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3 Game No. 453 피말리는 승부. =========================================================================
김택윤의 생 더블은 임주혁 감독의 지시로 결정되었다.
다른 이들은 무모한 전략이라며 다른 전략을 사용하는 걸 권했지만 임주혁 감독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승우만이 쓸 수 있는 전략이라는 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임주혁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이승우가 할 수 있다면 김택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물론 이승우의 생 더블을 그대로 따라할 생각은 없다. 이승우의 생 더블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김택윤이 소화를 못시키기 때문도 아니다.
좋은 빌드지만 그건 이승우의 몸에 가장 잘 맞는 옷이지 김택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아니다.
임주혁 감독은 김택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생 더블을 고안해냈다.
김택윤의 장점인 피지컬, 그 중 멀티테스킹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으로.
그때 관중석이 술렁였다.
-이승우 선수 정찰을 대각선인 5시로 가장 먼저 보냅니다.
-무언가 생각이 있는 모양입니다. 정찰을 솟대 짓고 바로 나가고 있습니다. 용족간의 동족전에선 이렇게 빠른 정찰은 흔치 않습니다. 어차피 상대가 무얼하는지 초반엔 뻔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이렇게 빨리 정찰을 보낸다는 건 김택윤이 필살기성 전략을 분명 들고 나왔을 거라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단순 운이 좋아서, 혹은 감이 좋아서 대각선으로 보낸 것이 아니다.
애초에 계획 된 정찰이었을거다.
빠른 타이밍 대각선 정찰.
만약 그 곳에 김택윤의 기지가 있다면 빌드에 맞춰 운영을 계획할 것이다. 거리가 일단 멀기 때문에 보다 부유하게 배를 불릴 가능성이 높다.
대각선에 김택윤이 없다면?
상대적으로 러시 거리가 가까운 가로와 세로 둘 중 하나에 김택윤의 위치가 있겠지.
그럼 이승우의 장점인 심리전과 공격력을 살리는 운영을 해내갈 것이다.
정찰 하나에도 이 모든 걸 계산하고 이뤄지는 것이었다.
첫 서치 성공에 임주혁 감독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정찰을 당한다고 준비한 빌드가 망가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방해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승우라면 가만히 두고보지 않을거다.
무언가 움직이겠지.
최대한 늦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
헐. 대박.
무언가 준비해 왔을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생 더블일 줄이야.
앞마당에 빙글빙글 소환되고 있는 건물을 보고 내 눈을 순간 의심했다.
신전이라니.
신전이라니!!!
이거 내가 전에 했던거잖아?
이렇게 같은 빌드를 뽑아들 줄이야.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재미있다.
즐겁다.
엉덩이가 나도 모르게 들썩인다.
동시에 몸 안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것 같다.
평소와 다른 경기 양상.
상대 선수가 전략을 걸고 그걸 파훼하는 것.
이런 경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 날이 딱 오늘이었다.
한 번 원하는 대로 해봐. 생 더블 이후에 준비해온 모든 걸 다 해보라고. 들켰을 때까지 생각해왔을 거 아냐?
다른 팀도 아니고 S1인데 말이지.
분명 있을거다.
이제 내가 할 것은 하나다.
그 모든 걸 이제부터 완벽히 부셔 버리는 것 뿐이었다.
****
-본진으로 올라가는 용안! 봐도 너무 빨리 봤어요.
-이승우 선수 생각보다 크게 놀라지 않는 표정입니다.
-당황하기는 커녕 오히려 씨익 웃습니다!
-무언가 김택윤 선수가 전략을 빼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는 말이겠죠. 이제 이승우 선수는 작년과 다른 선수가 되었습니다. 본인이 전략을 주도해가기보다 온갖 날빌을 막아내야 하는 선수가 된 거죠!
-즐기고 있습니다. 경기를 즐기고 있어요. 오늘 엄청난 명경기가 하나 나올 것 같은데요?!
이 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정상적인 운영 싸움으로 가면 이기기 힘들다.
시대의 지배자의 상대는 모든 선수다.
모든 선수가 최강자를 꺾기 위해 빌드를 깎았다.
기상천외한 빌드는 다 나왔다. 그 중 몇 개는 실제로 성공해 시대의 지배자를 좌절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한정 된 정보로 모든 걸 대처한다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이제 이승우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방법은 두 가지다.
모든 걸 막아내고 이기든가.
역으로 상대가 무언가를 하기 전에 더 기상천외한 빌드를 꺼내 들고 와 상대를 당황시키든가.
-이러면 일단 대처가 됩니다. 정말 빠르게 봤거든요.
-과연 이승우 선수는 어떤 대응을 꺼내들지.
김택윤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역시 개인리그와 프로리그에서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 다웠다.
신예선수였다면 자신의 수를 너무 빨리 들켰기에 크게 당황했을 수도 있다. 아예 경기를 망쳐버릴 가능성도 크고.
하지만 김택윤의 노장 중에 노장이었다.
송병호의 은퇴로 더욱 더 그러한 점이 부각되었다.
조금 가라앉은 s1의 벤치와 달리 아스트로의 벤치는 후끈 달아올랐다.
“좋았어!”
주먹을 움켜쥐는 이재명 감독.
초반 정찰로 상대의 빌드를 빠르게 파악한 건 굉장히 좋다.
가로나 세로였다면 2개의 제단을 빠르게 늘려 파워 용혼으로 압박하거나 지룡 테크를 올려 한 방에 밀어버리는 것이 더 좋겠지만 가장 먼 대각선이기 때문에 그보단 초반 견제를 적당히 해주며 앞마당을 따라가는 것이 낫다.
괜히 어설프게 막혔을 경우 뒤집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수가 있었다.
-이승우 선수 금광 채취할 생각 없습니다. 여의주탑도 소환하지 않습니다. 바로 1제단에서 앞마당 따라갈 생각이죠.
-늦게 봤으면 모를까 이렇게 빨리 본 이상 같이 따라가면 충분히 할만하다 이겁니다.
이승우는 이재명 감독의 생각처럼 경기를 풀어가고 있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솟대 러시!!!
-아. 아주 솟대 러시가 예쁘게 들어갔어요!
-이러면 자원 채취에 영향을 크게 받죠! 돌아갑니다. 빙빙 돌아가요. 용안이 제대로 자원을 수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택윤 본진에 철광에 과감히 솟대 러시를 들어가기까지 했다. 솟대 2개에 철광을 캐는 용안이 크게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각각 1기의 용안이 솟대 안에 갇혀버렸다. 이것만으로 철광 값은 충분히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생산 된 용아가 아래로 바로 내려갑니다.
-대각선이긴 하지만 김택윤 선수는 아직 제단이 완성되지 않았거든요? 들어가서 충분히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용아로 용안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것이 가장 좋긴 하지만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살아서 빙빙 돌아다는 것만으로 눈엣가시다.
자원 채취를 방해하는 솟대를 파괴해야하는 용아가 솟대를 때리기는 커녕 본진에 올라와있는 용아를 잡기 위해 졸졸 쫓아다녀야한다.
그러면 솟대 러시의 효과를 더욱 더 길어지게 되고 그 자체가 이득이 되는 것이다.
-일단 이승우 선수의 다음 건물은 앞마당 신전입니다. 하지만 매너 솟대와 용아를 찍어준 것을 봐서 용아 한 두기는 더 찍고 앞마당에 신전을 소환할 생각이거든요? 그 견제를 김택윤 선수가 완벽하게 막아내야 합니다. 피해를 받으면 상황 애매해져요. 먼저 신전이 완성되고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겁니다!!
-이승우 선수도 지금 철광 300을 썼거든요? 그만큼 신전이 소환되는 속도가 늦춰졌다는 말입니다. 무조건 피해 줘야합니다.
이제 겨우 용아 1기가 나왔을 뿐인데 경기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졌다.
이승우와 김택윤이 아니었다면 이런 긴장감이 벌써 나오진 않았을거다.
어느새 김택윤의 앞마당에 도착한 용안이 앞마당 신전엘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바로 본진으로 올라갔다. 타이밍 맞춰 생산 되 김택윤의 용아.
확실히 대각선의 거리가 멀긴 멀었다.
솟대를 때리는 용아를 뒤로 한 채 이승우의 용아가 철광 아래쪽으로 깊숙하게 파고 들었다.
외곽 쪽에 있는 용안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면 안된다.
용안의 비비기에 용아가 비명횡사한다면 전략이 모두 꼬이게 된다.
이러는 와중에 소환이 시작 된 이승우의 앞마당 신전. 김택윤의 앞마당 신전은 이미 완성이 되었지만 아직 본진 상황을 정리하지 못해 용안이 달라붙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인구수를 늘려주는 비싼 솟대에 불과했다.
-어? 용안? 용안 1기 잡힙니다!
-아. 이렇게 잡히면 안되거든요.
-빼려고 했는데 위에 건설 된 솟대가 길을 방해했어요! 여러모로 이득을 가져다주는 솟대입니다.
-용아도 지금 버벅거리고 있거든요. 이러는 사이 용아가 2킬을 해냅니다!
-글쎄요. 1킬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피해지만 2킬은 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거든요.
-김택윤 선수 흔들리나요?
그래도 김택윤도 솟대를 파괴하는 등 침착한 대처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선수였다면 정신없이 휘둘리다 끝났을거다. 아니 아예 생 더블을 꺼내들 엄두를 못냈겠지.
-이러면 이승우 선수도 꽤 할 만한데요?
-그냥 할만한 게 아니라 굉장히 좋은 거죠! 김택윤 선수는 혹시 모를 압박을 대비해 용무관까지 지었는데 지금 이승우 선수는 1제단에서 용아만 계속 찍어주며 앞마당과 테크를 타고 있거든요! 이러면 용무관을 지은 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어느새 김택윤의 본진에서 활동하는 용아가 2기로 늘었다.
솟대가 모두 파괴되었지만 용아의 활약은 계속 되었다. 1기의 용안을 더 끊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러면 신전이 빨리 지어졌다고 좋을게 하나 없다.
활성화 되는 타이밍은 비슷해진다.
오히려 불리하다.
훨씬 먼저 지었는데 돌리기는 비슷하게 돌리고 테크는 상대가 훨씬 앞서나가는 상황이니까.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건 이승우의 판단력과 피지컬 덕이었다.
상대의 생 더블을 보는 순간 바로 자신이 어떻게 해야 좋아지는지 알아차렸다.
솟대러시, 용아 찌르기를 들어감과 동시에 본진에선 용안을 생산하고 테크까지 올렸다.
어느 것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거다. 역으로 김택윤의 피지컬에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김택윤 선수 많이 흔들립니다. 도합 4기의 용안이 잡혔습니다.
-상황이 급격하게 안좋아지는데요? 너무 많이 잡혔습니다. 거의 질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진짜 이승우 선수 대단하네요.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이 무얼 해야하는지 정확히 집어냈습니다. 조금이라도 어설펐다면, 공격이 느슨했다면 김택윤 선수가 쉽게 막아냈을 텐데 진짜 완벽했습니다. 마치 김택윤 선수가 생 더블을 꺼내들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완벽한 대처로 김택윤의 수를 무위로 돌려버립니다.
수준 높은 찌르기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기껏해야 나온 공격 유닛은 용아 2기 뿐인데 이걸로 이런 움직임을 보여줄 줄이야.
따라 붙는 용아를 환상적인 움직임으로 따돌리고 용안을 잡는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드리블로 모든 수비를 제치고 골을 넣는 것 같은 짜릿함에 관중들은 전율했다.
-이러면서 이승우 선수를 해야할 것을 전부하고 있어요. 금광을 캐고 여의주탑을 올리고 있습니다. 반면 김택윤 선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완성 된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용안을 붙입니다. 분명 생 더블을 한 건 김택윤인데 어째 이승우가 더 부유합니다!
심지어 나가있는 용아가 다 잡힌 것도 아니다.
체력이 많이 빠져있긴 하지만 여전히 살아남아 김택윤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이대로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김택윤이 결단을 내렸다.
-자. 김택윤도 용아 돌립니다. 1기의 용아가 빠져나가고 있어요.
-가야죠. 가야합니다. 혼자만 당할 수 없지 않습니까? 피해를 줘야죠!
체력이 많이 닳고 그 수가 줄어든 이승우와 달리 김택윤의 용아는 체력이 쌩쌩하다. 이걸로 피해를 줘야한다. 자신이 받은 것 만큼 그대로 돌려주지 않으면 경기는 더욱 더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