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81 Game No. 381 할거면 확실하게. =========================================================================
2:1.
한 세트 뒤지고 있지만 큰 걱정은 없다.
내가 동률로 만들면 되거든.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팀원들에게 인사를 한 후 부스로 향했다.
이번 경기에 챙긴 스킬은 [날빌러], [투신], [숨바꼭질], [승부사]다.
사실 [승부사]는 딱히 챙길 이유가 없었지만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확인해 놔야 정말 필요할 때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상대는 박철호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환국전이긴 하지만 변수가 있는 선수다.
전장은 운명의 갈림길.
위치에 따라 조금씩 유불리가 갈리는 전장이다. 그래도 가로만 나오지 않으면 용족이 꽤 할 만하다.
이번 경기에서 내가 사용할 전략은 생더블. 현우 형과 같은 전략이지. 현우 형처럼 이 전략이 성공하게 해 주세요. 제발.
[날빌러]를 챙긴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만약 답이 X로 나오면 대체 할 빌드도 당연히 준비했다. 그 정도 준비 없이 무대포로 나오진 않는다.
생더블에 대한 답이 X로 돌아온다면 상대가 공격적으로 한다는 뜻이다. 초반 찌르기를 한번 거하게 준비했다는 말이 되겠지.
그러면 단단한 방패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한 공격을 퍼부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생각이다.
X가 나올 가능성도 꽤 높다고 본다.
상대가 박철호였으니까. 공격 아니면 공격이라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광견이라는 별명은 아무에게나 붙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른 빌드를 준비한 것처럼 스타팅 포인트에 따른 운영도 각각 준비해 왔다.
이 정도 준비는 필수지.
신들의 전쟁 매니저만 믿고 있다간 언젠가 큰 코 다친다. 이전에도 다칠 뻔한 상황이 몇 번 연출되었다.
한 번은 실수다. 조금 양보해서 두 번째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 네 번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건 실수가 아니라 잘못이다.
그런 것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해 놓았다.
솔직히 신들의 전쟁 매니저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피지컬로 상대를 찍어 누르면 보다 쉽게 지금과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빌드가 갈려 허무하게 패배하지도 않겠지. 괴물 같은 피지컬로 말도 안 되는 전투 결과를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날빌러] 같은 스킬을 지금처럼 활용하지 않았을 거다. 예전에 스킬 사용을 자제했던 적이 있긴 하다. 그때도 내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그러니까 더 발전하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다.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갑자기 사라져도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리고 보다 경기를 즐기고 싶었다. 승리만을 위해 기계처럼 경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목표였다면 프로게이머가 되지도 않았을 거다.
심리전을 쓰고 빌드를 만드는 즐거움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경기가 더 재미있어졌다.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든 빌드에 상대가 고전하는걸 보면 빌드를 만들기 위해 고생했던 것이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이렇게 얻은 승리가 스킬만으로 이긴 승리보다 훨씬 뿌듯하고 짜릿하다.
그 어떤 업적보다 훨씬 더 말이다.
신들의 전쟁 매니저가 주가 되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서 만족해야 한다. 선을 넘는 순간 모든 것은 무너진다.
솔직히 중간에 방황도 했었다. 이 능력에 의존하기도 했었고 반대로 아예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조화였다.
신들의 전쟁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건 나 자신이다. 그것만 잘 유지하면 된다.
이게 내가 반년 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되게 허무하지?
결국엔 원점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러한 고민을 거쳐 내린 결론과 처음부터 내린 결론은 다르다고 믿었다.
오늘도 모든 경우의 수를 준비해 왔다.
최선의 길로 가는 것이 좋겠지만 인생이란 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거든. 이런 건 조금 더 늦게 알아도 되는데 말이야.
-옵저버 : 양 선수 준비 완료되었나요?
-박철호 : 네.
-이승우 :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자. 그럼 오늘도 즐겨 보자!
****
-2:1로 나무전자가 리드를 하는 가운데 4세트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가장 중요한 경기라고 할 수 있죠. 일단 나무전자에선 에이스 라인인 뱅허가 모두 승을 거두며 아주 좋은 모습 보여 주고 있거든요? 만약 상대 에이스인 이승우를 잡아낸다면 진짜 제대로 사고 한 번 치는 겁니다.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정명혁이나 이영우 같은 선수보다 박철호 선수처럼 변수가 많은 선수가 이승우 선수를 잡아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거든요? 여태 박철호 선수가 잡아온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아예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닙니다. 박철호 선수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반하는 경기 운영을 자주 선보입니다. 이여름 감독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처음엔 이에 대해 조금 제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후 오히려 경기력이 떨어져 다시 박철호 선수가 원하는 대로 경기 운영을 하라 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떨어졌던 경기력이 바로 올라왔다더군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라 이겁니다. 그런 의외성이 가끔 엄청난 힘을 내죠. 그 날이 오늘이길 나무전자는 바라고 있을 겁니다.
이승우와 박철호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커뮤니티 투표 결과가 10:0에 가까울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진 대결이다. 하지만 신들의 전쟁에서 ‘절대’라는 건 없었다.
데이터대로 모든 경기 결과가 나왔다면 영웅도, 몽상가도, 혁명가, 폭군도, 최종병기도 나오지 못했을 거다.
위치는 1시와 7시.
1세트에서 박현우와 이성표가 걸렸던 위치가 똑같은 대각선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세트에선 이성표가 1시였는데 이번엔 이승우가 1시라는 점이었다.
-이승우 선수 과감하게 생더블 가져갑니다.
-아스트로 선수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러시거리가 있는 전장에선 생더블을 시도합니다.
-결과적으로 먹히는 분위기입니다. 대각선에서 생더블! 들키더라도 막아 낼 수 있는 거리죠.
-그렇죠. 용족이 이승우 선수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발견한다 쳐도 치즈러시를 나오기 조금 망설여지는 거리거든요.
영혼의 울림에서 대각선은 용족이 환국을 상대로 웃을 수 있는 위치였다.
-박철호 선수도 도감 더블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요?
-그러네요. 아직까지 금광을 건설할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니 바로 앞마당에 군영을 지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의외인데요? 초반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낼 줄 알았던 박철호 선수가 수비적인 운영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심리전일 수 있다.
대부분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는 박철호가 초반에 무난하게 하면 상대방은 혹 다른 곳에 건물은 숨겨 지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온갖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도 있다.
당장 빌드만 비교해 놓고 봤을 때 이승우가 괜찮다. 무난히 성공하면 최고라 불리는 생더블을 성공시켰으니까.
그렇다고 박철호가 확 불리한 건 아니다. 공격이 실패하며 가난한 운영을 이어나간 것이 아니라 훈련도감 이후 바로 앞마당을 가 주는 빌드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이승우가 워낙 부유하게 해서 그렇지 박철호도 충분히 부유한 빌드였다.
-대각선에 생더블. 일단 기분 좋게 시작하는 이승우입니다.
-자. 방금 서로 간의 빌드 확인했죠.
-이 정도면 서로 나쁘지 않습니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먹을 만큼 먹고 싸워 보자. 이런 거죠.
-과연 어떤 경기가 나올지.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
[날빌러]를 통해 생더블이 먹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적어도 중앙에 8도감을 지으며 궁병으로 압박하는 빌드는 쓰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사실 이 빌드만 아니면 이 전장에서 생더블이 아예 죽는 빌드는 없다.
중간에 치즈러시가 올 순 있지만 컨트롤 여하에 따라 충분히 밀어낼 수 있다.
뒷마당도 없는 전장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빌드를 누가 쓰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선수가 내 눈앞에 있다.
저번에 여기서 중앙 8훈련도감을 쓰는 걸 본 적이 있지.
……놀랐다.
진짜로 놀랐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박철호가 이겼다.
상대가 생더블을 했거든.
운이 좋은 건지 감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심해야 한다.
다른 환국 선수였다면 아마 [날빌러]를 안 챙겼을 거다. 굳이 챙길 필요가 없지. 저런 미친 빌드를 쓸 일이 없는데.
생더블도 종류가 있다.
치즈러시를 배제한 생더블.
이건 치즈러시가 오면 깔끔하게 앞마당을 포기하고 용안을 본진으로 살려간다.
이건 앞마당 신전이 깨져도 그리 나쁘지 않다. 워낙 부유하게 했으니까.
가장 배를 째는 빌드였다.
두 번째는 아슬아슬하게 치즈러시를 막을 수 있는 생더블.
누가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다.
치즈러시를 막으면 굉장히 유리해지고 막지 못하면 불리해진다.
첫 번째처럼 앞마당이 날아가도 할 만한 상황이 나오지 않는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막기만 하면 괜찮아진다.
마지막 생더블은 치즈 러시가 와도 앞마당 신전을 지킬 수 있는 빌드다.
생더블이라고 하기엔 조금 가난한 빌드.
그래도 어떤 러시가 와도 막을 수 있기에 선택하는 선수들도 꽤 많다. 어쨌든 생더블은 생더블이다. 제단을 짓고 시작하는 것보다 자원을 많이 먹는다.
내가 선택한 빌드는 두 번째다.
[날빌러]를 통해 생더블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생더블을 했을 때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지 아예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앞마당 신전을 발견한 박철호가 미친 척하고 올인을 올 수도 있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경기를 펼쳐야 하는 선수가 박철호였다.
****
-박철호 선수 오늘 움직임이 다른데요?! 화통도감 하나 유지하면서 바로 본진에 군영을 짓습니다.
-세 번째 군영이죠.
-기존에 보여 줬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전에는 공격으로 화끈한 모습을 보여 줬다면 지금은 빌드로 화끈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화끈한 선택이긴 하네요. 중간이 없습니다.
1화통 트리플.
흑완이나 지룡을 배제한 빌드다.
두 가지나 배제한 만큼 성공시켰을 때 얻는 이득이 굉장히 크다.
화끈하기는 이승우도 마찬가지였다. 제단 2개를 유지하며 바로 트리플 지역, 철광 확장 지역에 신전을 빠르게 소환했다.
서로 자원 위주의 플레이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4개의 제단을 소환하는 이승우.
아직 박철호의 화통도감은 2개뿐이었다.
앞마당 확장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승우가 더 좋았지만 트리플을 가져가는 과정에선 박철호가 더 과감했다. 이승우가 지룡이나 흑완이 아닌 트리플을 선택했기에 의방과 대장간을 생략한 박철호의 상황이 더 좋았다.
여기서 정석은 의방과 화포연구소를 올리며 2/1업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다.
확장을 빠르게, 그리고 탈 없이 가져갔기 때문에 추후 병력이 쏟아져 나온다. 그 자체만으로 용족은 압박이다. 6시 금광확장을 가져가는 걸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어?! 박철호 선수 일꾼들 몇 기가 빠집니다.
-동시에 건물 지으려는 것 같은데요?
-설마 이거 화통도감 늘리려는 건가요?
박철호는 달랐다.
초반에 보여 주지 못한 공격력을 보여 주겠다는 듯 화통도감의 수를 미친 듯이 늘리는 박철호.
그 수가 무려.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화통도감이 여덟 개입니다!
8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