를 잡아먹는 맹수의 눈.
김영민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사나워졌다.
김영민이 거칠게 신상운을 몰아붙였다.
지루하다는 평을 받는 환환전.
하지만 이번 경기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10초가 멀다하고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전투 끝에 김영민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상처 입은 맹수의 포효는 최종전에서도 이어졌다.
전투의 신이자 칠룡의 일원인 윤영태를 전투로 잡아내며 16강행을 확정지었다.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치러진 MSL 32강 A조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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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