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9 Game No. 489 데...데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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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멘탈을 간신히 수습한 난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저 멀리!
긍정적인 생각은 품안에 가득!
드디어 오늘 김채하 기자와 만난다. 인터뷰는 그저 핑계일 뿐! 맛있는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표다.
처음엔 서먹서먹했는데 요즘은 많이 친해졌다.
따로 밖에서 만나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래도 연락은 자주했다. 나이 차이도 1살 밖에 나지 않아 더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거나 많이 어렸다면 지금처럼 편하게 대하기 힘들었겠지.
연호는 김채하 기자의 얼굴이 예뻐서 그런 거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난 그렇게까지 속물은 아니다. 그렇다고 김채하 기자가 예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가장 익숙한 용산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가 지방 출신이다보니 서울 지리를 잘 알지 못했다.
경기 출전과 연습으로 인해 자주 외출을 하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끔 팀원들과 나가는 것도 숙소 근처가 전부였다.
그나마 용산은 드림 스튜디오가 있기 때문에 자주 가봐서 조금 안다. 아이파크몰에서 식사를 해결한 적도 여러 번 있고 말이다.
“어때? 괜찮아?”
나름 신경 써 입은 옷을 입고 연호 앞에 섰다. 좌우로 몸을 돌리는 내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왜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놀랍게도 우리 팀에서 연호가 옷에 가장 관심이 많다. 나름 잘 입기도 하고.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뭐 음식 잘못 먹었냐?
그 눈빛이 내 위아래를 훑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기분 나쁘다.
“흠. 나쁘지는 않은데 오늘 뭐 결혼식 가냐?”
“그...그래?”
연호의 몸쪽 꽉 찬 돌직구에 당황했다.
그런 건 깜빡이 좀 키고 들어오면 어디가 덧나냐?
아니 이게 뭐 어때서? 오늘 인터뷰하니까 깔끔하게 차려 입은 것뿐이거든?
“너 여기다가 구두 신는다며. 기자님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너무 딱딱해 보이기도 하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오늘 같은 날은 편하게 입고 가는 게 더 좋을 거야. 너무 신경 쓴 티가 나잖아. 이건 아냐.”
연호가 검지를 까닥이며 굉장히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저 손가락을 붙잡아서 그대로 꺾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연호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입는 게 좋을까?”
“편안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여자는 이런 거 좋아해.”
어이고.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여자가 없어?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연호가 추천해준 건 블럭으로 배색이 들어간 맨투맨에 청바지, 그리고 흰색 운동화였다.
“너무 대충 나온 것 같지 않나?”
“노노노노. 이게 제일 무난해. 어차피 영화보고 밥 먹을 거라면서. 이게 딱이야.”
“그래. 너만 믿겠어.”
“콜! 난 네가 잘 됐으면 좋겠다!”
작년에 이 말을 들었다면 곧이곧대로 해석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 말에 들어있는 진짜 의미를 단 번에 파악했다.
네가 잘 되면 여자 좀 소개시켜줘.
이 말이다. 이 말.
단박에 거절하려 했지만.
“그 말에 제대로.....”
“아참! 어제 찍은 영상 너 진짜 귀엽게 나왔더라. 기자님도 보시면 되게 좋아하시겠지?”
미리 눈치 챈 연호가 선수를 쳤다.
휴대폰을 좌우로 얄밉게 흔들어 제끼는 연호.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는다.
아까 손가락을 확 꺾을 걸 그랬나? 그럼 저딴 짓 못했을 텐데.
“.....노력해보마.”
“그래. 역시 넌 정말 좋은 친구야.”
얄미운 미소를 얼굴 가득 띄운 연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는 순간 어젯밤 추태가 김채하 기자에게 전송될테니까.
설마 그런 짓을 하겠냐고?
연호라면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 1년간 지내면서 느낀 건 연호는 생각보다 미친놈이라는 것이었다.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너도.”
그렇게 난 청춘 우정물 하나를 찍고 숙소를 나왔다.
*****
“안녕하세요!”
“아. 일찍 오셨네요.”
“일찍 은요. 겨우 5분 먼저 온 건데요. 오히려 김채하 기자님이 더 일찍 오셨죠.”
“제가 조금 덤벙거리는 성격이라서 미리 미리 준비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아직 우리의 호칭은 '기자님'과 '선수'였다.
톡으로는 나름 살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였지만 막상 만나니 조금 어색하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경기장 밖에서 얼굴을 맞댄 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어제 골든 배지 정말 축하드려요. 명실상부 최강의 프로게이머가 되셨어요.”
약속 준비를 하기 전까지 커뮤니티와 기사를 봤었다.
어딜 가나 나를 찬양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간혹 디스를 하는 글도 있었지만 댓글 폭격을 맞고 이내 자취를 감췄다.
역대 최강의 포스.
최단기간 골든 마우스.
최단기간 골든 배지.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기록이다.
여기에 안주할 생각은 없다. 골든 마우스와 골든 배지가 최강 프로게이머의 상징이긴 하지만 이미 누군가가 이뤄놓은 성과물이다.
나만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싶다.
그러려면 플래티넘 마우스와 플래티넘 배지를 가져야겠지.
그 누구도 이 둘의 실물을 본 사람은 없다. 아직 4회 우승자가 나오지 않아 제작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제작된다면 골든 보다 훨씬 화려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우승으로 플래티넘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니 감사하네요.”
“금칠이라뇨? 실제로 받으셔놓고. 이틀 전에 경기 보고 진짜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그걸 그렇게 역전하실 수 있는지. 진짜 다른 용족과 다르긴 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금칠은 계속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채하 기자에게 이런 말을 들으려니 조금 쑥스럽다.
“아! 그리고 마지막 인터뷰도요. 골든 마우스와 골든 배지에 기뻐하지 않겠다. 내 목표는 여기가 아니다. 플래티넘 마우스와 플래티넘 배지다. 그 전까진 만족하지 않는다. 진짜 그때 포스가 제대로 그냥!!”
...그래. 내가 저런 오글거리는 말도 했었지.
감정이 격해져서 저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조금 격하게 표현되었지만 그래도 속마음을 제대로 이야기했으니까.
결승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여자라면 신들의 전쟁을 꺼내는 것만으로 질색을 했겠지만 신들의 전쟁이 좋아 기자까지 하고 있는 김채하 기자에게 신들의 전쟁 관련 이야기는 언제 해도 질리지 않는 주제였다.
끊임없이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 정도였다.
얼마나 열을 올렸는지 얼굴이 살짝 상기 되었다.
이대로 계속 두었다간 끝없이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적절히 끼어들 틈을 노려서.
“그럼 일단 밥부터 먹을까요?”
“좋아요! 안 그래도 조금 배고파졌거든요!”
밥이라는 말에 방긋 웃는 김채하 기자.
그렇게 말하면 누구나 배고플 것 같아요.
영화 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자. 그럼 밥을 먹으러 가볼까?
멀리 갈 필요 없다.
여기 식당 층이 있으니까.
나에게 또 다른 흑 역사를 만들어준 식당이 있긴 하지만 거기를 가지는 않을 테니.
“아.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조금 찾아봤는데요. 여기 커리 전문점이 하나 있는데 그렇게 맛있데요. 최근에 커리 안 먹어서 조금 먹고 싶었거든요!”
“.....네?”
당황한 나를 보며 김채하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리 혹시 싫어하세요?”
“아뇨! 좋아해요.”
그건 아닙니다.
카레 정말 좋아해요.
다만 여기 있는 카레가게는 하나로 알고 있고 거기는....
“그럼 거기로 가도 될까요? 정말 먹고 싶었거든요!”
“...그럼 거기로 가요.”
“좋아요!”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어색한 미소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기가 맛집 이었구나.
전에 손님이 별로 없어 그런 줄 몰랐는데.
식사시간이 아니라 그랬던 것 같다. 하긴 카레 자체는 맛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먹긴 했지만 그건 확실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식당 층으로 향하는 길.
결승 무대를 올라갔을 때보다 심장이 더 쿵쾅거렸다.
저번에 갔을 때가 평일이었으니까 이번에 그 아르바이트생은 없겠지?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또 여길 올 줄이야.
여전히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때 그 가게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확인한 건 아르바이트생들의 얼굴이었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그때 있던 아르바이트생은 없었다. 김채하 기자가 보지 않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최악은 피했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세요?”
“네.”
“편하신 자리에 앉으시면 바로 메뉴판 가져다 드릴게요.”
편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아까 그 아르바이트생이 메뉴판을 들고 돌아왔다.
“지금 바로 주문하시겠어요?”
“조금 있다가 다시 부를게요.”
“그럼 주문하실 때 왼 쪽에 있는 벨 눌러주세요.”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돌아가는 아르바이트생.
그 사이 김채하 기자는 메뉴판을 펼친 후 메뉴를 살펴보고 있었다.
“우왕! 맛있어 보이는 거 되게 많네요!”
“실제 맛도 좋더라고요.”
부지불식간에 나온 말실수.
아직 여름도 아닌데 등으로 땀줄기가 주룩 흘러내렸다.
김채하 기자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물었다.
“여기 와보신 적 있으세요?”
“네? 아. 아뇨. 아까 여기 가자고 하셔서 저도 인터넷에서 찾아 봤었거든요. 다들 맛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아하! 그렇구나.”
내가 이렇게 순발력이 좋았던가?
“어떤 거 드실거에요?”
김채하 기자의 질문에 난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새우튀김 올라가 있는 이거요. 제가 새우튀김을 좋아하거든요.”
“그러시구나. 흠. 난 뭐 먹지...”
그 후로 한 동안 김채하 기자는 메뉴를 고르지 못했다.
“이 것도 맛있어 보이고. 저 것도 맛있어 보이고.”
한참 고민 끝에 김채하 기자가 메뉴를 골랐다.
바로 벨을 눌러 아르바이트생을 불렀다.
“이거랑 이거 주세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문한 음식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수저는 보이지 않았다.
이거 일부러 이러는 건가?
골탕 먹이려고? 온갖 음모론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혹시 모르니 미리 말해야겠다.
“아마 조금 있다가 수저 따로 가져다주니까 손으로 먹으면 안돼요.”
나와 같은 실수를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풋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김채하 기자.
“이승우 선수 생각보다 유머감각 있으시네요? 전혀 그런 스타일로 안보였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면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실 수 있죠? 이걸 누가 손으로 밥을 쥐어서 먹어요. 여기가 인도도 아니고. 깜빡 속을 뻔 했어요.”
“....하.하.하. 그렇죠?”
괜한 걱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뿐인 듯싶었다. 아무도 손으로 집어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그냥 수저를 가져다 줄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상이구나.
아직 멘탈이 채 회복되지 않았을 때.
“아니에요. 손님. 실제로 그렇게 드신 분이 계세요.”
아르바이트생이 우리의 대화에 불쑥 참여했다.
감이 좋지 않다.
깜짝 놀라는 김채하 기자.
물론 나는 더 깜짝 놀랐다.
제발. 이야기 하지 마요. 아마 분위기를 좋게 해주려고 농담을 던지려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그 ‘실제로 그렇게 드신 분‘이 저거든요?
“정말요?”
“네. 저희 가게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손님이에요.”
전설이라.
이거 좋아해야하나?
이스포츠에서도 전설로 불리고 카레집에서도 전설로 불리고!
양대 리그를 제패했구만.
크하하하.
“대박이네요.”
“저희도 처음 들었을 때 믿지 못했어요. 설마 그런 손님이 있을까 싶어서요. sns보면 그런거 만들어내서 많이 올리잖아요. 근데 그때 같이 있던 다른 알바생도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다니 진짜 아쉬워요.”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내 얼굴을 점점 빨갛게 변했다.
아주 잘 익은 토마토처럼.
그때 김채하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지셨어요?”
왜 그러냐고요?
지금 하는 대화 때문에요.
물론 솔직히 말할 순 없었다.
“아. 여기가 조금 덥네요.”
손부채질을 하며 혼신의 연기를 했다.
“더우세요? 온도 조금 더 낮춰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그냥 그 쪽만 돌아가면 됩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크리티컬 데미지를 넣은 후 해맑은 얼굴로 돌아가는 아르바이트생.
“세상에 정말 유쾌한 사람이 많네요.”
“그러게요.”
카레를 먹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겠다고.
이번 다짐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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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상태가 좋지 않아 내일 연재를 휴재해야할 것 같습니다.ㅠㅠ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