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7 Game No. 347 신전 뒷담화. =========================================================================
신전 뒷담화.
온게임 TV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로 OSL을 진행하시는 엄재웅 해설님과 김태영 해설님이 신들의 전쟁과 관련 된 이슈를 식사와 함께 살펴보는 토크쇼같은 것이었다.
“...신전 뒷담화요?”
약간 망설이는 내 대답에 감독님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떠올랐다.
“응. 이번에도 섭외 관련 되어 전화가 왔더라고.”
신전 뒷담화에서 섭외가 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저번 시즌 OSL 결승전을 앞두고 진 로열로더 특집으로 한 번 섭외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는 결승전에 집중하고 싶기도 했고 아직 어디에 나가 무언가를 말할 정도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기에 정중히 거절했었다. 상대가 이영우인데 괜히 방송 나갔다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배하면 온갖 비난이 쏟아 졌을거다.
“이번에도 저 혼자 인가요?”
무엇보다 홀로 나간다는 부담감도 컸다.
“아. 이번에는 송병호랑 함께 한다는데? 가을의 전설 특집으로 한다고 하더라고. 이번에도 전적으로 네 뜻에 맡기마.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연습에 집중하고 싶으면 안 나가도 괜찮아.”
흠. 저번이야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했다지만 두 번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루 종일 녹화하는 것도 아니고 2~3시간 정도, 그 것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진행하는거니 그렇게 연습시간을 많이 빼앗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결승이 3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3~4시간 더 연습을 한다고 뚜렷하게 실력이 상승하는 건 아니다. 결승은 벼락치기로 얻은 요행수가 아닌 꾸준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미 결승전에 쓸 전략은 모두 준비한 상태였다. 3일 내에 굉장한 묘수가 생각난다면 바뀔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래저래 손목도 휴식 시켜줘야 하니 몇 시간 투자해서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나가볼게요.”
“오? 그래? 괜찮겠어?”
내가 나가겠다고 한게 감독님껜 의외였나보다.
생각보다 크게 놀라시는데?
“전략도 다 짰고 송병호도 나오잖아요. 기세같은거나 준비성? 뭐 그런 거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니다.
OSL 결승 상대인 송병호도 함께 나온다.
표정과 말에서 결승전을 어느 정도 준비했는지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역으로 내가 읽히진 않겠지? 거울보면서 표정 연습도 해야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래. 그럼 가능하다고 연락한다?”
감독님이 다시 한 번 물어보셨다.
낙장불입!
이미 뱉은 말은 돌리지 않는다.
“넵.”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뒷담화 녹화 잘하고. 아마 두 분께서 잘 이끌어 주실거야.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어.”
신전 뒷담화 녹화를 가게 되었다.
막상 가려니 긴장이 되었다. 방송은 이미 여러 차례 진행했지만 지금처럼 대화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닌, 짧은 인터뷰나 경기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름 예상 질문과 답변까지 뽑았다.
얼마나 녹화장에서 그게 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촬영 장소는 용산 근처 해물탕집이었다.
해물탕집 안으로 들어가니.
“오! 승우 왔구나.”
김태영 해설님께서 격하게 나를 반겨주셨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중계진이라는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야 하는 경기장에서만 보다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니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경기장 말고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지?”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다른 팀 선수들과 따로 어울리는 일 없이 항상 숙소와 경기장을 왔다갔다 했으니까.
중계진분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진짜 저번 시즌부터 섭외하고 싶었는데. 그대로 이번 시즌엔 만나서 다행이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 죄송해지네요.
잠시 후 송병호와 엄재웅 해설님도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촬영이라기보단 회식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숙소에서 가지고 왔던 긴장이 조금씩 사라졌다.
카메라가 꺼진 상태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먼저 주고받았다.
확실히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자연스레 분위기를 이끄시는 두 분의 해설위원님들.
어색했던 얼굴에 자연스런 미소가 금세 피어올랐다.
20~30분만에 안지 몇 년은 된 사이처럼 되었다. 상대를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해설위원님들 덕에 숙소에 있는 것 처럼 아주 편안했다.
“자. 10분 후에 촬영 들어갈게요.”
...라는 PD님의 말이 있기 전까진.
촬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몸에 힘이 빡 들어갔다.
“너무 긴장 하지마. 그냥 편안하게 우리랑 사적인 자리에서 식사한다고 생각하면 돼. 애초에 팬들도 실제 연예인들처럼 방송하는 걸 기대 안해. 그냥 네가 여기 나온 것 자체만으로 굉장히 좋아 할 거야.”
그렇겠죠? 엄재웅 해설님?
하긴 내가 프로 방송인도 아니고 그냥 선수일 뿐인데.
“그래. 그냥 해물탕 맛있게 먹고 이야기 조금 나눈다고 생각하면 돼. 원래 우리 방송 컨셉이 이래.”
김태영 해설님의 말씀까지 들으니 부담이 확실히 작아졌다.
“자. 그럼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PD님의 말과 함께 난 준비 된 자리에 앉았다.
****
“자. 신전 뒷담화 오늘의 게스트는 2015 OSL 시즌3 결승전에 진출한 이승우 선수와 송병호 선수입니다!”
“결승에 진출한 두 선수와 함께 하는데 소홀히 대접할 수 없어 정말 괜찮은 곳으로 왔죠. 일단 팬 분들을 향해 양 선수 인사 한 번씩!”
“안녕하세요. 아스트로 프로게이머 아승우입니다. 이런 자리에 함께 하게 되서 영광입니다.”
“나무전자 송병호입니다. 오늘도 재미있는 이야기 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확실히 여러 프로를 나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여유가 철철 넘쳐흐르는 송병호.
그렇게 오프닝과 함께 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팬들은 위한 인사 이후 편안한 분위기의 대화가 오고갔다. 촬영이 아니라 뒤풀이를 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점점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
“이번 시즌 결승에서 정말 드라마같은 매치가 나왔잖아. 가을의 전설이라 용족이 우승했을 때 진짜 모든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시즌에 용족과 용족의 대결.”
“정말 진정한 가을의 전설을 뽑는 자리지.”
“그리고 그 두 용족 중 한 선수는 백전노장, 산전수전공중전을 모두 다 겪고 10년 넘게 최고의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 송병호와 이번 시즌 데뷔해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신룡 이승우. 정말 기가 막히게 결승 대진 만들어졌다.”
“이번 시즌의 이변은 어떻게 보면 병호지. 솔직히 승우는 모두가 생각하는 우승 후보 NO. 1이었잖아. 양대리그 동시 우승차지해, 위너스리그 우승차지해, 프로리그에서 90%가 넘는 승률을 보여줘.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잘했지. 근데 병호는 조금 달랐지. 결승에 올랐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이번 시즌 전만 하더라도 이제 끝났다는 이야기 많았잖아.”
실제로 커뮤니티에서 그런 이야기가 많았다.
더 이상 송병호를 택리쌍에 묶으면 안 된다는 말.
개인리그에서 4강이나 결승에 오르는 성적을 매번 내는 것도 아니고 택리쌍처럼 프로리그 다승 5위 내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저도 봤어요.”
“기분이 어땠어?”
“그냥 그랬죠. 한 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니까요.”
확실히 멘탈이 강 하구나. 나 같으면 몇날 며칠 간 제대로 잠도 못 잤을 텐데.
“이러니까 병호가 다시 살아나는 거야. 그냥 그거 보고 축 쳐져 있고 그러면 진짜 그런 이야기처럼 속칭 퇴물이 되는거지.”
퇴물이라는 말에 내가 더 움찔했다.
방송에서 말하기 너무 직설적인 단어가 아닌가 싶었다.
시선이 절로 송병호에게 향했다.
숨기는 것인지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의외로 송병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씨익 웃고 말았다.
“근데 병호는 그게 아니었잖아? 난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본 적이 있고 언제든 다시 올라갈 수 있다. 말이 아닌 경기로 증명해보겠다! 그리고 이번 시즌 딱 그대로 되었잖아. 8강과 4강에서 리쌍을 3:0으로 완파하고 결승진출! 진짜 얘 때문에 신들의 전쟁 팬들이 한 번 더 뒤집어졌다는거 아냐.”
송병호의 결승진출을 예상한 사람은 적었다.
8강 정도는 무난히 갈 거라 생각했지만 8강에서 이영우를 만나는 순간 4강은 힘들거라 모두 말했다. 하지만 송병호는 이영우를 3:0으로 꺾었다. 4강에서 만난 이제운도 마찬가지였다.
“병호 네가 언제 데뷔했지?”
질문을 받은 송병호가 바로 대답을 내놨다.
“공식전으로 따져도 10년이 넘었죠.”
이야. 진짜 오래되었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진짜 10년 전에 데뷔한 선수가 결승에 오른 건 네가 처음일거다.
“진짜 보기 힘들지.”
옆에 있던 김태영 해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셨다.
따지고 보면 임주혁이 2010년도에 결승에 간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10년 후에 나도 결승을 갈 수 있을까?
“너는 이번 시즌 데뷔했지?”
이번 질문은 나에게 온 질문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어 대답이 약간 늦어졌다.
“네.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딴 건 조금 오래 되었는데 방송 경기에는 올해 처음 나왔어요.”
나와 송병호의 나이 차이는 3살 밖에 나지 않지만 프로게이머 경력은 9년 이상 차이난다.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는구나.
“병호는 진짜 어린 나이부터 주목받았잖아.”
“그런 셈이죠. 신 3대 용족으로 함께 주목받았으니까요.”
“그때 함께 신 3대 용족으로 데뷔한 선수 중에 현역에 남은 사람은 병호 밖에 없지?”
“네. 저 밖에 없어요. 그 선수들 뿐만 아니라 저와 함께 시작했던 다른 선수들 중에서도 남아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병호가 진짜 오랜 기간 정상을 지켰구나.”
“그렇죠. 항상 1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5위권 밑으로 떨어진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저 솔직한 태도.
자칫 거만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배워야할 점이라 생각되었다.
“승우는 S1에서 그럼 얼마나 오래 2군에 있던거야?”
“저 6년 정도 2군에 있었어요.”
“6년 동안 2군에 있었으면 진짜 많이 힘들었겠네. 그럼 병호의 전성기를 지켜봤겠구나?”
“많이 부러웠죠. 저는 2군이라 경기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인데 같은 종족으로 활약하고 있었으니까요.”
송병호 뿐만 아니라 김택윤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들이 우승을 할 때 난 2군 숙소에 있었고 그들이 프로리그 결승전에 출전할 때도 난 2군 숙소를 지켰다.
저들이 서 있는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의미 없는 상상도 많이 했었다.
“그렇게 TV로만 보던 선수를 지금 결승전에, 그 것도 더 많은 우승 경력을 가지고 만나게 되었으니. 진짜 사람 일이란 건 모르는 거구나.”
지금은 입장이 바뀌었다.
준우승을 10번해도 우승 1번보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이스포츠의 세계다.
현재 난 개인리그 2회 우승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고 송병호는 용족 최다 결승진출자긴 하지만 그 중 우승을 차지한 건 한 번이 전부다.
“진짜 사람일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걸 승우를 보고 다시 느꼈잖아. 사실 어느 누가 이승우란 선수가 갑자기 툭 나타나서 프로리그 다승왕에 4회 연속 개인리그 결승에 올라갈 거라고 예상했겠어.”
“올해 이스포츠에서 가장 센세이션 했던 일이 승우의 등장
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나도 동의.”
제대로 내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구나.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합니다.”
가 전부였다.
“이런 승우에 대해서 병호는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