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4 Game No. 384 오랜만이다? =========================================================================
“오늘 승우 형 경기력 진짜 쩔었어요. 8화통 보는 순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게. 그걸 어떻게 또 막아내네.”
동감.
나도 비슷한 생각을 경기 중에 했다.
“대각선이라 막았지, 가로나 세로였으면 못 막았을거에요.”
이건 진심이다.
가로였다면 [투신] 할아버지가 와도 못 막았을거다.
[엄대엄]이란 스킬이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1기의 천왕랑으로 한부대의 신기전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면 아무런 효과 없이 스킬은 공중분해 되어 버린다.
환국의 기갑병력이 언덕을 장악하는 순간 [승부사]를 발동시켜봤다.
3분 간 사용하다 여의치 않으면 [투신]을 추가로 사용하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부 능력치가 상승하는 [투신]과 달리 [승부사]는 모든 능력치가 70% 상승한다. 이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어떤 스킬로도 올릴 수 없는 생산력 같은 부분에서 큰 차이가 발생했다.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생산이 단 한 번도 끊기지 않은 것이다.
평소라면 전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텐데 아까는 본진 제단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만약 [투신]만 사용했더라면 우격다짐으로 들어오는 기갑 병력에 트리플 신전이 밀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상 병력이 든든히 받쳐줬기 때문에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5분이 지나 [승부사]의 발동 시간이 끝나는 순간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평소보다 확실히 둔해진다. 그 차이가 확연히 느껴질 정도다.
상황이 워낙 유리해 경기를 가져갈 수 있긴 했지만 이영우나 정명혁 같은 선수와 맞붙었을 땐 정말 신중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날의 검.
스킬이 지속 될 때는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하지만 그 시간이 끝나는 순간 위기가 올 수 있다.
확실하게 경기를 끝낼 자신이 있을 때 써야하는 스킬인 것이다.
그렇게 팀원들과 오늘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시간 참 빠르게 가네.
숙소로 들어오는 순간 모든 팀원이 약속이라도 한 듯 연습실로 향했다.
고등학생 소년처럼 왁자지껄 떠들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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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정말 잘 따라 와줬어.”
“다 감독님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이죠.”
“어쭈? 아부하는게 조금 늘었다?”
“아부라뇨. 제 속마음이 나온 거죠.”
송병호의 넉살에 이여름 감독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4:2.
아주 기본 좋은 스코어였다.
“내일도 오늘처럼 일찍 끝내버리자.”
이여름 감독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연습실로 들어가는 선수들을 이여름 감독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잘해주었다. 진 선수들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점수를 매긴다면 모든 선수에게 90점 이상을 주고 싶었다.
내일도 이런 스코어가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
나무전자의 목표는 플레이오프 진출이 아닌 우승이다.
2013년도에 위너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정규리그에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한 건 2008년이다. 벌써 7년이나 되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S1과 함께 최다 우승팀이었는데 지금은 S1과 우승이 3회나 차이가 난다.
꽤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사이 CT가 맹추격해 나무전자와 같은 2회 우승을 쌓았다.
이번에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 나무전자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아스트로를 확실히 꺾어야한다.
‘변수를 뒀다 이거지.’
1경기에서 예전처럼 4세트에 나왔던 이승우가 1세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박현우였다.
이승우를 저격하기 위해 송병호를 넣었는데 일단 저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단순히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쁘진 않다.
송병호가 가장 잘하는 환국전을 하게 되었으니까.
‘근데 찝찝하단 말야.’
박현우가 왜 4세트에 나온 것일까?
무언가를 노리고 나온 것이 아닐까?
오랜 시간 감독을 하면서 쌓인 감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도박수를 던져봐야지.’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1세트에 출전하는 이성표가 이승우를 잡는 건 힘든 일이었다.
환국이 유리한 전장이면 모를까 하필 전장도 황혼으로 용족이 더블 스코어로 환국을 앞서가는 곳이었다.
무난하게 하면 이승우가 원하는 대로 간다. 차라리 초반에 도박수를 던지는 것이 나았다. 지더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았다. 혹시 모를 3경기에 대한 심리전일 될수도 있고 CT에게 보내는 경고장이 될수도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쉽게 경기를 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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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온 이재명 감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오늘 경기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었다.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점에서 실수나 나왔지 파악하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었다. 수석코치나 다른 코치가 경기에 대한 분석을 맡고 감독은 팀 전반적인 운영을 지휘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지만 이재명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도 손에서 경기를 놓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손이 거치지 않는 곳이 없도록 했다.
피곤할 수도 있지만 팀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비유는 아니지만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주인이 요리에 대한 상식이 없고 그저 전문 주방장을 믿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전문 주방장만큼 요리를 잘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주방이 어떤 구조로 흘러가는지, 메뉴가 어떻게 나오는지 정도는 알아야한다.
프로게임단도 마찬가지라고 이재명 감독은 생각했다.
선수들만큼 신들의 전쟁을 잘할 순 없지만 눈으로 봤을 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이재명 감독은 그걸 넘는 수준이었다. 개념만으로 따지면 프로게이머 못지 않았다. 그랬기에 수많은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다.
비록 오늘 패배했지만 수확은 있었다.
박현우의 승리.
그건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눈빛이 달라졌고 경기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건 바로 경기력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에이스의 귀환은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었다.
아스트로와 나무전자의 전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해본다면 생각 외로 차이가 많이 난다.
당연히 우위에 서있는 건 나무전자다.
아무리 아스트로가 노력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경험이었다.
경험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단기간 내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험에 대처할 수 있는 아스트로만의 무기가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답은 금세 떠올랐다.
패기.
범 무서울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패기.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거나 위축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패기였다.
그 점을 십분 활용하고 싶었다.
오늘 경기에서 아쉽게 패배했지만 여태까지 잘 발휘되었다. 그건 패배한 1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패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선수들의 눈빛은 여전히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패배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2경기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낼 준비만 하고 있었다.
이재명 감독이 그토록 바라던 팀이 서서히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겨도 좋고 져도 좋다.
너무 무책임 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팀의 색이 만들어진 순간 이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었다.
올해 우승을 못해도 상관없다.
내년에 반드시 우승을 할 테니까.
이재명 감독은 당장 앞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랬다면 아직 개인리그 본선도 밟아보지 못한 신예를 포스트시즌같은 중요한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을거다. 최대한 경험 많고 경기력 좋은 선수들만 내보겠지.
그는 지금 먼 미래도 구상하는 중이었다.
팍팍한 일정일 텐데 다행스럽게도 선수들은 군말 하나 없이 잘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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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오늘 중계를 맡게 된 정수연 캐스터입니다.
-어제에 이어 또 만나네요. 김정식입니다.
-저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박용제입니다.
나무전자와 아스트로의 2경기 중계진은 정수연 캐스터, 박용제 해설, 김정식 해설이었다. 어제와 두 명이 바뀌었다. 많으면 최대 7경기를 해설하기 때문에 같은 중계진이 해설을 하는 건 무리였다.
준 플레이오프가 3경기까지 이어진다면 김정식 해설 대신 다른 이가 중계를 하게 될 것이다.
-어제 나무전자가 아스트로를 깔끔하게 4:2로 꺾으며 플레이오프에 한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오늘마저 경기를 잡으면 CT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됩니다.
CT 입장에서 가장 바라는 상황은 준 플레이오프가 3경기까지 이어지는 것이었다.
누가 올라오든 힘을 최대한 소진하고 오는 것이 좋았으니까.
경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전략도 많이 노출된다. 원래라면 플레이오프 1경기에 쓰여야 할 전략이 준 플레이오프 3경기에 쓰일수도 있다.
전략을 아낀다고?
생각은 좋지만 쉽게 실천할 수 없다.
플레이오프에 올라간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당장 준 플레이오프부터 뚫는 것이 중요하다.
아끼다 똥 되는 것보다 깔끔 사용하는 것이 100배 아니 1000배는 더 낫다.
-정말 나무전자의 저력이 무섭네요. 4:2로 아스트로를 꺾어낼 줄이야.
-일단 우승을 해본 팀 아니겠습니까? 팀 내에 있는 기운이 다르죠.
-일단 송병호 선수의 활약이 가장 크죠.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개인리그 결승에 오르는 둥 과거 전성기의 모습을 완벽히 되찾지 않았습니까?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기세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리 송병호 선수가 잘해도 해줄 수있는 승수는 최대 2승에 불과합니다. 그간 제대로 된 활약을 펼치지 못하던 마수 라인이 살아는 것도 아주크죠.
-그 기세를 몰아 2:0으로 승리할 수 있을지.
-일단 첫 경기는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습니다. 이성표 선수가 이승우 선수를 만났죠?
-대진표를 보는 순간 힘든 싸움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을 겁니다.
오늘 1세트는 이승우와 이성표의 경기로 시작한다.
나무전자에서 이성표가 나온 건 의외였다. 용족이나 마수가 나올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1세트 전장은 황혼.
용족이 꽤 괜찮은 전장이다.
그럼에도 용족전에 약점을 지니고 있는 이성표가 나왔다는 건 분명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1세트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바로 나무전자와 아스트로의 준 플레이오프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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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반드시 승리를 거둬 뒤에 경기를 펼치는 팀원들의 부담을 덜어 줘야한다.
상대는 이성표.
나로선 땡큐인 상황이다.
다만 용족이 강세를 보이는 전장에 용족전을 잘 못하는 이성표가 나왔다는 것이 조금 조심해야할 사항이었다.
뭔 수를 들고 나왔을지 모르거든.
그래서 오늘도 [날빌러]를 챙겼다. 나머지 스킬도 어제와 똑같았다.
오늘도 [승부사]를 사용할 예정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써보고 싶었다.
그 사이 모든 준비가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습관처럼 [날빌러]를 사용했다. 물어본 빌드는 전진 제단이었다. 아예 중앙에 제단을 짓는, 제단을 버리는 식이 아니라 앞마당 쪽에 제단을 소환해 테크로 함께 올리는 식의 빌드였다.
올인이 아니라 운영이란 말이지.
그 순간.
[[날빌러]의 연계형 스킬 [지금 이 순간]이 발동되었습니다.]
반갑다. 이 녀석!
그 동안 어디 있었냐?
오랜만에 보는 푸른창에 한쪽 입 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 작품 후기 ============================
[지금 이 순간]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네요.
반갑.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