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1 Game No. 431 뜻밖의 전화 한 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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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의 질문이 쏟아졌는지 모르겠다.
한 50번까지는 세어본 것 같은데 말이지.
의외의 면을 감독님에게서 발견했다.
전혀 몰랐던 모습.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지금보다 더 시달릴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땐 지금보다 더한 지옥이 눈앞에 펼쳐지겠지.
살짝 상상해봤다.
...끔...끔찍해.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잘 다녀와라.”
감독님에게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착각이겠지?
먹잇감을 놓쳐서 입맛을 다시는 맹수의 느낌이 살짝 풍긴다.
오..오해라고 믿을래.
얼른 떠나야겠다.
“넵. 대상 전날 올라올게요.”
올스타전이 끝나고 다음 날 바로 집으로 가기로 한 건 신의 한 수였다.
미리 정해진 일정이었기에 감독님도 어쩔 수 없었다.
미리 이야기 없이 떠난다면 그걸로 또 한바탕 시달릴 뻔 했다.
그렇게 숙소를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공기가 이렇게 상쾌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이 맑다.
추위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상쾌하고 또 상쾌할 뿐.
이제 자유다!
프리덤!!!
모든 게 평화롭게 보인다.
이렇게 집에 또 가게 될 줄이야.
그 전에 집에 가기 전까지 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한가했던 2군이기에 기회는 많았지만 가지 않았다.
집에 가면 다시 못 올라올 것 같았으니까.
그대로 멈춰버릴 것 같았으니까.
가족을 웃게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아니다.
모든 이야기를 웃으며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내가 얻은 모든 걸 가족들에게 베풀고 싶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 한일을 꼽자면 우승도, 다승왕도 아닌 엄마가 더 이상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든 것이다.
아픈 몸으로 식당에 나가시는 엄마를 떠올릴 때면 항상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편하게 즐기면 된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하고 싶었지만 참았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도와줄거다.
가족들에게 고마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꿈을 좇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본인도 노력해야겠지만 주변에서도 도와줘야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가족은 100점 만점에 120점이었다.
아무도 날 뭐라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안계시기에 내가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도 꺼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용기를 복 돋아줬다. 안 되는 꿈을 잡고 있는 것보다 비참한 일을 없다며 지금이라도 프로게이머 때려 치고 기술을 배워보라던 친척. 난 그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나를 대신해 우리 아들 잘하고 있는데 왜 그렇게 말 하냐고 나서주신 엄마. 나오는 길에 굳이 명절에 모일 필요 없겠다며 끝까지 내 편을 들어주신 엄마.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내 옆에서 삼촌 말 듣지 말라고. 내 눈엔 오빠가 최고라고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 모든 것이 너무 고마웠다.
언제나 내 편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 그렇게 마음이 차분해질 수 없었다.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용기가 다시 생겼다.
그때 생각하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살짝 베어 나온다.
이제 다 잘되었으니까.
좋은 생각! 좋은 생각!
울지 말자. 이승우.
모든게 좋아졌는데 울긴 왜 울어?
기분 전환을 하자.
며칠 만에 다시 집에 가려니 기분이 새롭다.
익숙지 않은 기분.
앞으로 자주 집에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집이 이사를 간다.
태어나고 자랐던 공주를 떠나 세종으로.
그리 이사 가면 엄마가 더 심심해지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친하게 지냈던 분들은 이미 다 세종으로 이사 가셨다고 했다.
이사를 가게 되면 더욱 더 공주를 갈 일이 없어진다. 자주 자주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어릴적 추억들도 떠올려야겠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아주 바쁜 휴가가 될 거 같다.
학창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만나야하거든.
종족최강전이 끝나고 집에 내려갔을 때도 연락이 왔지만 그땐 약속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과 보내기로 애초에 약속하고 내려간 것이었으니까.
어느새 도착한 고속버스터미널.
미리 예매해둔 공주행 차표를 끊고 안에 올라탔다.
아직 출발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창 밖 풍경이 점점 익숙해졌다.
“목적지 도착했습니다. 놓고 내리시는 짐은 없는지 한 번 확인해주시고 내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공주.
연말이라 그런지 터미널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처럼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겠지?
화장실에 들렸다가 터미널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어? 저거 이승우 아냐?”
“엥? 이승우가 왜 지금 여기 있냐? 어제 올스타전했는데. 서울에 있겠지.”
“아닌데? 맞는데? 저거 맞아.”
그 중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이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모두 남학생이었다. 자기들 딴엔 조용히 말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 다 들리거든?
그리고 ‘저기’도 아니고 ‘저거’라니. 내가 무슨 물건이냐?
그래도 알아봐줘서 고맙긴 하다.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오는 남학생들.
“저기. 혹시 신들의 전쟁 이승우 선수 맞으신가요?”
아까처럼 저거라고 해보시죠?
반말도 하고.
“아. 네. 맞아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다.
속으로 했던 생각들은 전부다 장난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서울에서 연예인보면 친구처럼 말하곤 했거든.
나이가 적든 많든 말이지.
사실 이게 버릇없는게 아니고 너무 놀라다보면 자연스레 말이 이렇게 나온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마인드다. 나도 이랬는데 다른 사람이 나한테 그런다고 뭐라고 할 순 없지. 저 사람들도 악의는 아닐테니까.
“와. 대박! 이승우라니!”
“뭐? 이승우? 프로게이머?”
“어?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우오오오!!”
삽시간에 몰려드는 사람들.
빠르게 스캔해봤지만 여자는 없다.
전부 남자다.
아. 눈에서 살짝 흐르는 게 뭐지? 땀 인가?
감회가 새롭다. 아무도 몰라볼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남자’ 그 중에서도 ‘대학생 남자’는 대부분 나를 알아보았다.
그래. 알아본다는게 어디냐.
이거에 만족하자!
순식간에 터미널 앞에 싸인회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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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생각보다 늦었네?”
출발하기 전에 몇 시 차를 탄다고 말했었다.
시계를 보니 도착 예정 시간보다 1시간가량 지체 되었다.
“아. 터미널에서 사람들이 알아봐서 싸인 해주고 오느라 조금 늦었어.”
누가 소문을 냈는지 그 후에 더 많은 수의 대학생이 몰려들었다
“우리 아들. 스타 다 됐네.”
내 말에 뿌듯한 얼굴로 나를 안아주는 엄마.
스타는 스타인데 남자한테만 인기 많은 스타입니다.
그래도 기분이 좋긴 했다.
확실히 신들의 전쟁이 대세는 대세인가보다.
연예인도 아니고 프로게이머가 떴다고 그 북새통을 이룰 줄이야.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니?”
“아. 아니. 엄마랑 동생이랑 저녁 먹고 그 후에 친구들 보기로 했어. 간단히 맥주 한 잔 하려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일부러 저녁 시간 이후로 잡았다.
가족들과 밥 한 끼라도 더 하기 위해서다. 오늘 만나는 친구들은 중학교 때 친구들이다. 뭐 중학교 친구가 내내 고등학교 친구들이긴 하지만 이번에 만나는 애들은 조금 특별하다.
나와 같이 프로게이머를 꿈꿨던 애들이거든.
지훈이와 용수.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흔히 말하는 그 친구들 있잖아. 이게 이 녀석들이다.
내 왼쪽이 지훈이고 오른쪽이 용수.
오해하지 말라고.
왼팔, 오른팔 말한거니까.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다 꿈을 접긴 했지만 요즘도 취미로 신들의 전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배틀넷에서 아마추어 고수로 유명하다고 들었다.
“다행이네. 먹고 싶은 음식 있어?”
저야.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라면 다 좋죠.
“그냥 엄마 요리. 엄마 요리가 먹고 싶어.”
숙소에서 먹는 밥도 맛있지만 집밥 보다 나을 순 없다. 며칠 전에도 실 컷 먹었지만 여전히 먹고 싶다.
1시간 후.
내가 바라던 집밥이 식탁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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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아들. 조심히 놀다와.”
“넵!”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려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집에 오지 않은 세월만큼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다. 연락은 더 뜸했다.
1년에 한 두 번 할까? 말까?
대학교를 다니며 재미난 추억을 쌓고 있는 친구들에 비해 내가 너무 초라해보였거든.
MT사진, 축제 사진을 보는 게 전부였다.
프로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얻고 있을 때 친구들에게 처음 연락을 취했다.
가장 먼저 돌아온 답은 욕이었다.
그 욕이 반가움의 표시라는 걸 모를 리 없다. 나 역시 더 심한 욕으로 답해줬다.
그 후론 나름 자주 연락을 취했다. 시즌 중이라 만날 순 없었지만 시즌이 끝나고 가장 먼저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오늘 지키는 거고.
약속 장소로 나와 보니.
“....아무도 없네.”
살짝 욕이 나온다. 주변을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다.
역시 남자들과의 약속은 시간을 정확히 지키면 안 된다.
9시까지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
단톡방에 들어가 어디냐고 올리니.
-지훈 : 가는 중이야.
-용수 : 벌써 왔냐? 개 빨리 왔네. 와. 너 좀 개념 없다?
빨리 왔냐니. 그리고 개념 없다니?
너네 미친 거 아냐?
지금 시간이 9시인데.
우리 약속 시간이 9시인데.
난 정확히 왔는데.
그 후 셋이 전부 모이기까지 정확히 34분이 걸렸다. 난 그동안 옆에 있는 인형뽑기에서 인형이나 뽑으며 시간을 보냈다.
만나자마자.
“새꺄. 연락 좀 하고 살자?”
대뜸 주먹부터 날리는 용수.
퍽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옆으로 기운다.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어릴 적부터 적극적이더니 이젠 주먹까지 적극적으로 변했네?
“.....난 너 죽은 줄 알았어.”
지훈이도 어렸을 때와 똑같았다.
조용조용 할 말을 다하는 스타일은 여전하네. 그래도 친구한테 죽은 줄 알았다는 말은 실례야. 하하하. 내가 일 년에 한 두번 보낸 연락이 그럼 천국에서 온 줄 알았니?
어째 주먹보다 더 아프게 들린다.
“야. 너 돈 많이 벌었지? 한 턱 제대로 쏴.”
저기 미안한데 내 몸 좀 놔줄래? 그렇게 흔들면 많이 어지럽거든?
“안 그래도 그럴 작정이니까. 가고 싶은데 가자.”
“올. 새끼. 진짜 돈 좀 벌었나보다?”
“근데도 우리한텐 연락 안했어.”
미안하다. 내가 진짜 죄인이다.
용수와 지훈이의 어깨에 양 팔을 둘렀다.
“자. 가자! 가자!”
용수와 지훈이는 아직 대학생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있지만 충분할 리 없다. 오늘은 적어도 주머니 걱정 안하고 마음껏 먹게 하고 싶었다.
그 정도 돈은 있거든.
10분만 거리를 돌며 술을 마실 장소를 정했다.
용수와 지훈이가 몇 개 선택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말은 거칠게 해도 내 사정을 생각해서인지 그리 비싸지 않은 곳을 골랐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1차 장소를 정했다.
“헐. 여기 겁나 비싼 곳인디?”
“그러게.”
“야. 이 정도는 내가 쏠 수 있어. 2차도 있으니까 여기서 너무 많이 먹지마.”
내가 고른 곳은 고급 일식집.
나름 여기서 유명한 곳이다.
아직 학생인 녀석들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대를 지니고 있는 곳.
하지만 괜찮다.
내가 있으니까! 사실 처음부터 이곳을 생각하긴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인데. 이 정도는 써야하지 않겠어?
“자. 자! 갑시다!”
여전히 들어서기를 망설이는 녀석들의 등을 문 입구로 밀어 넣었다.
친구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 난 1인당 가격이 가장 비싼 코스를 시켰다.
정말 이걸 시켜도 되냐고 묻는 녀석들의 말에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답해줬다.
그 과정에서 용수의 주먹을 한 번 더 맞았다.
이유는 표정이 재수 없다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새끼 같으니라고.
시간이 흐르고 코스 요리가 하나 둘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다.
두 눈이 휘둥그레 변하는 녀석들.
사실 나도 비슷한 기분이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내가 옷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미식가도 아니라서 대부분의 돈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돈 마저 전부다 집에다 줬다.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는 뜻이지.
우리는 코스로 나온 요리를 먹으며 술을 기울였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친구들과 이렇게 함께 있으니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다.
행복은 거창 한게 아니다. 이런 게 바로 행복이다.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을 먹는 것.
한참 친구들과 옛날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웅. 웅.
휴대폰이 힘차게 진동했다.
살짝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다.
흠. 뭐지?
예전이라면 받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르는 번호고 가끔 중요한 전화가 오거든. 일단 받아야했다.
“나 잠깐만 전화 받고 올게.”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용한 밖으로 나왔다.
“여보세요.”
-아. 이승우 선수 번호 맞나요?
모르는 번호였지만 이 목소리는 내가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상대방을 알아차린 순간 몸이 살짝 떨렸다.
내가 엄마 다음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
그리고.
-S1의 임주혁입니다. 지금 통화 괜찮나요?
내가 꿈을 프로게이머로 만든 사람의 목소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