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3 Game No. 363 31연승 =========================================================================
-아! 발견했어요!
-이승우 선수 정말 예리하네요!
-웃고 있어요. 웃고 있습니다. 이승우 선수!
반달처럼 휘어진 이승우의 눈.
그는 지금 웃고 있었다.
-상대방의 전략을 완벽하게 캐치해 냅니다.
-정말 이승우 선수 엄청나게 연습이 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일벌레의 숫자와 군주 타이밍에서 위화감을 느낀 것이거든요!
-진짜 이승우가 얼마나 마수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네요. 자신이 경기를 펼쳤을 때와 조금 다른, 진짜 아주 조금 다른 그 미세한 차이를 느꼈다는 거죠.
-온몸에 닭살이 돋았어요.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진짜 이건 인간도 아닙니다. 그 미세한 걸 어떻게...
-그렇죠. 신 인 거죠. 이승우는 신 인겁니다.
용안이 일벌레를 발견하는 순간 조현남 감독이 두 눈을 감았다.
‘생각하는 수준이 다르구나.’
가장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팀 내에서도 혹시 정찰을 와서 알게 되면 어떡하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때 용족 선수들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절대 알 수 없다고. 이 전략을 수십, 수백판 당해 보지 않는 이상 단 번에 알아차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만약 단 한 번에 알아차린다면 이승우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호언장담까지 했다.
다른 용족도 아니고 GO 용족이다.
프로리그에서 S1과 나무전자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승리를 거두고 있는 용족이 GO 용족라인이다.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는 말.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GO 용족 선수들의 말처럼.
‘이승우는 정말 신이란 말인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GO의 선수들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건 말도 안 된다며 중얼거리는 이도 있었다. 용족 선수였다.
자신이 용족이기에 이게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건지 너무나도 잘 안다. 상대의 전략을 알고 있다면 모를까 모르는 상태에서 이걸 완벽하게 집어내다니.
팬들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탄식을 내뱉으며 얼굴을 감싸 쥐는 이도 있었고 분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거칠게 뱉는 이도 있었다.
가지각색의 반응이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하나였다.
이번 경기도 이길 수 없겠구나.
아스트로의 팬들은 신이 났다. 꼼짝없이 전략에 당해 지겠구나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빠르게 전략을 발견했다. 이제 막 으면 이긴다.
-일단 준비한 전략을 그대로 실행하는 임동원 선수!
-어차피 무난하게 하면 못 이긴다는 거죠. 지금.
마수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제와 앞마당에 무난히 소굴을 펼친다?
초반에 일벌레를 그렇게 일찍 빼서 자원 손해를 봤는데?
그냥 지겠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상대가 아마추어라면 모를까 프로, 그것도 최고의 선수라면 결코 추격을 허락하지 않을 거다. 시종일관 괴롭힘을 받다가 경기가 끝나겠지. 어제 김재만이 당한 것에 최소 2배 이상 괴롭힘을 받을 거다.
그럴 거면 차라리 화끈하게 공격이라도 한 번 해 보는 게 낫다고 임동원은 판단했다.
어찌어찌 마견을 모으면 변수를 만들어낼지도 몰랐다. 차라리 여기에 희망을 거는 것이 운영을 가는 것보다 나았다.
-이러면 이승우 선수는 용무관 짓고요. 본진에 용광포 하나, 앞마당에 용광포 하나. 이렇게 소환하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수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죠. 아끼지 않고 용광포 늘려서 양 방향에서 오는 마견 막아주면 끝이죠.
건설되는 소굴에 붙어 있는 용안은 겨우 1기.
이승우는 용안을 동원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벌써부터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모든 용안을 끌고 가지 않는 한 소굴은 완성된다.
어차피 그럴거면 그냥 완성되게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용안을 다수 동원하는 순간 자원채취율이 떨어지게 되고 마수에게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임동원 선수 취소 안합니다.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이네요.
-어차피 용족이 더블 신전했기 때문에 제단이 느리지 않습니까? 본진에 솟대와 용광포 소환하게 하면서 자원 쓰게끔 만들어 주고 나중에 소굴 취소할 수도 있고요.
-일단 이걸로 끝내는 건 불가능해졌습니다. 마견으로 피해를 입히며 시간을 끄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1기의 용안으로 소굴 완성 타이밍을 체크한 이승우가 철광 뒤쪽에 솟대와 용광포를 소환했다.
용광포가 60% 쯤 소환되었을 때 펼쳐진 소굴.
소굴이 나오자마자 생성되는 벌레로 바로 마견을 찍어 주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 임동원 선수 일벌레까지 왔다는 건 가시 촉수 러시까지 한번 해 보겠다는 거죠!
일벌레 1기가 추가로 이승우의 본진으로 왔다. 이미 군주로 훤히 보고 있는 상황이니 정찰을 위한 것일 리 없다.
-일단 들키긴 했지만 할 수 있는 건 다해 보겠다 이겁니다.
-혹시 생산된 마견으로 지금 소환되는 용광포를 파괴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뒤에 가시 촉수가 완성된다면! 그러면 이거 경기 몰라요. 의외의 상황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일벌레가 본진에 오는 걸 확인한 이승우가 5기의 용안을 바로 동원했다. 그 모습에 김정식 해설이 탄식했다.
-아. 근데 성공할 가능성이 너무나 낮습니다. 건물을 지을 공간이 없어요. 용안이 자리 다 잡고 있거든요!
-이거 일벌레가 아예 잡히게 생겼는데요?
건물로 변태하려다 갑자기 끼어든 용안 때문에 변태하지 못한 일벌레.
결국 용안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임동원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시작부터 모든 것이 꼬였다.
어떻게든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 하는데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풀어지기는커녕 더 엉키는 느낌이었다.
용안이 일벌레를 쫓아가는 틈에 생산된 마견이 용광포를 피해 달아났지만 겨우 2기 뿐이었다.
이 정도 숫자의 마견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1기는 용광포에 얻어맞아서 체력도 붉게 변한 상태다.
용안 1기와 싸워도 이길 수 없는 허약한 마견인 것이다.
-2기는 어떻게 살아가긴 했지만 추가 마견이 합류될 가능성이 너무 낮습니다. 용안이 알을 제대로 감싸고 있거든요.
마견이 생산되자마자 만나는 건 따듯한 우토가 아닌 용안의 서슬 퍼런 눈동자였다.
용안이 자원을 채취하는 유닛이라 약한 편이긴 하지만 2기씩 생산되는 마견을 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뒤에는 용광포가 든든히 버티고 있지 않은가?
2기씩 생산되는 마견이라면 20분이고 30분이고 잡아낼 수 있었다.
-일단 이승우 선수의 시선을 본진 소굴로 끌어 놓는 사이 본진에서 생산된 마견을 내려보내는 임동원.
-아. 근데 굉장히 힘들어 보이네요. 본진에 지어진 소굴 근처에 가시 촉수까지도 필요 없고 그냥 6기에서 8기 정도의 마견을 몰래 모아 줄 수만 있었다면 본진에서 생산된 마견과 앞마당 용광포를 뚫으며 멋지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을 텐데요.
-전략은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걸 시행하는 선수도 너무 좋았습니다. 다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어요. 이승우는 보통 용족이 아니에요! 신입니다. 신!
처음 그렸던 그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올인으로 이승우를 잡아내는 것.
이번 경기뿐만 아니라 전 경기도 같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승우는 너무나도 완벽했고 결국 GO가 준비했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단 뭐라도 해 보려는 임동원이지만 너무 힘에 부쳐 보였다.
-진짜 실낱같은 희망을 이야기해 보자면 용광포의 공격이 소굴까지는 닿지만 그 안쪽 깊숙한 곳까지 닿는 건 아니거든요? 마견 생산되자마자 잘 갈무리해서 안쪽에 모아 놨다가 일제히 튀어나가서 최대한 많은 수의 마견을 살려야 합니다. 그 후에 발업이 될 때까지 이리저리 견제해 주면서 살아 있다가 발업이 되는 타이밍에 본진에서 생산된 마견과 합류해 용족의 앞마당을 뚫어 버려야 합니다.
-진짜 임동원 선수는 용광포에 소굴 깨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수의 마견을 생산해 내야 합니다.
김정식 해설이 최선을 다해 해법을 제시했다. 하나같이 어려운 일들이었지만 이 일들을 모두 해내야만 승리할 수 있을 정도로 경기가 어려웠다.
이승우의 용안 블로킹이 굉장히 좋았다.
마견이 빠져나가려는 것을 용안으로 기가 막히게 막았다.
그렇다고 용안을 피해 크게 돌아 움직이자니 용광포에 맞을 수도 있기에 자연 마견의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양 방향 올인이거든요! 임동원 선수 뒤 없습니다. 무조건 뚫어야 합니다!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 앞마당에도 용무관과 제단으로 단단히 입구를 좁혀 놓았다. 거기에 더해 용안 2기가 보초를 서고 있어 마견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용광포가 1개만 있다면 용안 1기를 강제 어택한 후 생긴 공간으로 마견을 어떻게든 집어넣어보겠지만 마수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 앉아 있는 이승우는 이미 그걸 알고 용광포를 안전하게 2개까지 지어 놓은 상태였다.
마견이 혹시나 해서 달려들어 봤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용안의 용력도 제대로 깎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는 마견들.
뒤에서 지원사격을 해 주는 용광포가 너무나도 강력했다.
-아. 완벽합니다. 이승우 선수 너무나도 완벽해요!
-진짜 바늘 하나 찌를 틈이 없네요!
-이러면 못 들어가죠!
-이 정도 상황까지 벌어지게 되면 임동원 선수 이미 마음 속에서 GG 10번은 쳤어요!
-그렇죠. GG치고 경기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본진에서 4기의 마견이 살아 있긴 했지만 언젠가 정리를 당할 마견들이다. 정면 쪽에 오는 마견을 한 차례 막았기에 절반의 용안만 자원을 채취하고 나머지는 마견을 쫄래쫄래 따라다녀도 된다.
그 정도도 이승우가 유리한 경기.
전진 소굴은 곧 파괴된다.
겨우 하나 남은 소굴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일벌레가 많은 것도 아니다.
12기에서 건물 지으며 소모한 일벌레가 무려 4기.
겨우 8기의 일벌레로 자원을 채취하는 것이다. 금도 딱 마견의 발업을 할 수 있을 100만 채취하고 다시 철광을 캐게 할 정도로 가난했다.
억지로 쥐어짜낸 마견마저 막혔으니 그야말로 막막한 상태였다.
-이제 소굴 파괴됩니다.
-전진 소굴에서 결국 마견 4기 뽑은 거나 마찬가지에요.
-단순 계산을 해 봐도 엄청난 손해입니다.
-그렇죠. 저게 겨우 마견 4기 살려 보내려고 지어진 소굴이 아닌데 말이죠!
화면에 잡힌 임동원.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손은 거의 멈춰 있다시피 했다.
6마리밖에 안 되는 마견을 의미 없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이승우 본진에서 살아남은 4기의 마견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정리되고 말았다. 아무리 마견이 용안에 강하다 해도 숫자에서 너무 차이가 나 버리니 버틸 도리가 없었다. 용광포의 사거리를 이용해 영리하게 움직이는 용안.
크게 한숨을 내쉰 임동원이 GG를 선언했다.
-진짜 할 말이 없네요.
-올인이었는데! 이게 올인이었는데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고 끝나네요.
-그래도 끝까지 노력하는 임동원 선수의 모습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열정이 없는 선수라면 소굴이 파괴되었을 때 GG를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임동원을 어떻게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임동원은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질 경기 쓸데없이 시간을 끈다고 혀를 차는 이들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경기 내용이 아닌 승패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언젠가 달콤한 과실이 되어 임동원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 말이 딱 어울리네요. 정말 귀신같이 알아냈네요. 본진에 다른 종족의 건물이 지어지는 걸 귀신같이 알아냈어요!
-본인도 올인 많이 해 봤거든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겁니다!
-진짜 마수는 이승우 선수한테 어떤 수를 써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