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30 Game No. 330 MSL 4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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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후 줄곧 민규의 얼굴을 주시해왔다.
민규한테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기보다 모두 밝은 표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두운 표정의 민규가 유독 눈에 띄었다.
내일 경기 때문에 그런가?
이 것 때문에 그런 것이 맞을 것이다.
이게 아니면 딱히 고민할만한 것이 없거든.
내일 민규는 나와 MSL 4강 경기를 펼친다.
개인리그 다전제에서 같은 팀 선수끼리 붙는 건 확실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8강에서 민규와 현우 형이 붙었을 때도 그랬고 4강에서 민규와 내가 붙었을 때도 그랬다.
연습 경기 한 번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전략 유출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이게 되게 묘하다.
항상 먹고 자고 함께 했던 팀원인데 약간 서먹해진다고 해야 할까?
왜 선수들이 팀킬을 그렇게 피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결국 감독님의 배려로 타 팀 선수들과 연습이 진행되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하는구나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전략 준비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대로라면 감독님과 상의를 하며 전략을 준비했겠지만 이번엔 각자 따로 전략을 준비했다.
두 명 모두 감독님께 전략을 상담할 경우 의도치 않게 상대 전략에 유리한 쪽으로 빌드를 짜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한 건 감독님 본인 이셨다.
8강도 그렇고 이번 4강도 그렇고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매일 연구하시는 분 같았다.
이번에도 감독님은 나와 민규에게 완벽한 연습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이런 방식이 처음이다 보니 살짝 어색하긴 했지만 감독님의 배려 덕에 나름 잘 준비할 수 있었다.
다른 팀 선수들과 친해지는 계기도 만들고 말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민규를 계속 바라보았다.
부담. 그리고 긴장.
누구나 4강을 앞두고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짙게 깔려 있는 것이 있었다.
패배감.
아직 경기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민규는 이미 패배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냥 지켜보고 있어도 된다.
점차 경험이 쌓이면 민규도 그걸 극복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4강에서 만나는 적수이기에 앞서 민규는 팀원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끼는 동생이었으니까.
오지랖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민규의 고민을 알아챈 이상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부담감에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민규.
연습실로 가는 민규를 조용히 뒤따라갔다.
밖에 있을 때 표정 관리를 한 것인지 홀로 남자마자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겠구나.
어이쿠. 한 숨을 왜 이렇게 크게 쉬어? 땅 꺼지겠다. 꺼지겠다.
난 조심스럽게 민규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왜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쉬는 거야?”
바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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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드디어 첫 번째 결승 진출자가 나오는 4강 경기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오늘 경기가 경기인 만큼 히어로 센터를 가득 메워주시는 팬분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미처 다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마련 된 간이석에서 보시는 분들, 그리고 그마저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신 분들에겐 사과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김현민 캐스터의 호쾌한 외침과 함께 MSL 4강의 문이 활짝 열렸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히어로 센터를 찾았다가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경기가 펼쳐지는 시간은 7시.
하지만 6시가 채 되기도 전에 좌석이 모두 차버렸다.
고민 끝에 좌석을 앞으로 최대한 당기고 스탠딩석을 따로 마련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불과 10분 만에 스탠딩석까지 꽉 찼다.
이번 경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경기는 팀킬록부터 사제록까지 많은 이름이 붙었지만 그 중 호평을 받은 건 진 로열로더록이었다.
이미 진 로열로더를 달성한 선수와 진 로열로더에 도전하는 선수간의 대결.
2회 연속 결승 진출이냐 진 로열로더의 의지를 이어가느냐.
이 자체로도 매우 흥미진진한 매치였다.
-최상의 경기력에 걸 맞는 해설로 꼭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대결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객관적으로 한 선수에게 많이 치우진 대결이긴 하죠. 이승우와 한민규. 한 선수는 이미 올해에만 3회 결승 진출. 그 중 2회 우승. 프로리그 다승 1위. 경기력을 말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로 아주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민규 선수 역시 양대 예선을 한 번에 뚫고 MSL은 4강에 올라오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임팩트 면에선 밀리거든요? 100명 중 100명 모두 한민규 선수의 열세라고 판단할 겁니다. 이걸 뒤집으려면 한민규 선수는 상상 밖의 무언가, 그러니까 같은 팀인 이승우 선수 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무기를 준비해 왔어야 합니다. 그 무기가 허를 찌르는 빌드 일수도 있고 완벽히 짜인 운영 일수도 있습니다. 견제나 묵직한 한 방 같은 테마 일수도 있고요. 어쨌든 중요한 건 평상시와 다른 한민규를 오늘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승원 해설이 객관적인 시선에서 양 선수를 분석하고 예측을 내놨다.
확실히 둘 중 승자를 꼽으라면 100명 중 100명 모두 이승우의 손을 들어줄 정도로 밸런스가 기운 대결이긴 했다.
이승우는 얼마 전 환국의 2인자 정명혁을 3:0으로 압살하지 않았던가?
그 전엔 최강인 이영우를 잡으며 환국전을 제대로 과시했었다.
최근 이승우가 환국에게 진다는 건, 그 것도 다전제에서 진다는 것 자체가 상상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는 것이 세상사다.
김택윤과 마영찬의 결승에서 김택윤의 승리를 예상한 선수가 누가 있었던가?
한 세트를 이기면 결승에 오를 수 있는 실력을 지닌 만약 2세트를 현 최강의 용족이라 불러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예 세 세트를 잡아내 김택윤이 우승할 거라 예상하는 이는 1명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택윤은 마영찬을 무려 3:0으로 잡아내고 우승자가 되었다.
말 그대로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오늘도 그러지 말란 법 없다.
한민규가 제 2의 혁명가가 될 수도 있다.
선수 출신인 한종엽 해설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오늘 경기를 예측했다.
-팬 분들에게 조금 죄송한 말씀이긴 하지만 아스트로의 선수들이 4강에서 맞붙을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확실히 선수들이 상승세를 꾸준히 타고 있기 때문인지 팀의 성적도 수직 상승. 이미 6강 플레이오프를 확정 지은 상태죠. 두 선수 팀의 주측으로 활약하고 있어 그만큼 최고의 경기가 오늘 나오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아스트로의 선수끼리 4강에서 맞붙는다?
이승우 전엔 4강에 오른 선수가 1명도 없던 아스트로에게 엄청난 사건이었다.
아스트로 뿐만 아니라 이스포츠계 전체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질적으로 꼴찌를 도맡아 하던 팀이 이승우란 선수를 영입하더니 팀의 성적이 쑥쑥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팀에 있던 선수들이 실력도 함께 성장했다.
이 것이 절대자의 위치에 오른 선수가 팀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십 여 분간 양 선수에 대한 분석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모든 객관적인 지표는 이승우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변수는 분명 존재했다.
-일단 한민규 선수 표정을 보면 많이 안정되어 있어요. 신예 선수들 중 현재 최고의 위치, 그러니까 택뱅리쌍 같은 선수를 개인리그에서 만나게 되면 눈빛 자체가 굉장히 불안한 선수들이 많거든요? 지금 이승우 선수는 택뱅리쌍에 버금가는 엄청난 선수 아닙니까? 그런 선수를 다전제에서 마주했음에도 위축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있어요!
최승원 해설이 한민규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처음 4강에 올라온 선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18살의 나이에 완벽하게 자신을 컨트롤 하고 있었다.
패기.
관중들은 절대 느끼지 못하는, 상대하는 선수들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서로 떨어진 부스에 앉아 경기를 하는데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선수 간의 기 싸움은 존재했다.
상대 기에 눌려 준비한 걸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다 경기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많았다. 경기장 그리고 부스 안에 있을 땐 머릿속에 새하얗게 변했다가 숙소에 돌아온 후에야 ‘아. 그때 이렇게 할 걸.’하며 후회를 하는 것이다.
지금 한민규는 그런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것만으로 충분히 칭찬해줄만한 일이었다.
-한민규 선수가 얼마나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 같습니다.
-이승우 선수는 언제나처럼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모습입니다.
-워낙 많은 기록들을 쏟아내고 있어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번 시즌도 이승우 선수 전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2강에서 차인환, 최태양 선수를 만나 완벽히 승리를 거뒀습니다. 16강에선 김선웅 선수를, 그리고 8강에선 김진철 선수에게 1세트도 내주지 않고 전승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23승 0패.
여태까지 MSL에서 쌓은 기록이다.
1시즌 무패 우승도 대단한 것인데 2시즌 연속 무패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역사를 써내려가는 이승우였다.
-사실 무패 우승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 꿈만 같은 이야기라 조심스럽긴 한데 이승우 선수라면 오늘도 3:0으로 누르고 결승에 갈 가능성이 다른 선수에 비해 확실히 높긴 하죠.
-자. 양 선수 준비가 조금 길어지고 있습니다. 보다 완벽한 경기를 보여드리기 위한 것이니 조금만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이어로 선수들의 상황을 전달받고 있는 김현민 캐스터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모든 경기가 중요하긴 하지만 결승행을 결정하는 4강만큼 떨리진 않을거다.
-경기 시작 전에 전장부터 만나보시죠.
화면에 오늘 경기가 치러지는 전장이 쫙 떴다.
전장 순서는 추첨에 의해 정해졌다.
역 언덕 구조를 가지고 있는 마고본성이 1세트와 5세트에 사용되고 2인용 전장인 광룡이 2세트, 전 시즌에도 사용되었던 4인용 전장인 개천이 3세트에 치러진다.
그리고 4세트에선 3인용 전장인 황산벌이 사용된다.
전장에 대한 설명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
-아. 드디어 양 선수 준비가 거의 끝나간다고 합니다. 잠시 후에 바로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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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바라보는 한민규의 얼굴이 어제보다 많이 편해 보인다.
불안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지금 한민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 앞에 있는 모니터만 보였다.
놀라운 집중력.
어제 이승우가 한민규와 한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대화가 끝났다.
짧은 대화였지만 한민규의 마음가짐을 바꾸기엔 충분했다.
연습실을 나서는 이승우가 한민규에게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그렇게 겁먹은 한민규를 이겨봤자 하나도 기쁘지 않을 것 같다. 연습실에서 보여주는 톡톡 튀는, 열정이 넘치는 한민규와 4강에서 만나고 싶다.’였다.
그 한 마디가 한민규를 일으켜 세웠다.
여태껏 하고 있던 고민은 바보 같던 것이었다.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에 지레 겁먹고 위축 되었다.
부딪쳐보지도 않고 먼저 포기한 것이다.
이러려고 프로 게이머가 된 것이 아니었다.
모든 역경을 이기고 끝내 우승을 쟁취하기 위해 프로 게이머가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두려움은 용기로 변했고 패배감은 자존감으로 변했다.
불과 5분 만에 한민규는 새로 태어났다.
사람이 바뀌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 순간 몸을 감싸고 있던 답답한 무언가가 완벽히 깨져나갔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투쟁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 한민규는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건 아니었다.
다만 후회 없이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쏟아낼 순 있을 것 같다.
아무런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그 것이면 족했다.
세팅을 마친 한민규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옵저버가 만들어 놓은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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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