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0 Game No. 400 복수의 기회. =========================================================================
Game No. 400
이영우의 마패에 경기장이 그대로 뒤집혔다. 이렇게 공격적인 도발을 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가지각색의 반응이 나왔다.
“대박!!!!”
“제대로 도발한다. 쩐다.”
“그래. 이래야 꿀잼이지!”
기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와. 존나 도발 쩌네.”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시발. 올인해 놓고 좋다고 마패 까네.”
안 좋은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다.
당연히 전자는 CT와 이영우의 팬이었고 후자는 아스트로와 이승우의 팬이었다.
그 누구의 팬도 아닌 이들은 그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재미있어 했다.
-이승우 선수 앞마당 지역 확인하고 표정이 딱딱하게 굳습니다.
-아. 이건 이승우 선수라도 멘탈이 흔들릴 수밖에 없죠!
-이럴수록 차분해야 합니다. 그대로 들이받는 건 이영우 선수가 원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돌을 던져 버려선 안 됩니다. 물론 상황이 굉장히 힘든 건 사실이지만 차분히, 정말 차분히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중계진이 이승우에게 격려의 말을 했지만 상황은 좋아질 줄 몰랐다.
상대가 평범한 환국이었다면 이승우의 흔들기가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영우는 달랐다.
본진으로 떠난 운룡 견제.
이승우의 운명을 싣고 떠난 운룡이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조이기 라인만 더 단단해지는 결과를 불러왔을 뿐이다.
이승우의 전투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본진 자원으로 물량을 폭발시키고 전투에서 승리를 따낼 순 없다.
이영우는 굉장히 여유롭다.
5:5, 아니 6:4로 조금 불리한 소모전을 치러도 얼마든지 괜찮다.
말도 안 되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된다.
조이기 라인이 허무하게 뚫린다든지, 본진 일꾼이 상당수 잡히며 병력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든지.
물론 이런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아. 이승우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첫 전투에서 용혼이 용력을 전부 잃은 것이 컸습니다.
-진짜 그것만 아니었다면 2화통에서 나오는 병력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체제를 이승우가 택했거든요. 그 지뢰가 이번 경기의 MVP라고 봅니다.
지뢰가 터졌을 때 가장 기뻐했던 건 이정훈 감독이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만세를 불렀으니까.
조만간 커뮤니티에서 움직이는 짤방으로 돌아다닐 것 같다.
-2:2입니다. 2:2. 어제처럼 쉽게 경기가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죠?
-6세트까지 가는 건 무조건이고 에이스 결정전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에이스 결정전은 경기가 치러지기 직전에 출전 선수가 발표된다.
누가 나올지 그 누구도 모르는 상태.
하지만 오늘 에이스 결정전이 치러진다면 어떤 매치가 성사될지 모두 알고 있었다.
이승우와 이영우의 재대결.
분명 이 대진이 나올 거다.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다.
오늘은 이영우가 승리를 거뒀으니까.
-저희는 잠시 후에 5세트 경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이승우가 GG를 선언하며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
마패를 당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굉장히 상큼한 기분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분노가 저 깊은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른다고 해야 할까?
상대의 멘탈을 흔들리게 만드는 데 마패가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걸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안일했다.
인정한다. 이영우가 이런 운영을 준비해 왔을 줄 몰랐다.
플레이오프라면 충분히 예상했어야 했는데 말이지.
세로라는 위치도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가로나 대각선이었다면 이영우가 이런 도박수를 던지진 않았을 거다.
내 패배로 스코어가 2:2 동률이 되었다.
팀원들에게 조금 미안하네.
어제처럼 이겨서 3:1로 스코어를 벌렸어야 했는데.
4:2로 이겨도 좋지만 복수를 할 수 있는 에이스 결정전이 치러지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너무 나만 생각하는 건가?
“이영우가 준비해 온 게 너무 좋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감독님.
“자원 조금이라도 더 캐려고 정찰을 빠르게 마무리한 게 실수였어요. 일반적인 프로리그 경기가 아닌, 포스트시즌이었는데…….”
포스트시즌은 보통 프로리그보다 날빌이나 올인이 나오는 빈도가 훨씬 잦다.
거의 개인리그 4강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전략이 난무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
“그래야죠. 감독님.”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은 안 당한다.
그걸 오늘, 늦어도 내일 내엔 증명해 낼 거다.
****
드디어 이영우가 이승우에게 승리를 거뒀다.
OSL 시즌 2 결승전 이후 첫 승리였다.
물론 이걸로 만족할 순 없다.
무너진 자존심을 조금 되찾은 건 사실 이지만 팀이 승리 한 건 아니었다.
이 승리가 빛을 발하려면 CT가 오늘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부스에서 내려온 이영우를 반긴 건 팀원들의 환한 미소였다.
“잘했다!”
가장 먼저 달려와 이영우를 격하게 안는 이정훈 감독.
그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했다.
“아직 경기가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조금 이른 것 같아요.”
CT에서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이는 경기를 승리한 이영우뿐이었다.
“연패를 끊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축하할 일이지.”
이정훈 감독은 이영우와 조금 다른 걸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 프로리그 결과보다 그 후의 일까지 구상해 놓았다.
이승우를 상대로 연패를 끊었다는 건 매우 좋은 소식이다.
앞으로 만날 경기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다전제에서 지금보다 나은 결과를 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오버가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상성 관계가 역전 된 경우가 많다.
이영우와 도재열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한때 이영우는 도재열만 만나면 졌다.
그래서 S1에서 이영우를 저격하기 위해 대놓고 도재열만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영우는 도재열을 극복해 내지 못했다.
프로리그에서 만나는 족족 승리를 내줬다.
이영우 천적이라는 말이 도재열의 이름 앞에 붙을 때 쯤 둘이 MSL 8강에서 만났다.
개인리그에서의 첫 대결.
다전제이긴 하지만 도재열이 이영우를 압살한 경기가 대부분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도재열의 승리를 점쳤다.
3:0 혹은 3:1로 무난히 올라갈 거라 말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이영우의 3:0 승리.
그 이후로 도재열의 이름 앞에 이영우 천적이라는 말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왜?
그 이후 만난 프로리그에서 이영우가 연달아 승리를 따냈으니까.
크게 뒤져 있던 상대전적도 이번 시즌에 완벽히 역전했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점수 차를 더욱더 벌려 가고 있었다.
거대한 벽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고민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고민 끝에 자신의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인정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그 벽을 넘거나 부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이영우는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이다.
위기를 맞으면 그걸 극복하려 노력하고 실제로 극복해 낸다.
그 시작이 오늘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물론 이승우도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을 거다.
1패 정도야 할 수 있다.
다음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면 얼마든지 다시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
이미 이겨 놓은 경기가 많으니까.
이 대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두 에이스의 페이스는 결승 진출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
이어진 5세트.
아스트로에선 윤여준이 나왔고 CT에선 김대형이 나왔다.
아무래도 김대형 쪽으로 많이 기우는 대진이다.
실제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김대형 선수 정말 노련하게 플레이하네요.
-전투구도 잡는 게 예술이었죠. 뒤로 용혼이 물러나면서 상대 진영 흐트러지게 만든 후에 지룡으로 마무리! 아주 좋았습니다.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전투였습니다.
빌드는 같았다.
그 후 용혼-지룡 조합을 갖추고 벌어진 전투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김대형은 많은 경기를 치러 본 선수답게 어떻게 싸우면 더 유리한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시야가 좁아져 있던 윤여준은 김대형이 쳐 놓은 그물이 보기 좋게 걸리고 말았다.
이로써 스코어는 3:2.
어제와 달리 CT가 앞서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6세트에서 패배하게 되면 이승우가 다시 한번 경기를 치른다.
CT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6세트에 출전하는 정용재가 김승대를 누르는 것이었다.
최악은 에이스 결정전에서 패배하며 결승진출을 아스트로에게 내주는 것이겠고.
어제 경기를 승리하며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간 아스트로지만 오늘은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어떻게든 김승대가 승리를 따내 에이스 결정전으로 이어 주길 바랄 뿐이었다.
전장이나 종족 상성은 김승대에게 웃어 준다.
공짜 철광 확장이 뒷마당에 있는 천공의 눈인 데다 정용재의 종족이 용족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정용재는 이번 경기가 포스트시즌 첫 경기다.
어마어마한 부담감에 제대로 된 경기를 하기 힘들 거다.
본인의 손에 팀의 운명이 달려 있었으니까.
김승대는 그걸 파고들어야 한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상태라 약하게만 밀어도 크게 흔들릴 거다.
양 팀의 염원과 함께 시작된 6세트.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건 정용재였다.
하지만 김승대의 수비에 번번이 막혔다. 언뜻 정용재가 경기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건 김승대였다.
공격을 나섰으면 무언가 성과를 거둬야 한다.
전장 중앙에 병력이 있다고 주도권을 잡은 것이 아니다. 확장이나 병력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거나, 하다못해 위협을 느낀 상대가 방어에 과한 투자를 하게 만들어 간접적인 피해라도 입혀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만큼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3금광을 무사히 확보한 김승대가 망태할배를 생산하며 4금광 확보에 나섰다.
흑운이 쳐지고 그 안에 가시귀가 잠복하는 순간 천자총통과 궁병은 힘을 잃었다.
아무런 피해 없이 4금광을 가져가는 김승대.
정용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고 있었다.
추가로 금와를 날려 본진 쪽에 피해를 입히려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미 수비 라인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트롤을 하고 있던 혈풍의 레이더에 딱 걸린 금와가 공중에서 격추되었다.
안에 타고 있는 병력은 하나도 내리지 못했다.
안타까운 탄식이 CT의 팬들 입에서 터져 나왔다.
반면 아스트로의 팬들은 신이 났다.
에이스 결정전에 수호신 이승우가 다시 출전하기 때문이었다.
4세트에서 패배했지만 이승우는 이승우다.
이겨 줄 거라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이것이 에이스가 갖는 힘이었다.
-정용재 선수 기본기는 굉장히 탄탄하거든요? 근데 상대에게 제대로 된 일격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신만 내다 경기 내주는 거거든요? 조금 더 묵직한 한 방이 필요합니다!
가시귀의 공격을 피해 산개하는 궁병의 움직임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지만 그뿐이었다.
아직 타 스타팅 본진에 군영을 건설하지 못한 정용재와 달리 불가살을 띄울 준비를 거의 끝마친 김승대.
당장 지니고 있는 바이오닉 병력으로 불가살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많은 수의 천자총통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레이트 메카닉의 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
정용재로선 김승대가 조금이라도 러시 타이밍을 늦춰 주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걸 알고 있는 김승대가 병력을 일시에 생산해 정용재를 몰아붙였다.
징그럽게 많은 수의 병력이 환국의 타 스타팅 포인트 본진 확장을 향해 진군했다.
처음엔 제대로 된 진영을 갖추고 전투에 임한 정용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열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물량엔 장사 없다고 결국 군영이 파괴되었다.
일그러지는 정용재의 얼굴.
그사이 마수는 확장을 하나 더 늘려 다섯 군데에서 자원을 체취하게 되었다.
-아. 이제는 힘듭니다.
-7시 본진을 지키는 게 정용재의 가장 큰 포인트였거든요. 그곳을 잃은 이상 희망은 없습니다.
-궁병의 수가 많지만 아무 의미 없죠. 적혈 뒤집어쓰고 흑운 치며 달려드는 불가살을 이길 수 없습니다.
환국의 마지막 병력을 향해 달려드는 마수의 유닛들.
어찌나 많은지 미니맵을 빼곡하게 덮을 정도였다.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궁병에게 적혈을 뿌림과 동시에 흑운을 펼치는 망태할배.
그 사이를 파고드는 불가살.
불가살의 공격에 궁병이 반으로 갈라졌다.
궁병이 내지르는 비명이 끊이지 않고 들렸다.
불가살도 불가살이지만 그 뒤에 있는 마견의 공격력도 무시무시했다.
눈 깜짝할 새에 전멸한 환국의 병력.
그곳에 환국의 병력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GG! 정용재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정용재!
-아스트로의 저력도 정말 대단하네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에이스 결정전까지 경기를 이어 주는 모습입니다!
이제 승부는 에이스 결정전에서 결정난다.
============================ 작품 후기 ============================
에이스 결정전에서 승부를!
ㅂㄷㅂㄷ이승우가 어떤 전략을 들고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