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열로더 신들의 전쟁-373화 (373/575)

00373  Game No. 373 배수진.  =========================================================================

당연한 거지만 1:0과 2:0은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이제 한 세트만 더 내주게 되면 우승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1,2세트 모두 이승우가 얼마나 철저하게 경기를 준비해왔는지 엿볼 수 있는 경기였다. 솔직히 지금 기세만 보면 정석 플레이와 올인을 막는 운영 정도만 준비해왔어도 충분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이 경기를 끝낼 수 있는 필살기를 준비해왔다.

1,2세트에 쓰인 전략 모두 한 경기에서 밖에 쓸 수 없는, 일회성 전략들이다.

전략이라는 건 한 순간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서 무수한 보완 과정을 거쳐 실전에 쓰일 수 있는 빌드로 변한다.

당연히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로 한데 이승우는 단 한경기를 위한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이승우가 왜 계속 좋은 성적을 내는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노력이 모이고 모여 현재 MSL 28연승의 원동력이 되었다.

동시에 2회 연속 전승 우승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도착했다.

3세트를 잡으면 전무후무한 2회 연속 전승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모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기록들.

팬들에겐 즐거운 이야기지만 이승우를 상대하는 선수들에겐 무거운 압박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부담감을 털어냈던 임형규.

하지만 2세트가 끝난 지금 그때보다 훨씬 큰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이승우는 그냥 용족이 아니었다. 상성을 무시하는,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용족이었다.

그걸 1,2세트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종잡을 수가 없다.

공격이면 공격, 운영이면 운영, 변칙적인 올인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낸다. 그런 선수를 상대하는 스트레스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과 몸을 괴롭게 만들었다.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잠시 대기실로 내려와 지난 1,2세트의 경기를 돌아보는 임형규의 표정이 좋지 않다. 자신의 실수가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

조금 더 빠르게 대처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이때 정찰을 한 번 더 들어갔어야했는데. 아. 마견 1기를 앞마당 쪽에 세워놓았다면 조금 더 빠르게 파악했을텐데.”

임형규의 입에서 연신 아쉬운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옆에서 같이 영상을 지켜보 보는 최연규 코치의 생각은 임형규와 조금 달랐다.

이미 지난 일이었기에 어떤 부분이 실수였는지 눈에 보이는 거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당시 임형규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다만 이승우의 선택이 더 좋았을 뿐이다.

이미 선수로서 정점을 찍은 적이 있는 최연규 코치이기에 더욱 더 잘 알았다. 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건 스스로 깨달아야하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묵묵히 임형규를 지켜보던 최연규 코치가 입을 열었다.

“딱 한 마디만 할게.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네가 후회하지 않을 경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해. 결과는 그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아.”

마라톤으로 치면 이제 4,5km 달려왔을 뿐이다.

아직 종착지까진 35km가 넘게 남아있다. 이영우나 김택윤, 이제운이면 모를까 올해 갓 데뷔한 임형규가 벌써부터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하는 걸 그는 바라지 않았다.

신들의 전쟁을 진심으로 즐겼을 때 성적이 따라온다. 이기기 위한 경기만을 하다보면 금세 지친다. 이겼을 때 기쁨보다 졌을 때의 상실감이 훨씬 크다.

3번 이기고 1번 져도 진 것에 연연하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그럼 좋았던 성적도 점점 주춤하고 언제든 나쁜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일단 즐겨야한다.

신들의 전쟁이 너무 재미있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푹 빠져 있어야한다.

지금 그걸 가장 잘하는 선수가 이승우였다.

즐기는 것이 눈에 보인다.

경기를 펼칠 때 행복해하는 것이 그대로 전해진다.

오늘 결승전도 그랬다.

우승이 목표라기 보단 즐거운 경기를 펼치는 것이 목표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면 우승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현재 이영우보다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조금 지친 이영우와 달리 이승우는 아직 쌩쌩하다. 이제 막 세상에 눈 뜬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이 즐겁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3세트에서 올인 전략 안 쓰려고요.”

준비 된 전략이 있지만 그걸 사용하지 않을 거다.

그걸 해서 지면 충격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제가 가장 자신 있어 하고 좋아하는 운영 해보려고요.”

이래야 그나마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괜찮죠?”

그렇게 말하곤 최연규 코치를 바라보는 임형규.

최연규 코치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내놓았다.

“당연하지. 이건 너의 경기니까.”

그는 임형규가 이승우가 걸어가는 길을 걸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최연규 코치와 대화를 마친 임형규가 무대로 올라갔다.

****

깊게 심호흡을 하고 부스에 앉았다.

이제 한 세트.

연승 기록이나 우승보다 경기를 치른다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긴장감과 압박감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반년 전엔 방송 경기에 나간다는 그 자체만으로 덜덜 떨어 몰수패와 승드셋이란, 이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대 실수를 했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떨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데 그때는 신들의 전쟁을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프로라는 타이틀에 목을 매고 얼른 좋은 성적을 내서 가족들을 호강시켜줘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었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으니 오히려 제대로 된 경기가 나오지 않았고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지는 운영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

진심으로 즐겨야 성적이 따라온다는 걸 6년 만에 깨달았다. 늦은 깨달음일 수도 있지만 평생 깨닫지 못할 수 있었던 걸 알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3세트도 즐기자.

그러면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 처럼.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세트가 이제 곧 펼쳐지려 하고 있습니다.

-전장은 황산벌입니다.

-임형규 선수의 준비시간이 길어지죠?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죠. 이번 경기까지 내주면 3:0으로 또 다시 준우승을 차지하게 되는거거든요.

이스포츠계에 하나의 전설이 있다.

콩 라인.

준우승을 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라인.

5회 준우승을 차지한 폭풍 홍진우를 기리기 위한 것이 바로 콩 라인이다.

한 번 준우승만으로 콩 라인에 들어갈 수 없다.

그건 콩 라인을 모르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한 번 준우승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적어도 2번 이상 준우승을 해야 콩 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콩 라인에 속해있는 유명 프로게이머들이 몇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송병호다. 1회 우승을 차지했지만 6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홍진우가 지니고 있던 최다 준우승 기록을 넘는 새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준우승의 새로운 장을 활짝 연 것이다.

골든 마우스에 버금하는 실버 마우스를 송병호에게 지급해야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선수가 한 명 더 있다.

정명혁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회 우승 4회 준우승.

무려 다섯 번이나 결승전에 올랐다. MSL은 없었다. 모두 OSL이었다.

이 둘이 콩 라인이라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이트 팬들이 있을 것이다.

둘 다 우승을 1회씩 차지했으니까.

이런 의문은 당연하다.

송병호와 정명혁 모두 1회 우승을 차지했지만 콩 라인으로 불리는 이유는 서로 우승을 했을 때 결승 상대가 서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송병호와 정명혁이 결승에서 총 두 번 만났고 서로 우승을 나눠가진 것이다.

콩과 콩이 만났으니 이기는 콩이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이 둘은 우승이 있음에도 여전히 콩 라인에 꼽히고 있었다.

우승 없이 2회 이상 준우승을 차지한 순혈 콩 라인은 단 한명 뿐이다.

허영우가 그 주인공이다.

2회 결승 진출 2회 준우승.

누구보다 깔끔한 기록을 지니고 허영우.

이름도 우 자로 끝나 홍진우의 진정한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선수였다.

아쉽게도 홍진우와 같은 마수에선 콩 라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준우승을 차지한 마수는 많았지만 2회 이상 준우승을 차지한 마수는 없었다.

만약 오늘 임형규가 한 세트 더 패배하게 된다면 허영우를 뛰어넘는 후계자가 나오게 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전설이 나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대에서 TV로 결승전을 지켜보고 있을 홍진우 선수의 표정이 궁금합니다.

-준우승도 정말 대단한 기록이지만 저번 시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번엔 정말 우승을 차지하고 싶을거거든요?

-그렇죠. 그리고 상대도 저번 시즌과 같은 이승우. 같은 선수를 만나 2회 연속 3:0으로 무너진다면 큰 슬럼프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같은 선수에게 연달아 결승에서 무너지면 심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 전까지 좋던 경기력에 한 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역사가 그걸 뒷받침한다.

-신중하게 경기를 준비하는 임형규. 과연 어떤 경기를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이승우 선수는 정말 손놀림이 경쾌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경기가 정말 술술 잘 풀리고 있거든요? 이제 우승까지 단 한세트만을 남겨주고 있습니다.

-정말 현존 최고의 선수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우승을 차지하면 4회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용족 최고 커리어는 김택윤의 3회 우승이다. 그 것도 양대리그에서 고르게 우승을 한 것이 아니라 MSL에서만 3회 우승을 했다. OSL에선 최고 성적이 4강이다. 이도 나쁜 성격은 아니지만 한 종족의 탑으로 거론되는 선수의 성적으로 부족한 건 사실이다.

이승우는 달랐다.

올해 총 4번의 대회를 치렀고 그 대회에서 모두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 중 3회는 우승했고 1회는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두고 있다.

1승을 거두는 순간 용족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움과 동시에 이영우의 한 해 4회 우승 대기록에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진짜 이 선수에 대해선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경기를 즐기고 있는게 보입니다. 어떻게 할까?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나 나올까? 딱딱하게 계산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경기를 할까? 하는게 눈에서 보입니다!

딱딱해 보이는 임형규의 표정과 달리 이승우의 표정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단순히 2:0으로 스코어를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에 나온 표정이 아니었다. 이승우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점이 지금의 이승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자. 지금 막 임형규 선수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경기로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운명의 3세트! 황산벌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현민 캐스터의 외침과 함께 환호성이 터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