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9 Game No. 499 필살의 컨트롤. =========================================================================
이승우와 김영민이 맞붙는 전장은 청풍이다.
1시와 7시에 스타팅 포인트가 위치해 있는 전장.
가장 특징으론 앞마당과 중앙으로 이어져 있는 소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소로는 몸집이 작은 유닛 밖에 지나갈 수 없다. 일꾼와 궁병은 지나갈 수 있지만 화차와 천자총통은 지나갈 수 없다. 용족 역시 마찬가지다. 용아는 지나갈 수 있지만 용혼은 지나갈 수 없다.
때문에 용족의 전진 건물 시리즈가 자주 나오는 전략이다.
이승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전진 건물로 대표되는 전략 아니겠는가?
오늘도 어김없이 전진 제단을 꺼내들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본진을 뛰쳐나오는 용안.
역시 이래야 이승우답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이승우 선수 굉장히 빠르게 센터에 제단을 소환합니다.
-초반 컨트롤에 자신 있는 이승우 선수 아니겠습니까? 네가 프로리그에서 요즘 잘한다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양인데 개인리그는 처음이지? 내가 제대로 교육 시켜줄게라고 외치는 것 같네요.
-일종의 환영식이죠! 환영식!
-저렇게 순수한 얼굴로 앉아 있는 김영민 선수! 아. 곧 호되게 당하겠는데요?
상대전적 1:0.
이승우가 이기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번 대결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지금의 김영민이라면 이승우를 당황하게 만들지 않을까하는 기대.
7시, 김영민의 본진과 가까운 소로 언덕에 제단을 소환한 용안이 김영민의 본진으로 향했다. 소로에 미리 마중 나와 있는 일군 1기. 빠르게 본진을 정찰하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1로 싸우면 용안이 진다.
다른 선수라면 옆으로 돌아가는 걸 택했을지도 모르지만 이승우는 달랐다.
일꾼은 홀드가 안 된다는 것을 이용 공격을 해 일꾼을 뒤로 살짝 물러나게 만든 후 살짝 보이는 앞마당 철광을 우 클릭해 일꾼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승우의 센스에 감탄이 터졌다.
사소하지만 이런 것부터 전투의 시작이다.
-정말 센스 있는 플레이네요!
-기 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습니다!
-돌아가도 되거든요. 사실! 어차피 큰 차이 없어요. 지금 상황에선! 그런데 굳이 그러지 않아요. 일꾼이 막고 있는 곳을 기어코 뚫고 들어갑니다!
일꾼을 따돌린 용안이 김영민의 본진으로 유유히 들어섰다.
****
이것 봐라?
용안이 안으로 파고드는데 금광을 짓지 않고 바로 훈련도감을 올린다?
이건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금광 러시를 하든 말든 상관없다. 오히려 그걸 돈 낭비로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이 느껴진다. 동시에 전진 제단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확실한 건 빌드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내가 만든 판에 들어오지 절대 들어오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제 두 번째 대결.
놀랍게도 전보다 크게 성장해있었다. 그때는 다듬어지지 않은 야성과 본능으로 상대를 압박했다면 지금은 그 것이 잘 정돈되었다. 그렇다고 야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인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도록.
아직 그 것이 완벽히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땐 모른다. 직접 마주해야만 느낄 수 있다.
김영민의 유닛과 건물에서 이영우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쉽게 해서는 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최근 연달아 우승을 차지하면서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욕을 자극하는 선수가 거의 사라졌으니까.
이제운과 이영우를 상대할 때 긴장이 되긴 하지만 질 것 같다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는다. 한 두 세트는 내주더라도 결국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김영민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용안으로 훈련도감을 건설하는 일꾼을 때리기 시작했다. 잡아주면 좋고 못 잡아도 괜찮다. 체력을 빼주면 된다. 어차피 체력이 떨어진 일꾼은 나중에 용아가 와서 잡아 줄 테니까.
그저 신경만 거슬리게 하면 그만이다.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이승우 선수 집요하게 괴롭혀 주네요.
-그래도 김영민 선수도 컨트롤 좋아요. 일꾼이 잡히지 않고 잘 도망쳤습니다.
-이제 용아 견제에 얼마나 휘둘리지 않느냐가 관건입니다. 이거 크게 휘둘리면 진짜 아무 것도 못하고 밀봉당하거든요!
-입구를 막진 않았지만 군영 옆에 바짝 붙여서 훈련도감을 건설했거든요? 이러면 기본적으로 궁병은 지나가지만 용아는 들어오지 못하는 심시티가 완성됩니다.
훈련도감이 반 쯤 완성되었을 때 정찰을 떠나는 일꾼.
앞마당을 지나 소로로 올라간 일꾼이 1시 쪽으로 쭉 올라가지 않고 갑자기 방향을 꺾었다.
정확히 이승우의 전진 제단이 소환되고 있는 곳이었다.
-이야!!!!! 알고 있어요!
-감각이 진짜 날카로운데요?!
-백전노장처럼 노련합니다! 이걸 한 번 찾아보네요!
-이렇게 빨리 들키면 수월하게 막힐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이러면 대처가 중요하죠. 무난하게 전진 제단에서 나오는 용아를 막고 앞마당 타이밍 러시로 반격을 노릴 것이냐? 아니면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확장 다 먹고 중후반으로 넘어갈 것이냐?
김영민의 선택은 둘 중에 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과감한 수를 선택했다.
-2 훈련도감!!!!
-이게 뭡니까?!?!?!
-정말 대놓고 짓네요! 이건 용아 막아내자마자 바로 일꾼 데리고 역러시 가겠다는 겁니다!
-자신감의 표출입니다. 용안으로 이 상황을 보고 있는 이승우 선수가 정말 당차다 싶을 겁니다.
“와. 김영민도 한 성깔 한다?”
“절대 안 지려고 하네.”
“존나 컨트롤에 자신 있는거지. 이승우한테 이렇게 하는 건 진짜 오랜만에 보네.”
전진 제단?
그럼 난 2훈련도감.
김영민은 이승우의 도발에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큰 도발을 던졌다.
두 번째 훈련도감을 보는 이승우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즐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승우 선수도 화끈하게 하네요! 본진에 바로 제단을 추가로 올립니다!
-소로를 통해서 오면 러시 거리가 굉장히 가깝지 않습니까? 어설프게 테크 올리다간 밀릴 수도 있다고 생각인거죠!
-이게 의미하는 바가 꽤 큽니다. 오히려 이승우 선수가 빌드 상 위축 된 겁니다! 다른 환국과 반응이 다르니까! 망루 짓고 앞마당을 확보하는 환국이 아니라 2훈련도감을 올려버리는 환국이니까!
확실히 지금 위기감을 느낀 건 이승우 쪽이었다.
오히려 김영민은 편안해보였다.
잃을 것이 없는 자의 마인드.
14살이 이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이승우 선수 용아 찌르기 가지만 적극적으로 쓸 수가 없어요. 용아 잃으면 안 되거든요!
-심시티가 아주 좋아요. 천연 망루입니다. 천연망루!
외곽을 돌면서 아까 체력을 깎아놓은 일꾼을 잡는 용아. 더 깊숙이 파고들지는 않는 모습니다. 안으로 갔다가 일꾼 비비기에 갇혀 비명횡사라도 하면 본진 제단에서 용아가 생산되기도 전에 치즈 러시를 당할 수 있다.
지금은 용아를 안정적으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완벽한 컨트롤입니다! 이게 MSL입니다! MSL!
-궁병이 용아를 드리블하고 있어요! 자꾸 수렁으로 몰아 넣습니다!
-그 와중에 체력 약한 일꾼 잡으며 길 만들어내는 이승우 선수의 순간 판단도 정말 일품입니다.
두 선수가 만들어낸 상황에 관중들이 입을 떡 벌렸다.
유닛들이 각자 움직인다.
마치 스스로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 처럼.
이러면서 생산도 해주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단 용아의 용력이 전부 깎였다. 더 이상 견제를 갈수가 없다.
이제 공격의 턴은 김영민에게 넘어갔다.
이승우는 김영민의 치즈 러시를 막아내야 한다.
위기감을 느꼈는지 본진 제단이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도합 3제단.
초반 가난하게 전진 제단을 시도했기에 조금은 무리를 해서 올린 제단이다. 이승우도 일꾼을 쉰 채 용아 생산에 모든 걸 걸고 있었다. 조금 배를 불리려다 그대로 본진이 밀려버릴 수도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수비 하나만 생각해야한다.
아직 완성 된 제단은 하나뿐이라 궁병이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2훈련도감이라 궁병이 쌓이는 속도가 엄청나죠.
-전진 제단은 어차피 곧 무용지물이 될 제단입니다. 그럼 본진에 제단 하나 밖에 남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세번째 제단까지 늘려준 겁니다. 이승우 선수 판단 아주 좋아요.
-김영민 선수 금광 안파죠. 아예 팔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이번 러시로 경기 끝내겠다는 거에요!
-그건 이승우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단에서 용아만 찌고 있어요.
-천하의 이승우가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승우도 땀을 흘리는 선수였습니다! 비록 몇 방울 되지 않지만 땀을 흘리고 있어요!
-그간 하도 땀을 안 흘려서 땀이 나지 않는 선수인 줄 알았습니다.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이승우의 이마에 땀을 맺히게 만드는 선수가 이영우도! 이제운도! 임형규도 아닌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김영민 선수라뇨!
이 둘의 첫 대결도 그랬다.
이승우의 전진 건물을 단 번에 눈치 챈 김영민.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조금만 더 노련했더라면 그 경기도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좋다.
주도권 자체를 잡은 상황이니까.
이제 남은 건 전투 한 번.
그 전투의 승자가 이 경기의 승자가 된다.
-32강부터 명경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자! 궁병 모였습니다! 이제 나가요!
-당장 병력은 김영민 선수가 많아요! 이승우는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궁병이 한 부대 정도 쌓인 김영민이 슬금슬금 전진을 시도했다. 첫 번째 목표는 바로 전진되어 지어진 제단이었다.
일꾼 1기가 용아의 길을 기가 막히게 막았다. 궁병의 일점사에 죽어나가는 용아. 용아가 전진 제단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위로 빠졌다. 본진에서 생산 되는 용아와 합쳐쳐야 한다.
각개격파는 금물이다.
-김영민 선수 판단 아주 좋아요! 솟대만 깨고 바로 1시로 올라갑니다!
-동시에 본진에서 나오는 일꾼! 이야!! 타이밍이 그냥, 아주 막. 죽여주네요!
붉은 선 두 줄기가 1시로 향했다.
하나는 궁병이고 하나는 일꾼이었다.
이제 돌아가는 제단은 2개.
압박을 느낀 이승우가 본진 입구에 용력 충전소를 소환했다. 여유가 되면 앞마당에 솟대를 소환하고 거기가 용력 충전소를 지은 후 소로에 수비라인을 만드는 것이 좋았지만 워낙 자원을 타이트하게 쓰고 있었기에 그 정도 여유가 되지는 않았다.
김영민이 좋은 타이밍에 치고 나오기도 했고.
-이제 전투가 관건입니다. 당장 화력 자체는 김영민 선수가 절대 뒤지지 않습니다. 일꾼 앞세우고 소로 뚫고 올라가면 이승우 선수도 위기 맞이할 수도 있거든요!
일꾼이 1시 철광을 찍어둔 상태라 소로를 막고 있는 건 의미가 없다. 역으로 용아가 일꾼에 갇혀 버릴지도 모른다.
“이거 김영민이 이기는 거 아냐?”
“에이. 설마. 김영민이 잘하긴 하는데 이승우가 지것냐?”
설마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남자의 얼굴에도 불안이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