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1 Game No. 451 건강해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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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L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작은 회식이 있었다. 회식은 1차에서 끝나지 않았다. 따로 나가 2차를 하기로 했다.
외출 멤버는 나와 현우 형, 승대, 연호.
멤버에서 알 수 있듯 16강 진출 여부는 상관없었다. 우리가 그렇게 치사하게 팀을 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민규도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아쉽게도 미성년자라 따라오지 못했다.
얼른 나이 먹고 성인이 되렴.
그럼 그땐 함께 데려가 줄테니까.
“어디로 갈까?”
현우 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이 가자는데면 어디든 따르겠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주장인 형의 의견을 그대로 따릅죠.”
다른 말이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세 문장이 연달아 쏟아졌다.
예상대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우리가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할 수 있을 리 없다.
셋 다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 마냥 현우 형을 바라보았다.
엄지와 검지로 턱을 쓸어내리는 현우 형.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다행히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 앞에 새로 생긴 곳으로 가보자. 오다가다 보니까 사람 많아 보이던데.”
역시 주장!
이렇게 빠르게 결정하다니.
대단해!!!
이견은 없었다. 모두 현우 형의 말에 동의했다.
형이 말한 술집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걸어서 10분 정도?
“목요일인데 사람 많네.”
주말도 아는데 빈 테이블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몇 분이서 오셨어요?”
“4명이요.”
“자리 안내해드릴게요.”
아르바이트생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했다.
곧 바로 메뉴판을 집어 드는 승대.
두 눈에서 아주 빛이 번쩍인다.
지금 꼴깍 삼킨 거 침 아니지?
숙소에서 그렇게 많이 먹어 놓고 벌써 배고픈 거 아니지?
음식 앞에 버서커처럼 날뛰던 승대의 모습이 언뜻 스쳐지나갔다. 그때 엄청나게 먹었던 거 같은데.
“우와. 여기 맛있는 거 되게 많네요?”
기대감 어린 표정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린 것 같다.
1차에서 이미 배가 불러 2차에선 간단히 먹으려고 했었는데.
뭐 우리 승대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시켜.”
“오? 진짜요?”
“그래. 이번엔 내가 한 턱 쏠 테니까!”
회식만 하면 작아졌던 나는 이제 없다.
연봉을 제하고도 승리 수당과 대회 상금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여기에 VOD 수익까지 더하면 진짜 어마어마하다. 연봉이 눈에 안 찰 정도?
통장에 이 정도 돈이 들어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여전히 이런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 꿈처럼 느껴진다.
그때 순간 상념에서 확 깨게 만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나도 부담 없이 시켜야겠다.”
연호야. 너한테 마음껏 시키라고 안했는데?
눈빛을 사정없이 발사했지만 연호는 애써 외면했다. 애초에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어? 근데 이거 뭐지? 미숫가루 소주?”
“엥? 그런 것도 있어?”
“여기 봐봐.”
“와. 요즘 진짜 별 소주가 다 있네.”
연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진짜 미숫가루 소주라고 적혀 있었다.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연호.
계속 말하는 걸 보니 먹고 싶은 모양이다. 사실 나도 조금 궁금하다. 미숫가루 소주라니. 요즘 색다른 맛의 소주가 유행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미숫가루 소주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인터넷에 쳐보니까 상표로 나오는 건 아니고 여기서만 파는 것 같은데요?”
그 사이 승대가 검색을 마쳤다.
역시 스마트인이야.
미숫가루 소주라.
막걸리 비슷한 느낌이려나? 그거보다 더 달고 진한 맛이 나겠지?
가격이 그렇게 비싸진 않다.
과일소주와 같은 가격이다.
구미가 당긴다.
사실 내가 소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
나름 인생의 쓴맛을 봤는데 그 특유의 알콜 향은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릴 적 과학실 알콜램프에서 맡았던 향과 너무 똑같다.
다른 이들을 보니 나와 같은 표정이다. 미숫가루 소주가 어떤 건지 궁금한가보다.
그럼 고민할 필요 없지.
딩동하는 맑고 고운 소리와 함께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왔다.
“여기 미숫가루 소주 잘 나가요?”
“손님들께서 많이 좋아하세요. 다른 곳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서요.”
생각해보니 좋은 답이 나올 수 밖에 없긴 하다.
그래. 사나이 인생 직진이다.
“그럼 미숫가루 소주 하나 주시고요. 안주는.....”
말을 끊고 승대를 바라보았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승대는.
“소시지 야채볶음이랑 모듬 튀김, 해물파전, 로스트 치킨 주세요.”
아주 유려한 화법으로 주문을 마쳤다.
와우.
승대가 이렇게 말을 잘했었나?
단순히 메뉴를 주문하는 것뿐인데 굉장히 흡입력있다.
물건을 팔아도 굉장히 잘 팔 것 같다.
주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숫가루 소주가 먼저 나왔다.
기성제품은 아닌 듯 황토 빛 병에 담겨 있는 미숫가루 소주.
무언가 고급지다.
딱 기대했던 비주얼.
“안주 오기 전에 간단히 한 잔 합니다!”
말과 동시에 연호가 가장 연장자인 현우 형의 잔에 술을 따랐다. 모든 술잔이 채워지고 간단한 건배사와 함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첫 잔은 무조건 원 샷이다!”
그 정도는 나도 알거든.
들어 있는 술을 한 번에 마셨다.
크. 좋은 미숫가루를 썼나?
특유의 소주 향도 올라오지 않고 달달한 것이 딱 좋다.
이런 술이라면 얼마든지 더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야. 맛 좋네. 오늘은 이거다. 이거.”
술맛이 달다며 몇 잔을 더 기울인 사이 안주가 하나 둘 도착했다.
꽤 큰 테이블이었는데 어느새 안주로 가득 찼다.
테이블과 승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걸 정말 다 먹는다고?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승대가 믿음직스런 눈빛을 보내왔다.
‘형. 제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너만 좋다면 얼마든지 더 사주마.
그렇게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미숫가루 소주는 혁명 그 자체였다.
너무 맛있었다. 술을 싫어하는 나도 막힘없이 쭉 넘길 정도로.
세상에 이런 술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 둘 병이 쌓이더니 어느새 9병의 미숫가루 소주가 테이블에 올라와있었다.
벌써 이렇게나 마신거야?
대박이다. 대박.
“오늘 술 빨 잘 받네. 그냥 물처럼 쭉쭉 넘어간다.”
“그러게. 나도 술 이렇게까지 잘 마신 건 처음이다. 처음.”
“형. 이게 다 좋은 사람들이랑 있어서 그런거에요. 원래 좋은 사람들이랑 있으면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고 하잖아요.”
“그런 것 같다.”
테이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술병의 숫자가 늘어난 만큼 안주의 양도 많이 줄어있었다.
현우 형의 거의 손도 안 댔고 나와 연호도 몇 번 집어먹었을 뿐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다.
대부분 승대가 먹은거다. 이번 시즌 끝나면 승대 데리고 푸드 파이터 대회나 나가볼까? 적어도 TV에 나온 점보 음식점엔 꼭 데려가 보고 싶다.
과일소주 같은 경우 마실 땐 술처럼 느껴지지 않아 신나서 계속 먹으면 한 순간에 훅 간다. 지금이 딱 그렇다. 살짝 알딸딸한 것이 더 마시면 안 될 것 같다.
“슬슬 일어날까?”
“벌써 2시네요? 시간 진짜 빠르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다니.
한두 시간 정도 지났을 줄 알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남아 있는 테이블은 두어 개 밖에 없었다. 하긴 오늘이 주말이 아니니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실 순 없겠지.
오늘 마음 편하게 놀다 오라고 하셨지만 아직 시즌 중이라 그렇게 하기엔 조금 부담스럽다. 그리고 이 정도면 잘 놀았다.
미숫가루 소주.
진짜 반가웠다.
내가 다음에 또 마시러 올게.
이제 집가서 푹 자고 내일 오후부턴 다시 경기 준비해야지.
“자. 그럼 갑시다!”
계산서는 자연스레 내 손에 올려졌다.
현우 형이 대신 계산하려고 했지만 연호와 승대에게 눈짓을 보내 함께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했다.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 아닙니까? 제가 내겠습니다!
“여기 계산할게요!”
“넵!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까 주문을 받았던 아르바이트생이 쪼르르 다가왔다.
조금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예..예뻐 보인다.
평소라면 그냥 계산만 하도 돌아섰겠지만 오늘은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다른 말이 먼저 나왔다.
이게 바로 술기운인가보다.
“여기 진짜 안주 맛있고 좋은 것 같아요. 술도 그렇고요. 미숫가루 소주 진짜 대박이에요.”
내가 조금 오버했나?
계산서를 들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의 표정이 약간 애매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
느낌이 싸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기분이 업 되서 그만.”
무엇이 죄송한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일단 사과 하는게 맞는거 같다.
하지만.
“아. 그게 아니라 손님께서 술을 안 드셨거든요. 그래서가지고....”
내 뒤통수를 강력하게 치는 말.
우려가 현실이 됐다.
그럼 우리가 먹은 건 뭐지?
“아까 저희가 미숫가루 소주 시켰는데요?”
“아. 그게 그냥 미숫가루 음료만 드리는 거고요. 소주 따로 주문하셔서 취향에 맞게 섞어 타 드시는 거거든요.”
할 말을 잃었다.
‘저기 그런 말은 아까 진작 해주셨어야죠? 메뉴판에도 미숫가루 소주가 아니라 그런 식으로 적어 놓으시고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생 표정이 너무 해맑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다라는 말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래. 우리 잘못이지 뭐.
술이 아니라니.
어쩐지 너무 달달하더라.
술이 전혀 안 들어간 것처럼.
잠깐 근데 우리 모두 함께 느낀 취기는 뭐지?
알싸한 알콜 느낌은 뭐였을까.
혼돈의 카오스.
오. 나 이거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것 같아. 실제론 안 들었는데 들어갔다고 믿으면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거.
그거 진짜구나? 진짜였어. 이렇게 오늘도 몸으로 직접 체험해보는군요.
나는 말없이 문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기분 좋아 보이는 셋.
어깨동무하고 으쌰으쌰하는 것이 보기 좋다.
그래. 이건 나만 알자.
이 부끄러움, 나만 감당하면 되잖아? 그러면 오늘 하루 좋게 웃으면서 마무리 할 수 있잖아?
그리고 술 대신 미숫가루를 9병이나 마셨으니 그만큼 건강해지지 않겠어?
술 마신 것 같은 기분과 건강을 동시에 얻었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된 거야. 암. 그렇고말고.
어떻게든 좋게 생각했지만 전에 카레를 손으로 집어먹었을 때가 계속 생각났다.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흑역사가 하나 더 적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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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프로리그 1라운드 가장 중요한 매치가 준비되었다.
S1과 아스트로의 매치.
이 둘은 8승 1패로 나란히 1,2위를 지키고 있었다.
아스트로는 GO에게 일격을 당했고 S1은 CT에게 패배를 당했다.
승점에 의해 순위가 나뉘어 있지만 실질적으론 공동 1등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결과를 통해 진정한 1등을 가리게 될 것이다.
전 시즌이었다면 승자 예측이 쉬웠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시즌은 예측하기 힘들다.
아스트로가 정규 라운드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서 더욱 더 그렇다.
승자예측은 거의 5:5로 갈렸다.
아스트로가 강해진 만큼 S1도 강해졌다.
원래 강했던 S1이지만 임주혁이 지휘봉을 잡으며 더욱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매 경기 컨셉이 있다.
그저 승리만을 쫓는 경기가 아닌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경기가 상당수 나왔다.
임주혁 감독의 선수시절 모습이 선수들에게도 조금씩 느껴졌다.
창의력하면 아스트로도 어디 가서 빠지는 팀이 아니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에 더욱 더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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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숫가루 소주 최고야.”
단 한 번 미숫가루 소주를 마신 연호는 어느새 미숫가루 소주 신봉자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도 숙취가 있기는커녕 오히려 몸이 날아날 것 처럼 가볍다니까? 컨디션 진짜 쩔어. 오히려 연습 쫙쫙 더 잘되더라고”
열심히 미숫가루 소주의 장점을 전파하는 연호.
미숫가루 많이 먹었으니까 그만큼 건강해졌겠지.
내가 나중에 알아봤는데 그거 보통 미숫가루 아니라고 하더라.
몸에 대빵 좋은 미숫가루라고 하더라.
연호의 말에 몇몇 팀원들이 현혹 된 듯 보인다. 조만간 손 붙잡고 같이 갈 기세다.
그래. 연호야.
진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네가 받을 충격에 미리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그래도 연호 컨디션이 매우 좋아보여서 다행이긴 하다.
오늘 연호가 첫 세트에 출전하거든.
이 기세를 몰아 승리까지 해오면 정말 좋겠는데.
상대는 쉽지 않다.
도재열.
단순 힘싸움 위주의 경기에서 탈피해 더욱 더 까다로워졌다.
결코 쉬운 경기가 되지는 않을 거다.
네가 그렇게 믿는 미숫가루 소주의 힘을 받아 꼭 승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