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8 Game No. 348 OSL 시즌3 결승전. =========================================================================
어떤 대답이 나올지 나도 긴장된다. 대놓고 디스 하거나 뭐 그러진 않겠지?
워낙 송병호가 솔직한 성격을 지닌 선수라 혹시 모른다.
그는 직설적이다.
적어도 겉과 속이 다른 부류는 아니다.
직설적인 언변때문에 안좋은 이야기를 간혹 듣긴 하지만 뒤에서 딴 말 하는 사람보다 100배는 낫다.
“솔직히 부럽죠. 저는 10년 동안 해도 1회 우승 밖에 하지 못했는데 이승우 선수는 3개월 만에 양대리그 우승자가 되었으니까요. 저한테도 기회는 많았는데 다 놓쳤어요. 택윤이나 제운이, 영우. 다 저 이기고 그렇게 빵 떴거든요. 객관적인 전력에서 절대 밀리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경기가 다 꼬여서 졌어요. 제 잘못이죠. 기회가 있었을 때 우승했었어야했는데.”
그렇게 말을 마무리 짓는 송병호의 입가에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주연이 있으면 조연이 있는 법이다.
송병호는 10년간 조연을 도맡았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택리쌍이라는 새로운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비상을 했을 때 준우승을 차지했던 선수가 송병호다.
“진짜 오랜만에 결승 올랐잖아요. 이번엔 상대에게 기회 내주지 않고 제가 주목받고 싶어요.”
“그렇지. 당연히 그래야지. 병호가 이번 결승전까지 7번이지?”
“네. 앞서 오른 6번에서 우승은 한 번 밖에 못했죠.”
“사실 7회 결승진출이라는게 어마어마한 기록인데 우승이 한 번 밖에 없어서 크게 부각되지가 않는구나.”
“그렇죠. 그래서 이번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요. 예전이랑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이승우 선수가 요즘 가장 잘나가는 선수잖아요. 마지막까지 발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번엔 꼭 우승을 차지하고 싶어요.”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송병호의 등 뒤로 아지랑이처럼 무언가 이글거렸다.
그건 투지였다.
“크. 병호가 제대로 출사표를 던지는구나. 승우는?”
질문의 화살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되게 오랜 기간 그림자로 살았어요. 6년. 다른 선수들은 경기도 나가고 우승도 하고 별명도 생기고 그러는게 정말 부러웠어요. 왜 난 안 되는 거지? 왜 자꾸 뒤로 밀리는 거지?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열 번도 넘게 찾아왔는데 버텼어요. 계속 버텼어요. 버티다보면, 열심히 하다보면 기회가 오겠지 생각하면서요. 올해가 저한테 그 기회라고 생각해요. 이미 2회 우승 차지했고 나머지 2개 대회까지 우승차지해서 우뚝 솟고 싶어요.”
4회 우승.
그 어떤 용족도 밟아보지 못한 고지다.
그 고지를 처음 밟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무도 오르지 못한 곳을 정복하고 싶었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말을 다 뱉어내니 후련했다.
의지만큼은 송병호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승우가 왜 이렇게 강한지 지금 말을 들으니 알 것 같네. 어느 분야든 독기는 굉장히 필요한거거든. 승우는 굉장히 유한 성격을 가진 것 같은데 의외로 독기가 있네.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앞이 천길 낭떠러지인지 아니면 왕도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우직하게 밀고나가는 그런 근성이 있네.”
흠. 이거 분명 칭찬이겠지?
“지금 승우가 2회 우승이고 최대 4회 우승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이지? 만약 두 대회 다 우승하면 용족 최고 커리어를 갈아치우게 되는거구나.”
“앞에 병호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미안하지만 승우야 말로 모든 용족 팬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용족의 리쌍버전, 그러니까 완전체 같은 느낌이니까. 양대 개인리그와 프로리그를 동시에 석권. 이건 그 어떤 용족도 못했던 거거든.”
그 최초가 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려면 3일 후 눈 앞에 있는 송병호를 꺾어야한다.
순간 송병호와 눈이 마주쳤다.
상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눈빛에서 느껴졌다.
“진짜 3일 후에 있을 결승전이 기대가 된다.”
“두 명의 의지가 장난이 아니네. 진짜 뒤에서 불꽃이 화하고 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보여.”
결승전에서 두 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경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편안한 분위기로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방송이 아니라 숙소에서 팀원들과 대화를 하는 것 처럼 스스럼없이 입을 여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이번 결승에 임하는 각오 팬들에게 전하고 마무리 짓자.”
이제 끝이구나.
시계를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긴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경기를 보신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은 경기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우승을 하든 패자가 승자를 축하해주고 승자가 패자를 위로해줄 수 있는 그런 결승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송병호가 먼저 각오를 다졌고.
“저 역시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뒤이어 내가 각오를 말하는 것으로 촬영이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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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휴. 녹화가 모두 끝났다.
성공리에 끝났다고 생각하는데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겠지?
스텝들의 표정을 쓰윽 살펴보니 나쁘지 않다. 착각일 수 있지만 만족해하고 있는 느낌?
생각보다 어려운 방송은 아니었다. 자극적인 질문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속에 있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시간이었다.
편집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나름 괜찮게 잘 찍은 것 같았다.
오늘 찍은 녹화는 이틀 후, 그러니까 결승 전날 밤에 방송이 된다고 하셨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진이 다 빠졌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말이 아예 편하다는 말은 아니다. 3시간 동안 수십 경기를 펼친 것 처럼 녹초가 되었다.
송병호도 이런 기분이려나?
마지막에 악수를 나누는데 기분이 묘했다.
결승의 전초전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결과적으로 오늘 촬영 나오길 잘한 것 같다.
제대로 동기부여가 됐거든.
이제 남은 기간은 3일.
오늘이 거의 다 갔으니 실질적으론 이틀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건 송병호가 아닌 내가 될 것이다.
****
OSL 결승전 날이 밝았다.
전날 방송 된 신전 뒷담화로 인해 결승전 분위기는 이미 후끈 달아올라있었다.
연속 우승을 노리는 최초의 용족 이승우와 4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송병호의 대결.
이들 간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둘 모두 오늘 우승을 하면 OSL 2회 우승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1회 우승자는 많았지만 한 대회에서 2회 이상 우승한 선수의 숫자는 굉장히 적다.
송병호는 프로 생활 동안 도합 7번 결승에 진출했는데 그 중 6번이 OSL 결승 진출이다. 앞서 치러진 5번의 대결에서 송병호는 무려 4번이나 준우승을 차지했다.
확률로 따지면 20%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준우승도 굉장히 잘한 성적이긴 하지만 육룡의 수장 소리를 들었던 송병호가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다. 라이벌로 불리는 김택윤이 3회 우승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올라갔던 결승 중 절반만 우승했어도 김택윤에게 확실히 우위를 점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그 아쉬움을 우승으로 떨쳐 내야한다.
선수 경력으로만 따지자면 송병호가 한 발 더 앞서가고 있지만 2015년 포스만 보면 이승우가 두 발자국은 더 앞서 나가 있다.
용족의 신구의 대결구도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용족의 우승이 많은 가을의 전설 시즌에 만났기에 진정한 최강 용족을 가리는 자리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우승한 선수가 칠룡의 진정한 수장이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나름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김택윤이 3회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 이후 결승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결승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부터 경기장은 관중들로 꽉 들어찼다.
연예인들의 공연과 각종 행사, 양 선수의 사전 인터뷰까지 끝나고 이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1세트와 5세트는 2인용 전장인 천부단에서 치러지고 2세트는 검은날개, 3,4세트는 각각 태평의 시대와 황혼에서 치러진다.
동족간의 대결이었기에 전장 순서에 따른 유불리는 없었다.
보다 많은 준비를 해온 선수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양 선수간의 기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선수간의 대결을 넘어 팀 간의 대결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팬들에겐 재미를 배가 시키는 요소들이었다.
이미 커뮤니티는 오늘 결승 예측에 대한 글로 가득했다.
송병호가 리쌍은 3:0으로 꺾고 올라온 덕인지 42%의 투표를 얻으며 선전하고 있었다.
현재 최고의 기세를 보이는 이승우를 상대로 이 정도 투표를 받을 수 있는 선수는 이영우 밖에 없을 것이다.
경기 진행이 굉장히 빠르게 이뤄졌다.
이미 몇 번의 리허설을 통해 능숙해졌는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진행이었다.
선수들의 인터뷰에선 치열한 설전이 펼쳐졌다. 신전 뒷담화에서 보여줬던 차분한 모습과는 다르게 스파크가 제대로 튀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도발에 관중들의 피가 제대로 끓어올랐다.
그래. 이래야 결승전이지!
이래야 돈이 아깝지 않지!
선수들이 인터뷰를 끝내고 부스에 들어간 지 15분 만에 1세트 준비가 끝났다. 그 사이 결승전 티저가 커다란 화면을 통해 송출되었다.
가을의 전설을 주제 삼아 만든 영상은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두고 싸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두 마리의 용 중 단 한 마리만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수 있다.
영상의 백미는 엔딩이었다.
두 마리의 용이 포효와 함께 공중에서 부닥치는 장면은 대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세련 된 연출을 보여줬다.
영상이 끝난 후 우레와 같은 박수가 장내를 가득 메웠다.
그 후 중계진들이 가을의 전설에 대한 이야기와 양 선수의 데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알려주며 관중들의 흥을 돋웠다.
결승전답게 중계진들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고 응원을 하는 관중들도 훨씬 큰 에너지를 발산했다.
초겨울 날씨임에도 관중들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현장은 후끈 달아올라있었다.
-분명 서로간의 대결에서 상대전적은 이승우 선수가 훨씬 앞섭니다. 최근 성적만 봐도 그렇고요. 이승우를 상대로 데이터 면에서 이승우 선수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엄재웅 해설 특유의 엄대엄 포장이 시작되었다. 처음 이야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저게 말이 돼?’라는, 삐딱한 마음이 들지만 엄재웅 해설이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때쯤이 되면 ‘박빙의 대결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절로 강인이 된다.
그 정도로 엄재웅 해설의 포장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 송병호 선수도 예외는 아니죠. 그런데 최근 경기에서 송병호 선수가 이승우 선수를 상대로 2연승을 해냈습니다. 단순히 힘싸움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심리전으로 완벽하게 우위를 점하며 이승우 선수를 무너뜨렸거든요?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이 경기 이후 송병호 선수가 각성을 했습니다. 뒤이어 만난 이영우와 이제운을 3:0으로 완파하며 결승까지 올랐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승부의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세트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경기를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정말 일방적인 경기가 나올 수도 있고 접전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송병호 하면 힘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송병호는 배제를 통해 빌드의 우위를 점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선수다.
심리전을 통해 빌드의 우위를 점하며 중반 이후 상대보다 더 큰 힘을 가졌을 때 밀어붙이는 것이 송병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오히려 상대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플레이는 난전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택윤이 주로 사용한다.
송병호는 일단 빌드를 이기고 시작해야한다는 마인드였고 김택윤은 빌드가 지든 이기든 안정적으로 중반만 넘어가면 이긴다는 마인드다.
외모 때문인지 서로의 경기 스타일을 반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송병호 선수 그간 결승전에서 상대의 판짜기에 흔들린 적이 굉장히 많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죠.
-이여름 감독에게 살짝 들었는데 나무전자의 모든 선수가 달라붙어 송병호 선수의 전략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송병호의 우승을 바라는 염원이 크다는 거죠.
-과연 송병호 선수가 4년 만에 다시 우승을 차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승우가 2회 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올해를 자신의 해로 마무리 지을 것인지! 잠시 후! 1세트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내일부터 결승전이 시작됩니다.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