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4 Game No. 434 마음이 시키는대로. =========================================================================
-자. 이제 딱 두 가지 부문의 시상이 남아있습니다.
-올해의 감독! 그리고 올해의 선수!
-이 스포츠 대상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죠!
-먼저 올해의 감독상을 시상해주실 분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스포츠 팬이라면 모두 알고 계신 분이죠. 한국 이 스포츠 협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계신 조성헌 회장님이 올해의 감독상 시상을 맡으셨습니다. 시상을 위해 무대로 올라오고 계신 조성헌 회장님을 향해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크게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
이 스포츠가 세계로 뻗어 나간데엔 협회의 공이 컸다. 욕심을 부리기보단 모두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시켰기 때문이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긴장을 풀기위한 노련한 농담이 무대에서 흘러나왔다.
시상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이미 3시간 동안 달려왔기에 모두 지쳤다는 걸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역시 센스만점이다.
-자. 그럼 바로 올해의 감독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웅장한 음악이 무대에 깔렸다.
으. 나도 심장이 터질 것 같다.
100% 감독님이 받으실 것 같지만 요 분위기에서 긴장이 안 될 수 없다.
-2015 이스포츠 대상. 올해의 감독상. 수상자는.
잠시 말을 끊으시는 회장님.
어? 나 방금 눈 마주친 것 같은데?
-아스트로의 이! 재! 명! 감독입니다.
-아스트로의 이재명 감독은 만년 최하위권을 다투던 아스트로를 이끌고 위너스리그 우승을 넘어 프로리그 우승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S1에서 방출되어 팀이 없던 이승우 선수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고 그가 4회 우승을 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지도했습니다.
-모두 이재명 감독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네요.
-이재명 감독이 상을 받는 건 정말 당연한 거죠. 누가 아스트로가 우승을 차지할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아스트로 테이블 분위기 정말 보기 좋네요. 진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내가 말했지? 눈 마주친 것 같다고.
역시 착각이 아니었다.
프로게이머의 관찰력이 이렇게 뛰어나다니까?
화려한 꽃가루가 무대를 수놓았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주변에 있던 팀원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거든.
나도 질 수 없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감독님을 껴안았다.
축하드려요. 감독님!
그렇게 짧고 굵게 우리와 기쁨을 나눈 감독님이 시상을 위해 무대로 올라가셨다.
“감독님 진짜 멋지다.”
“와. 저 지금 심장 터져 나갈 것 같아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형이 그거 확인 시켜줄까?”
해맑게 웃으며 손바닥을 흔드는 연호.
“그건 조금 사양할게요.”
승대가 정중히 거절했다.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떠 있는 게 느껴진다.
“자. 꽃다발 드리러 나가자!”
시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트로피를 받고 시상이 끝난 순간 우르르 달려 나가 감독님의 품에 꽃다발을 마구 안겨드렸다. 어찌나 많은지 몇 개는 땅으로 굴러 떨어질 정도였다.
“정말 축하드려요!”
“최고에요!”
“오늘은 원빈보다 멋지세요!”
“원빈은 무슨! 백배 천배 낫지. 우리 감독님이!”
살짝 과한 립 서비스도 있었지만 뭐 어떠랴?
축제인데!
그냥 서로 좋은 말 주고 받는 거지 뭐.
나 나가도 저런 말 해주겠지?
“저에게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품안 가득 꽃다발을 안고 있는 감독님이 마이크 앞에 섰다.
꽃다발이 너무 많아 살짝 불편한 느낌.
주변에 있던 스탭들이 꽃다발을 나눠 받았다.
“선수들부터 코치진 전부. 제 말에 불만 한 번 드러내지 않고 따라 와줘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프로리그 우승 했을 때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대부분 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수상 소감은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감독님의 익살스런 표정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번에 아스트로가 프로리그 우승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기적이란 단어였습니다. 사실 전 기적이라는 말이 그리 기분 좋게만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의외의 결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번 시즌엔 기적이란 말이 따라왔지만 다음 시즌부턴 더 이상 기적이란 말은 없을 겁니다. 당연히 우승해야 할 팀이 우승했다. 최고의 팀이 우승했다! 이런 말이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디팬딩 챔피언의 위엄을 제대로 보여주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감독님을 향해 박수가 쏟아졌다.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진다.
다시 한 번 열정이 불타오른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팀원들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낀 듯싶었다.
이번 시즌 모든 것을 이뤘다.
하지만 거기에 얽매이면 안 된다.
과거의 영광의 취한자는 죽은 자다.
이 스포츠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말.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으로 둬야한다.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 다가올 내일을 바라봐야한다.
-자. 이제 마지막 상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하이라이트죠.
-올해의 선수상이죠. 시간 끌지 않겠습니다. 이 분위기 그대로 바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상엔 문화체육관광부의 최재찬 차관님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드디어 올해의 선수상 수상이다!”
“승우 형. 준비해요. 그렇게 멍 때리고 있다가 부랴부랴 나가지 말고. 미리 미리 준비!”
“맞어. 어차피 형이잖아요.”
흠. 왜 이렇게 바람을 넣는 거야?
“아. 왜 그래?”
내 반응에 눈을 흘기는 연호.
“야. 이 것 봐라? 너도 속으로 네가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안 그래?”
내 속에 들어왔다 나갔냐?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맞추냐.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본인의 외모가 뛰어난 걸 알고 있듯 나도 내가 올해의 선수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누가 받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커리어 면에서 올 해 나를 앞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모든 선수를 합쳐도 마찬가지.
내가 범죄를 저질러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한 내가 받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나만의 착각이 절대 아니다. 이건 객관적인 자료라고.
커뮤니티 글도 빠짐없이 살펴봤다.
내 팬이 아닌 사람들마저 내 수상을 예측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내가 올해의 선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민망하게 그렇게 하지는 말아줄래?
지금 카메라가 나 잡고 있거든.
호명도 되기 전에 헤벌쭉 웃고 있는 건 전혀 멋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웃는 건 좀 있다 해도 충분하다.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자.
어느새 인사말을 마친 차관님.
얼굴에 인자함이 잔뜩 묻어 계시다.
-이렇게 큰 상을 시상하게 되어 저도 영광입니다. 지금처럼 한국 선수들이 세계의 중심이 되서 이 스포츠 문화를 이끌어갔으면 합니다. 앞선 시상을 쭉 보니 시간을 끄는 것보다 바로 발표하는 게 오히려 반응이 더 좋던 것 같더군요. 저도 시간 끌지 않고 바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헉? 이렇게 빨리?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황급히 테이블에 놓여 있는 물을 마시며 마른입을 적셨다.
-2015 대한민국 이 스포츠 대상. 올해의 선수는!
긴장감을 고조 시키는 음악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축하드립니다. 이! 승! 우! 선수입니다!
-이승우 선수는 정말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커다란 굴곡을 지니고 있는 선수입니다. 올 시즌 초 6년간 2군 생활을 지속해왔던 S1에서 방출 당한 이후 아스트로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 후 프로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더니 프로리그 다승왕, 개인리그 4회 연속 등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올해는 이승우 선수의 해입니다. 수많은 기록을 만들어내며 용족도 최강자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거든요!
-몇 년 간 이영우 선수가 독점했던 올해의 선수상! 드디어 다른 선수가 나왔습니다.
-아. 이승우 선수. 무대에 아홉 번째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예상대로!
내 이름 석 자가 발표 된 후에야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예상을 하고 있는 것과 실제 이름이 불리는 건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 덤덤하게 받아 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이름이 불리는 순간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너무 기분이 좋아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구름 위로 붕 떠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온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다.
“축하해요. 형!”
“올해는 진짜 네가 씹어 먹었지!”
“내년에도 부탁한다!”
팀원들의 축하 인사가 귓속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았다. 내가 평생 살면서 차관님과 악수를 하게 될 줄이야. 이건 두고두고 자랑해야겠다.
시상과 함께 받은 트로피.
매 년 연말 TV로 보며 부러움에 침을 질질 흘렸던 트로피가 지금 내 손에 쥐어져있다.
믿기지 않는다.
이럴 때 감회가 새롭다는 표현을 쓰는 거겠지?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승우 선수.
-자. 이승우 선수는 마지막으로 수상소감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새 내 앞에 놓인 마이크.
“가식적인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받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크게 놀라지 말아야지. 무덤덤하게 무대에 올라야지. 테이블에 앉아서 그렇게 계속 마인드컨트롤을 했습니다. 근데 진짜 제 이름이 불리니까 가슴이 벅차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정말 기쁘네요. 올 한 해 있었던 일들이 쭉 떠오릅니다. 힘들었던 일도, 좋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묵묵히 저를 응원해주었던 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고맙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부족한 저를 지도해주셨던 감독님과 코치님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팀에 있던 것이 아닌데 마치 오랜 세월 함께 있었던 것 처럼 대해준 팀원들에게도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 세심한 배려가 아니었다면 결코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정말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잠깐 말을 끊었다.
지금부터 할 말이 정말 중요한 말이거든.
“아까 감독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올해 그랬던 것 처럼 내년에도 아스트로가 프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적이 아닌, 너무나도 당연한 우승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모든 걸 쏟아 내겠습니다. 그리고 내년 이 자리에서 올해의 팀, 올해의 감독, 올해의 선수 이 모든 상을 다시 한 번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말을 하면서 S1 테이블 쪽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하는 메시지기도 하지만 이건 임주혁 예비감독님에게 보내는 메시지기도 하다.
그 순간 눈이 마주 친 임주혁 예비감독님.
나를 향해 박수를 보내주고 계셨다. 내 결정을 이해해주신다고 봐도 되는거겠지?
제가 정말 고민 많이 했거든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두 말 할 것 없이 제안을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맞는 거 같은데 그렇게 할 수가 없네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깨달았어요.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두려고요.
언젠가 이 결정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같은 팀에서 꿈을 그려나갈 순 없게 되었지만 프로리그, 그리고 개인리그에서 만났을 때 멋진 경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수상소감을 마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내려오자마자 팀원들에게 둘러싸였다. 설마 또 헹가래하려는 거냐?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어느새 내 몸은 공중으로 들려져 있었다.
“이승우 만세!”
“올해의 선수 만세!”
“내년에도 만세!”
“내년에도 올해의 선수!”
좋은 이야기 투성이긴 한데 어째 잘생겼다는 말은 하나도 없냐.
살짝 섭섭해지게 시리.
아쉽게도 끝까지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다 내 덕이 부족한 탓이다. 더 착하게 살았어야 했나?
-자. 이제 모든 시상이 끝났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즌에 더욱 더 멋진 경기와 함께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2015 이 스포츠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게 2015시즌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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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뻔한 결과였나요?;;;
죄..죄송합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