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7 Game No. 367 MSL 시즌 3 결승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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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 나는지 탁자에 놓인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임형규.
그는 첫 결승때보다 몇 배는 긴장하고 있었다.
이승우는 더 이상 임형규가 알던 이승우가 아니었다.
8개월.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이 시간 동안 너무나 바뀌었다.
무엇보다 바뀐 건 대범함이었다.
원래 경기력이 그렇게 떨어지는 선수는 아니었다. S1에 있을 때도 주전까지 오를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 김택윤과 도재열이라는 걸출한 용족이 있기 때문에 1군에 오르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멘탈이었다.
1군과 연습이라도 하는 날엔 지나친 긴장으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길 뻔 한 경기도 멘탈에 발목이 잡히며 허무하게 내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이승우가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그래도 저번 시즌 결승전만 해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다.
“후.”
짙은 한숨.
한숨을 쉬어 고민의 무게가 조금이라고 줄어든다면 좋겠지만 오히려 생각만 복잡해졌다.
어떻게 해야 이승우를 잡을 수 있을까?
S1의 모든 코치진과 선수가 모여 연구를 시작했다.
프로리그 결승전에 이미 올라있는 상황이었기에 일정에 여유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 자신의 일처럼 양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그런 팀원들의 도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한 임형규였다.
그렇게 모든 걸 쏟아 연습을 했음에도 불안감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결정적인 건 경기 전 인터뷰에서 이승우를 만났을 때였다. 각자의 포부를 이야기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숨이 멎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상대의 기세에 눌린 것이다.
그때 불현듯 든 생각은 ‘이길 수 있을까?’였다.
경기가 30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임형규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바라보았다.
힘없이 늘어져있는 어깨.
이미 싸울 의지를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상대 전적이 크게 벌어져 있는 것도 한 몫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단 한 번도 이승우를 이겨보지 못한 임형규였기에 더욱 더 위축되었다.
이대로 부스에 들어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하다.
그 순간 뒤에서 들린 목소리.
“형규. 많이 떨리냐?”
“아. 코치님.”
최연규 코치였다.
그가 뚜벅뚜벅 걸어와 임형규의 어깨를 활짝 폈다.
“왜 이렇게 울상을 하고 있어?”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망설이는 임형규. 그런 임형규의 등을 최연규 코치가 툭 두드렸다.
“너 연습 누구랑 했지? 택윤이랑 했나? 아님 재열이랑 했나?”
“두 명이랑 다 했습니다.”
“그렇구만. 승률이 어때?”
“택윤이 형을 상대로는 65% 정도 승률이 나왔고 재열이 형 상대로는 거의 다 이겼어요.”
임형규의 말에 최연규 코치가 깜짝 놀랐다.
“그렇게 잘해놓고 왜 이렇게 다 죽어가는 사람 표정을 하는거야?”
“네?”
“내가 팁 하나 알려줄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임형규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는 최연규 코치. 한 글자라도 놓칠까 싶어 임형규가 바짝 귀를 기울였다.긴장한 임형규를 향해 최연규 코치가 건넨 팁은 그리 길지 않았다.
“두려움은 환상에 불과해. 너 스스로를 믿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
임형규가 최연규 코치의 말을 곱씹었다.
그때 최연규 코치가 한마디 덧붙였다.
“어차피 용족은 마수 앞에 다 똑같잖아?”
그제야 임형규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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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 번째 맞이하는 결승전이다.
MSL에서 전승을 거두고 있어서 그런 걸까?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사전 인터뷰 때 조금도 안 떤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얼 해도 경기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자만은 아니었다. 겸손한 자신감이었다. 그만큼 많은 준비를 했다. 마지막을 우승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다. 며칠 전만 해도 마음이 굉장히 불안했었다.
적은 결승전 상대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기대감도 부담스러운 것 중 하나였다.
이번 결승을 치르면서도 제대로 느꼈다.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 적도 있었다. 만약 팀원들이 없다면 극복하기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우승을 차지한다면 이건 나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다.
우리 팀원 모두의 성과다.
결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건 진심이다.
그 걸 알리기 위해 난 반드시 우승을 차지할 것이다.
부스에 들어오기 전 팀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 담겨 있는 갈망을 보았다. 팀원들이 있는 이상 난 절대 질 수 없다.
모든 세트에 전략을 준비해왔다. 무조건 그대로 경기를 하는 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대처한다.
1세트 전장은 마고본성.
얼마 전 김재만을 상대로 99제단을 사용해 승리를 거뒀던 전장이다. 오늘도 필살기성 전략을 준비해왔다. 전략이 통해 1세트를 잡는다면 3:0 승부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1세트를 내준다면?
흠. 굉장히 힘들어지겠지?
최소 풀세트다. 이건.
스킬은 [투신] 2개와 [숨바꼭질], [폭주기관차]를 챙겼다. 조금 무리가 갈수도 있는 스킬 구성.
그 정도로 1세트가 중요했다.
약간 무리를 하더라도 반드시 승리해야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두 눈을 감고 1세트에 사용할 전략을 머릿속에서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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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L 시즌3 결승전 무대가 관중으로 가득 찬 것처럼 MSL 시즌 3 결승전 무대도 바늘 하나 찌를 자리 없을 정도로 많은 관중이 경기를 보기 위해 왔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MSL 결승전을 찾아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약간 감격에 젖어있는 김현민 캐스터.
아직 1세트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벌써부터 촉촉하다.
-이렇게 신들의 전쟁을 사랑해주시는 팬분들이 있어 저희는 정말 기쁩니다. 저희가 보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력에 걸맞는 해설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최선의 해설로 여러분들의 귀를 즐겁게 해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모든 걸 이 무대에서 쏟아내고 내려가겠습니다.
최승원 해설과 한종엽 해설도 뒤이어 각오를 밝혔다.
-이번 경기 어떻게 예상 하십니까?
-솔직히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자면 한 쪽으로 너무나 기울어버린 대결입니다. 저번 시즌 결승전을 포함해서 임형규 선수가 단 한 번도 이승우 선수를 이기지 못했거든요? 얼마 전 있던 GO와 아스트로의 경기에서도 이승우 선수가 김재만, 임동원 선수에게 3승을 거두며 팀을 준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습니다. 마수전은 여전히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거거든요. 이승우 선수가 마수전에서 패배한 가장 최근 경기가 김윤호와의 OSL 8강 경기거든요? 그때 99제단을 시도했다가 김윤호 선수의 센스 있는 운영에 아무 것도 못하고 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승우 선수를 잡으려면 예상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오늘 임형규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패배한 경기를 쭉 살펴보면 주도권을 처음부터 이승우 선수에게 넘겨버린 경기가 굉장히 많거든요? 오늘은 그런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어선 절대 안 됩니다. 1세트를 잡아낸다면 전과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이승우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이 판짜기에 있거든요? 이 선수에게 1세트를 내주면 정말 다전제를 운영하지 힘들어집니다. 사실 이승우 선수가 워낙 대단해서 그렇지 임형규 선수도 올해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마수 선수거든요? 2회 결승진출. 올해 마수 중에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프로리그 역시 40승 가까이 올리며 팀의 기둥으로 자리잡았고요. 위축되면 안 됩니다. 위축되면 본인의 플레이를 반도 못 보여줍니다.
두 해설이 예측을 내놓았다. 둘 다 1세트를 강조했다.
이 경기를 잡는 선수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거라 말이다.
-자. 양 선수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1세트 전장 마고본성에서! 2015 마지막을 장식하는! MSL 시즌3 결승전을 시작~~~~~~~~~~~~~~~~~
김현민 캐스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외쳤다. 히어로 센터보다 훨씬 힘찬 목소리였다.
마지막에 말을 끄는 순간 관중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무대를 향해 쏟아졌다.
-~~~~~하겠습니다!!!!
그렇게 2015년의 대미를 장식 할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경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전장은 마고본성. 먼저 임형규 선수의 진영입니다. 11시. 그리고 그에 맞서는 이승우는 7시입니다.
-무난한 경기가 나올 수도 있지만 둘 중 누군가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결승전처럼 큰 경기일수록 과감하게 수를 던지는 것이 승률이 좋습니다. 근데 그게 쉽지 않죠. 왜냐? 막히면 지니까요. 결승전이라는 큰 무대에서 1세트를 내주게 되니까요. 근데 해야 합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무난하게만 하는 이미지를 상대에게 심어주면 결승 무대에서 절대 이길 수 없어요. 상대가 애타게 만들어야합니다. 뭘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해야합니다!
-일단 정찰 방향은 양 선수 모두 좋네요. 임형규 선수도 7시에 군주를 보내고 있고 이승우 선수도 앞마당에 솟대 지은 용안이 11시 쪽으로 바로 올라갑니다.
-이번에도 김재만 선수에게 한 것 처럼 99제단을 또 꺼내들지도 모릅니다.
한종엽 해설이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하지만 이승우는 99제단을 할 생각이 없었다. 본진 신전은 여전히 불이 들어왔다. 용안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는 말이다.
역시 그는 핵펠레라 불릴 자격이 있었다. 약간 머쓱해하는 한종엽 해설에게 책망의 눈빛을 보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중계진부터 관중, 시청자까지 모두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오히려 ‘역시 핵펠레.’라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승우가 앞마당 솟대에 소환한 건물은 용무관였다. 이번엔 무난한 더블신전 빌드를 하려는 듯싶었다. 아직 정찰에 성공하지 못한 임형규는 군주 이후 앞마당 대신 바로 마견숲을 지으며 초반 공격에 대비했다.
99제단이나 선제단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것이 이승우의 무서움이다.
현재 이승우의 빌드는 용무관 이후 앞마당을 가져가는 전형적인 더블신전 빌드다. 하지만 상대는 잔뜩 위축되서 이 것 저 것 다 준비를 해놓는다.
그냥 무난하게 하는 것만으로 초반 이득을 조금이나마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용안으로 확인한 이승우.
속으로 살짝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수의 본진으로 들어온 용안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장 외곽에서 철광을 채취하는 일벌레를 툭툭 건드려주었다. 주변에 많은 수의 일벌레가 있었지만 용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을 때리면 뒤로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 때리고.
계속해서 임형규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