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4 Game No. 294 최고의 운영. =========================================================================
관중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신의 한수.
경기의 향방을 바꿔버릴 수 있는 중요한 유닛이었다.
만약 저 흑완 1기에 패배한다면 김윤호의 멘탈 역시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거는 크죠.
-엄청난 변수죠. 이건. 경기를 아예 송두리 째 쥐고 흔들 수 있는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땡 그슨대의 유일한 약점은 테크가 상대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견제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1기의 군주와 그슨대를 용족 앞마당 근처에 세워둬 동태를 파악하는 건데 초반 군주 1기가 잡히면서 어그러지고 말았다.
-이승우 선수 영악하죠. 빠져나간 흑완 바로 안쓰고 숨겨 둡니다.
-그렇죠. 어차피 지금 가봤자 본진과 앞마당에 그슨대가 배치되어 있거든요. 괜히 지금 가봤자 잡히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흑완이 움직이지 않고 중앙 쪽에 꼭꼭 숨어있다.
멀티 체크, 서 있던 마견을 잡지도 않았다.
아예 김윤호에게 흑완이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김태영 해설의 말처럼 빠져나왔다고 기쁜 마음에 바로 마수의 본진으로 달려가 봤자 비명횡사한다.
비비 때문에 본진에 그슨대를 배치시켜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저 흑완은 언제 쓰느냐?
바로 이런 때다.
-이승우 선수 모아놓은 용아 앞으로 슬금슬금 전진하죠.
-김윤호 선수 병력 집중 시킵니다! 정면 쪽 신경 안 쓸 수 없죠!
중계진과 관중, 심지어 본인조차 잊은 건 아닐까 싶었을 때 쯤 흑완이 움직였다.
앞마당 쪽에서 용아와 비렴이 전면쪽으로 치고 나올 듯 살짝 움직였다.
동시에 김윤호의 본진과 확장에 상주하던 그슨대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승우의 진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승우는 당장 진출할 생각이 없었다.
성동격서.
앞마당에서 북을 치며 시선을 끌고 있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건 빠져나간 흑완 1기였다.
아예 흑완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예측하기 힘들다.
만약 본진이나 확장 중 한 군데가 흑완 1기에 의해 마비되는 사태가 온다면 이번에도 이승우의 판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아. 큰 일 났어요. 김윤호 선수 전혀 모르고 있어요!
-지금 전면이 중요한게 아닌데 말입니다! 흑완! 흑완 들어가요!
-이승우 선수가 지금 또 얼마나 영리하게 해주고 있냐면 정면 쪽을 치고 나갈 것 처럼 하면서 비비를 그 쪽으로 배치했어요. 일부러 네 본진으로 가는게 아니라 한 방 병력을 호위하면서 나온다는 걸 눈으로 보여준거에요! 이러면 본진 쪽에 그슨대 없죠!
엄재웅 해설의 말처럼 본진과 앞마당을 지키는 그슨대는 1기도 없었다. 오직 이승우의 진출을 막기 위해 온 신경이 그 쪽으로 향해있었다.
이대로라면.
-서걱.
모든 일벌레가 끔찍하게 죽고 말거다.
차분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흑완.
이보다 마음 편한 흑완은 어디에도 없을거다. 위에 군주가 동동 떠 있었지만 그 무엇도 방해하는 이가 없었다.
불쌍한 일벌레만이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철광을 캐다 죽어나가고 있었다.
-1킬! 2킬! 3킬!
-아. 흑완 활약을 시작했어요. 단순히 흑완만 움직인다면 김윤호 선수가 알아차릴 수도 있는데 또 한 번 정면에서 북을 울려대고 있어요! 이러면 또 못 보죠!
혹시 본진을 살펴볼 수도 있으니 용아와 비렴을 다시 한 번 진출시키는 이승우였다. 천벌을 피해기 위해 그슨대를 컨트롤하다보면 본진을 쳐다볼 겨를도 없을 거다.
김윤호의 그슨대가 현란한 움직임으로 천벌을 피해냈다.
거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방향을 홱 전환하며 비렴을 끊어주는데 성공했다.
지금 TV를 튼 마수 팬이라면 환호를 지를 만한 상황.
하지만 처음부터 경기를 지켜본 마수 팬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비렴 1기를 잡아준 건 분명 이득이지만 이보다 훨씬 큰 이득을 거두고 있는 이승우다.
김윤호가 의심을 품을 때 쯤 병력을 진출 시키며 시선을 단단히 붙잡아 놓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원 부족으로 한 방 싸움에서 밀리게 된다.
애초에 땡 그슨대를 선택하며 방어건물을 생략한 체제.
일벌레가 깡그리 잡혀버리는 바람에 병력도 제대로 생산할 수 없고 촉수를 지을 일벌레 숫자도 부족하다.
-아. 본진 전멸했어요. 이러면 이승우 선수가 경기 또 가져가죠.
-진짜 대단하네요. 얼핏 보면 정말 뻔한 운영같거든요? 그냥 앞마당 가져가고 힘싸움하고. 근데 자세히 하나씩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조금씩 다 다릅니다. 오늘 경기만 봐도 그렇습니다. 1세트에선 앞마당을 가져간 후 1제단 용아 찌르기와 흑완 드랍으로 마수의 혼을 쏙 빼놓았고 2경기에선 흑완을 몰래 밖으로 빼는 플레이를 통해 큰 이득을 거뒀습니다. 전체적인 틀은 같지만 그 내부에선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며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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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지금 제대로 물량이 나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미 최적화를 시켜두었다.
그런데 자원이 부족하다고?
김윤호가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확장을 살폈다.
견제는 없다.
그 다음 앞마당을 살폈다.
여기도 마찬가지.
마지막으로 살핀 본진.
김윤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본진은 쑥대밭 그 자체였다.
뒤통수를 거대한 망치도 두들겨 맞은 심정이었다.
말끔하다.
철광을 캐는 일벌레가 1기도 없다.
남은 일벌레의 수는 겨우 하나.
그마저 금광을 캐는 일벌레가 금광 안으로 들어가서 살아있는 것이지 금광을 빠져나오면 바로 죽은 목숨이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갑자기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공격 표시가 나타나지 않은 걸 봐 흑완이 들어온 것 같았다.
‘어디서?’
김윤호는 혼란을 느꼈다.
흑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리는 없다.
분명 온 경로가 있을거다.
운룡에 타고 온 것일까?
김윤호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빨라.’
비렴의 천벌도 나왔고 비비도 꽤 생산했다. 그런데 용의 신전까지 올리고 운룡까지 생산했다고?
그 모든 것이 이 타이밍에 가능할 리가 없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건 사기 빌드다.
무적의 빌드.
절대 마수가 이길 수 없는 빌드.
‘그렇다면 걸어온 것일까?’
이 쪽일 가능성이 높았다.
의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 나타났다.
‘언제 빠져 나간거지?’
분명 화면을 놓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군주가 잡히면서 탐지 기능이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그마저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순간.
‘설마 그 틈을 노리고 빠져 나간거야?’
김윤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것 밖에 말이 되지 않는다.
‘처음 군주를 잡을 때부터 노린 거였나?’
김윤호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처음부터 큰 그림을 생각하고 그렇게 해준 거라면 이번 경기는 완벽하게 상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 손오공처럼.
‘젠장.’
김윤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전제라면 조금 다를 줄 알았다.
1세트.
그래. 그렇게 졌지만 2세트부터 다른 운영으로 충분히 압박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변명이 아니었다. 허세도 아니었다.
그만큼 다전제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다양한 빌드를 섞어 이승우를 흔들 자신이 있었다. 착각이었다. 흔들린 건 이승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본진에 숨어 있는 흑완을 잡아냈지만 상황은 이미 기울었다.
김윤호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승우의 판짜기 능력을 인정해야한다. 감독이나 코치가 짜주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행 능력을 인정해야한다.
알고 있다고 실행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만약 누구나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따로 나오지 않았을거다.
‘변해야해.’
이대로 가면 답이 없다.
3세트도 무난하게 패배할 것이다.
다르게 가야한다.
준비한 모든 전략을 엎어야한다.
모든 걸 비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그래야만 이승우를 잡을 수 있다.
****
-지금 나가는 병력을 너무나 막기가 힘듭니다.
-용아의 수를 보세요. 그슨대를 밟고 지나갈 정도로 많습니다.
이승우는 확장을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포기했다기 보단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대신 제단을 2개 더 늘려 8개까지 맞춰주었다.
올인으로 끝내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미 흑완으로 본진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수는 용족보다 못한 자원을 오랜 기간 채취했다.
지금 병력을 막을 힘이 없었다.
-용혼도 필요없다 이거죠! 8개의 제단이 용아를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금 남으면 비렴 뽑고 금 모자라면 용아 뽑고! 이제 공1업도 완료되어서 마견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아. 앞마당이든 확장이든 어디로든 이승우 선수가 마음만 먹으면 다 밀 수 있습니다!
용족의 병력은 고민하지 않았다.
바로 마수의 본진쪽으로 내달렸다.
그건 자신감의 표시였다.
확장을 갈 필요가 없었다. 그냥 지금 있는 병력으로 충분히 본진을 밀 수 있었다.
심시티 사이로 용아가 파고들었다.
그슨대가 어떻게든 막아내려하고 있었지만 천벌에 제대로 된 포지션을 잡을 수 없었다.
반면 용아는 천벌이 때리건 말건 그냥 우격다짐으로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일벌레고 그슨대고 모두 용아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김윤호 선수 GG를 선언합니다! 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네요.
-김윤호 선수의 완승을 점친 이들도 많지 않지만 이렇게 빠르게 무너질 걸 예상한 이들도 거의 없습니다. 2:0! 2:0으로 김윤호가 코너에 몰립니다.
-이제 벼랑 끝이죠. 더 이상 물러날 때가 없습니다! 물러나는 순간 어둠으로 떨어집니다!
이승우의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이제 4강 진출까지 겨우 한 걸음 밖에 남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승우 선수 대 마수전 21연승이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뽑아내네요.
-이건 진짜 상상도 못했습니다. 용족이라는 종족으로 마수전을 21연승을 할 줄을!
-3세트. 3세트가 중요합니다. 김윤호 선수 이렇게 3:0으로 무너질 것인지! 아니면 역스윕의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 잠시 후 3경기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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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력 좋았다.”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다.
초반 군주 1기를 끊어주지 못했다면 경기가 어렵게 흘러갔을 거다.
흑완 1기가 아무런 방해 없이 빠져나가는 순간 이겼다고 생각했다.
“이제 1세트 남았다. 1세트.”
지금까지는 아주 좋다.
원하는 대로 술술 풀리고 있었다.
이제 1세트만 이기면 4강 진출이 확정된다. 슬며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아직 2:0이다.
분명 유리한 건 맞지만 끝난 건 아니다.
기뻐하기엔 이르다.
저 2를 3으로 만들 때 비로소 활짝 웃을 수 있을 거다.
“준비한대로 계속 갈거야?”
“네. 일단은 그렇게 하려고요. 여태까지 잘 풀렸으니까요.”
이번 다전제를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빌드를 섞어야 상대가 당황할 수 있을까?
그런 나에게 감독님이 조언 한 마디를 해주셨다.
1,2세트 연속으로 정석을 한다면 오히려 상대가 더 당황할 것이다.
거기서 살짝만 비틀면 쉽게 김윤호를 무너뜨릴 수 있다.
처음엔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연습을 통해서 조금씩 의미를 알 수 있었고 방금 2경기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온전히 감독님의 말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모든 의문이 한꺼번에 해소되었다.
더부룩한 상황에서 사이다 한 잔을 마신 것 처럼 속이 시원했다.
김윤호는 본인의 꾀에 본인이 넘어갔다.
내가 송병호에게 무기력하게 패배했던 것 처럼.
너무 생각이 많다보니 오히려 눈에 보이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진실을 보여줘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잔뜩 힘을 주어 밀고 있는 상대를 같이 미는 것보다 살짝 옆으로 비키는 것이 훨씬 더 빠르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오늘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제 김윤호의 머릿속은 잔뜩 복잡하게 변했을거다.
좋은 깨달음이었다.
좋은 일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