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40 Game No. 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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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한민규의 진 로열로더 도전은 4강에서 멈췄다.
비록 패배했지만 좋은 경기를 보여준 한민규에게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펼친 한민규에게 보내는 응원이었다.
한민규는 오늘 신예다웠고 또 신예답지 않았다.
신예 답게 패기가 넘쳤으며 신예답지 않게 노련했다.
상대가 이승우가 아니었다면 결승에 진출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오늘 한민규가 보여준 경기력은 뛰어났다.
아쉽게도 로열로더란 타이틀은 더 이상 얻을 수 없지만 아예 선수 생활이 끝난 건 아니다.
로열로더에 굳이 목 맬 필요 없다.
로열로더가 아닌 이영우도 갓영우라 불리며 최고의 환국으로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패배를 최대한 빨리 털어내는 것이 한민규가 해야 할 일이었다.
패자가 존재하면 당연히 영광을 독식한 승자가 존재하는 법.
승자가 된 이승우는 4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위업을 세우며 올해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동시에 MSL 2회 연속 전승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1번 전승 진출해도 굉장한 것인데 무려 2번을 연속으로 해내다니.
그 중 한 번은 전승으로 우승한 것이라 더욱 더 대단한 기록이었다.
적어도 MSL에서 이승우에게 제동을 걸 수 있는 선수는 없어보였다.
여기에 더해 기존 환국전 최다 연승기록을 가지고 있던 송병호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마수전과 용족전은 진작 1등을 차지한 이승우였지만 환국전만은 그러지 못했다.
중간 중간 이영우라는 강력한 난적을 만나 패배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가지지 못한 기록을 드디어 오늘 해냈다.
오늘 이승우는 압도적이었고 위력적이었다.
상대가 한민규라는, 이번에 처음 4강에 오른 신예긴 했지만 다른 선수를 상대로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거다.
전략과 피지컬을 동시에 갖춘 괴물.
이런 선수를 과연 누가 잡을 것인가?
저번시즌이야 첫 등장이었으니 이변에 가까웠지만 이번 시즌은 조금 다른 분위기다.
이승우를 이겨라.
과거 최연규와 이영우가 보여줬던 절대자의 포스가 이승우에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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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진출 인터뷰를 마친 순간 바로 차로 향했다.
피곤했다.
경기 중엔 흥분으로 인해 제대로 못 느꼈는데 모든 것이 끝나자 피로가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눈이 감기려고 해서 혼났다.
결승전에서 누구와 맞붙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 나왔다.
형규와 정명혁.
솔직히 아무래도 좋았다.
누가 되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래도 한결 상대하기 편한 건 정명혁이였다.
일단 OSL에서 한 차례 잡아보기도 했고 종족이 환국이었으니까.
환국을 상대로 용족이 만들 수 있는 판짜기는 굉장히 많다.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아오기 편하다.
반대로 마수는 그게 힘들다.
훨씬 더 정교하게 판을 짜야한다.
물론 내 생각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냥 누가 되었건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고생하셨습니다. 형.”
차에 타는 나를 향해 민규가 말을 걸었다.
슬쩍 표정을 보니 생각보다 밝다.
경기에서 패배했음에도 말이다.
아까 경기를 치르기 전보다 더 밝아진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말하면 조금 후련해보였다. 표정만 보면 내가 의도한 대로 된 것 같긴 한데. 일단 대화를 통해 확인해봐야겠다.
“고생은 무슨. 너도 진짜 잘했다. 2세트 판단도 그렇고 3세트에서 금와 날리는 것도 그렇고.”
내 말에 민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에요. 결국 다 막혔잖아요. 조금 더 침착하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냐. 넌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어. 순간 판단 진짜 좋았다. 그 상황에선 들어오는 것이 답이었어. 만약 그때 들어오지 않았다면 더 크게 졌을거야. 2세트고 그렇고 3세트도 그렇고.”
“그래요?”
“물론이지.”
난 고개를 크게 끄덕여주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 얼굴이 금칠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해야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 선택은 다 정답이었어. 컨트롤에서 내가 우세했을 뿐, 넌 제대로 간파했어. 예상 외였다.”
“정말요?”
민규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있다.
“자꾸 입 아프게 할래? 한 번 말 하면 알아들어라. 내가 아니었으면 2,3세트 다 네가 가져갔을지도 몰라. 설사 그 상대가 김택윤이나 송병호라 할지라도.”
절대 오버가 아니다.
민규는 2세트에서 180도 바뀐 모습을 보여줬다.
1세트에서의 민규였다면 2세트 역시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패했을거다.
2세트 전략은 무수한 연습을 통해 완성 된 전략이다.
그 사이 단 한 번도 민규와 같은 판단을 내린 환국은 없었다.
연습생들이랑만 연습했냐고?
천만에.
이름만 대면 모두 아는 유명한 환국 선수들과 줄줄이 연습을 펼쳤지.
서로 익명으로 경기를 하긴 했지만 플레이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기에 누가 누군지 다 알아차렸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겠지.
어쨌든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린 민규의 결정은 굉장했다.
궁병이 내려 올 때 심장이 쫄깃해졌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았다.
만약 운이 민규에게 따랐더라면, 제단이 흑완을 토해내기 전 깨졌더라면 승부는 안개 속에 빠졌을 것이다.
입가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민규를 보며 말을 이었다.
“3세트도 정말 좋았어. 어차피 환국이 할 것 없는 타이밍에 금와 견제. 딱 용족의 맥을 끊게 하기 좋았어. 근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금와 피해 이후 진출이 한 박자 느렸다는거야.”
“느렸다고요?”
민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가 손짓 발짓을 동원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응. 수비를 위해 병력 소수가 뒤에 빠졌잖아. 그럼 그때를 노려서 중앙 쪽에 지뢰 심으면서 진출을 했었으면 내가 더 압박을 받았을거야. 첫 전투처럼 진영을 잘 만들어서 싸울 수 없었을거고.”
“아!”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탄성을 내지르는 민규.
그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해진다.
이 녀석 꽤나 똑똑하다.
척하면 척이다.
그 동안 왜 몰랐지?
물을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모든 걸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다.
내가 힘들게 몸으로 직접 겪으며 알게 된 걸 민규는 말 한마디에 탁탁 깨닫고 있는거지.
나만 고생했나 싶어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내가 한 고생 굳이 팀 후배가 똑같이 할 필요는 없지.
그리고 민규가 재능이 있어서 이렇게 잘 알아 듣는거지 재능이 없는 선수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
“먼저 자리를 잡았다면 형이 급하게 달려들 수 밖에 없는 그림이 될 수밖에 없었겠네요?”
역시. 요점을 정확히 짚었다.
“그렇지. 그게 정답이지. 그랬다면 두 번째 전투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거야. 사실 첫 번째 전투가 끝난 후에도 네가 유리했어. 난 확장이 느렸고 술법 유닛도 다 확보 못했고. 진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전투 이야기가 나오자 민규가 울상을 지었다.
“하. 그건 진짜 아쉬워요. 나중에 확인했는데 집결지 설정도 엉망이고 지뢰도 제대로 매설 못하고. 천자총통도 뭉쳐 있더라고요.”
못내 아쉬운지 미간을 힘껏 찌푸리는 민규.
“그게 다 첫 전투 패배 때문에 그런 거야. 그때 중앙으로 나올 수 있는 자리를 확실히 잡았다면 두 번째 진출을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지. 이미 확장으로 가는 루트는 확보 한 셈이니까. 오히려 용족을 그 쪽으로 유인하면서 괜찮은 전투 구도를 만들 수 있었을 거야. 근데 그게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내가 원하는 판에서 전투가 벌어진거지.”
민규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러네요. 그때그때 그렇게 했었어야했는데.”
그렇게 말하곤 못내 아쉬운지 입맛을 다신다.
그렇게 나는 민규와 숙소로 가는 내내 오늘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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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L 4강이 끝난 지 4일이 지났다.
그 사이 프로리그는 종착점에 거의 도착해있었다. 경기가 모두 끝난 팀도 꽤 있었다. 아직 경기가 남은 팀도 불과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아스트로와 나무전자가 맞붙었다.
엔트리가 발표되기 전 모두가 기대하는 매치가 있었다.
이승우와 송병호.
미리 보는 OSL 결승!
아쉽게도 이 둘은 경기를 펼치지 않았다.
이승우는 허영우를 상대로 경기를 펼쳤고 송병호는 신연호를 상대로 경기를 펼쳤다.
맞대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 용족전을 펼쳤기에 그들의 용족전 컨디션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승우와 송병호는 모두 상대 선수를 잡아내며 가볍게 승리를 거뒀다.
이승우와 송병호 모두 전략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난한 운영 싸움으로 상대를 누르며 승리를 챙겼다.
경기는 펼치지 않았지만 경기를 치르는 내내 두 선수의 신경전이 팽팽했다.
에이스들이 총 출동한 가운데 경기의 승자는 아스트로였다.
오늘의 승리가 순위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추후에 준 플레이오프에서 만난다면 아스트로가 심리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는 팀은 결정되었다.
S1이 1위로 결승에 직행했고 CT가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3위인 나무전자는 6위인 화성과, 5위인 아스트로는 4위인 GO와 6강 플레이오프 경기를 펼친다.
드디어 약 11개월 간 진행되었던 대장정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아스트로와 CT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펼친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팀 순위는 정해졌다.
하지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다승왕.
이영우와 이승우의 승수는 65승으로 똑같았다.
엔트리가 제출되기 전 이승우가 먼저 도발을 해왔다.
인터뷰를 통해 4세트에 이영우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 후에 ‘이영우 선수라면 당연히 피하지 않겠죠?’라는 말을 덧붙였다.
4세트에 나오지 않으면 승부를 피한 것으로 보겠다는 말이었다.
혹시 양 선수가 맞붙지 않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하고 있는 팬들에게 이러한 이승우의 도발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빛났다.
만약 서로 다른 세트에 나와 승리를 거둔다면, 그리고 이 두 팀의 경기가 에이스결정전까지 가지 않는다면 이번 시즌 다승왕은 66승을 거둔 이승우와 이영우가 공동으로 차지한다.
승률과 다전과 관계없이 오직 다승으로만 다승왕을 꼽기 때문이었다.
혹 동률이 나올시 공동으로 수상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된다면 팬들 입장에서 기운 빠지는 결말이다.
부풀대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고 해야할까?
시시하게 끝날 수 있었던 다승왕 경쟁에 다시 불을 지핀 이승우를 모두 격하게 반겼다.
이런 도발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CT의 응답은 바로 나왔다.
이승우처럼 인터뷰로 밝히지 않았다. 엔트리로 대신 답했다.
CT가 제출한 엔트리, 그 중 4세트엔 이영우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모두의 기대처럼 다승왕을 정하는 매치가 성사 된 것이다.
그 소식이 빠르게 퍼지며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