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5 Game No. 495 땅굴이 요기잉네? =========================================================================
모두 말없이 경기에 집중했다.
무거운 공기가 장내를 짓눌렀다.
1세트는 기세를 잡는 세트다.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한다.
특히 위너스 리그에선 더욱 더 그렇다. 1세트에서 패배하면 엔트리에서 계속 뒤질 수 밖에 없다. 원하는 전장에서 원하는 종족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계속해서 상대한테 끌려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세와 상대를 저격할 수 있는 키를 잡기 위해선 1세트 이상 앞서 나갈 수 있게 초반부터 힘을 꽉 줘야한다.
-박성찬 선수 과감하게 앞마당을 빠르게 가져가려는 모습을 보여주네요.
-거리도 딱 대각선입니다! 도감 더블 하기에 딱 좋은 거리죠.
-요즘 박성찬 선수 감이 좋은데요?!
박성찬은 앞마당에 훈련도감을 지은 후 군영을 가져가는 빌드를 택했다.
굉장히 부유한 빌드다.
반면 이승우는 본진에서 제단을 올리고 용혼의 사업까지 돌려줬다.
빌드만 놓고 보자면 박성찬이 기분 좋은 상황이다.
제단을 지은 후 정찰을 나간 용안이 11시를 거쳐 박성찬의 본진이 있는 1시 쪽으로 향했다.
-정찰 자체는 굉장히 빨리 되는 거거든요? 이러면 이승우 선수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많아지죠.
이승우의 정찰이 빨랐다. 아예 정찰을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은 꽤 빠른 타이밍에 보낸 편이었다. 결과적으로 박성찬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맞춰 갈 것이냐?
공격을 시도할 것이냐?
더 배를 불릴 것이냐?
사실 첫 번째는 의미 없는 선택이다.
상대가 자신보다 실력이 훨씬 뛰어나다면, 그래서 위축 되었다면 모를까 맞춰가는 걸로는 변수를 만들기 힘들다.
이승우라면 세 번째 방법이 가장 좋다.
기본적으로 용족과 환국의 경기는 용족이 유리하다. 원래가 그렇다. 가끔 환 사기라고 하긴 하지만 용족이 완벽하게 하면 환국이 이기기 굉장히 힘들다. 앞마당에 군영을 먼저 가는 체제라 테크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5화통이나 4화통 타이밍이 나올 순 있어도 금와나 FD 혹은 2화통으로 찌르는 타이밍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걸 역 이용해 2개의 확장을 동시에 가져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선택이다.
러시 거리가 먼건 환국도 마찬가지다.
가로나 세로면 모를까 대각선에서 4화통이나 5화통 타이밍을 잡기에 애매하다.
나가다가 중간에 허리가 끊길 수도 있고 길이 막혀 충원 병력이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환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
본진 옆 철광 확장과 12시 금광 확장을 이어 먹으며 기갑 병력의 2/1업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용족에겐 타 스타팅 확장도 먹고 거기다 제단을 지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업그레이드가 갖춰진 환국이 한 방 병력을 진출시키지만 이미 용족의 확장과 제단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 있고 술력이 차 있는 나가 역시 몇 기가 존재한다.
첫 싸움에서 선방을 거두지만 결국 용족의 회전력에 밀려 진출 한 병력의 덩어리가 점점 줄어들다 이내 전멸당하고 추가 확장으로 밀려드는 용족의 병력을 막지 못해 항복 선언을 하는 것.
이것이 최고의 용족이 환국을 잡아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이 시나리오대로 가면 용족이 환국을 무조건 이길 수 있다.
물론 중간에 NG가 날 수 있다.
추가 병력이 환국의 덩어리를 줄이지 못할 수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전투에 대패해 추가 병력이 생산 되기 전 확장 두어 개가 박살날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화차 견제에 용안을 다수 잃고 확장과 제단을 늘리는 타이밍을 빼앗겨 버릴 수도 있고.
환국이 잘해서. 혹은 용족이 못해서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이처럼 변수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용족이 완벽하게 한다면 중간에 신경이 거슬리는 일이 생기긴 하겠지만 큰 흐름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
송병호나 김택윤이 전성기를 구가했을 때 이러한 방법으로 환국을 많이 잡아냈다.
괜히 상성 종족이 아닌 것이다.
이승우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먹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 상대가 어떤 환국이든.
하지만 이승우는 이런 뻔 한 시나리오를 택하지 않았다.
흥행에는 성공하지만 관객들에게 너무 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택한 시나리오는 보다 화끈하고, 역동적인 것이었다.
-이승우 선수 11시 철광 확장 쪽에 솟대 올립니다!
-전진 건물이죠!
-이승우 선수 진짜 경기 재미있게 하네요. 무난하게 가면 이길 수 있거든요! 실제로 그래왔거든요! 근데 그렇게 안가요. 실패하면 경기가 크게 기우는! 위험성이 있는 전진 건물을 들고 나왔어요! 확장을 하면서 가는게 아닙니다. 확장을 뒤로 늦추고 전진 건물부터 짓는거예요!
-안전한 걸 선호하는게 아니라 스릴을 즐기는 유형 인거죠! 이런 선수가 있어야 또 재미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진 솟대가 올라가는 순간 환호가 터졌다.
장르가 바뀌었다.
뻔한 역사극에서 액션물로.
전진 솟대에서 용의 신전이 소환되었다.
빠르다.
본진에서 용혼의 생산을 멈춰가며, 그러니까 금광을 아껴서 최대한 타이밍을 앞당겼다. 전진 솟대에서 소환되는 건 용의 신전만이 아니었다.
-제단!!!!
-이승우 선수 경기 길게 가져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끝내버리겠다는 거예요!
제단은 하나가 아니었다.
2개.
본진의 것까지 포함하면 총 3개다.
이 말은 앞마당 확장을 포기했다는 말이었다.
모험이다.
그리고 올인이다.
이승우의 과감한 빌드에 김정식 해설이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나. 이건 단순히 지룡으로 흔들겠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승우 선수는 뒤가 없어요. 여기에 모든 걸 걸어야하는 겁니다! 진짜 대단하네요. 제가 이승우 선수를 칭찬해지고 싶은게 뭐냐면 무난하게 해도 이길 확률이 크거든요? 아니 거의 100% 이길 수 있거든요? 근데 그렇게 안해요. 이렇게 준비를 해옵니다. 보통 이런 준비는 상대방에서 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반대로 이승우 선수가 이런 빌드를 준비해옵니다! 이러면 상대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미쳐 버리는거죠!
시대의 지배자는 항상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배자를 상대하는 선수들의 패턴도 항상 똑같았다.
지배자는 무난한 빌드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원 지향적인 빌드.
약간 위험하긴 하지만 초반을 무난히 넘기면 거의 질수가 없는 빌드.
지배자를 상대하는 선수들은 어떻게든 전략적인 빌드, 올인성 빌드를 만들어내 지배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애쓴다. 무난하게 넘어가면 진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를 쓴다.
초반에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
보다 앞서나가기 위해서.
그럼에도 지배자들의 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어떤 러시가 와도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전성기가 괜히 전성기가 아니다.
피지컬부터 시작해서 직감까지.
모든 면이 정점에 올라 있다.
이승우 이전에 시대를 주름잡았던 이영우도 이런 부류였다. 간혹 전략을 걸 때도 있지만 그건 상대를 긴장시키기 위한 위협 정도로만 쓰였다.
나도 이런 빌드를 쓸 수 있으니 너무 마음 놓고 있지 말라는.
이런 이영우를 이기기 위해 수많은 빌드가 나왔다.
몇 개는 통했지만 대부분 이영우의 철벽같은 수비에 막혀 무너졌다. 그때 느끼는 좌절감. 그 괴물에 대부분의 선수들이 잡아먹혔다.
이영우는 이런 식으로 시대를 지배해왔다.
이승우는 다르다.
오히려 본인이 전략적인 수를 쓴다.
무난하게 가면 승률이 더 좋을 텐데 위험을 무릅쓰고 올인을 한다.
보다 적극적이다.
지금도 그렇다.
저기에 제단을 2개나 지을 필요도 없다.
전진 건물은 용의 신전에서 멈추고 앞마당을 가져가며 중반 운영 싸움으로 가도 된다.
그렇게 말하는 이에게 이승우가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재미없다고.
지룡이 나오기 전 운룡에 용아와 용혼을 본진으로 실어나를거다. 그 후 지룡과 용혼을 꾸준히 실어나르며 아예 경기를 끝내겠지.
굉장히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컨트롤이다.
지상 전장을 섬 전장처럼 운영하는 것인데 한 번 삐끗하게 되면 병력이 제때 합류 하지 못한다. 그 몇초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전진 제단에서 생산 된 용혼 2기가 늦게 오게 되면 지룡의 활동 범위가 줄어들고 결국 막히게 된다.
모 아니면 도.
-혹시 몰라 12시 쪽을 일꾼으로 정찰해보는 박성찬 선수지만. 아. 거기에 건물은 없어요!
-보다 깊은 곳에 있죠. 11시 철광 뒤로 일꾼을 깊숙하게 집어넣어야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무빙으로 슥 보고 가면 발견할 수가 없어요!
-기가 막힌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술래 일꾼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는데 용안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못 찾겠다. 꾀꼬리하면 나오지 않거든요! 무조건 직접 찾아야하거든요!
11시 철광 확장까지 들린 일꾼.
이 정찰이 오히려 박성찬에게 마이너스가 됐다.
12시와 11시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훤히 봤기 때문에 전진 건물에 대해 안심하게 된 것이다.
11시 철광까지 확인한 일꾼이 이승우의 본진으로 향했다.
박성찬도 우승자 출신.
무언가 공기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11시에서 내려오는 일꾼을 올라가던 용혼이 마주쳤다.
무빙을 하며 일꾼을 때리는 용혼.
-앞마당을 보여주면 안되죠! 그러면 여태까지 애 쓴게 다 무효화 됩니다!
-전진 건물은 숨겼지만 지금 이 타이밍에 앞마당에 신전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 바로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대장간 올라가는거죠!
일촉즉발.
폭스의 팬은 앞마당까지 일꾼이 살아가기를 바랐고 아스트로의 팬들은 그 전에 일꾼이 죽기를 바랐다.
-30! 20! 체력 쭉쭉 떨어집니다!
-본진에서 용혼 추가 생산 안 되나요? 이 대로면 앞마당에 신전 없는 거 확인하거든요!!!!
박성찬에게 마지막 기회가 왔다.
-본진에서 뭐 내려오거든요? 저거 용혼인가요? 급하게 가면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신은 이승우 편이었다. 언덕을 내려온 용혼이 일꾼을 잡아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화면이 박성찬의 개인 화면으로 바뀌었다. 앞마당 신전이 지어지는 자리는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앞마당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폭스 팬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씁쓸함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승부는 급격하게 이승우에게 기울었다.
지금 대장간이 올라가도 시원찮은 지경에 화포 연구소와 의방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승우가 평범한 지룡 견제를 택했다면 지금 화포 연구소의 선택은 최고의 답이다. 하지만 이승우는 그보다 한 타이밍 빠르게 병력을 실어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기전이 나오기 훨씬 전에.
-들어갑니다! 운룡이 위풍당당하게 들어가요.
-아. 지룡은 아직 없어요. 2용아와 1용혼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강해요! 얘네가 짱입니다! 골목 대장이에요!!!!
박성찬의 병력은 천자총통 1기가 전부다.
두 번째 화통도감이 완성되긴 했지만 거기서 나올 병력은 화차 밖에 없다.
2용아와 1용혼을 실어나른 운룡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미 언덕 아래엔 용혼 2기가 자신을 태워달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승우의 병력 집결지가 바뀌었다.
박성찬 앞마당 쪽과 본진을 연결하는 셔틀버스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당장 막을 방법이 없었다. 궁병이 있지만 다가갔다간 용혼과 용아에 썰리고 말거다.
3용혼과 2용아.
많은 병력은 아니지만 지금 환국에겐 버거운 수였다.
-박성찬 선수 정신없습니다! 본진에 생각보다 많은 병력이 떨어졌어요!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일꾼을 동원하든 궁병을 더 찍든 모든 수를 동원해서 최대한 빨리 밀어내야해요. 다음은 지룡이거든요! 지룡오면 답 없습니다. 그때까지 이 병력이 살아있게 하면 안되요! 지룡이 활동할 수 있는 틈을 주면 안되요!
어떻게든 막기만 하면 환국이 이길 수 있다. 앞마당과 본진 두개의 군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여전히 이승우는 앞마당에 신전을 소환하고 있지 않았다. 용안 역시 생산하지 않았다. 모든 자원을 쥐어 짜내 병력을 생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 밀리나요?!
-컨트롤이 예술이네요! 운룡에 태웠다 내렸다! 이러면서 병력 생산은 쉬지 않고 있어요!
-지룡이 너무 압박입니다. 일꾼이 용혼을 감쌀 수가 없어요. 용혼이 활개를 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 졌습니다!
찰나의 틈.
조금만 지체 되었다면 환국도 앞마당 자원을 바탕으로 병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을거다. 그 틈을 이승우가 노리고 들어갔다. 박성찬의 자원이 계속해서 쌓였다. 자원은 있는데 생산시설이 부족해 병력을 뽑을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3제단 병력을 2화통도감으로 막아낼 수 있지만 전장이 환국의 본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용혼과 용아는 잃어도 절대 지룡은 잃지 않는 이승우.
체력이 빨갛게 물들었지만 끝내 잡히지 않았다.
-GG! 박성찬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아. 이승우 선수. 진짜 화끈하네요. 초여름부터 아주 시원한 경기를 보여줍니다!
1세트 경기가 치러진 시간은 9분에 불과했지만 경기를 치른 박성찬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여전히 부스에서 나오지 못하는 박성찬.
방금 경기를 리플레이로 돌려보는지 연신 탄식이 흘러나왔다.
============================ 작품 후기 ============================
압도적인 힘으로는 먼치킨 다 때려부수는 이야기입니다.
브로맨스가 그런 브로맨스가 아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