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2 Game No. 412 승부처 =========================================================================
Game No. 412
정찰 용안이 일찍 잡힌 게 컸다.
그게 이번 경기의 패인이다.
마수가 뭘 하는지 초반부터 놓치면 답이 없다.
최소한 마굴을 가는지, 타 스타팅 앞마당에 두 번째 확장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내야 한다.
두 가지 중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면 모든 걸 방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손해다.
오지도 않을 러시를 준비해야 하니까.
대충 감으로, 눈치로 용광포 숫자를 조절해야 하는데 이번엔 그게 실패했다.
이제 승부는 2:2.
다시 동률이 되었다.
“아. 그게 잡히면 안 됐는데. 안 잡혔으면 이런 올인에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
자책하며 벤치로 돌아오는 여준이를 모두 안아 주었다.
“괜찮아. 아직 경기 끝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더 잘하면 돼지.”
“그래. 이것도 다 경험이야. 경험!”
팀원들의 위로에도 여준이의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았다.
대충 어떤 기분인지 알거 같다.
내가 몰수패를 당했을 때 저런 기분이었거든.
여준이처럼 모두가 따뜻하게 위로를 해 준 건 아니지만 위로를 받더라도 썩 기분이 좋아질 것 같지는 않았었다.
저럴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묵묵히 장비를 챙기는 현우 형.
사뭇 비장함이 감돈다.
형도 많이 긴장될 거다.
우리 팀에서 그 누구도 프로리그 결승에 서 본 선수가 없다.
분명 본인도 많이 떨릴 텐데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는 형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괜히 주장이 아니다.
“응원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지.”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짧은 말에 모든 걸 담았다.
****
-2:2! 아주 팽팽합니다!
-어느새 5세트가 왔네요!
-굉장히 시간이 빠르게 느껴집니다! 이번 경기가 승부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스트로에서 박현우 선수가 나왔거든요!
2:2 동점.
팽팽한 승부.
누가이기든 다시 균형이 무너진다.
1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내뱉는 뜨거운 열기에 광안리는 잠시 겨울을 잊었다.
벌써 5세트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응원 소리는 여전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사람이 두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모였다.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승리를 거두면 함성이 광안리를 가득 채운다.
이런 분위기에서 흥분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렇기에 프로리그 우승이 모든 팀의 염원이 되는 것일 거다.
아스트로는 1, 2, 5세트에 팀의 에이스 라인을 내보냈다.
그중 2세트에 나선 한민규가 정명혁에게 잡히긴 했지만 3세트에서 김승대가 김택윤을 잡아 준 덕에 원하는 승점을 따낼 수 있었다.
다음 세트인 6세트에선 S1에서 도재열이 나온다.
도택형명의 마지막 에이스 선수.
신연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5세트에서 박현우가 패배한다면 6세트에서 경기가 끝나 버릴 수도 있다.
도재열의 물량은 환국전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여태까지 진행 된 세트 중에 아스트로 선수가 S1 선수보다 커리어 상, 승률상 우위를 쥐고 있던 세트는 1세트와 5세트뿐이다.
이런 경기를 놓치면 결코 우승을 할 수 없다.
종족 상성의 우위도 가지고 있다.
천공의 눈이 마수가 유리한 전장이긴 하지만 용족을 상대할 때 그러한 점이 두드러지는 거지 환국과 경기를 한다면 이점은 많이 사라진다.
오히려 환국이 레이트 메카닉을 준비할 때 다수의 화차를 빠르게 모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주장으로서 역할을 확실히 해 줘야겠죠.
-분명 부담되는 자리지만 박현우 선수라면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그걸 알기에 이재명 감독이 박현우 선수를 5세트에 내보낸 것이거든요?
-어현수 선수도 부담이 있을 겁니다. 앞선 4세트에서 이승철 선수가 승리를 따냈거든요? 팀 내 마수 중 두 번째 서열이긴 하지만 언제 뒤집힐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임형규 선수를 제외하면 무한 경쟁 체제라고 봐야 합니다.
-자. 양 선수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앞서나갈 팀이 나오게 되는 5세트 경기를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양 선수.
경기가 시작된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경기는 무난하게 흘러갔다.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무리하지 않았다.
이번 세트가 가지는 무게감 때문일 거다.
2~4세트와 다르다.
이번에 패배하면 상대에게 3점을 내주게 된다.
매치포인트.
올인성 전략을 준비해 왔다가 그게 실패라도 하는 날엔?
끔찍하다.
평생 최악의 순간으로 자리 남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둘은 가장 정석적인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오히려 중요한 경기이기에 올인성 전략을 사용하는 선수들도 있다.
S1의 정명혁 같은 선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선수 스타일과 같은 노선을 걷는 것이었다.
-궁병과 의원 조합으로 압박을 떠나는 박현우!
-일단 닷발귀 돌아와야죠. 아직 가시귀가 나오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무난한 경기 양상.
닷발귀의 견제를 막아낸 환국이 바이오닉 병력으로 전장 중앙을 배회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지금 이 압박은 굉장히 중요하다.
닷발귀를 끌어오는 역할을 해 줬으니까.
공격을 통해 수비를 하는 것.
가장 좋은 수 중 하나였다.
다만 진출한 병력이 추가 병력과 합류하지 못하고 잡아먹힌다면 이야기가 조금 애매해진다.
마수가 병력 대신 일벌레를 안전하게 한 타이밍 찍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현우도 과감한 움직임보다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 줬다.
-애초에 확장을 깨려는 의도는 없는 것 가네요.
-괜히 무리해서 갔다가 생산된 마견과 닷발귀에 바이오닉 병력이 전멸하면 추가타가 굉장히 약해지거든요!
-박현우 선수는 장기전을 준비해 왔습니다. 타이밍을 노려 일격에 끝내기보단 말이죠.
긴장감 속에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서로 무리한 움직임은 나오지 않았다.
팽팽하던 긴장감이 터진 건 어현수가 4금광, 그러니까 타 스타팅 앞마당에 소굴을 펼 때였다.
아까와 달리 병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박현우.
세 번째 금광은 그냥 주지만 네 번째 금광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번엔 압박이 거센데요?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이러면서 환국도 체제 전환 준비하고 있죠.
레이트 메카닉.
대 마수 최종 빌드.
철광이 풍부한 전장이라 화차는 얼마든 생산할 수 있다.
공격과 확장, 그리고 체제 전환.
이 모든 걸 박현우는 동시에 해내고 있었다.
깔끔하다.
틈이 없다.
환국이 가장 약한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다.
확장을 해 수비 범위가 늘어났지만 체제 전환으로 인해 당장 병력이 부족한 상황.
그걸 박현우는 병력의 좋은 움직임으로 잘 넘기고 있었다.
-자. 박현우 선수 승부수 한 번 더 띄우는데요?
-금와입니다, 금와!
-2기는 조금 큽니다. 이게 본진에 제대로 떨어진다면! 진화장을 부술 수 있다면 굉장히 도움이 되거든요!
또 하나의 카드를 준비하는 박현우.
압박이 거세 마수가 다른 곳에 신경 쓸 수 없다는 걸 이용해 금와로 뒤를 흔들 생각이었다. 마수의 병력 업그레이드를 멈추게 만들거나 마견숲을 파괴해 마견이 더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환국의 확장은 안전해진다.
물론 양날의 검이다.
안 그래도 병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금와가 혈풍에 의해 공중 격추라도 되는 날엔 마수의 역습을 허용할 수 있다.
동시에 4금광 쪽에 병력이 빠진 걸 알고 5금광 이상을 확보하려 할 수 있다.
금와에 탄 바이오닉 병력이 몰살을 당하면 이런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
-갑니다! 가요!
-본진입니다. 본진으로 날아가고 있어요.
-이게 제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난전 유도할 수 있거든요?
-안 죽으면 됩니다. 저 병력이 쉽게 잡히지만 않는다면! 시간을 끌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쉽지는 않다.
어현수의 본진에 혈풍이 배치되어 있었으니까.
공중 경로인 서쪽과 북쪽에 각각 4기의 혈풍이 패트롤되어 있었다.
속도가 느린 금와로 밀고 들어가기엔 약간 무리가 따른다.
금와가 한 기라도 잡힌다면 위력은 절반이 아니라 그 이하로 떨어진다.
그때였다.
-어? 풍혼! 풍혼이 한 기 날아옵니다.
-이게 뭐죠? 언제 생산한 거죠?
-이건 변수인데요!
풍혼은 딱 한 기.
임무는 간단했다.
패트롤 되어 있는 혈풍을 끌어오는 것.
어현수가 화면을 놓치고 있다면 혈풍은 사정거리에 들어온 유닛을 따라가게 된다.
속도가 느린 금와라면 혈풍에 따라잡히겠지만 속도가 빠른 풍혼은 충분히 혈풍을 유인해 낼 수 있다.
그렇게 풍혼으로 혈풍을 끌고 와 금와가 파고들 틈을 만들어낸 박현우.
슈퍼 플레이에 관중들이 박수를 쏟아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박현우!
-그렇죠. 이게 바로 에이스죠! 에이스가 가지고 있는 힘이죠!
-본진에 바이오닉 부대가 떨어집니다!
두 기의 금와에 꽉꽉 채워 왔다.
한 부대가 넘는 양.
진화장 깨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본진에 떨어진 바이오닉 병력에 어현수가 탄식을 내질렀다.
우물쭈물하고 있을 새가 없다.
황급히 병력을 보내 본진에서 일어난 사태를 정리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피해를 입혔다.
-박현우 선수의 수가 정말 좋았네요.
-해모수로 끊임없이 망태할배와 가시귀를 잡아 줬거든요? 만약 이런 것이 없었다면 해모수의 청린갑을 활용한 금와 침투를 예상해 더 많은 혈풍을 두었을지도 모르는데 박현우 선수는 해모수의 술력을 있는 족족 다 써 줬거든요! 그래서 4기의 혈풍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는데 허를 제대로 찔렀어요!
-경기를 잘 풀어가던 어현수! 위기를 맞이합니다!
****
“됐다!”
현우 형의 금와가 어현수의 본진에 떨어져 진화장과 마견숲을 순식간에 깨냈다. 이러면 유리하다.
레이트 메카닉의 약점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
“이야. 현우 형 진짜 대단하네.”
“그러게요. 거기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을까요?”
민규가 특히 더 감탄했다.
자신이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생각하지 못할 플레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대로라면 이기겠지?”
내 질문에 민규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진짜 말도 안 되는 실수 나오지 않는 이상 이길 거예요. 오히려 지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민규의 말대로 경기의 주도권은 현우 형에게 완전히 넘어갔다.
어현수가 회심의 드랍을 준비했지만 가는 도중 천리안에 들키는 바람에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 못하고 막혔다.
그 순간 경기가 급속도로 기울었다.
이미 타 스타팅 확장을 전부 확보한 현우 형.
마수와 환국이 같은 자원을 먹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마수가 불리하단 뜻이었다.
경기가 곧 끝날 것처럼 보였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고만!”
뒤에 앉아 있던 연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호야.”
“왜?”
“우승 마무리 지어라.”
내 말에 환하게 웃는 연호.
턱을 하늘로 탁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오늘 아침에 운세를 봤는데 되게 좋다고 나왔어. 오늘 mvp는 내가 가져간다.”
연호의 익살스러움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6세트에서 이겨 네가 MVP를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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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현수 선수 GG! GG를 선언합니다!
-금와 드랍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번 경기를 가져간 건 다 그 금와 덕분이에요!
-박현우 선수의 승리로 3:2로 앞서나가는 아스트로!
-창단 이후 첫 우승을 진짜 달성하나요?!
-그러면 진짜 이스포츠계의 엄청난 일이 아니겠습니까?
-기적이죠. 기적.
미라클 아스트로.
타 팀 팸들이 아스트로를 현재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적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이제 단 한 세트만 잡아내면 위너스 리그 우승에 이어 정규 리그 우승까지 달성하게 된다.
아스트로가 이런 위업을 달성하리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도재열 선수의 어깨가 무겁죠.
-패배하면 그대로 경기를 내주는 겁니다!
-솔직히 에이스 결정전을 가도 쉽지는 않습니다. 아스트로에서 누가 나오겠습니까? 이승우 선수가 다시 나오지 않겠습니까?
엄청난 압박.
하지만.
-일단 그건 두 번째 문제입니다. 적어도 6세트에서 패배하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S1이 괜히 명문이 아닙니다. 분명 에이스 결정전에 이승우 선수가 나올 걸 알고 엄청 준비를 해 왔을 거거든요?
-그럼 저희는 잠시 휴식을 가진 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6세트 경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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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